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9화
연구소의 불은 전부 꺼져 있었다.
전구 하나 들어오지 않는 어두컴컴한 복도 속에서는 진득한 피 냄새가 났다.
“사, 살려 주……!”
누군가 데아를 향해 손을 뻗었지만 그 손은 미처 닿지 못하고 툭, 떨어졌다. 데아는 어둠 속에서 홀로 빛나는 누군가의 눈을 마주보았다.
“트리야.”
“주군을 위해.”
트리야는 느릿하게 계단을 내려왔다. 5년 전, 제왕의 알현실에서 단상을 내려오던 모습과 소름 돋도록 똑같았다.
“이 모든 길을 마련했답니다.”
괴물이 데아에게 경례를 표했다.
헌터들과 연구원들의 시체로 만들어진 길 끝에는 환하게 빛나는 ‘모체’가 있었다.
“가서 목적을 달성하세요.”
“네가 왜 여기 있어?”
“이곳으로 오실 줄 알고 있었으니까요.”
트리야는 기품 있게 살짝 고개를 숙이곤 손짓했다.
“당신의 손에 더러운 것이 묻는 걸 차마 더 볼 수가 없었어요.”
“안 묻었어.”
“이곳에 홀로 오셨으면 필시 묻으셨겠죠.”
그러니 그 전에 빠르게 정리한 것뿐이라며 그는 웃었다.
고꾸라진 스탠드가 깜빡거린다. 그 빛을 동반자 삼아 데아는 걸었다.
트리야가 만들어 낸 길의 끝에는 여전히 끔찍한 모습의 유우라가 잠들어 있었다.
우우웅…….
데아는 포세이돈 15층에서 들렸던 시스템 메시지를 떠올렸다. 추워요. 추워요……. 끝없이 뇌까리던 그 메시지는 너의 뜻이었을까.
데아는 가만히 유리창에 손을 댔다. 몹시 차가웠다.
“너―”
휘익!
“!!”
그 순간, 환상이 닥쳐왔다.
모체의 능력은 환상계. 상대에게 본인이 원하는 환상을 보여 주는 능력.
분명 눈을 감고 있던 유우라가 파란 눈을 떴다. 뒤를 돌아보니 트리야는 없었다.
‘이건 환상이야. 확실해.’
아는데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태초마저 위압하는 강대한 힘. 그러나 그것이 위협적이라는 생각은 더는 들지 않았다.
유우라에 대한 이야기는 피파글랜에게 이미 들었다.
“나에 대해 알아보다가 간부들에게 쫓겼다고.”
태초에게 큰 흥미를 가지고 서적을 뒤적이다가 간부들에게 뒤쫓긴 작은 3세대 인어.
데아는 주먹을 쥐었다 폈다. 조심스럽게 다가가 유우라의 머리카락을 넘겨주었다. 파랗게 질린 탁한 눈동자가 데아의 손을 따라갔다.
“추워?”
―네. 추워요.
유우라가 입을 크게 벌렸다.
―추워요, 너무, 너무 추워요. 추워서…….
유우라가 데아의 목을 덥석! 잡았다. 그 힘에 데아의 몸이 휘청였지만 중심을 잃지 않았다.
“큽!”
―태초 님. 추워요. 너무 추워요. 여기는 너무 추운데 왜 이제야 오셨어요?
유우라의 눈이 분노, 증오, 배신, 그리고 실망으로 점철되었다.
당신은 강하고 전능하잖아. 그런데 왜 이제야 나를 데리러 왔어? 엇나간 분노의 대상은 유우라가 그토록 관심을 가졌던 태초를 향했다.
―왜 이제야……!
지금까지, 왜 나를 안 구했나요? 당신은 모든 인어들의 주군이라며.
유우라는 포세이돈을 통해 보았다. 트리야가 몰락한 제국을. 모두가 화목하게 웃고 있는 세상을. 그곳에 자신의 자리만 없을 뿐이었다.
―왜 이렇게나 늦게……!
유우라의 눈에 핏줄이 툭, 투둑 섰다. 미간에 주름이 잡히고 이빨이 빠드득 갈렸다.
모두가 자신을 잘 잊고 살고 있었다. 나는 괴로워서 그만 없어지고 싶었는데 아무도 자신을 구하러 오지도, 존재를 알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 간극이 유우라를 무력감에 빠트렸다.
비로소 만들어진 완벽한 세상. 자신을 구해 줄 거라 믿었던 자들은 내 옆에 없다.
―왜 이렇게 늦게 와서 나를 슬프게 만들어요?
“흐, 큽!”
―그러니, 나를……
유우라의 눈에서 눈물이 뚝 떨어졌다. 데아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러니 나를 구해 줘요.
데아의 목을 잡은 손이 덜덜 떨렸다.
―이런 나를 이해한다고 말씀해 주시기만 하면 돼요.
몸은 이미 늦어버렸다. 자신은 구제받지 못한다. 그러나 이런 끝없는 절망 속에서 정신만이라도 자유롭고 싶었다.
유우라는 서럽게 울었다.
―부디 너무 늦어서 미안하다고, 한 마디만 해주세요. 태초 님.
그 말을 곱씹으며 당신을 용서할 테니까. 아무런 증오도 없이 내 현실을 받아들일 테니까.
―한 번만 도와주세요. 내가 나를 싫어하지 않을 수 있게…….
내가 인어 제국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랄 수 있게.
목을 옥죄던 손이 스르륵 풀렸다. 데아는 그 손이 떨어지지 않게 붙잡았다.
“그걸로 되겠어?”
두 눈이 마주친다. 데아는 거세게 유우라를 껴안았다. 치가운 몸이 한가득 들어찼다. 태초의 품에 안긴 유우라가 딱딱하게 굳었다.
“아주 먼 훗날, 별이 반짝이는 밤 아래서.”
별이 반짝이는 날. 그건 유우라가 처음으로 인간계에 발을 디디고 선 하늘의 모습이었다.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될 거야.”
완벽한 구원의 형태로. 데아의 눈이 청명하게 빛났다.
이미 틀린 목숨. 스러질 생명. 그것들은 결국 바다로 향하는 걸 아니까.
데아는 유우라의 얼굴을 붙잡았다. 작고 하얀 얼굴이 만져졌다.
“그러니 네 마석을 줘.”
태초는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존재. 유우라는 책에서 읽은 내용을 멍하니 상기했다.
―어…….
모든 것의 전능한 신, 태초가 유우라의 귀환을 예고했다.
유우라는 가만히 눈만 깜빡이다가 이내 하하 웃었다. 처음으로 내뱉는 웃음소리에 데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렇게도 웃을 수 있는 인어였던가?
“어…….”
―진심이신가요?
유우라는 그 후로도 혼자 소리 내어 웃더니 끅, 끅 거리며 홀로 울었다.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졌다.
―됐어요.
그러면서 내미는 손 위에는 자신의 탁한 마석이 있었다. 이미 숱한 연구 과정을 거치며 오염되고 금이 간 마석이었지만 충분했다.
“고마워.”
―입을 벌려 주세요.
데아는 잠자코 입을 벌렸다. 유우라는 그 혀 위에 마석을 올려 주었다.
―가세요.
“…….”
―가서. 이 모든 일을 멈추셔야죠. 그리고 나를 잊지 마세요. 나를, 나를…….
부질없는 희생. 타의적 희생. 체념하면서도 후련한 얼굴로 웃는 유우라.
―잊지 말아 주세요. 이제 됐어요. 여기서 나가세요. 여긴…….
그가 데아를 밀쳤다.
―위험하니까.
“어…….”
그 순간, 모든 환상이 깨졌다. 데아는 처음 본 모습과 다를 바 없이 그대로 눈을 감고 고요하게 잠들어 있는 유우라를 바라보았다.
“대화는 다 끝났나요?”
트리야가 데아의 뒤로 와 물었다. 데아는 혀 위에 놓아져 있는 딱딱한 마석을 느꼈다.
아… 갑자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거세게 밀려오는 해일 속에 잠기고 싶은 그런 기분.
유우라.
데아는 굳은 얼굴로 밖으로 나왔다. 도망치듯 연구원들을 밀치고 문을 박차며 뛰었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비상등이 일제히 켜지며 붉게 위잉위잉 돌아갔다.
“모체의 상태가 이상해!”
“뭐야!! 이건 회로는 안 넣었잖아! 이게 어떻게 된 거냐고!”
연구원들이 어디선가 소리를 치는 소리가 들렸지만 데아는 멈추지 않고 끝까지 달렸다. 헉, 헉, 숨이 뇌 끝까지 차올랐다. 현기증이 나고 시야가 흐려졌다.
유우라. 데아는 달리며 마석을 아그작! 씹었다. 산산조각 난 그 마석이 그대로 흡수되었다.
“모체의 무단 행동으로 자폭이 이루어지고 있어, 막아야 해!! 안 막으면 포세이돈 또한 포화된다!”
“뭐라고?!”
모체. 유우라. 그건 포세이돈의 마석이다.
태초는 비로소 포세이돈과 가장 밀접한 존재가 되었다. 그에 뇌 속의 기생 생물이 환호했지만, 데아는 두 눈을 손으로 꾹 누르며 달렸다.
“모두 연구소에서 나가! 폭발한다!”
“으아악!!”
거침없이 휘몰아치는 하늘. 쏘아지는 비명들. 한 생명이 모든 것을 안고 영원한 잠에 드는 시간. 데아는 그것의 이불을 덮어 주며 다시 깨우는 날을 홀로 기약했다.
“모체가 폭발한다!!”
“으악!!”
콰과과과과―!!
붉은 화염이 위로 솟았다. 마지막까지 추운 장소에 홀로 잠들어 있던 모체는 강렬한 불꽃을 쏘아 올리며 자멸했다.
어두운 밤하늘이 붉게 빛났다. 하늘에 별이 사라졌다가 다시 돌아왔다,
“구급차, 구급차 불러!”
“이게 무슨 일이야……!”
매캐한 연기가 스멀스멀 올라간다. 데아는 모두의 시선을 피해 근처 숲으로 뛰었다. 아무도 자신을 볼 수 없는 곳, 아무도 나를 탓하지 않는 곳. 누구의 시선도 닿지 않아 홀로 감정을 토해 낼 수 있는 곳으로.
“트리야.”
“네.”
트리야가 어둠 속에서 고개를 들었다. 부르셨나요?
“지금 당장…….”
잠시 침묵하던 데아가 트리야를 똑바로 쳐다봤다.
“포세이돈의 상황을 보고 와.”
◈ ◈ ◈
‘젠장, 칸나니아가 죽었어! 지원군도 지원군이 아니었고!’
여기은은 무작정 포세이돈 밖으로 나가려다가 저지당했다. 어디서 튀어나왔을지 모를 엄청 난 수의 인파와 기자, 방송국 카메라가 여기은을 가로막았다.
“연해 이 모든 상황의 투자자가 여례아 길드라는 속보가 있는데…….”
“그에 총 책임자인 여기은 길드장의 구속 영장이 발부되었다는 소식입니다.”
“MBL연구소를 무장 수색 하라는 시민들의 요청이…….”
저 멀리서는 포세이돈 안에서 목숨을 잃은 헌터의 유가족들이 소리 지르고 있었다.
“진실을 규명하라!!!”
“내, 내 잘못이…….”
아냐, 아니란 말이야!
심장이 쿵쿵거리며 뛰었다. 호흡이 가빠진다. 헐떡거림이 심해진 여기은은 이성적인 사고에 실패했다.
“내, 내 탓이 아니라 인어의 탓입니다!”
“해당 인어에 대해서 내부 유출이 다 된 상태인데, 그에 대해서는 하실 말씀이 있습니까?”
“포세이돈 내부의 인어가 MBL연구소에서 만든 가짜 인어라는 증거가 나왔는데…….”
근처를 보자 텅텅 비어 있었다. 여례아 소속의 헌터들이 죄다 도주했다. 여기은의 피가 지하로 처박혔다.
“정소진, 정소진을 불러오세요. 저는 MBL 연구 소장 정소진의 말에 따른 것밖에는……!”
“정말입니까?”
“현재 정소진 연구 소장님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 그건……”
“여기 있습니다.”
뚝, 소음이 멈췄다.
기자들이 우르르 뒤를 돌아보자 망신창이가 된 정소진이 머리카락을 질끈 묶은 채 서있었다.
“정소진 연구 소장이 현재 포세이돈 앞에 있습니다!”
“무슨 사유로 여기까지 온 겁니까!”
왜, 왜 여기 있지? 저 눈은 뭐야?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그러나 정소진은 여기은이 자신을 불안하게 쳐다보든 말든 눈길 하나 주지 않았다.
‘잠시만, 설마…….’
휙! 여기은이 정소진의 어깨 너머를 보자 곧장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연가을!!’
맙소사, 동생을 만난 거야! 정소진은 지금 나를 배신하려고 하고 있어!
“잠시만, 정소진……!”
“이제 그만 받아들이세요, 여기은 길드장님! 우리는 끝났습니다!”
MBL 연구소의 핵심 간부 정소진. 그의 실토에 기자들이 웅성거리며 일렁였다.
“방금 그 말을 사태에 대한 진실 규명이라고 봐도 되는 겁니까!”
“정소진 연구 소장님! 포세이돈이 인공 던전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시는 겁니까!”
정소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수한 플래시라이트가 펑펑 터졌다.
여기은 홀로 그 광경에서 뒷걸음질 쳤다. 수년 동안의 모든 빌드 업이 무너졌다.
이젠 끝이야. 아냐, 이렇게 무너질 줄은…….
차라리…….
‘차라리 다 죽어버렸으면……!
쿠르르르릉―!!
“……?”
“어?”
“방금 무슨 소리…….”
약자는 재앙의 냄새를 기가 막히게 알아차렸다.
웅성거리던 사람들이 뚝 조용해졌다. 그들은 일제히 탑 게이트 포세이돈을 올려다보았다.
“방금 포세이돈 안에서 소리가 난… 난 거 맞죠?”
“이게 무슨 소리지……?”
정소진만 파랗게 질렸다.
“설마, 모체가 파괴된 건가?”
여기은은 때를 놓치지 않았다.
“이건 내 탓이 아닙니다! 내 탓이 아냐! 이거 인어 때문이야!!”
“지금 그런 말을 할 때입니까! 여러분 빨리 도망가세요!!”
정소진은 현 상황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던전 포화입니다!! 포세이돈이 무너지려고 하고 있어요!”
포세이돈은 무너지며 모든 것을 내뱉었다.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하, 하하. 여기은 홀로 웃었다.
“으아악!!”
“포세이돈이 포화됐다!!”
거대한 탑게이트가 포화된다. 그건 이제까지 만들었던 모든 가짜 인어들과 진득한 오염수가 광활한 파도처럼 튀어나온다는 것을 뜻했다.
‘이미 늦었어……!’
순식간에 도시가 물에 잠기고, 사람들이 가짜 인어에게 잡아먹히며 울부짖었다. 끔찍한 악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