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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식인인어는 죽어야 한다-210화 (210/223)

※ 210화

데아는 누군가가 자신을 으쌰, 드는 것과, 그대로 발걸음을 돌려 돌아왔던 방향으로 뛰어가는 것을 느꼈다. 반지의 촉감은 여전히 없었다.

틀렸다. 정신이 이미 꺼져 가고 있었다. 사실 이 정도 버틴 것도 기적이었다.

데아는 가물가물 감기던 정신을 놓았다. 어둠이 닥쳐왔다.

◈          ◈          ◈

“세연아 어디 있어!”

“네네! 가요!”

백리서 헌터에게 전달받아 부축한 샤샤 헌터는 예상 외로 너무 가벼웠다. 정신을 잃었음에도 훌쩍 들린 몸이 대롱대롱 매달렸다.

백리서 헌터는 괜찮을까? 아까 그렇게 뒤를 돌아서 가던데, 어디로 간 거지?

그러나 바로 뒤에 괴물들이 쫒아오고 있어서 찾아갈 수 없었다. 백리서 헌터는 S급 헌터고, 동굴에서 엿들은 내용에 의하면 그 또한 인어…였으므로 죽지는 않을 거라 생각하지만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때 움찔, 샤샤 헌터의 몸이 떨렸다.

“샤샤 헌터, 샤샤 헌터! 정신이 들어요?”

그러나 대답이 없었다. 착각인가?

“서… 설한지. 한지야.”

목소리를 죽여 이름을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분명 저 앞서 도망치고 있는 사람들이 쓰러진 샤샤 헌터를 보면 순식간에 당황할 거다. 진열이 무너지고 사기가 꺼지겠지. 그렇게 둬서는 안 돼.

“하, 한지야. 사람들 눈에 안 띄게, 뒤로 돌아서 갈게. 괜찮지?

세연은 자꾸 자신을 흘끗흘끗 돌아보는 배협 하나만을 부르고 사람들이 잘 못 보는 사각지대로 빠졌다.

암석이 울긋불긋 돋은 지형이 걸음을 방해했다.

“어떻게 된 거야?”

“백리서 헌터분이 부탁하고 가셨어요.”

“백리서 헌터는 어디 가고?!”

“저도 몰라요……!”

그때였다. 우르릉―! 소리가 나더니 바닥에 기다란 실선이 그어졌다.

“……!!”

“뭐야!”

뒤에서 쫒아오는 괴물들이 바닥을 집중적으로 공격하고 있었다.

“조심해!! 저 괴물들이 뭔가를 날리고 있어!!”

“으악!! 바닥이 꺼진다!”

“추락한다!!”

쿠르릉―!!

있는 힘껏 달려도 역부족이었다.

“조심해! 이 밑은 바다야!!”

실시간으로 무너지는 바닥, 그 밑에 깔린 공허함 속으로 모두가 추락할 때, 세연은 하늘을 긋는 섬광을 보았다.

번쩍!

‘어?’

뉘엿뉘엿 노을이 지는 하늘 위로 쏘아올린 찬란함. 모든 이의 이목을 사로잡은 새하얀 신호. 모든 판을 뒤집을 작고 명확한 상징. 하얀 점.

“어!!”

하얀 점은 팽창해 거대한 원이 되었다. 헌터들은 추락하는 찰나의 순간에도 그것을 홀린 듯이 올려다보았다.

너무나도 익숙한 그것. 그건 게이트였다.

“게이트……!”

“저 안에서 뭐가 나와……!”

첨벙!

그게 마지막이었다. 수십 명의 헌터는 그대로 바다에 입수했다. 형용할 수 없는 추위가 몰려들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에 떨어진 생명은 죽는다.

그러나 그때였다.

“꺄아악!!”

“뭐, 뭐야!!”

번쩍! 세연은 자신을 들어 올리는 누군가의 손길을 느꼈다. 수면 밖으로 자신을 들어 올린 근육질의 팔 또한 만져졌다.

세연은 어푸어푸 눈을 떴다.

“이게 무슨…….”

“인어? 인어가 왔어!”

“인어가 왔다고!!”

쩌렁쩌렁 사람들이 희망에 차 소리를 질렀다. 무장한 상급 인어들이 자신들을 구하러 와줬다.

“이제 살았어!”

“뭐, 뭐야? 이게 어떻게 이런 일이…….”

상황 파악이 되지 않는 스크리머만 캠코더를 돌리며 안절부절 못했다.

―아 씨, 가만 안 있어?

스트리머를 들어 올린 붉은 머리색의 인어만 짜증을 냈지만.

―저기 피파글랜 님이 오신다!

수십 명의 사람들을 각자 수면 위로 들어 올린 인어들은 무덤덤한 얼굴로 등불을 높이 치켜들었다. 밤하늘의 별처럼 바다가 수놓아졌다.

뿌우우우―

누군가가 뿔피리를 불었다. 그에 따라 고개를 들 때, 젖은 얼굴을 닦아 내던 헌터들 또한 고개를 들었다.

“용……?”

수염의 일부가 잘린 거대한 용. 신화나 전설 속에서나 존재한다고 믿었던 과거의 영물. 게이트에서 나온 해룡이 모두를 굽어보고 있었다.

그리고 해룡의 옆에는 순백의 마차도 있었다. 그 안에서 나온 건 인어 제국의 제왕, 피파글랜이었다.

찬란한 왕관과 머리장식. 금빛 옷을 입고 사뿐하게 허공을 걸어 내려오는 피파글랜. 걸음에 따라 너울거리는 긴 소매가 마치 오로라 같았다.

그러나 그의 목적지는 바로 세연이었다. 세연은 덜덜 떨었다.

“그 손.”

“네?!”

모든 인어들과 헌터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다. 그제야 세연은 자신이 아직까지도 샤샤 헌터를 끌어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 그, 그게…….”

불쑥, 해룡이 세연의 옆에 거대한 얼굴을 들이밀었다. 세연이 기겁하든 말든 해룡은 고요하게 잠이 든 데아의 뺨을 자신의 얼굴로 가볍게 툭 치더니 부드럽게 스르륵 감쌌다.

―이리로 주게.

해룡은 데아를 마치 고귀한 유리구슬처럼 대했다. 가장 소중한 것을 아끼는 눈으로, 부드럽게 그를 인도받은 해룡은 둥실, 데아를 자신의 몸에 올렸다.

―치명상을 입은 건 그대가 아니었군.

그 순간. 높은 하늘에서 무수한 군대가 폭발적으로 쏟아져 나왔다. 그 장관을 배경으로 피파글랜이 데아의 손을 느리게 잡아 올렸다.

모든 이가 피파글랜을 보고 있었지만 그는 누구의 시선도 신경 쓰지 않고, 그는 데아의 손등에 입을 맞췄다.

가장 비천한 생물이 귀중한 존재에게 바치는 경애의 입맞춤. 지켜보는 사람들은 숨이 멎는 착각에 사로잡혔다.

“나의 주군. 태초를 뵙습니다.”

그건 아주 작은 속삭임이라서, 아무도 듣지 못했다.

◈          ◈          ◈

[모체(포세이돈)을 긴급 활성화합니다. 80%]

◈          ◈          ◈

여례아 임원진들이 전부 모인 여례 길드장의 집무실 안. 여기은은 거칠게 쾅쾅! 발을 굴렸다.

“그거 하나 처리를 못하고 있어?!”

“아시다시피 포세이돈 내부의 카메라가 전부 다운이 된 상태라…….”

“지금 퍼지고 있는 영상이라도 막아야 할 것 아냐!”

“거대 플랫폼에 올라온 개인 영상의 유출을 막기에는 역부족…….”

퍽!

“그걸 변명이라고 해?”

비서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 비서는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꾹 다물고 붉게 부푼 뺨을 감싸며 뒤로 물러섰다. 얼음장 같은 분위기였다.

“지금 남은 괴물들이 있긴 해?”

“…다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실험작들은 포세이돈 안으로 들어간 상태입니다. 내부 촬영이 어려워 확인에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분명 우려하시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그걸 어떻게 확신하지? 그 빌어먹을 샤샤가 또 우리의 계획을 방해하면? 그 하급 헌터 찌꺼기들을 구하고 가짜 인어들과 괴물들을 몰살시키면 어떡하냐고!”

그리고 여기은이 팔팔 날뛰는 그때, 구석에서 똑같은 여례아 임원진 옷을 입고 주머니 속에서 기기를 굴리는 누군가가 있었다.

달깍, 그건 녹음기였다. 모자와 선글라스를 쓴 연가을은 씩 웃었다.

“…….”

“투자! 투자를 받아야 한다고! 주주들한테 신뢰를 줘야 할 것 아냐! 이제까지 잘해 왔잖아, 포세이돈 안에서 큰 사건 사고 없었잖아. 포세이돈을 처음 만들 때 이런 일이 있었을 거라고 누가 예상을 했겠어? 그런데 지금 왜 이러냐고!”

인공 포세이돈.

여기은은 지금 나온 말만 유출돼도 크나큰 타격을 입는다.

스스로 덜미를 잡혀 주는구나. 입이 가벼워서 고맙다 여기은. 그렇게 생각한 찰나였다.

턱,

“어, 죄송…….”

뒤로 물러서던 한 임원이 연가을의 발을 밟고 대충 꾸벅 사과를 했다. 능청스럽게 받아 주고 넘기려고 했는데 턱! 팔목이 잡혔다.

“!!”

“너 연가을 헌터 아니야? 네가 왜 여기 있어? 너 임원진 아니잖아?”

집무실 안이 쥐 죽은 듯이 고요해졌다. 심장이 서늘하게 뛰었다. 패악을 뚝 그친 여기은이 눈을 커다랗게 뜨고 연가을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

“사람 잘못 보셨……!”

“잘못 보긴 뭘 잘못 봐? 야, 야, 너 돌진계 A급 헌터 연가을 맞잖아? 어디에 가있다가 여기에 오냐? 너 분명 길드 통합 팀에 가지 않았나? 이것 봐라?”

손이 덜덜 떨린다. 아 이런, 제기랄. 이렇게 들킬 줄은 몰랐는데.

“연가을?”

터억!

“크흑!”

순식간에 목이 잡혔다. 컥, 컥! 여기은이 믿을 수 없는 악력으로 연가을의 목을 잡아 벽에 밀었다. 두 발이 붕 떴다.

‘수, 숨이 부족해, 아파……!’

기도가 고통을 호소하고 눈앞이 붉어졌다.

“얘 주머니 뒤져.”

“네!”

‘안 돼!’

순식간에 녹음기가 발각됐다. 녹음기는 곧장 부서졌다.

“쥐새끼가 숨어 있었네. 이딴 새끼를 왜 진작에 발견 못했던 거야? 어?”

“죄, 죄송합니다!”

“끌어내.”

“네. 아, MBL연구소 지하로 이동시킬까요?”

여기은은 고개를 저었다. 연가을을 보내기엔 MBL은 좋지 않다.

“아니. 여례아 지하로 옮겨.”

지하는 훈련실이자 실험실이었다. 완성은 됐지만 최종 검토가 이루어지지 않은 괴물들이 있는 곳이기도 했다.

“가자마자 괴물들 깨우고, 싸우게 해.”

직접 손에 피를 묻히기 싫은 여기은이 자주 쓰는 수법이기도 했다.

승패가 명확한 훈련(싸움)을 붙이고 상대를 죽인 후, 예상치 못한 사고였다 포장하는 방식이었다.

‘더군다나 이러면 정소진의 원망을 피할 수 있지…….’

어찌되었든 괴물들은 정소진의 작품이었으니까. 제 동생이 훈련을 먼저 청했다 하면 누굴 탓하겠는가?

“끌고 가.”

“예!”

“야! 야 이, 새끼들아!”

연가을은 질질 끌려갔다.

현재 층수는 78층. 엘리베이터에 타면 끝이다.

“자, 시간 없다. 빨리빨리 처리하고 가자. 길드장님 화내시기 전에.”

비서와 몇 헌터들이 연가을을 잡고 따라왔다.

연가을은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마자 능력을 개방시켜 그들을 밀치고 비상계단 쪽으로 뛰었다.

“저게! 잡아!!”

“괴물들부터 연가을로 표적 입력하고 건물에 풀어! 표적이 위로 올라간다!”

비상계단 아래층에서부터 헌터들이 우르르 올라왔다. 연가을은 하는 수 없이 최상층으로 올라갔다.

82층. 통창으로 되어 있는 건물이 눈이 부시게 환했다.

“제가 위로 따라가겠습니다!”

가장 먼저 온 건 비서였다. 연가을은 인벤토리에서 아무 손에 잡히는 거창을 꺼내들어 겨누었다.

“저리, 저리 가세요.”

“연가을 헌터.”

비서는 아직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빠르게 속삭였다.

“곧 괴물들이 올라올 겁니다. 당신은 그 괴물들 못 죽여요.”

“나는 언니를 만나고 싶을 뿐이에요.”

연가을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그게, 그거 하나가 그렇게 어려워요? 그동안 방해했던 게 누군데!”

비서는 잠시 말이 없었다.

여전히 퉁퉁 부어 있는 자신의 뺨을 슬쩍 만지던 비서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그는 주저하며 휴대폰을 들어올렸다.

“오른쪽 뒤.”

“네?”

“그쪽에 비상 통로가 있어요. 길드장님과 저 말고는 아무도 모르니까…….”

책장을 열자 과연 어두컴컴한 통로가 나오긴 했다.

연가을은 당혹스럽게 비서를 돌아보았다. 비서는 이를 까드득 악물었다.

죄책감, 분노, 자신이 고작 이 정도의 길드장 아래서 굴렀다는 자괴감. 한심함. 그것들이 응어리가 되어 뭉쳤다.

“…떠나세요. 방금.”

삑, 그가 휴대폰의 어느 버튼을 눌렀다.

“정소진에게 당신의 위치 정보를 전송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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