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6화
찬바람이 뺨을 스쳤다. 데아는 모든 것들의 절망을 향해 창을 겨누었다.
◈ ◈ ◈
“괴물의, 수가, 너무 많아……! 심지어 이 괴물 앞에 서면 능력도 줄어드는 것 같아!”
“저, 정말이야! 이봐! 괜찮아?”
“다들 피해!!”
붉은 얼굴의 괴물의 살상력은 어마어마했다. 먼저 달려 나간 헌터들은 형편없이 고꾸라지고 무너졌다.
“진영을 다시 짜!!”
“그래!!”
동료의 머리를 밟아 가며 싸웠다.
마침내 한 괴물의 심장부에 검을 박아 넣은 순간, 헌터들은 서로를 부둥켜안았다.
“드디어 무너뜨렸어!”
“우, 우리가 해냈어!”
“지금 기뻐할 때가 아니에요! 저런 똑같은 괴물 수백 마리가 여기 있다고요!”
이미 수많은 헌터들이 부상을 입었다. 애초에 수적으로도 밀리는 싸움에 헌터들은 전의를 잃었다.
“우, 우리는 이길 수 없어!”
“그런 말 하지 마!!”
“하지만…….”
“어어! 뒤!! 뒤를 봐! 조심해!!”
해변가에 그림자가 졌다. 분명 죽였다고 생각한 괴물이 벌떡 일어나 헌터들을 기습하고 있었다.
“흐아아악! 흐아악!!”
“피해!!”
퍼억―!!
첫 번째 공격은 피했지만 두 번째 공격은 아마 피하지 못하리라.
“시, 심장을 찔러도 안 죽는 다고? 어떻게 그런……!”
“이런 괴물을 어떻게 죽여!!”
모두가 끝이었다. 저 멀리 괴물들과 해일이 몰려들고 있었다.
다 죽을 것이다. 끝났다.
괴물은 다시 손을 들어올렸다. 헌터들은 파르르 눈을 감았다. 그러나 그때.
퍼어억!!
“……!”
질척한 점액질이 헌터들의 얼굴이 파악! 튀었다. 괴물이 뻗은 손을 가볍게 밟고 도약한 누군가.
번쩍! 비상 등대에 비치는 아찔한 역광의 주인공. 헌터들은 그 모든 광경을 홀린 듯이 지켜보았다.
“무, 무슨…….”
괴물은 누군가가 들고 있던 창에 입이 뚫려 절명했다. 누군가는 창을 비틀어 그대로 옆으로 베었고, 괴물은 처참하게 무너져 죽었다. 들이마신 숨을 내쉬기도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붉은 눈을 가진 누군가. 사람들은 해변가에서 덜덜 떨었다.
“샤, 샤샤 헌터……?”
이상했다. 샤샤 헌터가 맞는데, 분명 구원자가 맞는데……. 아군이 맞는데.
“샤샤 헌터, 맞죠……?”
샤샤 헌터는 웃고 있었다. 절망적인 상황과는 지독하게 어울리지 않는 포식자의 웃음이었다.
헌터들은 본능처럼 깨달았다.
아군이 아냐.
위험을 인지한 헌터들은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그들은 도망치면서도 입도 벙긋할 수 없었다.
뭐지? 꿈인가? 방금 그 느낌은 뭐였지?
“방금…….”
“말하지 마세요!”
그리고 그 안에서는 연가을 또한 있었다.
연가을은 평소와 다르게 하얗게 질린 모습이었다.
“아, 아무것도 못 본 거예요. 알겠죠?”
“하지만…….”
“우리는 아무것도 못 본 거라고요!”
“그, 그래…….”
샤샤 헌터가 뒤를 도는 찰나, 그가 인간이 아닌 괴물을 잡아먹는 괴물처럼 보였다는 사실이 알려져 봤자 좋을 것이 없었다.
특히, 이 시기라면. 사람들이 샤샤 헌터의 정체를 모르는 상태라면 특히.
“샤샤 헌터가… 왔으니 분명 도움이 될 거예요. 우리는 강당으로 돌아가서 사람들 대피나 시키자고요!”
“그래. 그래야지! 가자!”
날씨가 빠르게 흐려졌다.
새벽의 중간, 데아는 수없이 빠지고 들어차기를 반복하는 바다 앞에 홀로 섰다. 빛이라고는 간헐적으로 깜빡이는 등대의 아슬아슬한 하얀 빛이 전부인 장소.
데아를 표적물로 삼은 수백 마리의 괴물들이 눈을 빛냈다.
행동은 짧게, 결과는 처참할 정도로 정확하게.
―활을 줄까?
“부탁해.”
바다의 경배는 유난히 말을 아꼈다.
스르륵! 창은 활이 되어 데아의 손 위에 얹혔다. 활시위를 당기고, 조준하는 그 모든 순간이 고요했다.
약점은 괴물의 목. 완벽하게 두 동강을 내면 괴물은 죽는다.
데아는 활을 자신의 아래, 바다를 향해 조준했고, 그대로 쐈다. 괴물들에게 스치지도 않았다.
피유우우, 첨벙!
허무하게 끝난 한 번의 발사. 그러나 그 결과는 달랐다.
수없이 달려오는 무시무시한 거구의 괴물들 사이로, 질척이는 바다가 기어올랐다.
―크르륵, 크아아아!
―죽여라!! 죽여라!!
분노로 이성을 잃은 괴물들이 무서운 속도로 땅을 박찼을 때, 데아는 두 손가락을 모아 위로 올렸다.
고작 그 동작 하나였다.
퍼어억!!
“!!”
바다가 거대한 장창처럼 아래에서 위로 치솟아 올랐다.
퍼억! 그대로 괴물들은 목을 찔렸고, 살점이 분리되어 머리가 날아갔다.
파아악!!
하나가 아니었다. 괴물의 수만큼, 무수한 수의 바다의 창이 아래에서 위로 치솟아 괴물들의 사지를 찢었다.
갑작스러운 기습에 괴물들이 비명을 지르며 바르작거렸지만 데아의 표정은 언제나처럼 평화로웠다.
“그러고 보니 너희들의 몸 안에도 마석이 있었지. 인어처럼…….”
호기심 많은 아이처럼 고개를 기울인 데아가 이미 숨을 거둔 괴물에게로 다가갔다.
아직 죽지 않은 괴물들이 몇 있었지만 그것들은 이미 행동 불능 상태였다.
“어디쯤이려나.”
자신의 몸이 자신의 것이 아닌 것 같았다. 크게 뭘 하지 않았음에도 산처럼 쌓인 학살의 증거를 보자 몸에 열이 올랐다.
그래. 이 정도는 할 수 있었잖아. 그동안 힘을 숨겨 가며 가장 희생이 적은 길을 찾을 필요가 없었잖아.
피가 후두둑 떨어졌다. 코피가 나고 있었다. 피는 파란색이었다.
“여긴가?”
데아는 코피가 난다는 사실도 모른 채 괴물의 시체를 더듬었다. 여긴가? 여긴가? 호흡이 거칠어지고 이성이 달큰하게 녹았다.
한 줌 본능밖에 남지 않은 인어. 식인인어. 뭐든지 먹어 치워 자신으로 만드는 최초의 생명체.
“먹을까?”
대답을 바란 일은 아니었다. 다만 철창 안의 괴물이 배고파하고 있었다. 자신은 그것의 배를 채워 줄 의무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지금은 사람이 없으니까……. 아무리 그래도 여기서 사람을 먹으면 큰일 나니까.
그래, 이걸 먹자.
“…좋은 생각이야.”
그리고 생각이 종말했다.
데아는 무작정 얼굴을 숙이고 괴물의 목을 물어뜯었다. 점액질 액체가 마구잡이로 튀고 온 얼굴에 괴물의 장기가 문질러졌다. 마석, 마석. 이 안에 있을 마석!
데구루루……. 그리고 마석들이 나왔다.
데아는 허겁지겁 그것을 먹어 치웠다. 추잡한 소리가 났지만 이성을 차리기 힘들었다.
그래, 그러면 됐어. 너희들을 먹어 나는 더 강해졌다. 이게 뭐가 이상해? 이게 뭐가 나빠?
본성에 따르는 것. 그게 뭐가 이상한가? 타당한 생각이다.
저벅, 저벅.
“!”
그때 누군가 옆에 다가왔다. 이상하게 인상을 찡그린 칸나니아였다.
데아는 세 번째 괴물의 마석을 씹어 먹다가 고개를 들었다.
“제가 알던 당신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칸나니아는 데아가 소환한 바다의 경배를 보고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네가 무슨 상관이야.”
“특히 이런 부분이.”
칸나니아는 어깨를 으쓱했다.
“제가 신경 쓸 바는 아니죠. 그래도 확인하고 싶었던 부분은 다 확인했으니 전 됐어요.”
칸나니아는 자신의 길을 가로막는 괴물의 시체를 퍽퍽 발로 걷어차며 걸어왔다.
“처참하군요. 역시 대단합니다. 분명 괴물에 시야 안에 들어서 마력 제한이 걸렸을 텐데도 이 정도의 파괴력이라니.”
“네가 너무 약하게 만든 거겠지.”
“그런 오만도 여기까지입니다. 당신에게 제약이 주어진 이상…….”
그의 얼굴이 불쑥 다가왔다.
“당신은 ‘모체’를 이길 수 없어.”
“모체?”
“조악하게 개조된 가짜는 원본을 이기기도 한다는 말, 아십니까?”
그딴 말은 들어보지도 못했다.
“100년 전의 비극이 되풀이될지도 모르겠군요. 인어제국은 태초를 두 번이나 잃겠고. 당신은 모체의 완성을 막지 못했으니까.”
칸나니아가 히죽 비웃었지만 데아의 귀에는 무엇 하나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이제 정말 얼마 안 남았어.”
머리가 이상하게 뜨겁고 아프다. 여전히 굶주린 괴물이 흥분하고 있다.
저자를 죽여. 저자를 물리쳐.
칸나니아의 마석을 빼앗아서 먹어!
순간 데아는 그 말에 따를 뻔했다. 눈치 빠른 칸나니아가 재빨리 물러서지만 않았다면 당장 공격했을 것이다.
“그럼 다음에 꼭 뵙도록 하죠.”
그리고 칸나니아는 스스로 게이트를 열어 홀연히 사라졌다.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
아침. 고요한 파란 바다.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데아는 스스로의 머리를 때렸다.
“안 돼. 무슨……. 뭐야?”
데아는 해변가에 자신의 머리를 다시 한 번 박았다.
“잠깐, 나 무슨 일을…….”
데아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밝아 오는 아침 아래로, 바다만큼이나 넓게 깔린 붉은 시체들이 있었다.
간밤의 학살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그것은 떠내려가지도 않고 바다를 메웠다.
그리고…….
“이빨 자국…….”
몇 괴물의 목과 몸은 누군가가 물어뜯은 듯이 흉터가 선명했다.
그것은 증거였다. 전날 새벽, 자신이 제정신이 아니었다는 증거였다.
“이게 무슨, 무슨 생각으로…….”
그래, 우선 진정하자. 이렇게 정신이 돌아온 것만 해도 어디야. 나는 이데아고, 인어고, 태초이고…….
“도대체 무슨…….”
이런 이상 행동을 하는 건 이유가 있을 것이다. 분명히 손목을 관통한 뭔가가 연관이 있겠지.
그나저나 무슨 정신으로 강당 안에서 샤샤로 변했던 걸까. 정전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긴 했는데 누가 본 사람은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자리에서 일어선 순간이었다.
멀지 않은 해변에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서있었다. 순간 심장의 박동이 멈췄다.
“샤샤… 헌터?”
그 안에는 캠코더를 든 스트리머도 있었다. 특종이라도 잡았다는 듯이 빛나고, 동시에 두려운 것을 목격했다는 듯이 떨리는 눈동자가 다 보였다.
사람들의 분위기가 이상하다.
“그, 그…….”
데아는 무심코 자신의 코와 입가를 만져 보았다. 찐득한 피가 만져졌다.
푸른색 피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