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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식인인어는 죽어야 한다-213화 (213/223)

※ 213화

15층의 진정한 보스 인어.

[포세이돈 15층 진입.]

[보스인어 ‘사해의 신’(N)을 사냥하십시오.]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그것은 이루어졌다.

‘태초’가 손을 위로 치켜 올리자 주머니에서 따끔한 감각이 느껴졌다.

빠지직!

“!!”

스트리머의 통신 기기가 먹통이 되었다.

“이, 이게 무슨…….”

“무슨 일이야!”

그때 피파글랜과 백리서가 뛰어나왔다. 드디어 나를 도와줄 사람이 왔다!

“백, 백리서 헌터님, 지금 저기 샤샤 헌터가...!”

―태초 님의 상태가 이상합니다.

―이상하긴 뭐가! 그분은 본인의 위명에 걸맞은 힘을 쓰셔서 저희 모두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 그건 그렇습니다!

“한 명씩 똑바로 상황을 전달해. 주군은 어디에 있어!”

‘주군? 아니, 그보다도 지금 백리서 헌터가 인어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야? 뭐지? 스킬인가? 아니면…….’

머리가 뜨겁게 팽팽 돌아갔다. 스트리머는 자신이 도출할 수 있는 정답을 유추하고선 흐아아… 무너졌다.

“이, 이곳에… 믿, 믿을 사람 하나 없어!”

―저곳에…….

하급 인어의 말을 따라 백리서가 고개를 돌린 순간, 검은 파도가 또다시 밀려들어왔다. 명백하게 누군가를 살해하기 위한 파도. 그 단순한 살의를 백리서는 예민하게 알아챘다.

“주……!”

그때, 백리서는 단번에 깨달았다.

이데아. 태초의 상태가 이상했다.

◈          ◈          ◈

“우리 모두가 힘을 합치면, 주군을 이길 수 있지 않을까?”

먼 과거, 밤에만 돌아다니다가 길을 잃어 결국 통행금지를 당한 윌로가 속삭였었다.

“잘 생각해 봐. 트리야 언니, 주군만큼은 아니지만 바다를 다루고, 므아나 언니, 얼마나 강해. 움 언니는 미래를 보고, 피파글랜 언니는 강력한 전기를 다루지. 칸나니아는 힘만 무식하게 세고, 도라안은 정신으로 침투해! 헤타도 막내지만 아주 막강하잖아. 물론 나도 어디 꿀리지 않게 강하지만…….”

“불가능해.”

목소리는 뒤에서 들려왔다. 창가에 머리에 흰 산호 장식을 단 트리야가 앉아 있었다.

“왜 불가능해? 아무리 주군이라지만 우리가 모두 힘을 합치면……!”

“잘 생각해 봐. 우리가 그런 능력을 가지게 된 건 주군이라는 근원이 있어서야.”

근원은 탐욕스럽다. 최초의 기생 생물이 그러했듯, 근원은 모든 것을 잡아먹으며 자라났다. 그가 먹고 싶어 하는 대상은 만물이다. 권속도 예외는 아니라는 걸, 최초의 권속 트리야만이 눈치챘다.

“지금의 주군은 심히 인간답지. 인간성으로 억누른 그의 본성을 깨우려 하지 마.”

우뚝 선 강자. 그것의 본성은 유일이다. 유일한 강함만이 그를 먹이사슬 꼭대기에 위치시킬 테니까.

“주제도 모르도 덤비지 말라는 소리야.”

잡아먹히기 싫으면.

므아나는 그 모든 대화를 고요하게 들었다.

그래, 트리야는 엿같은 부분이 많았지만 의외로 통찰력은 쓸 만했다.

왜 트리야는 그런 소리를 했을까. 본성만 남은 주군이 뭐, 어쨌다고?

그리고 릴리므아나. 백리서는 트리야가 말하고자 했던 바를 방금 깨달았다.

“이거였군?”

태양이 저물고, 바다가 사위를 장악했다. 이건 마치…….

“사냥을 수월하게 하기 위해 덫을 놓고 있어.”

사냥감들이 표적이 되었다는 사실을 인지하기 전, 퇴로를 차단하고 구덩이 속에 파묻는 일. 그건 우수한 사냥꾼의 덕목이었다.

서서히 만들어지는 자욱한 함정 속에서 인어들은 아직도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하고 웅성댔다.

“이미 늦었어.”

“아냐.”

태초의 옆에 똬리를 틀던 해룡이 피파글랜과 므아나에게 눈짓을 보냈다.

해룡은 영물 특성상 태초에게 반하는 행동을 할 수 없다. 그러나…….

―늦었다.

해룡은 자신을 돌아보는 태초의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외쳤다. 정확히 피파글랜을 향해.

―죽을 각오로 덤벼야 해. 안 그러면 너희들이 죽을 테니!

“아하…….”

태초는 해룡의 턱을 쓰다듬으며 해맑게 웃었다. 그는 이런 상황마저 재밌어했다.

“안 늦었어!”

―늦었다. 최선을 다해 공격하고...

“그래. 더 해봐, 해룡.”

―목을 잘라서 뇌를 꺼내.

태초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리고 이내 환하게 웃었다.

―다시 시작하는 거야.

“그래… 그 정도의 목표는 잡아야지.”

“헛소리.”

피파글랜은 곧바로 일갈했다.

뇌를 꺼내 다시 시작하자고? 누구인지도 알 수 없는 자에게 억지로 저 뇌를 먹이고, 기억을 잃은 태초를 다시 태초로 맞이해 처음부터 시작하자고?

“맞아. 헛소리야.”

그러나 백리서는 태초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검을 빼어 들었다.

견고하고 세밀하게 다듬어진 그의 검이 하얗게 빛났다.

두 번째 권속, 릴리므아나.

“나는 당신을 보좌하는 권속…….”

죽일 각오로. 당신에게 100년 전의 비극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백리서는 칼을 바로잡으며 몸을 낮췄다.

예전과는 다르게 나는 당신을 찬양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존경하고 아끼며, 애정하겠지.

“당신을 막고, 원래의 자리로 모시겠습니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경애로운 행동이니.

그 말을 마지막으로 백리서는 섬광처럼 뛰어나갔다.

일렁이는 파도가 깊게 패이고, 이데아의 미소하는 하얀 얼굴이 가까워졌다.

싸움의 시작이었다.

◈          ◈          ◈

데아는 눈을 번쩍 떴다.

‘……어?’

“여기가 어디야!”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여긴 사방이 어둡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내가 어쩌다가 여기에 왔지?

“아 맞아.”

분명 그 철창 밖의 괴물. 태초에게 도와 달라고 했고… 걔가 내 눈을 가렸……. 헉!

“그 미친 새끼…….”

그래. 갑작스럽게 정신을 잃었었다.

그럼 여기는……. 믿기 힘들지만, 대충 정신세계쯤 되시겠다.

데아는 우선 들리냐며 소리도 쳐보고 발도 쾅쾅 굴러봤다. 그러나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결국 하염없이 걷고 있을 때, 저 멀리 낮고 일렁이는… 뭔가가 보였다.

“미친.”

그건 작은 웅덩이였다. 손을 넣어도 바닥이 잡히지 않는 깊은 웅덩이.

데아는 그 안에서 반짝 빛무리를 발견했다.

“저걸 잡아야 하나?”

손을 푹 넣고 휘젓고 있는데 실수로 무게가 앞으로 쏠렸다.

“어?!”

풍덩―!

어차피 물속이어도 상관없다.

데아는 아예 대놓고 휘적거리며 빛무리를 찾으려고 했다. 그랬는데…….

“어어……?”

휘이이이이―!!

강한 해류가 밀려들어오며 데아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 순간 사방이 다시 검게 물들었다.

◈          ◈          ◈

잠시 정신을 잃었던 데아는 눈을 떴다.

그곳은 낯선 장소였다. 눈이 부시도록 환한 불길이 눈앞을 메웠다.

‘불……?’

―잘 봐두렴.

태초의 의지대로 물결치는 거대한 재앙. 데아는 자신의 의지와 다르게 손을 들었다. 어, 뭐야. 나는 움직이기 싫은데!

―그 누가 너희에게 부당한 짓을 한다면, 너희는 마땅히 이렇게 행동할 수 있어야 해.

이건…….

―단지 너희들에게 안전한 세상이길 바랄 뿐이야. 공존할 수 없다면, 없애버리면 될 일.

―역시 주군은 대단해요.

―저게 대단해 보여?

인간들의 대륙을 불바다로 만들고 난 뒤다.

‘그래. 그때 그랬었지. 그런데…….’

―주군. 이게 몇 번째예요. 우리를 지켜 주기 위해 주군이 몇 번이나 다치고 있는 거냐고요!

―난 괜찮단다, 트리야.

‘이때 내 감정이… 이랬었나?’

살육을 향한 충동. 겉으로는 권속을 위하는 척, 자애로운 주군을 연기하고 있었지만 속은 달랐다.

태초는 나라를 멸망시키며 수많은 인간들을 살해했고, 동시에 몰래 잡아먹었다.

그는 흥분했고, 더한 것을 원했지만…….

―나는 괜찮아…….

태초는 자신을 바라보는 권속들 앞에서 차마 본성을 드러낼 수 없었다. 그리고 태초는 한동안 침묵했다.

참아야 해.

그러나 과연 성공했던가?

성공했었어.

그때 태초는 ‘괜찮다’고 한 뒤, 제국과 해룡을 만들어 냈다.

그러나 지금 눈앞에 보이는 태초는 그러지 않았다. 손끝이 서늘해졌다. 뭔가 다르다.

―아… 하하.

대신 태초는 웃었다. 심해의 눈. 붉은 눈으로 자신의 권속들을 바라보며. 데아의 머릿속이 차가워졌다. 미친.

―이런.

그리고 모든 것이 끝났다. 데아는 끝없이 치솟는 태초의 희열과 작열하는 열망을 읽었다.

모든 것을 삼키고, 모든 것을 되돌리는 힘. 태초는 자신의 권속들을 모조리 죽여버렸다.

―하… 하아. 주군.

마지막으로 남은 건 트리야였다. 트리야는 헐떡이며 비웃었다.

그는 다른 권속들에 비해 초연했다. 이런 일이 언젠가 일어날 거라고 예감이라도 한 것처럼.

―이럴 거면 애초에 …하지나 말지…….

그리고 하얀 산호 머리장식과 손이 툭, 떨어졌다.

데아는 얼굴을 감싸며 신음했다. 모든 학살이 끝나고, 태초는 온전히 홀로 남았다. 권속이었던 시체들을 무미건조하게 내려다 본 태초는 본성에 따라 행동하는 괴물이 되어 뒤를 돌았다.

그는 창을 열어 다른 세계로 넘어갔다.

태초는 해당 세계를 멸망시킬 것이다. 그다음으로 넘어간 세계 또한 마찬가지겠지.

“이건 현실이 아냐.”

데아는 태초가 다섯 번째 세계를 멸망시키는 걸 보며 이것이 그저 꿈일 뿐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때 억눌러 참치 않았더라면 일어나게 되었을 일.

그래. 내가 참았기에 일어나지 않은 일.

“이건 가짜야.”

말이 끝나자마자 주변 환경이 순식간에 달라졌다.

다시 눈을 뜨니 처음에 보았던 그 웅덩이 위였다. 그곳에 뭔가가 비춰지고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건 나였다.

아니. 그건 지금의 나. 이데아였다.

본성에게 몸의 자유 의지를 빼앗긴 나. 충동에 져버린 자신. 모든 이를 삼켜버리겠다는 열망에 휘둘리는 자신. ‘나’는 가벼운 살의를 품고 백리서와 싸우고 있었다.

백리서의 머리카락 끝이 잘렸다.

“멈추지 않으면 꿈에서 봤던 일이 실제로 일어날지도 몰라. 아니. 일어나 무조건 일어나!”

꿈은 경고였다. 당장 네가 충동을 뿌리치지 않으면 모두가 죽는다는 예고.

데아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어떡하지? 이 밖으로 나가 정신을 차릴 방법이…….’

그때였다.

“…어?”

백리서와 싸우는 자신의 옆. 갑작스럽게 하얀 게이트가 생겼다.

◈          ◈          ◈

―윌로 님! 헤타 님! 안 계세요?!

―헤타 니임―!!

갑자기 왕궁이 시끄러워졌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저 하급 인어들이 빨리 가줬으면 좋겠는데…….

―어우 씨…….

자잔은 스르륵 눈에 감았던 붕대를 풀었다. 밀려나듯 게이트를 타고 넘어온 직후, 피파글랜은 자신의 눈을 들여다보며 이것저것 수를 써보았다.

―눈을 갈아 끼울까?

―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해 반투명한 붕대를 눈에 감고 다니는 자신의 신세가 처량했지만, 그래도 샤샤가 괜찮은 해결책을 갖고 올 거라 믿었다.

쾅쾅쾅―!

―야, 너네 하급 인어들! 조용히 안 해!

―네에! 2세대 인어님!

―네에에? 저희 헤타 님과 윌로 님을 찾아야 하는데요!

자잔은 머리를 벅벅 긁었다.

―여기 없어. 헤타… 님은 언제나 그렇듯이 왕궁에 안 계시고, 윌로… 그 인어는 이 시간이면 늘 신전에 가서 놀고 있지 않아? 신전에 가 봐.

―아하!

―아하!

하급 인어 둘은 서로 눈을 마주쳤다.

―그럼 같이 찾아 주세요!

―맞아요!

―뭐? 나 바빠, 으악!

그러나 하급 인어의 악력은 엄청났다.

자잔은 붕대를 허둥지둥 눈에 감으며 질질 끌려갔다.

―위, 윌로 님?

―계시나요오―!

그렇게 도착한 신전. 주기적으로 모이는 시간이 아니어서인지 신전 내부는 텅 비어 있었다.

그 공허한 복도를 저벅저벅 걷고 있던 참이었다.

―아무도 없잖아! 거기 얘들아. 나는 좀 바쁘거든. 이만 돌아가게 해줄래?

―아무것도 안 하고 있었으면서!

―거울이나 보고 있었으면서!

―저것들이……!

턱!

―업……!!

그때였다. 누군가 거칠게 자잔의 팔과 입을 틀어잡고 기둥 뒤로 밀쳤다. 숨이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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