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
5. 겉보기론 알 수 없는 법 (1)
“애가 식성이 대단하구먼. 혼자서 여섯 그릇을 해치울 줄은 상상도 못 했소.”
분식집에서 계산을 마친 기율이 놀랍다는 듯이 말했고, 유선은 공감한다는 듯 말을 받아쳤다.
“더 놀라운 건 여섯 그릇이나 먹었는데 저 상태라는 거지.”
그 많은 양이 위장 안에 들어갔을 텐데, 배는 모든 물리 법칙을 무시하는 것처럼 쏙 들어갔다. 엘레노어는 배부르게 먹었다는 사실에 기쁜 표정을 지었다.
“이제 뭘 할 생각이오?”
“이제 뭘 하냐니? 헌터 자격증도 생겼으니 당연히 나를 받아 줄 만한 회사를 알아봐야지.”
“사역수가 있잖소. 헌터 일은 바로 시작 안 할 거요?”
“하루 전에 각성한 몸이야.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아직 풋내기지.”
“내 말은 그게 아니고, 회사 같은 거 들어가기 전에 주변에 부탁하면 한 번 견학차로 데려다주지 않소?”
기율이 말하는 건, 직업 체험처럼 정식으로 헌터 일을 하기 전에, 뒤에서 가만히 지켜보는 관전 견학을 의미했다.
반드시 해야 하는 건 아니었지만, 난생처음 미지의 존재와 맞서 싸우는 데 흐름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도는 파악하게 해 줘야 하기에, 8할의 헌터들이 대부분 바로 사냥에 들어가지 않고 관전 견학을 두세 번 하면서 배운다.
유선에게는 그것도 하늘의 별 따기 같은 일이었다.
“그것도 쓸모 있는 사람이나 그러지. 능력도 보잘것없는 테이머는 취급도 안 해 준다, 야.”
“여태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최강의 사역수가 있는데, 뭐가 걱정이란 말이오?”
흥행 보증 수표라도 끊은 것처럼 즐거운 표정으로 엘레노어를 향해 눈짓했다. 이용할 생각이 가득 찬 기율과 다르게 유선, 계약자 자신은 정작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현실의 장벽을 떠올리면, 한숨이 저절로 지어질 정도였다.
“그렇다 해도, 내가 인맥도 없고. 다짜고짜 견학해 보고 싶다고 해서 받아 줄 리가 없잖으냐.”
인생은 냉혹하다. 그것에 관해서 얘기하려던 찰나에 기율은 같잖은 걱정이라는 듯 피식 웃었다.
“지금 인맥이라 했소?”
“그래, 인맥. 헌터 쪽에는 인맥이 전혀 없는지라······. 너, 뭐 하니······?”
기율은 휴대폰을 들고 문자를 찍었다. 맥락을 파악해 무슨 일을 하는지, 알아차린 유선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설마?”
기율이 눈썹을 추켜세운 채로 인심 쓴다는 어투로 말했다.
“설마 하는 그 설마요. 이 차기율이 형님을 위해서 힘 한 번 써 주겠다는 그 설마지.”
“정말 고맙긴 한데······. 그래도 되냐?”
유선은 갑의 인맥을 이용해서 괜히 민폐 끼치는 건 사양이었다. 하지만 기율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리 마련이야 뭐, 얼마든지 할 수 있잖소? 그 사람들이 제 공격대가 아니니까 발목 잡을 수 있다는 불안감에 배척하지, 자기들 밥줄 날릴까 봐 그러는 게 아니오, 내가 귓가에 입김 좀 불어넣어 주면, 형님이 견학할 자리는 마련해 줄 거요.”
유선은 어째 이런 기율이 낯설기만 했다. 아무 생각 없이 굴었던 철없던 시절의 그가 도대체 어디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유선은 걱정스레 기율의 손을 붙잡으며 물었다.
“너 혹시 죽을병이라도 걸렸니?”
“엥?”
“내 장기가 필요해서 이러는 건 아니지?”
“뭔 소리요? 군대까지 다녀온 금방 잡아 올린 활어급으로 팔팔한 몸이구먼!”
죽을 사람 취급해 감정이 상했는지 손을 뿌리쳤다. 유선은 장난스레 미소 지으면서 기율에게 말했다.
“이렇게 도움만 받는데 어떻게 하냐? 미안해지잖아, 인마.”
“미안해하지 마시오. 이건 차후에 상환하면 되는 문제지 않겠소?”
“그 빚은 어떻게 갚게 하려고?”
“그건 채무자가 정하시오. 내 마음에 든다면 그걸로 해결해 보지.”
기율의 말에, 유선은 손가락을 말아 소주잔을 잡은 것처럼 손 모양을 잡으며 까닥였다.
“도원결의 한 번 더 하러 갈까?”
“나중에 한 번 더 합시다.”
기율은 마음에 드는지 끅끅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
유선은 엘레노어를 데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엘레노어는 집에 돌아와선 바로 침대에 누워 버렸다. 잠을 자려는 것보단 푹신한 감각이 좋은 것 같았다.
“꾹. 꾹.”
유선은 천진난만한 소녀의 모습을 하는 엘레노어를 보며 생각했다.
‘저런 애가 그만한 스펙이 나온다고?’
믿을 수가 없었다. 헌터들이 상대하는 몬스터들은 단순히 형태로 판단해선 안 되는 것투성이긴 했다. 그런데 몸집이 작으면 독이나 칼날 같은 치명적인 무기를 품지, 국가 재앙급 스펙을 가지진 않았다.
-편안.
거기에 소녀의 행동이나 떠올리는 생각 수준을 보면, 어린애 그 자체였다. 생각하면 할수록 그의 의심은 한 가지로 귀결되었다.
‘UST가 망가진 건 아닐까?’
애초에 UST가 오작동을 일으킨 것이다. 그래서 보잘것없는 소녀의 몸에 힘이 있다고 표기된 것이다.
그럴 것이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막 시작한 루키에다 스탯도 특출하게 잘난 것이 아니다. 스탯이 한참 우위인 엘레노어가 굳이 내 밑으로 올 이유가 없었다.
‘만일에 하나······ 이 교감 스킬로 이루어진 거라면······.’
유선의 교감 레벨은 4. 거기다가 공감 특성까지 어우러져, 몬스터들과 소통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초월해 상호 간 이해하며 관계가 긴밀해질 수도 있었다.
물론 그것은 단순한 이론이었다. 테이머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알아 오지 않는 이상 모두 가정에 불과했다.
‘어쩔 수 없지.’
백문이불여일견이라 하여 유선은 직접 확인하기로 했다.
“엘레노어.”
-?
그녀의 이름을 부르자, 침대에 누워 있던 엘레노어가 고개를 들어 유선을 보았다. 유선은 자신의 집게손가락을 펴 보이며 말했다.
“손가락 한 번 세게 꽉! 쥐어 볼래? 이렇게 말이야.”
“꽉?”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아, 유선은 자신의 손가락을 쥐는 시늉을 해 보였다. 엘레노어는 유선의 말대로 그의 손가락을 잡았다.
“그래 그렇게 꽉 잡아 봐.”
무력이 100 이상 넘어가는 순간, 악력은 호두 하나를 손쉽게 부수는 정도이다. 만약 엘레노어의 무력이 표기대로 8천이라면, 유선의 손가락은 부서지다 못해 입자 단위로 쪼개져 가루로 변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부서지기는커녕, 손가락이 아프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냥 부드러운 손이 자신의 손가락을 잡고 있다는 생각만 들었다.
“꽉 잡은 거야?”
“꽉.”
“더 꽈악 쥐어 볼래?”
“꽈악.”
“더 꽉!”
“꽈악~!”
엘레노어는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으며 그의 말을 반복했다. 손가락은 여전히 어린애가 움켜쥔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엘레노어의 호감도가 올랐습니다.
의도치 않게 호감도가 상승했다. 엘레노어의 입장에선 자신과 놀아 준 것으로 취급한 모양이었다.
‘역시나······.’
유선은 한숨을 내쉬었다. 엘레노어의 힘은 자신보다 못 미치는 수준. 생각한 대로 그녀의 상태는 UST에 표기된 것과 확실히 달랐다.
유선은 다시 엘레노어를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까르르 웃으며, 유선의 손가락을 쥐었다. 그는 피식 웃으며 엘레노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 말도 안 되지. 이런 애가 어떻게 그만한 힘을 가지겠어?”
유선은 지금이라도 알아차려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허황한 꿈에 사로잡혀 엘레노어를 사지로 몰고 갔다면 죄악감에 사로잡혔을 테니까.
그때, 유선의 바지 속에서 진동이 울렸다. 휴대폰을 확인하니, 차기율의 메시지가 날아왔다.
차기율: 제가 아는 곳에 찔러 보니깐, 내일 동부 쪽에서 헌팅 예정이라고 하오! 한 명 끼워 줄 수 있냐고 물어보니깐, 낙오돼도 책임은 안 지겠답니다. 어떻게 하시겠소?
낙오돼도 책임을 지지 않겠다. 그 말이 상당히 거슬리긴 했지만, 유선은 어떻게든 더 배워야 하는 입장이었다.
-콜.
짧게 답장을 날려 보내자, 금방 기율의 답장이 날아왔다.
차기율: 오키도키. 좌표 보내 드릴 테니깐, 내일 아침 9시까지 가시면 되오.
그 밑으로 핀이 찍힌 지도가 있었다. 유선은 이용할 교통수단을 대충 확인하고, 휴대폰을 덮었다.
“아, 맞다.”
유선은 뭔가가 떠올라, 다시 휴대폰을 집어 기율에게 문자를 보냈다.
-혹시 내일 시간 되면 UST 장비 점검이나 해 봐라.
차기율: 점검? 혹시 그 스펙이 안 믿겨서 그러오?
그랬다.
-내가 직접 확인해 봤는데, 무력이 8천이 아니라 8도 못 미치는 수준의 힘을 가지고 있더라.
차기율: 엥? 그렇소? 그렇다면 참 아쉽게 됐구먼.
유선의 귓가에 기율이 입맛을 다시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차기율: 그런 것 같으면, 나한테 손해될 건 없으니 내일 찾아가서 하고 오겠소.
-그래. 고생해라.
차기율: 형님도 고생하시오.
용건을 마치고 휴대폰을 덮었다.
***
아침 일찍 일어난 유선은 채비를 마치고, 좌표를 찍어 준 곳으로 향했다. 시간 여유를 넉넉하게 잡은 탓에, 너무 일찍 왔나 생각했지만, 좌표에는 공격대가 미리 도착했다.
유선은 엘레노어를 이끌고 그 자리로 달려갔다. 전자 패드를 보던 중년이 누군가 달려오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차기율 도련님께서 추천하신 분입니까?”
중년의 물음에 유선은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네, 정유선이라고 합니다. 관전 견학을 하게 돼서 영광입니다.”
중년 남성은 그의 인사를 받아 고개를 까닥이며 자기소개를 했다.
“공격대장, 홍승오입니다. 저 던전 안쪽으로 들어가는 순간부터 안전은 보장해 줄 수 없으니, 지시하는 사항은 잘 들어주고, 멋대로 나서지 말아 주십시오.”
“홍승오 대장······.”
유선은 그의 이름을 듣고 경악했다.
“뭐 문제라도 있습니까?”
“혹시 슈프리머시 클랜의 서브 탱커, 홍승오입니까?”
“······.”
예상치 못한 물음에 홍승오 대장은 당황하고 말았다.
“그건 어떻게 아셨습니까?”
“오래전에 기사로 본 적이 있어서 그랬습니다. 제가 좋아했던 헌터 그룹이 슈프리머시라서······.”
유선은 어린 시절부터 헌터 일에 관심이 많았기에, 헌터에 관한 일이라면 옛날 것들도 빠삭하게 알았다.
홍승오 대장은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다 옛날이야기입니다. 유선 씨가 우리 팬이었다면······ 어떻게 됐는지도 아실 테죠.”
“네······.”
클랜 슈프리머시가 해체된 지 12년이 넘었다. 리더가 파티 도중에 사망하면서, 중재해 줄 사람이 없어져 팀 간 불화가 격화되었고 그렇게 해체되었다. 자랑하고 다닐 만큼 썩 좋은 역사는 아니었다.
“그리고 이 사실을 다른 팀원들에겐 비밀로 해 주시겠습니까?”
홍승오 대장이 유선에게 부탁했다. 유선은 슈프리머시 클랜의 해체 과정이 안 좋았기 때문임을 알았다.
“혹시 홍승오 대장이, 슈프리머시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모릅니까?”
“슈프리머시가 유명한 클랜이지만 저는 이름도 안 난 클랜원이었을 뿐입니다. 아마 이름을 듣고 제 정체를 알아차린 건, 정유선 씨 당신뿐일 겁니다.”
“아, 알겠습니다.”
유선은 홍승오 대장의 요청에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사람들도 당연히 알 거로 생각했는데 정체에 대해선 입을 다문 모양이었다.
홍승오 대장은 유선과의 이야기를 마치고 슬쩍 엘레노어를 향해 눈길을 던지며 그에게 물었다.
“이쪽 여성분은?”
“제 사역수입니다.”
“테이머셨죠. 엄청난 사역수가 있다고는 들었습니다만······.”
상당히 실망한 기색이 커 보였다. 홍승오 대장의 말에 장비를 점검하던 공격대원들은 자연스럽게 엘레노어를 향해 이목이 쏠렸다.
“저 애가 사역수야?”
“귀엽게 생겼네.”
“딱밤 한 대에 엉엉 울 것같이 생겼는데?”
“그냥 인간을 데려온 거 아냐? 저게 사역수인 것처럼······.”
“쉿, 입 조심해.”
유선은 실언한 대원의 말까지 모두 들었지만, 그들의 말에 개의치 않았다.
인간형 몬스터가 흔한 게 아닌 데다 그런 몬스터를 조련하는 데 성공했다는 사람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 번쯤은 생각해 볼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