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
1. 클래스의 차이(2)
“테, 테이머?”
주혁의 술을 받던 정도가 잠깐 굳은 채 유선을 보더니, 잘못 들었느냐는 표정으로 그에게 되물었다. 유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 테이머 맞아.”
그 말을 한 번 했는데, 모두가 들었다는 듯이 순식간에 정적이 찾아왔다. 불편한 정적 속에서 정도가 소주잔을 흔들었다. 그러더니 픽하는 소리를 내며 불편한 정적을 깼다.
“푸흐흐, 테이머라······.”
정도의 입에서 음흉한 비웃음이 흘러나왔다. 예상한 반응이었다. 그는 주혁이 채워 준 소주를 들이켰다.
“대단하구먼. 전형적인 노력형 직업을 받았을 줄이야. 딱 너다운 걸 받을 줄 몰랐다. 날 때부터 귀족이었던 놈들과 확실하게 다르네, 그래.”
날 때부터 귀족이라는 사람은 윤정도, 자기 자신을 말하는 것이었다. 자기 과시를 하며, 유선을 비웃었지만, 당사자인 유선은 불편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 그렇지?”
씁쓸한 웃음을 흘리며 그의 말에 맞장구쳐 줄 뿐이었다.
윤정도는 소주 두 잔만 마시고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들으라는 듯이 구시렁거렸다.
“어이구, 여기는 연기가 많아서, 내가 도저히 있질 못하겠네. 좀 더 쾌적한 곳에서 했으면, 우리 정.유.선.이랑 함께 술 마실 텐데, 아쉽게 됐구먼.”
“그러게 말이다.”
정도는 유선의 어깨에 손을 얹어 툭툭 치며 축하했다. 축하보단 우월감에 사로잡힌 어조였다.
“아무튼 시험 통과 축하한다! 앞으로 창창한 길 걸어야 하니깐, 지금까지 먹은 건 내가 다 긁고 갈 테니까! 재미들 좀 봐!”
“감사합니다, 존경하는 선배님!”
“살펴 가세요!”
긁고 가 준다는데 마다하지 않고, 도연과 주혁이 깍듯하게 인사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정도가 문밖으로 나가자, 도연과 주혁의 표정이 돌변했다. 혐오감이 자리를 잡았다.
“저 선배, 너무하지 않아요? 진짜!”
“그래! 테이머도 나쁜 건 없잖아요! 여태 유명한 테이머들은 뭐가 되냐고? 안 그래요, 선배?”
도연과 주혁은 정도를 혐오했다. 잘나가는 유망한 헌터라 해도, 그 사람이 어떤 성격을 가졌는지 알기 때문에, 좋아해 주려 해도 해 줄 수가 없었다.
유선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소주를 들이켰다. 탁! 테이블에 거칠게 내려놓으며, 다시 잔을 채웠다.
“선배, 괜찮아요?”
아무 말 없이 혼자 술을 마시는 모습에 도연이 걱정스레 물었다. 혼자만의 세상에 빠진 듯 표정이 죽어 있던 유선이 고개를 들었다.
“응? 아, 난 괜찮아. 얘들아, 신경 쓰지 마.”
도연의 걱정스러운 표정에 유선은 빙긋 웃으면서 다시 한 번 더 소주를 들이켰다.
탁!
유선은 거칠게 소주잔을 내려놓았다. 그의 손짓에는 숨길 수 없는 분노가 담겼다. 그의 목소리는 애써 침착한 목소리였다.
“너희도 헌터 지망생이니깐 곧 알겠지만, 테이머란 직업은 팔라딘과 비교하면 어떤 것도 비교할 수가 없어. 그건 명백한 사실이야.”
꿀꺽-. 꿀꺽-.
유선은 그대로 술을 들이켰다. 유선에게도 분한 마음이 분명히 있을 텐데, 도연은 보여 주질 않으니 유선에게 답답함을 느꼈다.
“선배는 유독 윤정도, 그 선배, 아니 그 싹수에게만 약하게 구시는 거예요?”
유선은 그 질문에 간단하게 대답했다.
“쟤는 잘났잖아.”
윤정도. 과에서는 전설로 통할 만큼, 천재성을 보인 사내였다.
대학 시절, 1학년을 마치자마자, 바로 KOHA 시험을 쳐 보겠다고 달려들어, 단번에 합격한 사내였다.
그것만으로 전설이 된 것은 아니었다. 그 별명이 붙은 것은 각성 후의 이야기였다.
정도가 다른 헌터들처럼 협회에서 각성하고 특성을 받을 때, 그의 주 특성은 <불굴>로 레벨은 3이었다.
레벨 4만큼 주목받는 인물은 아니지만, 그래도 충분히 기대받는 신인 반열에 들 레벨이었다.
하지만 그의 인생을 갑의 입장으로 완전히 뒤집어 놓은 것은 특성의 개수였다.
그의 특성은 무려 8개! 그것도 주 특성인 불굴뿐만 아니라 피부가 단단해지는 특성인 <강철>, 상대의 공격을 파악하는 <독안>까지 레벨이 3인 특성이 3개가 있었다.
한치의 오차 없이 앞에서 나서서 싸우는 탱크(Tank) 역할을 위한 특성이었다.
타고난 특성 운에 그의 클래스는 고민할 것도 없이 팔라딘으로 배정받았다.
팔라딘은 흔히 말하는 귀족의 직업이다.
팔라딘 클래스를 받는 순간, 기업 관계자들이 윤정도의 주변을 둘러쌌다. 명함이 그의 주머니란 주머니에는 모조리 채웠다는 게 과장된 말이 아니었다.
그렇게 윤정도는 제 입맛대로 회사들을 상대하는 ‘갑’의 입장이었다.
제아무리 특성이 레벨 4라도 전투에 도움이 되지 않는 특성을 가진 정유선과는 하늘과 땅 차이로 시작했다.
“선배! 선배도 헌터 시험은 한 번에 합격하셨어요! 대학 생활하시면서 얼마나 노력했는지, 우리가 아는데!”
“그래요, 선배! 선배가 너무 기죽으실 필요 없어요!”
윤정도와 비교해서는 보잘것없었지만, 다른 헌터들의 합격사(史)와 비교하면 정유선의 합격사도 만만치 않게 순탄한 길을 걸었던 사람이었다.
유선은 그 길을 만들려고 불철주야 노력했고, 도연과 주혁은 그걸 알았다.
보통 공무원 시험과는 비교할 수 없이 수많은 난관이 있는데, 그걸 극복하려고 유선이 노력한 것은 주혁과 도연에게 귀감이 되었을 정도였다.
“분명히 형도 저 윤정도의 콧대를 부러트릴 방법이 있을 거예요. 테이머면 몬스터 조련해서 다른 몬스터들이랑 싸우는 거잖아요. 그러니깐······.”
“여태까지 유명했던 테이머들 말이야!”
유선은 그 말을 듣고, 순간 답답한 감정에 언성을 높였다. 주혁은 유선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말이 끊기고 말았다.
유선, 자신도 소리친 것에 깜짝 놀란 나머지 목소리를 낮췄다.
“······어떤 놈들인지 알아?”
“네? 그, 글쎄요······.”
언제나 헌터를 꿈꿔 왔던 유선이었기에, 헌터들의 행적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았다.
그가 본 잘나가던 테이머들의 공통점은 하나였다.
“다 금수저야.”
S급 헌터, 협회장, 검사장, 판사, 대기업 간부······.
아버지가 모두 금으로 수저를 가공할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었다.
“테이머들 같은 경우에는 유독 격차가 심하거든. 팔라딘처럼 처음부터 귀족 취급받는 놈들, 아니면 추적자처럼 널리고 널려서 인력 시장에 쓰일 법한 인물들처럼 특정한 라인에서 머무는 게 아니라 말이야. 그건 또 왜 그런 줄 알아?”
“······.”
도연은 대답할 수 없었다. 그사이에 유선이 술을 들이켰다. 탁! 소주잔이 테이블을 치면서 그가 소주병으로 빈잔을 다시 채우며 말했다.
“우리를 먹잇감 취급하는 몬스터를 길들이는 위험을 걔네는 돈으로 다 커버하거든.”
따라주지 않는 운을 커버할 수 있는 것이 자금! 자신의 신변을 보호해 줄 헌터를 구해, 여차하면 몬스터를 죽이도록 한다.
흙수저 테이머들에겐 그럴 능력이 없었다. 공격해 오면, 알아서 도망치거나 죽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가면 갈수록 격차가 심해져. 위험을 감수하고 뛰어들면, 죽거나 반병신이 되는 경우가 더 많으니까, 그런 일은 하고 싶지 않거든.”
다른 클래스와 다르게, 어떤 수저를 물고 태어났는가가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유선은 그 직업 운을 저주했다.
분위기가 완전히 가라앉았다. 유선은 말없이 계속 빈 잔을 채우고, 비우기를 반복했다.
“운이 따라 주겠죠! 형이 노력은 열심히 하는데, 운이 안 따라 준다는 거, 누구는 알아줄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선배! 선배는 할 수 있을 거예요!”
그 설명을 들은 주혁과 도연은 유선의 사정엔 암울하기 짝이 없다는 걸 알았지만, 애써 위로해 주려 노력했다.
하지만 유선은 이젠 후배들의 걱정도 귓가 주변에조차 맴돌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에는 단 한 사람의 이름뿐이었다.
‘윤정도······.’
그것은 자신의 분노를 이끄는 대명사. 그 이름을 곱씹으면서 가해지는 분노를 삭일 유일한 방법은 술뿐이었다.
***
-그렇게 해서 선배, 혼자 소주 4병 드시고, 집에 혼자 가겠다고 해서 혼자 가셨어요.
“······ 그랬지?”
어제 있었던 모든 일을 주혁을 통해, 다시 한 번 더 들었다. 모든 것이 자신의 기억과 일치하지만, 유선은 혼란스러운 표정을 금치 못했다.
그가 어떤 표정을 짓는지, 얼굴 사정을 알 리 없는 주혁이 걱정스레 한 번 더 유선에게 물었다.
-선배 집은 잘 도착하셨죠? 어디론가 갑자기 새서 몸 일부가 사라졌다거나 그러진 않았고요?
무슨 일이 있었다. 유선은 침대 한 군데를 힐끗 보며 대답했다.
“어, 어······. 그런 건 없네. 걱정하지 않아도 돼. 너 공부 중이었지?”
-네, 뭐 그렇죠.
“그래, 공부하는 데 방해해서 미안하다. 열공하고 너도 헌터 시험 합격해.”
-네, 선배! 선배도 힘내세요.
유선은 재빠르게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고 스마트폰을 내려놓았다. 모든 말이 자기가 생각하는 것과 일치했는데, 유선은 혼란스러운 표정이 펴지지 않았다.
“그렇게 퍼마시고 집에 혼자 들어오겠다고 해서, 혼자 갔더니······.”
유선은 자기 일을 곱씹어 보지만 도저히 떠올려지지 않았다. 그는 다시 시선을 밑으로 떨어뜨렸다. 그것을 보는 순간 혼잡했던 머리가 터져 나갈 것처럼 부풀어 올랐다.
유선은 자신을 혼란케 하는 물체를 내려다보며 불안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집에 왔으면, 빈손으로 와야지, 정유선······.”
침대 구석에는 난생처음 본 적 없는 소녀가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