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1화
“…그…….”
“빨리!!”
쾅!
그때 문이 거칠게 열리고 우르르 헌터들이 밀려들었다. 괴물들도 함께였다.
◈ ◈ ◈
“뭐? 남아 있는 실험작들이 어디에 갔다고?!”
“다 여례아의 길드장님이…….”
콰앙!
정소진은 탁자를 내리쳤다.
기어코 남아 있던 실험작들까지, 다!!
“내가 분명 말했을 텐데, 여례는 이제 MBL 연구소에 대한 권한 없다고!!”
“막, 막무가내로 연구원들을 위협하셔서……. 저희도 어쩔 수 없었어요……!”
“미치겠네,”
턱!
정소진은 모든 괴물들이 연결되어 있는 정신적 근원. 모체와 연결되어 있는 괴물 구동 리모컨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연구 소장님! 어디로 가세요!”
“괴물 다시 소집시켜. 장난해? 그걸 왜 가져가? 어디에 쓰려고!”
연구원들의 걱정 어린 전화가 끊임없이 울렸지만 정소진은 엑셀을 밟으며 도로를 질주했다. 목적지는 여례아 건물.
하나, 여기은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왜 가져간 거야? 건물에 풀려고? 그곳이 던전도 아니고! 남의 실험작을 우습게 보는 것도 정도가……!”
정소진은 여례아 건물 안으로 들어와 로비를 가로질렀다.
그런데, 어딘가 이상하다. 여례아의 건물 안이 어수선했다.
“분위기 왜 이래?”
그렇게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순간.
띠링!
문자가 왔다. 발신인은 여기은의 비서였다.
전에 요청했던 자료인가? 정소진은 황급히 문자를 확인했다. 그러나 문자의 내용은 그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거였다.
[당신 동생. 길드 건물 82층.]
머리가 차갑게 식는다.
위이잉―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의 소음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뭐…….”
갑자기? 갑자기 이렇게 정보를 준다고? 그렇게 달라고 했을 때는 안 줬으면서?
그러나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미친 듯이 82층 버튼을 연타하고 있었다.
분명, 무슨 일이 생겼어.
“타지 마!!”
“뭐, 뭐야?”
도중에 멈춰 엘리베이터 문이 열려도 정소진은 탑승을 저지하고, 그저 닫힘 버튼만을 탁탁탁 눌렀다. 단정했던 손톱에 꺾이고, 손끝이 붉어졌지만 멈출 수 없었다. 숨이 가빠지고 세상이 위태롭게 떨렸다.
제발 저 위에서 들리는 거친 소음과 비명 소리의 출처가 82층이 아니길, 간절하게 빌었다.
―띠링―! 82층입니다.
“연……!”
콰앙!!
막 82층에 도착해,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순간이었다.
“아악!!”
방금 전까지 자신이 있던 곳으로 사지가 작살난 괴물 하나가 콰앙! 처박혔다. 그러나 상관없었다.
‘동생은? 연가을은?’
정소진은 고개를 들었다. 자신을 막는 무수한 헌터들의 손길을 뿌리치고, 거대한 장정들을 밀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헉, 허억, 하아…….”
오른손에는 괴물 구동 리모컨이 꽈악 쥐어진 상태였다.
‘동생은……?’
아주 어릴 적 헤어진 그리운 가족.
정소진이 행한 모든 연구의 목적은 그들의 안녕이었다.
“…언니가 돈 많이 벌어 올게.”
폭력적인 친부의 그늘 아래서 어떻게든 서로를 움켜잡고 버텼다.
가장 힘든 시기의 빛줄기 같은 사람들. 엄마와 동생. 그 둘만 살면 어찌되든 상관없다고 여겼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포세이돈 아래 죽어도, 이 세상 모든 헌터들이 괴물 아래 짓밟혀 죽어도… 그 둘만 안전하다면 상관없었다.
정말로 그 어떤 것도 상관없었어. 둘만 안전하다면, 온 세상이 멸망해도 좋았어!
“연가……!”
동생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비록 성공한 후 돌아간 집에는 아무런 흔적도 발견할 수 없었지만, 얼굴을 기억했으니까.
“……!”
그러나 그때, 붉은 피비린내가 후각을 찔렀다.
“…을…….”
피가 뚝뚝 떨어지는 연가을의 손. 위태롭게 허공에 매달린 동생의 몸.
“……어?”
정소진은 연가을의 목을 움켜쥔 거대한 손을 보았다.
실험작. 자신이 만든.
‘내가 만든 실험작이 동생을 죽이고 있다.’
그걸 깨달은 순간, 정소진은 당황했다. 사고가 마비되었다.
그리고 동시에 분노했다.
그는 자신이 만든 괴물에 대한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아아…….”
정소진은, 괴물을 무력화시키는 가장 치명적인 방법을 알고 있었다.
정소진은 자신이 만든 괴물이 가족을 죽이려는 걸 본 순간…….
“…안 돼!!”
붉은 버튼을 눌렀다.
길드 여례아. 82층의 높다란 빌딩. 모두가 우러러 보는 손꼽히는 대형 길드의 찬란한 건물.
위이이잉―!!
괴물들은 자체적으로 진동했다. 그 광경을 직면한 모든 헌터들은 기함했다.
명령을 받은 괴물이 부풀어 올랐다.
“자폭 명령!”
그 어느 말도 필요 없었다.
재빠르게 상황을 파악한 연가을은 발로 흉측하게 부푼 괴물을 밀치고 피를 뱉은 다음 뛰었다. 자신의 가족이 있는 쪽으로.
“제발!”
턱!
연가을은 충격에 굳은 정소진의 팔목을 우악스럽게 잡았다. 그리고 곧장 거대한 통 유리창을 깼다.
쨍그랑―!
튀어 오르는 유리조각과 함께 휘날리는 하얀 가운. 정소진의 안경알에 눈부신 점멸이 비춰졌다.
연가을은 그대로 건물 밖으로 뛰어내렸다. 그 직후 여례아의 건물이 붉은 화염과 함께 폭파했다.
콰아앙―!!
82층. 그 고층에서 상대를 끌어안고 연가을은 빙글 돌았다.
자신의 능력은 단순 돌진 공격계. 추락하는 상황에 대비한 능력 하나 없었지만 그저 튼튼한 몸을 믿었다.
상급 헌터는 창공에서 추락해도 죽지 않는다는 속설 하나를 믿었다. 지금은 그것뿐이었으므로.
“―!!”
끔찍한 고양감이 밀려들었다. 제발, 제발…….
거대한 화염과 함께 무너지는 빌딩이 정소진의 머리카락 너머 보였다.
점점 멀어진다. 이대로라면 바닥에 머리부터 부딪혀 죽을 것이다.
연가을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때였다.
“……?”
둥실, 가속하던 추락이 일순 멈췄다.
“……어?”
살랑, 산뜻한 바람이 뺨을 스치고 귀를 간지럽혔다. 느리게 부유하는 몸이 사뿐, 바닥에 내려앉았다.
살았나?
…살았다.
“이게 무슨……. 어, 언니! 정신 차려!”
다행히도 정소진은 잠시 기절한 것뿐인 듯했다.
연가을은 숨을 몰아쉬다가 깔끔하게 닦인 남성의 구두를 발견했다.
“이야, 축제네요?”
훤칠한 키의 미남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다 죽었으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여기은은 저걸로 죽진 않겠죠.”
“…….”
“분명 이름이… 연가을?”
권도언. 바람계 S급 능력자.
“녹취했어요? 여기은이 펄펄 뛰었다는 소문이 저 멀리 전국 팔도를 돌고 있던데.”
역시 권도언, 여례아 안에 눈과 귀 정도는 심어 놨구나.
“그거 저 주세요.”
권도언은 맨들거리는 낯짝으로 손을 까딱했다.
“제가 도와줄게요.”
“그…….”
“아, 참, 뺏겼다고 했었나? 뭐… 녹음기를 뺏겼다면 지금 쯤 저 위에서 잿더미가 됐을…….”
“있어요.”
쿨럭, 쿨럭, 먼지를 토해 낸 연가을이 자신의 오른쪽 발목. 양말 안을 뒤적거렸다. 그에 권도언의 눈이 빛났다.
연가을이 건넨 건 작은 소형 녹음기였다. 심지어 그건 아직도 돌아가고 있었다.
“처음부터, 녹음기는 두 개였거든요.”
◈ ◈ ◈
[모체(포세이돈)을 긴급 활성화합니다. 95%]
어렴풋이 보이는 글자들. 데아는 깜빡거리는 숫자를 바라보았다.
[96%]
점점 더 숫자가 올라간다. 100%가 되면 무슨 일이 생기는 걸까?
[97%]
왜인지 필립의 느낌이 났다.
그가 살아 돌아왔다는 뜻은 아니고, 단순히 그때와 비슷한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는 뜻이다.
“이상해요……. 갑자기… 자폭을…….”
“이제까지 이런 적이……. 일시에 괴물들… 폭발해서…….”
가물거리는 의식 너머,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에게는 좋은 일……. 대부분 정리 된 것… 같…….”
“쉽게 끝…… 네요.”
“그렇죠, 뭐.”
데아는 눈을 번쩍 떴다.
[모체(포세이돈)을 긴급 활성화합니다. 98%]
“샤샤 헌터!”
“그… 정신이 들어요?”
데아는 상체를 일으켰다. 해룡의 등 위다.
이상하게 심장이 빨리 뛰었다.
“이, 인어들이 늦지 않게 도와주러 왔어요!”
“괴물들이 갑자기 저들끼리 부풀어 오르더니 폭발해 버려서, 그건 좀 의외였지만… 우리는 바닷속으로 숨어서 안전할 수 있었어요.”
지상은 조용했다. 살아 있는 생명은 없는 것 같은 정적이었다.
“와아, 여러분 정말입니다! 실시간이라고요! 어떻게 이런 일이……. 와, 아니, 진짜로. 와아…….”
저 멀리서 스트리머만 ‘꺄악!’거리며 전면 캠코더를 보며 오두방정을 떨고 있는 것만 빼면, 대체로 조용했다.
‘…끝났나? 이긴 건가? 이제 안전한가?’
“이 자들은 모두 내보내야겠죠. 우선 왔던 섬으로 통하는 창을 열겠습니다.”
피파글랜이 휘익! 창을 열곤 어디론가로 가버렸다.
사람들은 모든 계획이 잘 끝났다는 안도감에 기뻐하며 차례차례 창을 넘었다.
“밖은 안전한 거 맞죠?”
“맞아요! 이 채팅 창을 봐! 사람들이 그러는데 지금 여례아 길드도 폭발했다는데요?”
“거기 망하는 거 아냐?”
“분명 그냥 지나치진 않을걸!”
사람들이 하하 호호 웃으며 창을 넘어갔다.
“사람들 중에 인어들에게 우호적인 사람들이 생겼어요!”
“지금 속보가 떴다는데 녹취록……? 뭐지? 아무튼 포세이돈이 인공 던전이라는 게 퍼졌나 봐요!”
그러니 사람들은 속았다는 것에 분개했고, 그 원인을 찾고자 했다.
그 원인의 대상은 인어가 아니었다.
“앗… 이 사람은 아직 싫나 본데,”
물론 수년의 앙금이 한순간에 풀리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이것이 변화의 시초가 되리라는 건 자명했다.
“다 좋게 끝난 거 맞죠?”
맞아야 하는데. 맞는 게 옳은데…….
“자아, 빨리빨리 나갑시다! 와하하!”
그러니까 이렇게 불안해하면 안 되는데,
―아직 안 끝났어.
철창 밖의 괴물이 속삭였다.
날카로운 이빨을 보이며. 하얀 긴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아름다운 외양의 태초. 그가 손을 까딱이며 웃었다.
―내가 아직 여기 있잖아?
“…….”
―너는 나를 필요로 하게 될 거야. 그렇게 될 거야.
태초는 한숨처럼 미소했다. 끔찍이도 우아했다.
강해지는 것이 뭐가 나쁘니.
괴물이 괴물다워지는 것이 뭐가 나쁘니.
본성에 따르는 것이 뭐가 이상해?
“해, 해룡…….”
―응?
이윽고 헌터들은 거의 다 창 너머로 나갔다. 던전 구석구석을 보여 주느라 여념이 없는 스트리머만 제외하고.
“피파글랜, 어디 있어?”
[모체(포세이돈)을 긴급 활성화합니다. 99%]
◈ ◈ ◈
“역시 여기 있었군?”
피파글랜은 피투성이가 된 백리서를 걷어찼다.
그런 피파글랜을 백리서가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장난, 하지 말고. 치료나, 해!”
“흐음, 주군이 네 꼴을 보면 많이 걱정하시겠어. 어쩐지 해룡의 반지가 발동되었는데…….”
피파글랜은 백리서의 새끼손가락에 끼워진 해룡의 반지를 흘끗 보았다.
“주군에게는 상처 하나 없더라니. 저런.”
그래 봤자 주군이 알아주시기나 하실까.
“가여운 충정을 나라도 알아줘야 마땅하겠지. 자. 포션.”
쪼르륵, 피파글랜은 대충 포션을 백리서 위에 부었다. 복부의 상처가 빠르게 아물었다.
“주군은?”
“저― 멀리. 해룡의 등 위에 계시지. 지금은 눈을 뜨셨고. 지쳐 보이셨지만.”
“안내해.”
벌떡 일어선 백리서가 한 걸음 내디딘 순간이었다.
“?”
“!!”
콰과과곽―!!
거창이 앞을 가로막았다.
익숙한 붉은 거창. 바닥을 뚫어버리는 막강한 파괴력.
“저건……!”
이윽고 어느 인영이 바닥에 꽂힌 거창의 손잡이 위를 밟고 섰다.
군더더기 없는 말끔한 동작. 상대는 엄청난 실력자였다.
백리서와 피파글랜은 상대를 알고 있었다.
“왜…….”
여기서 만날 거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한 인어. 갑작스럽게 나타난 불청객. 그리고…….
“배신자 새끼가.”
칸나니아. 그가 바닥 위로 착지했다.
“오랜만이군. 그다지 보고 싶은 얼굴들은 아니었지만.”
콰드득!
칸나니아는 엄지손가락만 한 돌들을 맨손으로 우드득 부수기 시작했다.
“돌?”
열 개, 열한 개, 열다섯 개, 스물의 돌. 파훼석이 부스스 부서졌다.
“105년 전을 기억하나? 태초가 죽었던 그때, 미천한 인간들은 되도 않는 머리를 굴려 참으로 이상하고 기이한 물체를 만들어 냈어. 직접 보지 못한 것이 한이었지.”
피파글랜이 손짓하자 상황을 불안하게 지켜보고 있던 몇 하급 인어가 하고 바닷속에 들어가 바삐 헤엄쳤다.
―윌로 님! 헤타 님을 불러 와!
―가자아!
“므아나. 넌 알 거야. 과거 인간들이 만들었던 ‘병기’를.”
백리서의 몸이 굳었다.
“우리는 그것을 모체라고 부르지. 숱한 방해가 있었지만, 결국 만들어 냈어.”
칸나니아는 화상으로 일그러진 흉터를 만지며 웃었다.
설계도 일부가 타버리고, 주요 자료가 분실되는 등, 사고가 있었지만, 결국 불완전하게나마 만들어 냈다. 예상치 못한 형태로.
“그리고 방금, 그 시스템이 완성되었다.”
칸나니아가 사납게 웃었다.
이제부터 시작인 전쟁에서, 너희들은 결코 빠져나갈 수 없을 거라고 예고하며.
[모체(포세이돈)을 긴급 활성화합니다. 100%]
그 순간, 백리서의 무릎이 확 꺾였다.
피파글랜의 손 위에서 튀던 전기가 확 가라앉았고, 근처를 돌던 풍부한 마력의 흐름도 싹 걷어졌다.
“……어?”
모든 것이 정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