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2화
“우리는 인간계와 연결된 던전을 단 하나만 남겨 둘 생각입니다.”
데아는 인간계에 딱 하나의 던전을 남기기로 했다. 그 말에 모두가 귀를 의심했다.
“해당 던전은 삼엄한 감시 아래 놓이게 될 것이며,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될 것입니다.”
해당 던전은 인적이 드물고, 충분한 연락망이 있어 길드과 헌터의 접근이 용이한 동해 해면 끝에 홀로 만들어졌다.
“그 던전 안에 인간이 먼저 들어가 교류를 요청하지 않는 이상, 그 어떤 부산물도, 인어도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설사 교류를 시작한다고 해도 인어들은 결코 인간을 공격하지 않을 것을 제 이름에 대고 맹세합니다.”
“왜 인간계에 던전을 만들려는 거죠?”
용기 있는 누군가가 질문을 던졌다.
“아예 다 없애버려도 되는 일 아닙니까!”
“헌터의 유지 때문입니다.”
데아는 물을 들이켠 후, 이어 말했다.
“해당 내용은 여파 길드와 023길드의 길드장님에게서 더 자세한 설명을 들으실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대충 요약하자면 던전이 사라지면 각성 능력도 사라지니, 각성 능력의 유지를 위해 던전을 남겨 달라는 차현과 권도언의 부탁을 들어준 것이다 정도다. 그러나 이를 굳이 일일이 다 설명해 주기 귀찮으니 알아서 찾아 들으란 얘기였다.
카메라 불빛이 팡팡 터졌다. 단상에서 내려오는 길, 저 멀리 살짝 비춰지고 사라지는 누군가가 보였다.
어, 데아는 조용히 뒤로 뛰었다.
“너.”
그 자리에는 헤실헤실 웃는 연가을이 있었다.
“여기에 있을 거라는 소식을 듣고 왔는데, 정말 있었네요.”
연가을은 데아를 포옥 껴안고 다시 물러섰다.
“인사를 하고 싶어서 왔어요.”
“인사? 나도 만나서 반가워.”
“아니, 그런 인사 말고요, 전…….”
연가을은 침묵하다가 다시 데아를 껴안았다.
“언니가 감옥에 갔어요.”
뭐?
“아, 놀라지 마세요! 하지만 언니는 그게 싫지 않대요. 참, 엄마도 이 소식을 알아요. 엄마는 처음에는 기절할 듯이 놀랐는데, 나중에는 그래, 알아서 해라― 하더라고요. 살아서 보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어느 순간 연가을은 울고 있었다. 슬픔의 눈물은 아니었다.
“물론 내부 고발을 해서, 형량이 감형될 거라는 소식을 들었어요. 몇 년 안 살고 나올지도 몰라요. 그럼 그때 같이, 언니랑 같이…….”
연가을의 눈이 물기에 젖어 반짝 빛났다.
“데아… 샤샤 헌터를 보러가도 될까요? 다 같이 다시 인사를 드리고 싶어요.”
“인사?”
“네. 하나 남겨 둔 던전을 통해서요!”
연가을의 눈이 반짝거렸다. 데아는 푸스스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기다릴게.”
“약속한 거예요!”
“그래그래.”
“참, 그리고 다른 섬 사람들 소식 들었어요? 나중에 배협 길드장님이 여파 통해서 연락 넣는다는데, 권도언 길드장님에게 한 번 물어봐요!”
그 말을 끝으로 연가을은 재차 데아를 꼭 껴안고는 멀어졌다.
◈ ◈ ◈
데아가 던전 하나를 남겨 둔 이유는 안전한 교류와 두 길드장의 부탁인 탓도 역시 있었지만, 데아 스스로가 인간계에 ‘헌터’라는 존재를 남겨 두고 싶었던 마음이 더 컸다. 꼭 인어를 사냥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눈부신 발전과 개인과 단체, 모두를 위해선 능력은 있는 편이 좋았으니까.
길드는 기업의 형태로 돌아섰다. 데아는 당장 밖으로만 나서도 길드… 아니, 기업 여파의 소식을 심심찮게 들을 수 있었다. 어째 권도언은 유능한 길드장보다는 이능력을 가진 유능한 기업 회장 쪽이 더 소질에 맞는 것 같았다. 얼굴이 반지르르하고 꽃이 핀 것이 참…….
“잘생겼다고요?”
“제가 방금 소리 내서 말을 했나요?”
“눈만 봐도 알 수 있죠.”
데아의 얼굴을 느릿하게 바라보던 권도언이 실실 웃었다. 권도언의 세단을 타고 전해 줄 소식이 있다며 여파 건물로 가는 길, 데아는 문득 스쳐 지나가는 건물들을 보며 생각에 빠졌다.
그러고 보니 이런 적이 또 있었다. 언제였더라? 그래… 맞아.
“처음 정신 병동에서, 여파 건물로 가는 길도 이랬었죠.”
권도언이 아무 말 없이 스윽 데아를 응시했다.
“그때는 이렇게 될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
백미러로 보이던 창백한 얼굴의 정신 병동 환자, 이데아. 권도언은 그때를 어렵지 않게 상기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지? 시간이 훌쩍 흐른 지금, 그날로부터 어느덧 6년을 바라보고 있는 시점의 이데아는 같은 장소에서 웃고 있었다.
세단이 미끄러지듯 도로를 횡단한다. 아늑한 노래가 울려 퍼지는 노을의 중간, 권도언은 소리 없이 입꼬리만 올려 웃었다.
“데아 씨, 심심할 때마다 여파로 와요. 여전히 데아 씨는 여파 소속 헌터로 이름이 올라가 있으니까.”
“아, 아직도요?”
“네. 와서 제 일도 좀 해주시고…….”
“아~ 안 되죠. 저는 이제부터 놀 거라서.”
속이 훤히 보인다며 이데아가 신랄하게 웃었다.
“길드장님이야말로 가끔 제국으로 놀러오세요. 제가 맞이해 줄 테니까.”
영원히 지지 않는 불멸의 종족. 그들의 환영을 받을 수 있다니. 권도언은 영광이라며 웃었다.
◈ ◈ ◈
“한지야! 아, 아니, 샤샤 헌터! 아, 이것도 아닌가? 그러면… 어… 태초……?”
고장 난 세연이 데아를 보고 삐걱거리는 사이, 배협이 성큼성큼 걸어왔다. 외간 남자의 접근에 권도언이 긴 다리를 뻗어 그 사이를 가로막았다.
“뮙니까?”
“감사합니다!”
돌연 배협이 허리를 숙여 데아를 향해 꾸벅 인사를 했다.
“…….”
권도언이 눈치를 보며 슬쩍 다리를 회수했다. 이어진 배협의 말은 다음과 같았다.
“예전에 금, 기억하세요?”
동굴 던전 안에서 데아가 버린 금을 배협이 회수해 갔었다. 아마 그때 일을 말하는 것 같았다.
“그 금을 현금으로 환전해 무너진 여례아로부터 독립을 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새롭게 길드를 세웠다고요! 물론 요즘은 길드보다는 기업이 더 맞겠지만… 그래도요!”
인어의 침략이 없을 뿐, 이능력은 분명 훌륭한 사회의 자산이었다. 특히 전 세계에서 능력이 생생히 남아 있는 국가는 대한민국뿐인 상황에서, 전 세계의 러브 콜이 한곳에 쏟아지고 있었다.
“그럼 여전히 배협 길드장이라고 불러야겠네요.”
“아, 아니. 그게 말이죠.”
“길드장은 저예요.”
배협의 말을 끊고 석파란이 나왔다. 그는 데아를 새롭게 바라보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와 적응 안 되네……. 한지가 샤샤 헌터였다니.”
“안녕하세요.”
“뭘 새삼스럽게 인사를 해요.”
당연히 처음에는 배협이 길드장으로 추대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배협 본인은 인어와의 협업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며 부길드장으로 스스로 내려오고, 협력 부분에서 큰 성과를 세웠던 석파란에게 길드장 자리를 내어 주었다.
“살아남은 다른 섬 헌터들은 대부분 뿔뿔이 흩어졌는데… 하나둘 연락이 닿고 있어요. 벌써 몇 명이 우리 길드로 들어오고 싶다고 한 걸 봐서는 대부분 다 들어올 것 같아요.”
“잘 됐네요. 길드 이름은 뭐예요?”
“정의!”
처음 데아가 들어갔던 길드와 이름이 똑같았다.
“그대로네요?”
“아주 좋죠.”
그리고 마지막, 저 멀리 양철민이 쭈물쭈물 데아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나, 나는 예상했어. 설한지가 샤샤 헌터라는 거. 진작 예상했다고.”
양철민이 새침하게 말했다.
“세연, 쟤가 영 눈에 띄게 뭘 숨기려고 드니까 싫어도 알 수밖에 없었어. 그러니까 난 안 놀라.”
“어어… 그래.”
그렇게 말을 할 거면 땀에 흠뻑 젖은 두 손부터 숨겨 보는 게 어때…….
“아, 맞아. 그리고 이거 연가을 헌터가 전달해 달라고 했는데,”
그때 석파란이 주섬주섬 뭔가를 꺼냈다.
“연구소 안에 남아 있던 기록 중 하나. 2세대 인어 뭐… 관련 일지가 적혀 있는데 네가 알면 좋을 것 같아서 따로 챙겨 놨었나 봐. 여기.”
2세대 인어?
데아는 곧바로 자료를 펼쳤다.
어두운 녹색 머리카락을 2세대 인어. 이름은 자잔……. 그에게 행한 시술의 내용은…….
‘맙소사, 자잔 눈에 뭘 넣었는가에 대한 내용이잖아??’
“고마워요!”
“연가을 헌터에게 전해야죠. 연가을 헌터의 말에 따르면 그 언니인…….”
석파란의 목소리가 확 낮아졌다.
“정소진 연구 소장이 따로 챙겼던 것 같더라고요.”
“…….”
데아는 이 내용을 곧바로 피파글랜에게 전달해 주기로 마음먹었다.
“우리는 더 바빠질 거예요. 한국에서 활동할 수도, 어쩌면 해외로 나가게 될 수도 있겠죠.”
그리고 작별 인사를 했다. 물론 다시 만나게 될 거라고 생각은 들지만……,
“샤샤 헌터를 만나 정말 다행이었어요. 그곳에서도 잘 지내요. 생각나면 찾아와도 좋고, 우리들이 던전을 통해 찾아가도 좋고.”
“좋아요.”
손이 떨어졌다. 휘휘 돌리는 손을 마지막으로 그들이 멀어졌다.
데아는 후, 숨을 내쉬었다.
“길드장님도 종종 찾아와요.”
“네에.”
권도언이 낮게 웃었다.
“오지 말라고 해도 찾아갈 거예요. 이 시간이 다 할 때까지.”
◈ ◈ ◈
피파글랜은 자료를 받고 바로 정답을 도출했다.
“생각보다 단순한 장치였네요. 자잔의 안구에 삽입한 건, 심박수가 높아지면 자동으로 찍히는 카메라 렌즈였어요. 음성 기능도, 세상에… 조금 있는 것 같고요.”
“단순한 장치라니……. 정말 단순한 거 맞아?”
데아는 어이없어했다.
‘그래서 칸나니아가 자잔과 접촉했던 날 알아보고 바로 찾아왔던 거구나……. 자잔이 스스로 눈을 가려도 목소리는 기록에 남았을 테니까.’
“그런데 고장 난 지 오래네요. 이런 건 간단해요. 자잔, 이리로 올래?”
그 후로는 순식간이었다. 쭈뼛쭈뼛 걸어온 자잔의 뒷목을 팍! 쳐 기절시킨 피파글랜은 곧장 수술에 들어갔고, 간단하게 렌즈를 제거해 냈다.
“끝!”
“…….”
데아는 봉변을 당한 자잔을 애석하게 바라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널 위해서니까 참아 자잔. 미안하다.
“그래서 주군, ‘알’은 잘 있나요?”
바닷속, 가장 포근한 장소에 잠들어 있는 알. 데아는 씩 웃었다.
“당연하지. 주변 물고기들이 순찰도 돌아주고 있어.”
해류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 안락한 해저. 그곳에서 부화만을 기다리고 있는 알. 태초의 마력을 일부 빼어 만들어 낸 새로운 권속을 모두가 기다리고 있었다.
심지어 산 높은 곳에서 유배 생활을 하고 있는 도라안 또한 전서로 ‘아직도 안 태어났어? 정말로?’를 남발하고 있었으니 말 다했다.
“생각이 난 김에 또 가서 보고 올게.”
데아는 창을 열어 넘어갔다.
그 알은 특별한 부분이 있었다. 그건 MBL연구소 안, 죽어 가던 유우라의 마석을 삼킨 데아가 첫 번째로 해당 마력을 다시 뱉어 내어 만든 알이었으니까.
―저 추워요.
그렇게 속삭이던 가냘픈 어린 생명. 데아는 알이 잠들어 있는 문을 밀어 열었다.
그러나 그곳에는 예상치 못한 인어가 있었다.
“어……?”
“못 보던 권속이네요. 아, 아직 탄생을 안 했으니 아닌가.”
종적을 감췄던 첫 번째 1세대 인어. 트리야. 그가 알을 바라보고 있었다.
손끝에서부터 소름이 돋았다.
“…네가 왜 여기 있어?”
“그저 들렸어요. 당신의 마력을 찾고 찾다가…….”
트리야가 알을 만졌다. 부서트리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딱딱한 손짓이었다.
“여기까지 와버렸네요.”
나 외의 권속은 당신에게 필요 없다며 수많은 알을 부숴버렸던 트리야. 그러나 지금은 지난날과는 달랐다.
트리야는 감정 없는 건조한 눈으로 알을 흘끗 보고는 다시 데아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먼 과거가 생각나는군요.”
그리고 트리야가 꺼낸 말은 예상치 못한 부분이었다.
“먼 과거?”
“자잔.”
데아의 심장이 뛰었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거야, 트리야
“제 유일한 권속이었죠.”
데아는 말을 잊었다. 알고는 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 걸까.
“그 2세대 인어를 탄생시켰을 때가 생각이 나네요. 그때의 난… 권속을 탄생시키면 당신을 이해할 수 있을 줄 알았거든요.”
트리야는 쓸쓸하게 데아에게 다가섰다.
“하지만 새롭게 탄생한 권속을 보는데도… 정말 신기하게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아서…….”
내 마력을 받아먹은 생물체 하나. 드는 느낌은 그게 다였다.
“그래서 그냥 버리고 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