소설리스트

6. 다이얼 울프 (1) (9/148)

 # 9

6. 다이얼 울프 (1)

다이얼 울프. 성인의 키만 한 덩치에 거친 털이 아닌 단단한 비늘로 몸을 덮는 데다, 물어뜯으면 치명상을 피할 수 없는 기다란 송곳니가 달렸다. 생김새 자체는 늑대와 유사했지만, 전체적인 윤곽은 샤벨 타이거에 가까웠다.

다이얼 울프는 D-급 몬스터로 어지간한 베테랑이 아니라면 홀로 상대하기는 어려운 몬스터이다. 독립성이 강한 몬스터이지만, 유대력이 짙어서 잡는 과정에서 꼬이면 늪지처럼 빠져나올 수 없다.

쉬운 방법으로 가려면 그 유대력을 펼칠 수 없도록 하는 게 최고의 방법이었다. 그래서 홍승오 대장은 일대의 소리를 최소화시켜 주는 마법인 사일런스 마법을 펼치는 전략을 사용했다. 포효를 듣지 못하게 하고, 하나씩 제거해 나가는 것이었다.

200m 정도 남겨 놓고 선발대와 합류했다. 그만큼 거리를 벌린 이유는 관찰하기 적당했고, 다이얼 울프 상대로 더 다가갔다간 발각될 위험이 크기 때문이었다.

다이얼 울프 두 마리가 나무로 덮인 빽빽한 숲에서 흔하지 않은 평평한 바닥 위에서 안락함을 즐겼다. 눈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볼 수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유선은 단순히 다이얼 울프의 모습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은 볼 수 없는 특별한 것이 다이얼 울프에게서 보였다.

-수면.

-만족.

다이얼 울프 두 마리가 엘레노어의 머리 위에서 뜨던 것과 똑같은 단어가 떴다.

‘역시 몬스터에게만 보이는 거였어.’

유선은 그게 교감 특성으로 만들어진 것임을 확신했다. 자신의 추측이 어긋나지 않았음에 안도했다.

한편, 홍승오 대장이 다이얼 울프의 상태를 확인하고 말했다.

-부러워 죽이고 싶을 정도로 태평하군. 계획은 차질 없이 진행하겠어.

-그러면 기습하겠습니다.

한 대원이 조용히 단검을 빼 들고, 다이얼 울프 쪽으로 접근했다. 수풀에 몸을 가린 채로 거리를 좁혀 가는데, 다이얼 울프는 오는 위협을 감지하지 못했다.

한 마리의 뱀처럼 부드럽게 이동하면서 50m 앞까지 접근하는 데 성공했다. 더는 몸을 가릴 수풀이 없었기에 조용히 스킬을 시전했다.

-인비저블.

무전에 들리는 작은 목소리와 함께 다가가던 팀원의 몸이 투명해졌다. <은신> 특성을 가진 사람이 가진 스킬이었다.

다만 완전한 투명화가 아닌, 주변 시야가 왜곡되어 움직일 때마다, 아지랑이가 피듯이 눈앞에서 흔들렸다.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정도였다.

그래서 태평하게 누운 다이얼 울프는 자신의 목에 칼날이 닿기 전까지 침입자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

“흡!”

양손으로 꽉 쥔 단검을 다이얼 울프의 목에 적중시켰다. 두꺼운 비늘 사이를 파고들어 검신이 안을 파고들었다.

-커엉!

치명상을 제대로 입혔다. 다이얼 울프가 날뛰기 시작했다. 다이얼 울프의 힘에 밀려, 그대로 일어났다.

옆에 누운 다른 다이얼 울프가 상황을 파악하며 몸을 일으켰다.

-크어······.

“시끄러워, 이 새끼야!”

홍승오 대장의 방패가 다른 다이얼 울프의 몸을 강타했다.

포효성을 질러 떨어진 다이얼 울프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려 했지만, 홍승오 대장의 저지로 실패하고 말았다.

치명적인 일격을 그대로 끝낼 수 없어, 암살자는 다이얼 울프의 등을 탔다. 거세게 저항해 떨어트리려 했지만, 쐐기 형태 단검이 제대로 박혀 들어갔기에 다이얼 울프가 날뛴다고 떨쳐 내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으윽! 죽어라!”

부우욱!

푹 찍어 넣은 단검을 그대로 목을 가르며 뽑아냈다. 거세게 저항하던 다이얼 울프의 몸에 힘이 빠져 가며 그대로 쓰러졌다. 동맥이 끊어진 줄 모르는 심장은 열심히 피를 몸 밖으로 쏟아 냈다.

“1체 처리했습니다.”

“거기 끝났으면, 여기도 좀 도와주라.”

홍승오 대장의 방패로 겨우 막아 냈다. 방패로 다이얼 울프의 몸을 밀치는 바람에, 자세를 어정쩡하게 잡은 것이 화근이었다.

그렇게 버티기도 잠시였다. 날렵한 다이얼 울프는 방패의 각을 피해서 홍승오 대장의 몸을 공격했다. 심하게 날뛰는 탓에 궁수도 지원하지 못했다.

“지원 갈게요, 대장.”

암살자는 목에 칼을 뽑고, 재빠른 몸놀림으로 다이얼 울프에게 접근했다. 조용히 접근해, 목을 찔러 넣었던 것과 다르게 뒷다리 허벅지 부근을 찔러 넣었다. 그곳이 가장 고통스러운 부위였다.

-크어엉!

“후유!”

다이얼 울프가 고통에 울부짖는 소리를 내며, 암살자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어그로가 완전히 쏠리면서, 홍승오 대장은 숨을 돌릴 틈을 찾았다. 무너진 자세로 공격을 막아 내다 보니 스태미너를 다시 회복시키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대장이 스태미너를 다시 채우는 사이, 전면전에 약한 암살자 클래스 탓에 데미지 줄 생각보다는 이리저리 구르며 공격을 피하기 바빴다.

“헉헉······. 대장님, 슬슬 한계가 오는데요?”

“젊은 놈이 벌써 지치면 나중에 어디에다가 써먹으려고?”

“저 죽어요!”

“기다려라, 이 녀석아.”

가까스로 스태미너를 다시 채운 홍승오 대장은 방패를 제대로 쥐고 다이얼 울프 앞에 섰다.

“나를 봐라!”

고오오!

한순간, 홍승오 대장 주위에 커다란 형체가 솟아 나오다가 사라졌다.

‘한순간 보이는 거인의 기백······. 저게 자이언트 로어구나.’

홍승오 대장이 가진 탱커 특성 중 하나인 <도발>에서 파생되는 스킬, 자이언트 로어(Giant’s roar)였다.

-크릉······. 크르릉······.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암살자를 노리던 다이얼 울프가 홍승오 대장의 목소리에 이끌렸다. 호랑이의 포효성처럼 굵직한 위협음에 경계 태세로 다시 들어갔다.

-커엉!

그르렁거리던 다이얼 울프가 홍승오 대장을 덮쳐들었다. 아까 전과 똑같이 돌진해, 자세를 무너트린 다음, 방패로 가릴 수 없는 곳을 공격하려는 속셈이었다.

하나, 홍승오 대장은 베테랑이었다. 똑같은 수법에 넘어가지 않았다. 그리고 허점을 본 순간, 바로 이용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이걸 기다렸다는 듯이 허공으로 날아오른 다이얼 울프를 향해 돌격해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다이얼 울프가 홍승오 대장에게 보인 것은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이 아닌, 하얀 털이 수북하게 난 복부였다.

“우라아앗!”

홍승오 대장은 방패를 들어 올려, 힘껏 뛰어오른 다이얼 울프의 몸을 받아 냈다. 무게감이 방패에 완전히 실리는 게 느껴지는 순간, 바닥을 향해 그대로 내동댕이쳤다.

파각!

-끼잉······. 끼잉······.

뭔가 크게 깨지는 소리가 들리며 다이얼 울프의 몸이 튕겨 나갔다. 다이얼 울프는 다시 일어나려고 발버둥 치지만 정신 차리지 못하고, 바동거렸다. 홍승오 대장이 방패를 던져두고 검을 양손으로 잡았다. 날카로운 검 끝이 비늘로 덮인 목을 향했다.

그리고 꿰뚫었다.

푸욱!

-끄윽······. 그르륵······.

다이얼 울프가 숨을 멎는 소리를 내뱉다, 목구멍에 걸린 가래처럼 끓는 소리를 내며 피를 토해 냈다. 목에 쑤셔 박은 검을 타고 올라오는 심장 박동이 점점 멎어 드는 걸 느끼곤 홍승오 대장이 입을 열었다.

“다이얼 울프 2체, 모두 제거했다.”

사냥이 끝났다는 소리에 사일런스 마법을 쓰던 마법사의 답신이 들려왔다.

-근방에서 반응한 다이얼 울프는 없습니다.

“좋아, 암살은 성공적이군.”

홍승오 대장은 검을 뽑고, 흥건하게 묻은 피를 털어 냈다. 다시 검집 안으로 집어넣으며, 자신이 던져 놓은 방패를 들었다.

“다음 위치로 먼저 이동하겠습니다.”

“제때 보고하는 거 잊지 말고.”

선발대원이 먼저 출발하는 동안, 다른 대원들은 그 자리에서 대충 자신의 상태를 점검했다. 세세한 지시가 없어도 대원들은 알아서 필요한 일을 했다.

‘이게 팀이라는 거구나······.’

게임에서든, 실전 싸움에서든, 팀플레이는 결국 개인 역량보단 팀원 간 호흡임을 보여 주는 것 같았다. 어째서 외부인을 들이는 것을 꺼리는지 이해할 것 같았다.

“유선 씨?”

“네, 네?”

유선이 가만히 서서 감탄하던 사이, 세림이 그에게 말을 걸었다. 그녀는 미소 지으며 다이얼 울프 쪽을 가리켰다.

“코어 추출 부탁드려도 될까요?”

“코어 추출 말입니까?”

“네.”

짐을 옮기는 것처럼 잡일 중 하나인 코어 추출. 잡일로 취급될 만큼 하는 일은 간단하게 설명되었다.

몬스터 몸체에 들어 있는 코어를 직접 손으로 수거한다.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닌데도, 모두가 하나같이 꺼리는 일이었다. 아무래도 코어를 얻으려면 사체에 손을 대야 하기 때문이었다.

유선은 그녀의 부탁에 고개를 끄덕였다. 배우려는 입장인 유선은 이것저것 가릴 생각이 없었다.

“해 보라면 해 보긴 하겠습니다만, 어떻게 하는지 잘 모르는데······.”

“아, 그 정도는 가르쳐 드릴게요.”

세림은 허리춤에 찬 단검을 뽑아 다이얼 울프의 복부 상단부를 갈랐다.

“코어가 심장에 있는 건 아시죠?”

“네.”

“정확히 말하자면 심장에 달라붙어 있어요. 외벽 쪽에 잘 뒤져 보시면, 단단한 구체가 잡힐 텐데······. 그게 코어예요. 한번 해 보세요!”

세림은 말하는 중간에, 직접 손을 넣을까 고민하다가 그대로 유선에게 넘겼다. 시체에서 올라오는 피비린내 섞인 내장 냄새에 견디지 못한 모양이었다.

유선은 마음을 굳게 잡고 다이얼 울프의 심장부에 손을 가져다 댔다. 살갗을 파고들고, 아직 죽지 않은 근육의 꿈틀거림을 느끼며 심장 부근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물렁한 살점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딱딱하게 굳은 심장이 잡혔다. 그 근처에 코어가 있다.

“좋아······.”

유선은 숨을 크게 들이키며, 손을 집어넣어 안 속을 뒤지기 시작했다.

쩌적······. 끄지직······.

기분 나쁜 소리와 감촉이 손을 감싸 생리적 혐오감을 유도했다. 인내심을 가지고 뒤진 결과, 구체로 된 딱딱한 형체가 손에 걸렸다. 유선은 그것을 뽑아 건져 냈다.

“이거 맞습니까?”

“네, 맞아요. 잘하시네요!”

모든 몬스터의 생명력은 유선이 들고 있는 작은 구슬에서 나왔다. 안에 안개와 반짝이를 집어넣은 듯했다. 언뜻 보면 문방구에서 구하는 200원짜리 구슬과 다를 게 없었다.

겉보기는 그럴듯해 보일지 몰라도, 가격은 하늘과 땅 차이이다. 별것 없어 보이지만, 헌터들이 공무원급으로 인기인 직업이 된 것도 전부 이 코어 가격 때문이었다.

세림은 유선이 들고 있는 코어를 보면서 말했다.

“코어가 생각보다 작네. 환전소로 가면 100만 원에 팔리겠어요.”

“이게 개당 100만 원······.”

코어의 용도는 날이 갈수록 다양해져 간다. 그래서 헌터의 숫자가 증가해도 코어의 수급량은 언제나 부족했고 가격은 점점 올랐다.

‘헌터 꿈도 못 접는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지.’

어린 시절의 꿈은 몬스터를 잡는다는 단순한 동경. 하지만 머리가 굳어 가면서 돈벌이가 가장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 왔다. 코어가 가치도 없었더라면 아마 일찌감치 꿈을 접었으리라.

“다른 한 마리도 배는 갈라놓을게요. 똑같이 해 주실 수 있겠죠?”

“네, 맡겨만 주세요.”

한 번 피 묻힌 손이니 더는 상관없었다.

유선이 다른 다이얼 울프의 코어를 뽑아내는 사이, 엘레노어가 유선의 맞은편에 쪼그려 앉으며 지켜보았다.

“엘레노어, 보면 안 돼.”

훼손된 사체와 피가 있다 보니 그로테스크했다. 엘레노어가 충격을 받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걱정과 다르게 그녀는 다이얼 울프의 시체에 대해서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보는 표정이 약간의 거리낌도 없는 완전한 순수, 그 자체였다. 그 순수가 코어를 가리키며 말했다.

“밥.”

“응?”

“밥.”

잘못 본 건가 싶어 다시 물어보지만, 그녀는 코어를 가리켰다. 모든 걸 밥으로 생각하나 싶어서 그녀의 손에 쥐여 주면서 말했다.

“이건 밥이 아니야. 코어라는 건데, 이걸로 무기도 만들고, 전력으로 돌리는 물건이거든. 그러니깐······.”

“밥.”

“안 돼! 지지!”

유선은 재빠르게 알사탕처럼 코어를 먹으려 드는 엘레노어를 저지했다. 한순간 심장이 끊어져 발끝에 닿는 줄만 알았다.

물건을 뺏긴 엘레노어는 뾰로통해진 표정을 지으며 유선을 올려다보았다. 호감도가 내려갈 것 같다는 신호가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유선은 천천히 그녀를 이해시키려 설명해 주었다.

“이건 먹으면 안 돼. 먹는 게 아닌 데다, 우리가 사냥한 게 아니잖아.”

“사냥?”

고개를 갸웃거리는 엘레노어.

“그러니까 이 늑대들을 잡는 거 말하는 거야. 저 사람들이 이······렇게 쓰러트렸잖아, 그렇지?”

껄끄러운 장면을 가리키려다 애써 손가락을 돌리며 시선을 회피시켰다. 엘레노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깐 이건 저 사람들 몫이야. 우리가 사냥한 게 아니면, 탐내선 안 돼. 알겠지?”

“사냥······.”

대답 대신 고개를 숙인 채로 사냥이라는 한 단어를 중얼거렸다. 그러더니 뭔가를 깨닫고는 고개를 들어 유선에게 말했다.

“사냥!”

“······.”

푸른 눈이 과하게 반짝반짝거렸다. 의욕이 넘치는 얼굴이 다이얼 울프는 금방이라도 씹어 먹을 기세였다.

남의 것을 먹을 수 없다면, 직접 사냥해서 먹는다. 그런 의미였으리라. 하지만 유선은 그 의욕에 응해 줄 순 없었다.

“안 돼. 우리 역량으론 아직 무리야.”

“부으······.”

한 번 더 거부하니, 엘레노어는 인상을 찌푸렸다. 우선 팀에 민폐를 끼치는 일이기도 했고, 그것 말고도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엘레노어의 스탯을 정확하게 모른다. 그녀에 관한 기초적인 지식도 없는 상태에서 의욕만 앞세운 채로 행동하게 둘 순 없었다.

‘일단 힘은 엄청 낮으니까, 더 걱정이지.’

손가락을 쥐는 힘도 약한 애가 만약 다이얼 울프에게 덮쳐지는 날엔 몸이 성히 남지 않을 것만 같았다. 험한 꼴을 보이게 하고 싶진 않았다.

-엘레노어의 호감도 내려갔습니다.

-엘레노어의 스트레스가 올라갔습니다.

유선의 앞에 뜨는 두 개의 메시지. 유선은 분명히 엘레노어를 위해서 한 선택이었는데, 엘레노어는 그 사실을 그렇게 받아 주지 않았다.

‘육아 스트레스라는 게 이런 거구나.’

아이를 위한 선택을 해 줄 때 나오는 반감이 얼마나 부모에게 스트레스인지 체험했다.

‘잘되면, 엄마나 한번 보러 가야겠다.’

유선은 한 번 정도 효자 시늉이라도 해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