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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식인인어는 죽어야 한다-214화 (214/223)

※ 214화

―이 자식이……!

자잔은 반사적으로 주먹을 날렸다. 그러나 상대는 주먹을 단번에 막았다. 뒤이은 공격도 마찬가지였다.

‘엄청난 실력자야……!’

―이게!

“조용.”

흡, 자잔은 그제야 고개를 들어 상대를 바라보았다.

검은 옷으로 꽁꽁 싸맨 거구의 남성체 인어. 가늘게 긴 눈과 꾹 다물린 입술. 여덟 번째 1세대 인어, 헤타였다.

―그, 그……!

인간계에 번쩍, 인어 제국에 번쩍 하는 방랑자가 여긴 왜 있지? 의문을 껴안고 고개를 돌리자 눈치 빠른 하급 인어들은 진작에 자신들의 입을 틀어막고 기둥 뒤에 숨어 있었다.

―야, 야! 너희들이 찾던 인어 여기 있잖아! 왜 숨어!

“침입자가 있기 때문이다.”

―……?

자잔은 툭, 헤타의 손을 털어 냈다. 침입자?

―참나……. 그렇다면 미리 말을 해주시지. 무작정 끌고 오는 게 어디 있습니까? 그나저나 침입자라니, 이 신전에 말입니까?

“그래. 인간 침입자.”

어떤 간 큰 인간이 여기에 왔지?

―인간이 여기에는 왜 옵니까?

“알 수 없다. 다만 지속적으로 사제를 미행하고 있군.”

헤타가 쓱 위쪽으로 눈짓하자 미세한 기척이 느껴졌다.

자잔은 속으로 경탄했다. 이걸 안다고? 인간 침입자 쪽도 상당한 실력자인 것 같은데…….

침입자의 기척은 흰색 천을 뒤집어 쓴 사제가 움직일 때마다 그 뒤를 따랐다.

―왜 사제를……. 사제는 그냥 일반 3세대 인어 중에서 선별되는 거 아니었습니까?

“맞다. 꿍꿍이야 알 수 없지. 이런 침입자를 처리하는 건 일도 아니지만…….”

헤타의 눈이 낮게 빛났다.

“신성한 신전은 살생 금지 구역. 밖으로 유인해야 한다.”

그 말에서부터 자잔은 안 좋은 예감에 휩싸였다.

‘유인? 어떻게?’

눈을 감았다 뜨지 자잔은 헤타가 가져온 흰 천―도대체 어디서 훔쳐왔을지 모를―으로 꽁꽁 감싸지고 있었다.

―서, 설마 제가요? 사제인 척을 해서 저 침입자를 밖으로 유인하라고요?

“그래. 교차로에서 사제가 사라지면 곧바로 네가 나와서 침입자를 유인해라.

―키, 키가 다르잖아요!

“나보다는 네가 더 적당하다.”

자잔도 꽤나 장신이었지만 2미터가 넘는 헤타보다는 작았다. 젠장, 맞는 말이라서 할 말이 없네.

―저기 하급 인어나, 다른 인어를 부르면…….

“이런 일에 민간 인어를 쓰겠다고? 그리고 하급 인어라니. 약자를 보호하는 의무감은 어디에 갔나, 자잔?”

자잔은 흠칫했다. 내 이름을 알고 있다니.

“전직 1공대 간부. 현 태초의 호위기사 중 유일한 2세대 인어. 자잔.”

―…….

“네 위치에 책임을 다해.”

자잔은 입을 꾹 다물었다.

―에이씨…….

화악! 자잔은 천을 마저 뒤집어쓰고는 복도를 성큼성큼 나아갔다.

―잠깐만.

그리고 다시 걸어왔다.

“뭐지?”

―무섭습니다.

“…….”

자잔은 손을 쫙 펼쳤다.

―지금 저에겐 무기가 하나도 없거든요. 침입자가 절 공격하지 않을 확률은 없지 않습니까.

“내가 다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그 전에 제가 공격당할 확률이 있습니다. 단도라도 빌려주십시오.

“무기를 휴대하는 건 기사의 기본이다.”

―전 끌려 나와서 그런 거 모르지 말입니다.

“기본 중에 기본인데…….”

―제 주군은 저에게 아무것도 알려 주지 않아서요.

고단수의 자기 비하였다.

버려진 권속 자잔. 헤타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가져가라.”

턱! 자잔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헤타가 내어 준 건 정교한 금색 무늬가 있는 고급스러운 총이었다. 한 손에 잡히는 우아한 세공품.

‘이걸?’

―이, 이건…….

“신호탄이다.”

―……?

강한 무기가 아니고 고작 신호탄?

“네 눈 상태를 보아하니 무기를 다루기엔 아직 이른 것 같다. 이건 제국에 있는 신호탄 중 사정거리가 가장 긴 신호탄이니 하늘을 향해 쏴. 너에게 필요한 건 무기가 아니라 마음의 안정이니까, 가슴에 품고 위안이라도 해라.”

이거 시비인가?

“아주 멀리서도 보이는 신호탄이니까 든든할 거다.”

이 새끼 설마 진심인가?

진심 같았다. 묘하게 뿌듯해 보이는 헤타를 한 대 치고 싶은 충동에 휩싸인 자잔이 주먹을 떨었다. 그러나 언제나 신분이 이기는 법.

자잔은 신호탄을 꼬옥 쥐고 등을 돌렸다. 망할, 망할! 샤샤, 너는 왜 저딴 권속을 1세대로 탄생시켜서!

―……왔다.

자잔은 어느새 침입자의 표적이 진짜 사제에서 자신으로 옮겨간 것을 느끼며 성큼성큼 걸었다. 부디 이 신호탄을 쓸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기도하며.

◈          ◈          ◈

“당장 비켜, 그를 만나야 하니까!”

MBL연구소의 지하가 시끄러워졌다. 잿빛 머리카락을 가진, 한쪽 얼굴에 화상을 입은 자. 칸나니아가 쾅쾅 발을 굴리며 복도를 가로질렀다.

‘태초가 변한 건 누군가의 개입이 있어서다. 그에게 이 사실을 전달해야 해.’

수천 년간 같은 편으로 활동했던 든든한 지원군. 칸나니아의 궁극적인 목적.

‘어디였지? 여기였나?’

선천적으로 ‘창’을 만들어 낼 수 없던 몸이었음에도 태초와 가장 비슷한 마력 회로를 활용해 결국 ‘창’을 만들어 낸 세기의 천재. 완벽한 나의 편.

“무, 무슨 일로 이곳에 오셨습니까?”

“비켜!”

그는 내 편이다. 정말로 내 편이야! 그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대책을 강구해야 해!

칸나니아는 그가 실종된 후, 온갖 곳의 창을 열어 그를 찾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완전히 넘어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걸 알게 된 후, MBL연구소의 가장 깊숙한 곳, B1―2의 옆 연구실에 그의 거처를 마련했다. 그렇게 벽 하나를 통째로 그를 위한 임시 창으로 만들었다.

“어차피 당신이 원하는 건 태초지, 이데아가 아니잖아요.”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의 뇌를 제가 먹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원한다면 당신에게 바칠게요.”

그리고 그를 구슬렸다. 나의 편이 되도록. 오로지 나를 호의적으로 보기를 바라며.

하얀 파도가 물결치는 ‘창’. 칸나니아와 연구원들은 그 곳에서 ‘그’가 흘려주는 수많은 조언들과 마력을 토대로 포세이돈을 만들었다.

가장 태초와 흡사한 마력의 사용.

포세이돈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B1―1, B1―2……. 찾았다!’

벌컥! 칸나니아가 문을 열자 분노한 여기은이 튀어나왔다.

“여긴 왜 왔죠, 칸나니아!”

“무슨…….”

“나는 이제 당신 말 안 들을 겁니, 안 들을 거야! 네가 해준 모든 것이 망가지게 생겼잖아!”

여기은은 오른쪽 손에 화상을 크게 입은 상태였다. 뭐지? 폭발에라도 휘말렸나?

“비켜라. 나는 지금 볼일이…….”

“그래. 나도 할 말이 있어. 저 수상한 어린애는 뭔데? 너와 아주 잘 아는 사이 같던데? 네가 부른 게 아냐?”

어린애?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게 무슨 소리지? 나는 모르는…….”

끼익, 그렇게 B1―2의 옆 연구실 문을 여는 순간이었다. 칸나니아는 우뚝 걸음을 멈췄다.

“너…….”

단정한 붉은 머리카락. 의자에 방자하게 앉아 발을 까딱이는 어린 여자아이. 그 아이가 비웃으며 여기은과 칸나니아를 휙 돌아봤지만 위화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너!”

“예전에 이곳에 혼자 들어온 적이 있었어.”

아이는 어린아이답지 않은 말투로 느른하게 속삭였다. 아이는 킥킥거리며 한쪽 벽에 일렁이는 ‘창’을 가리켰다.

“그때 얘하고 무슨 대화를 했는지 알아?”

그리고 아이는 의자에서 뛰어내렸다. 그 순간, 아이는 온전한 성인 여자가 되어 칸나니아를 똑바로 마주 보고 섰다.

“움.”

움이 이곳에 찾아온 건 아주 옛날도 아니었다.

움은 예지몽을 통해 이상한 것을 본 후, 어린아이로 둔갑해 몰래 다가와 문을 두드렸다.

“내 말 들리지, 새끼야?”

‘창’ 너머 누군가는 웃었다.

“같이 협력 좀 하자.”

움이 요청한 사항은 다음과 같았다.

“칸나니아의 요구에 다 수용해 줄 것. 칸나니아가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널 믿게 할 것. 그리고 최후의 순간에, 태초를 위할 것. 어때?”

움의 말에 상대는 어렵다고 했다.

“어렵긴 쥐뿔이 어렵지……!”

그러자 상대는 조건을 제시했다.

“하… 무슨 조건?”

창 너머의 누군가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물었다.

그때 일만 생각하면 움은 당장이라도 그놈의 머리채를 잡아 뜯고 싶었다. 그딴 걸 왜 물어봐? 미친놈. 미친 새끼.

상대의 조건은 단 하나.

‘이데아의 방에 검은색 오르골이 아직도 있나?’에 대한 답변이었다.

때문에 움은 윌로에게 과자 박스를 사주고 창을 빌려 태초의 방 안에 들어갔다 나오기까지 했다.

“제기랄, 그래 있더라. 먼지 잔뜩 쌓여서 구석에 처박혀 있더라!”

그리고 그는 기뻐하며 움의 제안을 수락했다. 젠장…….

“웃기지 마!”

움의 말을 다 들은 칸나니아는 그를 밀치고 게이트를 잡아 들여다보았다.

“없어.”

이 안에 분명 있었는데. 이 창 안에 그가 있었는데……. 아무도 없어. 현재 연구실에 있는 창은 빈껍데기였다.

“어디에 갔지? 어디에 간 겁니까?”

당신은 이러면 안 되잖아. 당신이 나에게 그러면 안 되잖아. 내가 당신을 위해서 어디까지 했는데!

움은 음음~ 소리를 내며 흥얼거렸다. 순간 머리끝까지 열이 차오른 칸나니아가 확! 거창을 뽑아들자,

파콰악!!

“어어, 이러면 안 되지~”

움은 간단하게 퍽! 근처 의자를 걷어차서 막아 냈다. 칸나니아가 다시 한 번 더 공격하려는 순간.

핑!

“!!”

갑작스럽게 생긴 게이트 안에서 화살이 튀어나왔다.

촉에 마력이 깃든 한 인어의 화살. 이런 걸 쓰는 인어는…….

“안녕!”

윌로. 그가 게이트에서 튀어나와 움을 챙겼다.

“너…….”

“미안하지만 ‘창’은 너만 열 수 있는 게 아냐.”

머저리야.

이위로는 보란 듯이 놀리며 후다닥 게이트 너머 도망을 갔다.

빛이 뚝, 꺼지자 칸나니아는 다시 텅 빈 게이트로 다가섰다. 쾅쾅!! 벽을 두드리는 손이 매서웠지만 건너편의 대답은 없었다.

“대답, 대답을 해주세요. 대답을…….”

여전히 고요했다.

“…어디에 갔어!”

여기은은 입을 틀어막으며 밖으로 나갔다.

그러나 칸나니아는 아랑곳하지 않고 재차 소리쳤다. 쾅!! 건조한 벽에 금이 갔다.

“어디에 갔냐고, 트리야!!”

비틀거리던 칸나니아는 이내 게이트를 열고 어딘가로 향했다.

◈          ◈          ◈

‘이데아’ 옆에 갑작스럽게 생긴 하얀색 게이트. 그 모든 것을 웅덩이를 통해 지켜보고 있는 데아는 아래로 이끌리는 중력을 느꼈다. 이게 뭐지?

‘나는 저 게이트 안에서 뭐가 나오는지 봐야 하는데……!’

이미 틀렸다. 또 시야가 어두워지며 전신이 곤두박질쳤다. 그러나 동시에 데아는 깨달았다.

저 게이트는 그 게이트야. 담력 체험을 하다가 나타난 게이트, 내가 힘을 못 쓸 때 기적처럼 나타난 게이트! 저 게이트의 정체를 알기 위해선 더 봐야 하는데……!

어둠은 끝없이 이어졌다. 그곳은 자신의 머나먼 심연이었다. 괴물이 뜯어버린 철창이 보였다. 그리고 이내 새로운 철창이 만들어졌다.

그것은 자신의 머리 위로 철컹! 내려앉았다.

‘어? 나 여기에 갇힌 건가? 그럼 난 그 괴물과 위치가 반전되어 여기 평생 살아야해?’

저렇게 괴물이 된 채로 계속 살아야 한다고? 철컹! 철컹! 데아는 철창을 끊임없이 두드렸다. 설상가상으로 밑에서 물까지 차오르기 시작했다.

‘나 좀 나가게 해줘!’

그 순간 눈부신 빛이 시력을 강타했다. 정말 갑작스러운 빛이었다. 강렬한 빛은 충격과 닮아 있던가. 저물어 가던 어둠을 날리고, 온 세상을 탈색시키는 강대한 태양이 밀려들었다.

“……!!”

데아는 전신이 증발하는 느낌을 받으며 뒤로 밀려났다.

“악!”

딱딱한 철로 만든 의자가 만져졌다. 자신은 그 위에 앉아 있었다. 뭐지? 설마 이거… 환각인가? 포세이돈 안에 있어서 모체의 힘에 당한 건가?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였다.

그러면…….

“이데아 씨?”

“네?”

데아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백리서와 권도언이 펜을 딸깍이며 데아를 관찰했다. 백리서가 환하게 웃었다.

어어?

“솔직히 말해서 인터뷰만 하기 아깝네요. 이데아 씨, 각성하셨군요.”

“네?”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풍경. 딱딱한 책상. 손에 쥐인 오렌지주스. 작게 마련된 정신 병동 안 면회실.

“예… 예?”

“놀라신 거 이해해요. 그럼 거두절미하고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완벽한 인간 흉내를 내고 있는 릴림. 아니, 백리서가 온화하게 웃었다. 마치 상대를 진정시키려는 것처럼. 자신은 무해하다며 안심시키듯이.

그러니까 이건…….

“이데아 씨를 길드 ‘여파’로 스카우트하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5년 전.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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