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
5. 겉보기론 알 수 없는 법 (2)
홍승오 대장도 상당히 흥미롭다는 듯이 엘레노어를 보다가, 그가 들고 있던 전자 패드를 유선에게 건네주었다.
“우리가 들어갈 던전 정보입니다. 보는 방법은 아십니까?”
“네.”
헌터가 되기 전까지, 보고서를 심심찮게 찾아본 덕분에 그렇게 헤맬 것 같진 않았다.
제42-1025호.
발현 날짜: 2042년 3월 10일.
던전 등급: D.
몬스터 종류: 야수형.
식별된 몬스터: 다이얼 울프.
클리어 조건: 서식원 제거.
‘날짜가 아슬아슬한 던전이네.’
그들이 진입하는 것은 일명, 떨이형 던전이었다.
한 달 이상 방치해 놓으면, 던전을 찾은 익스플로러에게 벌금을 내라 하는데, 그 벌금을 만회하기 위해서라면 어떻게든 던전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야만 했다. 그래서 블랙 프라이데이처럼 파격적으로 가격을 낮추고 팔아넘긴다.
하루만 남은 게 아니라면, 중소기업들은 떨이형 던전을 사서 탐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7명에 D급 던전이라······. 실력이 어느 정도 있다는 말이구나.’
D급 던전은 베테랑을 끼운 초보 공격대인 경우, 14명 이상으로 구성하는데, 절반밖에 안 된다는 건 충분히 실력이 입증되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장비 점검을 하던 헌터 중 하나가 홍승오 대장에게 다가와 보고했다.
“대장님, 장비는 전부 이상 무입니다. 출발 준비만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래, 알겠다. 유선 씨가 해야 할 일들은 모두 저 애가 알려 줄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유선은 홍승오 대장이 가리키는 사람으로 고개를 돌렸다. 붉은색 머리카락을 포니테일로 묶어 올린 여자였다. 미인이었지만 올라간 눈꼬리나 전체적으로 풍기는 아우라에서 기가 세어 보였다.
그녀가 유선에게 다가오며 물었다.
“이름이 정유선이었죠?”
“네, 정유선입니다.”
“그럼 편의상, ‘유선 씨’라고 부를게요. 유선 씨가 관전 견학자로 당장 하실 일부터 알려 드리자면, 이 짐들을 메고 제 뒤로 따라오시는 거예요. 일 자체가 어렵진 않을 거예요.”
일 자체는 어렵지 않다. 그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대신 몸이 고생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유선은 그걸 한 번 더 느껴 보는 것 같았다.
그녀가 가리키는 것은 배낭 하나였다. 하지만 그 배낭의 부피는 성인 몸뚱이의 세 배였다.
공격대는 총 7명, 그 7명이 먹을 식량과 비상시 발생하는 일에 대비해 갖춰 놓은 상비약들을 모두 몰아넣은 결과가 낳은 비주얼이었다.
여인은 멍한 표정으로 배낭을 보는 유선에게 물었다.
“어려울 것 같나요?”
“네? 아닙니다! 일단 해 보죠!”
유선은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었다. 여인은 호기로운 목소리에 만족하는 표정을 지었다. 유선은 짐을 짊어지기 전에, 몸을 풀기 시작했다.
‘각성도 했는데 들겠지.’
각성하면 클래스를 막론하고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이상의 힘을 낸다. 유선은 걱정부터 앞세우지 말고, 어깨끈을 걸쳤다. 분명히 유선의 상황도 고려해서 짊어지게 한 배낭일 테니까.
“윽······.”
하지만 그건 안일한 생각이었다. 이건 상당히 무거운 수준이 아니었다. 각성하면서 생긴 힘으로도 감당하기가 벅찬 무게였다.
‘관전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구먼.’
관전 견학이 잡일꾼에 가까운 일이라는 게 어떤 건지 알 것 같았다. 앞에서 나서지 않는 만큼, 뒤에서 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굴복할쏘냐!’
하지만 유선은 뭔가를 대가 없이 얻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가까스로 짐을 메고 서자, 그걸 지켜본 사내 한 명이 놀랍다는 듯이 말했다.
“대단하시네요. 저는 이거 처음에 들었을 때, 바로 주저앉았는데······.”
“하하, 고맙습니다······.”
무게 중심이 조금이라도 어긋났더라면 유선도 분명히 주저앉아 버렸을 것이다. 유선이 짐을 들자, 홍승오 대장이 대원들을 모았다.
“자, 일들 하러 가자.”
홍승오 대장이 앞장서서 깨진 공간으로 들어가려 했다.
띠리리-.
전화벨이 울렸다. 모든 대원이 일제히 시선을 돌렸다. 그 시선의 중심은 정유선이었다. 유선은 허겁지겁 휴대폰을 꺼내 들어 발신자를 확인하며 홍승오 대장에게 말했다.
“죄송하지만 전화가 왔는데······.”
“지체할 시간 없습니다. 빨리빨리 움직입시다.”
홍승오 대장이 언짢은 기색을 보였다. 출발 전에 용무를 끝내 놓지 않은 건 결례였다. 유선도 그런 매너를 지키고 싶었지만, 발신자의 이름을 보고 차마 거부할 수가 없었다.
“차기율이라서 그런데······.”
“······통화 빨리 끝내쇼.”
유선의 입장에선 은인, 공격대로선 슈퍼 갑인 상대였다. 회사에서 월급을 받아먹는 입장인 홍승오 대장은 어쩔 수 없이 허락해 주었다. 유선은 얼른 통화를 받았고, 받자마자 그의 들뜬 소리가 반겼다.
“여보세요?”
-형님, 안 좋으면서 동시에 좋은 소식이 있소!
“뭔데?”
안 좋으면서 동시에 좋은 게 있냐는 생각에 물어보자, 그가 활기차게 대답했다.
-아무래도 그 UST가 고장인 것 같소. 형님 하는 말대로 수리점에 가 봤는데, 기본 기판이 망가졌다더군. 그래서 그 아이 스펙이 오버 스펙으로 나온 모양이오.
“······.”
이게 왜 안 좋으면서 좋은 소식인가 싶어, 곰곰이 생각해 보니 맞았다. 괜한 환상에 젖었음을 알려 주었으니까.
진작 알았지만, 직접 전화해서 알려 준 기율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말했다.
“그래, 알려 줘서 고맙다.”
-아쉽게 됐구려. 그만한 스펙이면 애들 벌벌 기게 했을 텐데 말이오······. 그러니 이번 견학에서 뭔가 제대로 얻길 바라겠소!
유선은 기율의 전화를 끊고 공대 쪽으로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계약 건에 관해서 얘기하던 거라서.”
“괜찮습니다. 상대가 상대인데, 어쩌겠습니까?”
사과를 받고, 유선은 다시 마지막 줄에 붙었다. 그리고 엘레노어를 내려다보았다. 시선을 느꼈는지, 푸른 눈동자가 유선을 올려다보았다.
‘역시 식성 좋은 한낱 애구나······.’
어제 두 눈으로 직접 확인했는데도, 혹시나 숨겨진 힘이라도 있을까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기율이 완전히 못을 박았기 때문에 이제는 완전히 마음을 접기로 했다. 엘레노어는 약한 소녀로 생각하기로 했다.
“출발하자!”
홍승오 대장을 선두로 던전에 입장하기 시작했다. 블랙홀 같은 구멍 속으로 하나둘씩 몸을 집어넣기 시작했다. 유선 앞에선 붉은 머리 여인이 공격대 마지막으로 들어가기 전에 유선에게 물었다.
“유선 씨, 틈으로 들어가는 건 처음이죠?”
유선은 그 물음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사유지 던전에 침입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일까 하고 생각했다.
일단은 모르는 척 잡아뗐다.
“처음입니다만, 왜 그러시나요?”
“아뇨, 그냥 궁금해서 그랬어요.”
여인은 대답을 듣곤 미소 지으며 먼저 틈으로 들어갔다. 그 미소의 의미를 알 수 없었다.
이제 유선의 차례였다. 유선은 침을 꿀꺽 삼켰다.
“이계의 틈······.”
어린 시절부터 가이드라인 너머로 본 깨진 공간. 집으로 날아들어 오는 야구공에 처참하게 깨진 유리창처럼 생긴 금과 깨진 공간 너머 또 다른 이질적인 공간.
유선은 헌터가 되어서 틈으로 입장하는 순간을 동경해 왔다. 그리고 그게 현실이 되었다. 앞길이 창창하고, 그가 걷는 길이 곧 꽃길만 될 것처럼 들떴다.
유선은 설레는 마음으로 틈으로 들어갔다.
***
3분 뒤.
“우웁······.”
“누구 종이봉투 좀 가져다줘라.”
꽃길은 개뿔.
첫 입장의 기분은 최악이었다. 들어가자마자 눈앞의 모든 형상이 찌그러졌고, 펴지고를 반복하며 원근감을 농구공처럼 튀겨 어지럽게 했다. 숙취가 올라오듯 머리를 지끈하게 눌러 댔다.
“이야, 옛날 생각난다. 나도 처음 들어왔을 때, 저만큼 어지러웠는데······.”
“이 새끼가, 과거 미화하려 드네. 그때, 너 똥 지렸잖아, 인마.”
“아, 아니거든! 똥 지린 건 내가 아니라 저 자식이야.”
“가만히 있는 놈을 파네, 쓰레기 같은 놈.”
유선의 상태를 본 헌터들이 추억을 떠올리며 시시덕거렸다. 주저앉은 채로 숨을 고르자, 유선 앞에 섰던 붉은 머리 여인이 종이봉투를 가져오며 다가왔다.
“괜찮아요, 유선 씨?”
“콜록, 콜록······. 네니오······.”
“처음에는 다 그럴 수밖에 없어요. 애초에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공간에 들어온 거니까요. 나중에 던전에 익숙해지시면 울렁증도 사라질 거예요.”
여인은 미소 지으며 설명해 주었다. 그녀는 이럴 것이라고 미리 알았다.
‘그래서 그렇게 웃었던 거였구먼.’
아무것도 모른 채로 서프라이즈 당하는 신입을 보면서 즐겼다. 괘씸하기 짝이 없었지만, 종이봉투를 가져다주며 등을 토닥여 주기에 악의가 없는 건 알았다.
“······감사합니다, 저기······.”
“세림이에요. 박세림.”
“세림 씨.”
유선은 열심히 종이봉투에 입을 가져다 대고 호흡했다. 먼저 들어간 엘레노어가 유선의 옆으로 뛰어왔다. 유선은 초췌해진 얼굴로 그녀에게 물었다.
“엘레노어, 너는 괜찮니?”
-?
“······괜찮은가 보네.”
꼴사나운 모습을 보이는 건 혼자였다. 그래서인지 안심되기보다, 수치심이 먼저 들었다.
1분 정도, 종이봉투에 대고 호흡하다 보니 금방 진정했다. 유선이 진정한 것을 보고, 홍승오 대장이 본격적으로 지휘했다.
주변 정찰을 담당하는 선발 인원이 이미 출발한 상태여서 유선과 엘레노어를 포함한 7명이 남았다.
“자, 이제 사주 경계 철저하게 해야 한다. 언제 어디서든지 튀어나올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알겠나?”
“네.”
“선발 인원 무전 들리지?”
-수신 양호합니다.
“좋아, 이동하자.”
유선은 고개를 들어 주변 풍경에 시선을 두었다.
숲이었다. 이끼에 덮인 나무와 지긋하게 나이를 먹었다는 듯이 커다랗다 못해, 유선이 작아진 게 아닐까 생각이 드는 나무로 덮인 숲이었다.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자연미에 아름다움을 느꼈다. 세림은 유선의 표정에 그 기분을 이해한다는 듯이 조용히 말을 걸었다.
“좀 의외죠? 사람들은 항상 던전이라고 부르는데, 정작 보이는 건 뻥 뚫린 하늘과 우거진 녹림인 게?”
유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항상 던전이라고 불러서 어두컴컴한 곳일 거로 생각했는데······.”
판타지 소설을 읽어 본 이들이라면, 던전의 이미지는 함정으로 가득한 침침한 동굴이나 드워프가 만들어 낸 고대 유적을 떠올린다. 던전 정보가 공개적으로 드러난 적이 없어 유선도 언제나 그렇게 생각해 왔다. 이렇게 트인 공간을 던전이라고 상상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유선 씨, 명심하셔야 할 건, 여긴 그 침침한 이미지의 던전과 다를 게 없어요.”
“어째서인가요?”
유선의 물음에 세림은 미소 지었다. 미소 지은 것과는 다른 섬뜩한 이야기가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길을 잃거나 틈이 닫혀 버리는 그 날엔, 우리는 이 세계에 갇히게 되니까요.”
“······.”
이른바, 이계 조난. 생존율은 지옥에서 살아 돌아오는 것만큼이나 적으며, 살아서 돌아와도 제정신을 유지하는 사람이 없다. 유선은 무슨 일이 벌어져서 그렇게 미쳐 버렸는지 궁금했지만, 경험하고 싶지는 않았다.
질린 얼굴이 된 유선을 본 세림은 키득 웃으면서 안심하라는 듯 말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을 거예요. 바깥에 남은 사람하고 전화가 끊기지 않는 이상, 틈이 좁아지는 걸 수시로 확인해서 알려 주니까요.”
목숨을 걸고 하는 일이기 때문에, 만반의 준비를 하고 가는 사람들이다. 그에 대한 대책은 언제든지 준비해서 다행이었다.
-밥.
한참 걷자, 옆에 달라붙어서 걸어오던 엘레노어의 머리에서 뜨는 단어였다.
‘배가 고픈가?’
하지만 그런 것치고는 엘레노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배가 고팠더라면 분명히, 옷깃을 잡아당기며 말했을 테니까.
‘밥으로 생각할 만한 뭔가가 이 주변에 있겠네.’
열매 따위가 있나 주변을 둘러보지만, 그의 눈에는 어떤 것도 보이지 않았다. 엘레노어가 눈을 둔 방향도 고개를 돌려 살펴보지만, 그녀가 보는 것은 키 몇 배나 되는 나무뿐이었다.
그녀가 반응을 보이고 조금 더 걷자, 선발 인원의 무전이 들렸다.
-다이얼 울프 2체를 발견했습니다. 좌표로 찍어 전송하겠습니다.
선발 인원의 보고가 들어오면서, 가진 휴대용 좌표 표시 장치에 좌표가 찍혔다. 선발대와의 거리는 1km, 그리고 선발대가 발견해 낸 다이얼 울프는 2km가 넘는 곳이었다.
-그쪽으로 가겠다.
홍승오 대장이 답신을 보냈고, 다이얼 울프와의 거리를 계속해서 좁혀 나갔다. 한참을 걸어가자, 유선의 감지 특성에 닿았다.
‘이게 다이얼 울프인가?’
그가 알 수 있는 건 거리가 좌표에서 대강 500m라는 정보가 끝이었다. 뭔가가 있다는 사실만 알 뿐, 특성 레벨이 낮기도 하고 익숙하지 않아 정확하게 식별할 수는 없었다.
-충분히 접근했다. 현재 상황은?
-아직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다이얼 울프들을 어떻게 하실 겁니까?
-가장 강한 놈을 빠르게 잡고 뛰는 게 우리 목적이긴 하지만······. 다이얼 울프 같은 경우에는 미리 처리해 두는 게 뒤는 켕기지 않으니, 조용히 처리하자고.
-사일런스 마법을 쓰겠습니다.
-그럼 저는 주변 경계하겠습니다.
홍승오 대장의 지시 한 번에 능숙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팡이를 쥐던 여성 헌터가 지팡이를 바닥에 꽂고, 마나를 끌어모으기 시작했고, 남성 헌터는 장검을 들고 마법사의 캐스팅이 끊이지 않도록 주변을 경계했다. 나머지는 천천히 좌표를 향해 걸어갔다.
“유선 씨도 짐 내려놓고, 따라오세요.”
“내려놔도 되나요?”
“그 차림으로 따라오는 건 관전 견학자가 아니라 짐꾼이나 다름없잖아요. 짐은 여기 있는 우리 검사님께서 지켜 줄 테니깐 걱정하지 마세요.”
그 말을 들은 유선은 얼른 배낭을 벗었다. 짐을 벗자 몸이 한결 가벼워졌다. 세림은 천천히 따라오라고 손짓했고, 그녀를 따라 자세를 낮추며 조심스럽게 이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