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8화
마침 근처에 게이트가 또 열리고, 피파글랜과 다른 인어들이 속속 도착했다.
―윌로 님 모시고 왔… 어어?
“뭐야! 무슨 일인데?”
태초의 섬에서 둥기둥기 돌돔과 놀고 있던 이위로 또한 검고 하얀 고양이 털을 전신에 묻히고 나타났다. 그러나 그 모든 것에 눈길을 줄 수도, 정신을 빼앗길 수도 없었다.
“데아야, 데아야.”
하영주가 주춤, 공격 태세를 취하며 속삭였다.
“너, 너 조종당하고 있어.”
“…뭐?”
“태초에게, 인어들에게 조종당하고 있다고! 그렇지 않고서야 네가 왜…….”
인어를 감싸……?
하영주는 파악! 발을 걷어차 주변에 흙먼지를 날리고, 재빨리 데아의 팔을 잡아 이끌었다. 내칠 수 있었지만, 데아는 그냥 순순히 하영주의 손에 이끌려 주었다.
“돌아가자. 그냥 돌아가자고! 나 이동 스크롤 있어!”
데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너 지금 아예 인어들한테 정신을 빼앗겼……! 아니, 아니다.”
이데아가 말이 통하지 않는 상태라고 단정 지은 하영주가 우악스럽게 데아를 붙잡았다. 다른 한쪽 손으로 이동 스크롤을 꺼내 이로 찢으려던 순간이었다.
“감히!”
퍼억!
거친 풍랑이 불었다. 순식간에 데아의 팔을 놓친 하영주가 저 멀리 나가떨어지고, 그대로 구르다가 가까스로 중심을 잡고 바로 섰다.
피파글랜이 격노한 눈으로 데아의 앞에 섰다.
“이 인어 새끼가!”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인어들은 더 몰려들고, 이 중에서 인간은 하영주 하나뿐이다. 너무나도 불리한 상황 속, 하영주는 애타게 데아를 쳐다보다가―
“…….”
데아의 주변을 살폈다.
“…데아야.”
그의 목소리가 정처 없이 떨렸다. 그의 목소리가 데아의 다정한 친구 하영주에서, 여파의 부길드장 영영 헌터로 정신없이 널뛰었다.
“너…….”
감히. 감히라니. SS급 던전의 보스 인어가 너를 지키며 ‘감히’라고 소리치다니.
데아는 부러 하영주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헐떡이는 숨소리, 젖어드는 이마. 파르르 떨리는 입술. 창백하게 질리는 얼굴 색.
하영주는 어느 순간, 하급 인어가 데아를 보호하듯 둥글게 감싸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너.”
근처에 상황을 파악하듯 서있는 이위로 또한 보았다.
누군가를 찾으러 온 5년 전의 인어들. 그 인어들은 데아를 데려갔고… 또, 어떤 일이 있었지?
“너, 아니, 아니지?”
데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바람이 부는 파란 하늘 아래, 데아의 하얀 머리카락이 부스스 흩어졌다. 그것이 참 인간답지 않다고 하영주는 생각했다.
“아니지……?”
하영주는 5년 전, 과거 두 번째 게이트가 터졌을 당시에 게이트에서 튀어나온 하급 인어가 데아를 공격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상기해 냈다.
더불어 권도언의 지하실에서 무작정 레버를 내려 뇌가 터져 죽은 인어들이 데아를 향해 머리를 두고 둥실 떠오른 섬뜩한 장면 또한 떠올렸다.
“너…….”
조각이 하나둘 맞춰진다. 심증이 증거를 담고 확신이 된다.
사해의 신. 태초. 5년 전 갑작스럽게 돌아온 인어들의 주군. 그러고 보니 5년 전 인어 제국에 있을 때에도 이데아는 물속 이동이 자유롭지 않았던가?
“너……!”
당시에는 권도언의 팔찌 덕분인 줄 알았는데, 생각해 보니 그 팔지의 유효 시간은 고작 한두 시간이었다. 많은 팔찌를 연달아 꼈다고 해도 그 무수한 날짜를 버티기에는 무리였다.
결국 하영주는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쳤다. 잔혹한 현실의 배신이었다.
“너, 이데아!!”
하영주가 울분을 담아 외쳤다. 경악과 충격. 제발 나에게 이러지 말아 달라는 애원이 뒤섞였다.
“네가 어떻게!!”
모든 진실을 알아버린 자의 모습은 쓰다.
“네가 어떻게 그래! 네가, 네가!”
“…….”
“이건 아니지. 가윗이 얼마나 크게 다쳤는데, 우리가 얼마나 사냥을 했고, 공략을 했는데, 어? 데아야, 이건 아니지, 우리가 어떻게 싸워 왔는데, 이건 아니지!!”
예상을 했음에도 마음이 텁텁했다. 데아는 손을 들어 올려 파도를 불러냈다. 그렇게 다정하게 확인 사살을 했다.
“미안해.”
하영주의 얼굴이 배신감으로 물들었다. 이데아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나도 몰랐어.”
그 말을 마지막으로 파도가 하영주를 덮쳤다. 그러나 하영주를 공격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단순히 인어들의 공격성 짙은 시선을 차단한 유한 파도. 하영주는 그 파도의 의도를 알아채고는 파도를 향해 주먹질을 했다. 파도는 흩어지지 않았다.
“네가 어떻게 이래! 네가 어떻게! 이럴 수 있어!! 내가 널 얼마나 찾았는데, 내가 너를 정말 얼마나 걱정했는데, 내가 진짜, 내가 복수를 하려고…….”
하영주의 목소리에 물기가 섞였다.
“내가, 어떤 짓까지 했는데……. 내가 정말…….”
하영주의 고함은 한참 이어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하영주의 말이 점차 느려졌다.
“나쁜 새끼, 나쁜 새끼, 시발, 넌 진짜 쓰레기야.”
“…….”
“살아 있었으면 말이라도, 말이라도 해주지.”
데아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서로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파도 너머, 하영주가 결국 울었다.
“그 소식 하나가 어려웠냐…….”
데아는 눈을 둥글게 떴다. 아, 실수다.
자신이 인간이 아니라 인어였음을 깨달으면 마냥 배신감을 느낄 거라 생각했다. 자신이 릴림에게 배신감을 느꼈지만 결국 용서한 건 그가 자신의 어쩔 수 없는 권속이라서라고. 그래서 하영주는 결코 자신을 용서하지 않을 거라 확신했다. 서로를 위해서 죽은 걸로 알고 넘어가는 게 더 편할지도 모른다고 혼자 판단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하영주는 본인의 친구였던 이데아에 대한 죽음을 진심으로 슬퍼했고, 더불어 그에 크게 괴로워했으며.
“직접 말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면, 흔적이라도 그냥 남겨 주지, 그냥 그렇게라도 해주지…….”
이데아의 생사를 직접적으로 확인한 지금, 그는 크게 안도하고 있었다.
이데아가 사해의 신 태초였다는 사실은 잠깐의 충격이었을 뿐, 그렇게 큰 문젯거리도 아니었다.
손끝이 저릿하게 저려 왔다.
데아는 마른세수를 했다. 이건 내 실수다. 이건 내가 잘못했다.
“저, 그…….”
뭐라고 말하지?
“영주 언―”
“됐어.”
하영주는 매몰차게 데아의 말을 쳐냈다. 파도 너머 벌떡, 일어나는 소리가 들렸다.
“저리 가버려.”
그러나 말에 힘이 없었다.
거의 체념 어린 어조에 데아는 그 말의 속뜻이 ‘그래도 한 번 찾아와라’라는 걸 어렵지 않게 짐작했다.
“아. 알았어.”
대답하자 하영주는 한동안 말이 없더니 이내 찌익, 이동 스크롤을 찢었다. 흰 빛무리가 잠깐 화악 퍼지고, 이내 인기척이 사라졌다.
데아는 파도를 회수했다. 파도 너머엔 이제 아무도 없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우선…….”
영주 언니에게는 나중에 가보고…….
“MBL연구소에 가야 해. 가서 모체를 없앤다.”
데아는 게이트를 열기 전, 인벤토리에서 변환석 목걸이를 다시 꺼냈다.
“이번 작전의 핵심은 잠입이야. 아무에게도 크게 의심을 받지 않고 안으로 침투해 바로 모체를 부수고 나오는 것.”
그렇게 하기 위해선 샤샤의 모습은 위험했다. 데아는 곧장 목걸이를 착용했다. 순식간에 ‘설한지’로 변했다.
마지막 여정을 시작할 때다. 이번 일만 잘 끝나면 모두가 안전했다.
“피파글랜. 넌 제국에 머물며 경계를 지켜. 윌로도 같이.”
“네.”
“응, 응. 알았어.”
“릴림, 너는 게이트 밖을 나가 섬 사람들의 상태를 확인하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여 주변을 지켜. 그리고…….”
데아는 저 멀리 오들오들 떨고 있는 스트리머를 흘끗 보았다. 아직도 저기에 있단 말이야?
“저… 저 사람도 같이 회수해 가고.”
“알겠습니다.”
“그런데.”
데아는 주변을 휘휘 돌아보았다.
여기까지 오진 않은 건가? 그야 당연하겠지만…….
“그…….”
여기서 이름을 말하면 안 되겠지?
“걔는?”
“개요?”
“아니. 아냐. 내가 찾아볼게.”
트리야는 아까 그 자리에 있는 건가? 데아는 먼저 창을 열어 한창의 전투가 벌어졌던 곳으로 돌아갔다.
낭자하는 피 냄새. 풍비박살이 난 지형. 데아는 그곳에 홀로 착지해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네…….”
달라진 건 칸나니아의 시체가 사라졌다는 사실 하나뿐이다.
자세히 보니 가장 가까운 바닷가로 질질 끌려간 파란 핏자국이 있었다. 누군가 칸나니아의 시체를 끌고가 바다에 풀어 놓았다.
‘분명 트리야겠지.’
인어는 바다의 존재. 트리야는 의도야 어찌되었든 자신을 위해 주었던 가신을 향해 최선의 예우를 해주었다.
데아는 그 푸른 핏자국을 가만히 보다가 주먹을 꾸욱 쥐었다.
칸나니아. 여섯 번째 1세대 인어. 그가 비로소 사라졌다는 감정이 뒤늦게 차올랐다.
“이제…….”
1세대 인어는 총 일곱이 되었다.
슬픈가? 그런 건 아니었다. 그건 칸나니아의 자업자득이었다. 그래도 어딘가 헛헛해지는 건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데아는 조용히 허망함을 뱉었다.
―자기야, 후회해?
“아니.”
애초에 내가 물어뜯은 것도 아니었다. 태초의 본성이 했지. 지금은 만족하고 깊은 곳에 누워버린 그 괴물이.
‘결국 그것도 나지만.’
철창 밖의 괴물이 싱긋 웃었다.
―후회하지 않으면 됐어.
바다의 경배가 그럼 앞으로 나아가라며 손짓했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어쩐지 그렇게 한 것 같았다.
데아는 그대로 창을 넘었다.
◈ ◈ ◈
날씨가 점차 추워졌다. 데아는 비상사태라도 일어났는지 떠들썩한 MBL 연구실 안에서 조용히 하얀 입김을 뱉었다. 아. 목도리라도 가져올걸.
“경찰 불러! 경찰을……! 으악!”
“헌터를 불러야지!”
“소용없어! 빨리 연구 자료를 지켜!”
“이봐!! 뭐 하는 거야, 흐악!!”
데아는 정신없는 그들을 지나쳐 연구소 내부로 들어왔다. 뭐야, 너무 쉽잖아.
“괴물이야! 괴물이 왔어!”
한 연구원이 데아의 옆을 스쳐 지나가며 소리쳤다.
턱!
“으악!”
“무슨 괴물 말하는 거예요?”
데아는 연구원의 뒷목을 잡고 물었다. 연구원을 발작하듯이 놀라더니 ‘저, 저기, 저기!’ 어버버 손짓을 하고 다시 부리나케 달아났다.
“흐음…….”
기이하게 부서져 있는 건물. 소란의 원인은… 지하에 있다.
“뭐가 있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