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9화
그 일이 일어나기 하루 전.
“우리는 모두 뿔뿔이 흩어질 겁니다.”
데아는 강당 안에 사람들을 쭉 모아 회의를 했다.
“우리의 목표는 클리어가 아닌, 내부 폭로예요. 던전 안에서 일어나는 이상 현상들을 모두 찍어 외부로 유출하는 것. 그렇게 우리가 앞으로 하는 모든 행위에 전 국민적인 동의를 구하는 것.”
데아는 종이에 동그라미를 그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례아를 제외한 다른 대형 길드의 협력이 필요해요. 여파 그리고 023말이에요.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1. 스트리머의 카메라로 괴물들이 헌터들을 공격하는 모습과 가짜 인어들의 로고를 찍는다.
2. 그렇게 사람들이 ‘왜 저 괴물들이 헌터를 공격하지?’, ‘저 괴물들도 인어인가?’, ‘MBL 로고는 왜 저 인어들에게 찍혀 있지?’ 의문을 가졌을 때쯤.
3. 진짜 인어들이 나타나 헌터들을 구해 주는 모습을 찍어서 송출하자는 말이었다.
“대기 중이던 하급 인어를 타서 인어 제국으로 간 다음, 대기 중이던 인어들과 힘을 합쳐 적들을 물리치고 던전을 탈출하는 것까지 찍으면 끝. 깔끔하죠?”
그 후는 덜미를 잡은 타 길드들과 가십거리를 언론이 알아서 해줄 것이다.
◈ ◈ ◈
그렇게만 하면 수월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아 미친…….”
하급 인어가 나와 헌터들을 보호하는 장면을 찍은 것. 거기까지는 좋았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였다. 이대로 하급 인어의 등을 타고 인어 제국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좋았는데…….
쿠르릉―!!
예상외의 것이 있다면, 상대가 데아의 생각보다 더 내일이 없는 놈들이었다는 것이다.
현란한 지진이 몰아쳤다. 그건 자연스럽지 않은 지진이었다.
“포세이돈……!”
“당신은 ‘모체’를 이길 수 없어.”
칸나니아의 말이 떠오른 건 왜일까?
기다렸다는 듯이 나타난 이질적인 무언가. 그건 형체가 없는 압박이었다.
‘설마 모체인가? 이게 네가 말하던 모체야?’
모체. 포세이돈.
인공 던전 포세이돈은 자아를 가졌다.
데아는 한순간에 저 멀리 밀려난 헌터들을 둘러보았다. 포세이돈이 지정한 장소 안의 모두는 포세이돈의 영역 아래 있었다.
헌터들이 이상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으어! 으악! 저리가!!”
“살려 줘! 아냐! 꺼져!!”
허공에 대고 칼을 휘젓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난, 못해요. 저는 못해요. 제발…….”
홀로 싹싹 빌더니 구역질을 하는 사람도 있었으며,
“으아악! 으아아악!!”
스스로의 무기를 놓고 멀리 달아나다가 호수에 빠지는 사람들도 있었다.
스트리머가 이런 경우였다.
“좀!!”
가까스로 캠코더와 통신 기기, 그리고 사람은 구했지만 채팅 창은 그야말로 혼돈이었다.
[무슨 일임?]
[다 같이 미침?]
[그거 같은데 그 예전에도 환상계 인어 탈출했었다며…….]
환상계 인어.
그건 종종 여례아에서 치명적인 목격담을 덮을 때 사용하던 말이었다. 설마 실제로 있었단 말인가?
“가능성 있지…….”
[모체(포세이돈)을 긴급 활성화합니다. 40%]
또 창이 떴다. 불길했지만 데아는 애써 무시했다.
지금은 그것보다 혼란에 빠진 사람들을 노리는 적군을 물리치는 게 우선이었다.
“릴림.”
“네.”
고아한 인어가 검을 빼어들었다.
하얀 빛이 일시에 펼쳐지고, 백리서는 한 걸음을 내딛었다.
“네가 다 할 수 있지?”
“당연합니다.”
백리서는 홀로 서서 수많은 헌터들과 괴물들을 마주했다. 데아는 스트리머가 덜덜 떨며 쥐고 있는 카메라의 렌즈를 손으로 감싸 가렸다. 그와 동시에 깔끔한 곡선을 그으며 검이 치솟았다.
“헉!!”
그리고 여례아 소속 헌터의 머리가 날아갔다.
“사, 사람을 죽였어!! 백리서가!!”
여례아 소속 헌터들이 비명을 지르든 말든 그는 멈추지 않았다. 가짜 인어의 사지가 절단되고, 괴물의 몸은 두 동강 나 발밑에 밟혔다.
백리서는 상대가 누구든 검을 찔러 입을 뚫고, 옆으로 눕혀 머리를 갈랐다. 붉은 피와 푸른 피 그리고 점액질이 정신없이 뒤섞였다.
“진짜, 죽였어! 같은 헌터를!”
“너, 너희들도 우리들을 먼저 죽이려고 했으면서!”
정신을 차린 양철민이 분노해 소리쳤다.
“머리.”
“으아악!!”
인어의 처형 집행관. 사신. 무도한 동족 살해자.
그 위명에 알맞게 릴리므아나는 모든 이의 생명을 앗아갔다.
수백이 넘던 인원이 수십이 되고, 호숫가의 물이 탁하게 물들 때까지 그는 멈추지 않았다.
이유는 오직 하나. 그의 주군이 ‘다 할 수 있지?’라고 물었고, 자신은 그에 ‘예.’라 답했으므로.
“이 새끼들이―! 이 미친 새끼들이! 야!!”
“빌어먹을!”
당황한 적군이 도주를 시작했다. 모두가 승기를 확신했을 때, 이변은 그때 일어났다.
첨벙―!!
“!!”
포세이돈은 모체이다. 모체는 포세이돈이다. 그 둘이 어떤 시스템으로 구동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것은 분명 자신의 영역 안에서 전능하다.
“릴림!”
―그 정도의 힘을 다시 한 번만 더 쓰면 나는 곧 자유가 될 거야.
철창 속의 괴물이 했던 경고가 다시 넘실거렸지만 멈출 수 없었다.
쿠구구구구―!
갑작스럽게 호수의 물이 출렁였다.
태초의 전능을 따라서 만든 가짜답게 그것은 물의 형상을 다룰 줄 알았고, 호숫가의 물은 거대한 이빨이 되어 백리서를 덮쳤다.
아니, 덮치려고 했다.
백리서 또한 대응하려던 순간이었다.
‘늦어……!’
데아는 반사적으로 뛰쳐나갔다. 믿을 수 없는 속도로 돌파해 광풍을 일며 그 사이를 가로막았다.
내민 손끝이 기적을 품고 휘었다.
우리의 패를 까발릴 생각을 했다면, 너희들의 패 또한 까발려질 각오를 했어야 한다는 건가.
양날의 검. 여론. 본성과 이성. 그 모든 것을 감수하며 데아는 행동했다.
파학―!!
호숫가의 물은 더 근원에 가까운 자의 명에 따랐다. 백리서를 공격하려던 이빨은 저들끼리 부딪혀 결국 터져버렸다.
“주……!”
―쓰지 말라고 했잖아.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났지만 데아는 머리를 감싸 쥐며 무너졌다.
입을 틀어막았다. 푸른 피가 또 쏟아지고 있었다. 몸이 본성에 저항하다가 무리가 갔다. 괴물이 결국 철창을 찢어버렸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누군가에게 안겨 달리고 있던 때였다.
두 개의 자아가 있는 것 같았다. 얼른 이 모든 것을 쉽게 끝내고 편해지고 싶었고, 동시에 계획대로 일을 진행하고 싶었다.
가장 적은 사람들이 죽는 방향으로. 가장 평화롭다고 말할 수 있는 대안으로.
“헉, 허억…….”
“정신이 드십니까?”
눈을 뜨자 백리서가 보였다. 영문을 모르는 그만 창백하게 질렸다. 다른 헌터들도 마찬가지였다. 데아는 그대로 헐떡거렸다. 손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당장 평화로운 방법을 버려. 저기 있는 모든 적들을 잔인하게 찢어 죽여. 그리고 삼켜.
데아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눈을 감고 몸에 힘을 풀어버렸다. 이성을 놓는 괴물이 될 바에야 무력한 사람이 되는 것이 나았다.
이렇게까지 참는 이유는 단 하나. 그 충동이 거기서 멈추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아서다.
파괴 욕구는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수천 년 전, 인간을 멸종시키고 권속들에게 돌아온 날의 밤. 순간 자신을 바라보는 여덟 쌍의 눈을 보고 ‘이 아이들도 인간들과 똑같이 죽을까?’ 생각하며 충동과 이성을 저울질했던 것이 그 증거였다.
“하, 하급 인어는?”
원래 계획대로라면 이쯤에 하급 인어가 나타나 모두를 태우고 인어 제국 쪽으로 이동해야 했다.
“어디 있어……?”
그러나 그들은 나타나질 않음에 손이 차가워졌다.
설마…….
고개를 돌리자 저 멀리 하급 인어가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멀찍이 떨어져 숨을 죽이고 덜덜 떨고 있었다.
―무서워어…….
―뭐야아? 바다님 아니야…….
―바다님 어디 갔어……?
―저거, 저거 바다님 아니야……. 무서워…….
“아…….”
본능에 예민한 하급 인어. 하급 인어들은 데아를 보고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래, 그들은 전지전능한 신이 심히 약해져 있는 상태이며, 동시에 같은 동족을 공격할 수 있는 상태라는 걸 바로 간파해 버렸다.
아, 차질이 생겼다.
설상가상으로 여례아의 헌터들과 괴물, 가짜 인어들은 어느새 정비를 마치고 다시 돌진해 오는 상태였다.
저들은 밖의 상황을 모를까? 아니, 알아도 물러설 곳이 없기에 계속 돌진하는 걸 수도…….
“어떡하죠? 샤, 샤샤 헌터……?”
“달려야 할 것 같아요.”
“네?”
“인어 제국으로. 최소한…….”
데아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유일하게 보이는 우뚝 솟은 무언가. 나의 힘이 가장 많은 곳.
아, 그래.
‘가장 온전한 힘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곳……!’
데아의 눈이 번쩍 떠졌다. 바로 거기다. 그곳에 가면 상태가 나아질 수도 있을 것이다.
“태초의 고목으로, 가요!”
주변에 바다가 없기도 했지만, 하급 인어가 저렇게 된 이상 바다로 이동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역시 땅이지.
“달려요! 거기 괜찮아요? 업어 줄까요?”
“부탁드려요……!”
헌터들은 무작정 서로를 부축하고 달렸다. 비교적 상태가 멀쩡한 헌터들은 맨 뒤로 서서 다가오는 공격을 막으며 멀찍이 보이는 수평선 너머 거대한 태초의 고목 잔가지를 향해 달렸다.
“주군. 하지만 태초의 고목은…….”
태초와 해룡을 제외한 모든 생명체의 출입을 금한다.
“괜찮아. 나만이라도 가면 돼. 가면 해결책이 있을 거야.”
그러나 백리서는 따라오는 적군을, 힘든 사투를 반복하는 자신의 주군을 바라보았다.
“주군. 많은 자들이 아직 살아 있습니다.”
“어…….”
“아무도 죽지 않았어요.”
“…….”
“아무도…….”
백리서의 걸음이 느려졌다. 어느새 우뚝, 멈추고 많은 헌터들이 그들을 지나쳐 앞으로 나아갔다. 공기가 멈춘 것 같았다.
백리서는 말없이 데아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네가 죽을 것 같아.”
푸른 피를 쏟은 주군. 이유는 모르겠지만 능력만 쓰면 심히 힘들어 하는 태초. 얼굴의 절반이 본인의 피로 젖어 제 발로 걷지도 못하는 이데아.
“피파글랜은 지금 이 장소를 모르죠?”
“어…….”
“신호탄을 피어 올려도 늦을 거예요.”
더군다나 쫒아오는 괴물들에 비해, 인간 헌터들의 속도는 터무니없이 느렸다.
“이대로라면 잡힐 겁니다. 물론 그런 건 상관없어요.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주군 또한 큰 타격을 입겠죠?”
“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가장 좋은 방법이 있잖아요. 피파글랜에게 지금 위치를 알릴 가장 좋은 방법.”
이상하게 정신이 가물가물 가라앉았다. 백리서가 웃었다. 와, 얼마 만에 보는 미소인지.
그때 뒷목에 아찔한 충격이 다가왔다.
“무슨 일이에요?”
“샤샤 헌터가 잠시 쓰러졌어요.”
세연의 목소리가 들렸다. 대꾸하는 백리서의 음성 또한.
‘아니, 잠깐, 너 지금 날 기절시켰어?’
“제가 이곳을 막고 있을 테니 먼저 데려가요.”
‘야, 야……!’
“아, 네, 네!”
그때, 데아는 까마득한 의식의 점멸 너머, 자신의 손가락에 와닿는 촉감을 느꼈다. 오른손 약지에 끼워 두었던 반지가 스르르 빠져나가는 촉감이었다.
해룡의 반지. 상급 아이템.
―착용자가 치명상을 입었을 경우, 해룡의 수염 하나가 툭 썰려 떨어지며, 해룡은 착용자의 위치와 상태를 바로 파악할 수 있다.
‘야!!’
◈ ◈ ◈
[모체(포세이돈)을 긴급 활성화합니다. 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