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5화
“찾았어요! 여기 있었어요!”
스트리머가 실종되었다.
각박한 세상에 못 이겨 혼자 돌아가 보겠다고 무작정 항구로 나선 것 같은데 타고 온 어선이 실종되었단다. 망연자실하게 앉아 있다가 어선을 찾겠다고 이 넓은 섬을 빙빙 돌아다닌 지 오래. 스트리머는 갑자기 사라졌다.
“태풍이 오고 있는데 어딜 그렇게 싸돌아다닌 거야!”
“큽, 흐응, 흐어엉…….”
밤 열두 시. 결국 사람들은 손전등을 들고 비를 맞으며 실종된 스트리머를 찾아다녔다.
“여기 길도 험한데! 살아 있는 게 용해. 알아?”
“크흡, 정말로 감사, 감사합니다…….”
“에휴… 젊은 사람이 어쩌다가.”
“저, 정말로 죽는 줄 알았어요…….”
스트리머는 절벽 끝에서 발견되었다. 발을 헛디뎌 굴러 떨어졌다가 툭 튀어나와 있는 젖은 바위를 붙잡고 가까스로 매달렸고, 고래고래 살려 달라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뭐야? 한지야. 그 사람 찾았대?”
“응. 살아 있었대.”
“휴, 다행이다!”
데아는 쭈욱, 티셔츠의 물을 짰다.
데아가 사람들을 따라 아예 강당 안으로 들어가려는 찰나.
“누, 누구쇼!”
“뭐야!”
가끔 그런 날이 있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날씨가 좋은 날이. 그러나 유난히 흐리고 몸이 무거운 날 또한 있다. 안 좋은 예감이 몸을 짓누르는 날 말이다.
그리고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누, 누가 강당 안에 있어!”
이변은 그때 일어났다.
데아는 한순간에 바뀐 공기를 감지했고, 빠르게 고개를 돌려 강당 중앙을 바라보았다.
그곳에 누군가 서있었다. 두터운 담요를 들고.
“…….”
여기서 볼 거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의 정체. 늘 그곳에 있었다는 듯이 서 있는 여유로운 태도.
“……?”
데아는 말을 잃고 당황했다.
‘왜 저기에 있지? 어떻게 여기까지 왔지?’
잿빛 머리카락 아래 흉측하게 일그러진 피부가 강당 불빛에 비쳤다.
“누구십니까!”
사람들이 소리쳤다. 침입자. 한눈에 봐도 장신에 단단한 몸을 가진 짧은 머리카락의 사람.
칸나니아.
칸나니아는 심드렁하게 주변을 훑었다. 데아의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과거에 누군가가 한 말이 있었지.”
그의 목소리는 무게가 있었다.
칸나니아는 천천히 걸었다. 발에 걸리는 그 모든 것을 걷어차며.
“전시에 가장 중요한 것. 첫째, 아군의 입단속이고.”
터엉―! 또 한 번 물건이 걷어차였다.
“둘째, 적군의 변수이며.”
칸나니아는 담요를 느릿하게 펼쳤다. 그의 발소리가 점차 가까워졌다.
“셋째, 내부의 배신이다.”
드리워졌던 인파의 그림자가 갈라졌다. 주변이 조용해지고, 불길한 예감이 엄습했다.
데아는 고개를 들었다. 기억과는 조금 다른 얼굴, 그러나 역시나 익숙한 얼굴의 칸나니아가 데아를 똑바로 쳐다보고 서있었다.
“내부의 배신을 조심하시지 그러셨습니까?”
쿵쿵, 심장이 빠르게 맥동했다.
배신, 배신이라니. 아니 그나저나 왜 여기에…….
“젖으셨군요.”
칸나니아가 아량을 베풀 듯 웃었다.
툭, 데아의 어깨 위로 담요가 내려앉았다. 주변에서 뭐야? 아는 사이야? 라는 말이 들려왔다. 머리가 식었다.
“…누구세요?”
“아하. 이런 역할입니까?”
칸나니아는 특유의 무뚝뚝함으로 비웃고는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오로지 데아만 들을 수 있을 법한 작은 속삭임이 들려왔다.
“F급 힐러 설한지.”
“…….”
“정말로 감쪽같더군요. 하지만 그렇게 이쪽을 휘젓고 다녔는데 정말로 제가 모를 거라 생각하신 겁니까?”
“정말 죄송한데 누구신지…….”
데아는 SOS를 청하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헌터들은 불안한 얼굴로 바라보기만 할 뿐, 다가오지를 못했다.
그나마 세연이 사이에 끼어들려고 했지만 배협이 막아 세웠다. 하여간 배협 도움이라곤 안 주는…….
“끝까지 모른 척하실 겁니까? 아니면, 그냥 이곳에서 이야기하시겠습니까.”
“사람 잘못 보신 것 같아요. 저는 정말로…….”
“정말 많은 것을 꾀하고 계셨더라고요. 특히 전광판에 이름을 올릴 줄은 몰랐는데. 그래도.”
칸나니아의 속삭임이 점점 커졌다.
“결국은 찾았죠. 이 저도 그 버려진 권속이 아니었더라면 찾을 수 없었을 겁니다.”
“……?”
버려진 권속. 자잔이다.
데아의 머리가 핑핑 돌아갔다.
‘자잔. 자잔이라니. 설마. 그 자잔의 눈? 역시 뭘 심어 놓았던 건가? 설마 그게 내부의 배신?’
그때 데아의 얼굴을 본 칸나니아가 히죽 웃었다.
당했다.
“이제야 뭔지 알겠어요? 그 권속의 눈에는…….”
데아는 이제 정말로 끊어내기로 했다.
“정말 죄송한데 누구신지도 모르겠어요. 석파, 석파란 언니. 이 사람 누구예요? 누군지 아세요?”
“이곳은 포위됐습니다.”
뚝, 데아는 입을 다물었다. 귀를 기울이던 주변인들이 크게 술렁였다.
“뭐?”
“저는 말렸는데 여기은은 참으로 오만하고 멍청한 인간이더군요.”
사람들이 동요하며 강당의 창문을 벌컥벌컥 열었다.
“저, 저기 뭐가 보여요!”
“뭐라고!! 세상에, 한둘이 아니야!”
데아는 칸나니아를 휙 돌아보았다. 목적이 도대체 뭐지?
“제가 여기 온 이유는 확인할 것이 있어섭니다. 아주… 이상했거든요.”
데아는 귀를 틀어막고 싶었다.
“당신의 목적은 분명 나의 죽음일 텐데, 왜 아직까지 가만히 있는 걸까. 이 순간 또한 당신에게 절호의 기회일 텐데, 왜 끝까지 모른 척하는 걸까…….”
새파란 여명의 그림자처럼 무뚝뚝하게 서 홀로 되뇌이던 칸나니아가 데아의 멱살을 잡은 건 그 순간이었다.
“큭!!”
“나를 우습게 아는 걸까, 아니면… 그래.”
심장이 거침없이 뛰었다.
이곳이 포위되었다는 건 사실 데아에게 큰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능력이 없어졌나?”
자신이 지금 능력을 쓰지 못한다는 사실을 칸나니아가 알게 되는 것은 중대한 문제였다.
칸나니아는 말을 끝내자마자 소리 높여 웃었다.
“정말로?”
“무, 무슨 소리를, 아니 우선 이 손을 놓고 말해 주시면……!”
“옛날 생각이 떠오르는군요. 그때도 당신에게서 재생 능력이 사라졌었는데.”
칸나니아는 벌떡 고개를 들고 데아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하지만 그건 자연적인 일이었어. 당신이 너무나도 오래 살아서 육체가 못 버틴… 뭐, 이번에는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만 잘됐군.”
쿠르릉―!
예고되었던 태풍이 기어코 발을 뻗었다.
번개가 번쩍 내려침과 동시에 전등이 깜빡였다.
“이, 이거 찍어야 해!”
정신없이 카메라를 꺼내들어 촬영을 시작하는 스트리머와 밖에 잠복하고 있던 무수한 수의 괴물들을 보고 좌절하는 사람들. 흐름이 꼬인 해류 마냥 요동치는 사람들 속에서 데아는 칸나니아만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태초가 능력을 어느 정도 잃었다니… 그러면 이야기가 다르지.”
깜빡, 전등이 꺼졌다가 다시 밝혀졌다. 아수라장 소음으로 인해 칸나니아의 말은 묻혀버렸다.
“그래. 여기은이 생각보다 때를 잘 잡은 걸 수도 있겠어.”
칸나니아는 크게 만족한 것 같았다. 태초가 능력을 예전만큼 못쓴다는 사실에. 어쩌면 자신이 지금의 태초를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착각에.
“당신은 이곳에서 죽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다른 이가 와서 당신의 뇌를 빼돌릴 거라는 생각은 접으십시오. 내가 먼저 당신의 머리를 열 거니까.”
“저 밖에 뭐야!”
“피해!! 저, 저것들 왜 얼굴이 다 붉은 거야!”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수의 괴물들. 그들의 얼굴은 전부 붉었다. 예전에 섬을 침입해서 해일을 일으켰던 그 거대한 괴물이 이번엔 한 마리가 아닌 수백 마리가 와있던 것이다.
깜빡!
그리고 완벽한 정전이 찾아왔다.
포위당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들이 정신없이 비명을 내질렀다. 당장 무기를 챙기고 맞서 싸워야 한다는 말이 어렴풋이 웅웅거리며 뭉개졌다.
데아는 자신의 멱살을 쥔 칸나니아의 손목을 잡으며 생각했다.
연극이 의미가 있나? 저 멀리 괴물들이 몰려들고 있는 상황 속에서?
아니, 의미는 없다. 의미가 있는 건 지금 눈앞에 방심한 적군이 있다는 거다.
철창 속의 괴물이 속삭였다. 그를 죽여. 어서. 어서! 머리가 너무 뜨거웠다.
그러나 어둠은 만인에게 평등하다. 데아는 칸나니아의 손목을 꽈악 비틀었다. 참을 필요가 있나? 인내의 의미가 있나? 칸나니아의 앞에서, 모두를 살육하려는 괴물들 앞에서… 인간성이 의미가 있나?
인간성을 지키고 죽음을 방조하다니. 그건 모순이었다.
“!!”
엄지에 힘을 주어 칸나니아의 동맥을 푹! 끊고, 그대로 손등을 할퀴어 피부를 찌이익 찢었다.
칸나니아의 몸이 주춤하는 사이, 데아는 역으로 손을 뻗어 칸나니아의 목을 쳤다.
“커흑!”
“어리석은 것.”
데아가 뇌까렸다.
어둠은 나의 안온한 휴식처가 될 것이다.
“이……!”
그리고 너희는 짐승의 아가리에 머리를 들이밀었다.
사람들이 공포에 질린 어둠 속, 칸나니아는 자신의 목을 움켜잡는 거친 악력을 느꼈다.
태초가 어둠을 연막 삼아 연극을 그만두었다. 그래, 그래야지…….
“너는 네가 어릴 적에도 그랬지.”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고, 달빛이 강당 안을 비추는 날의 새벽.
“너는… 의외로 뒷일을 생각 안 하고 일을 저지르는 경향이 있었어.”
그 달빛에 비치는 백발. 찬란하게 흩어지는 투명한 안광. 샤샤.
“네가 무슨 자신감으로 이곳에 홀로 온 건지는 몰라도…….”
쾅! 데아의 귀에 큰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그건 착각이었다.
아니. 착각이 아니었다.
고요한 사위, 이상한 분위기를 읽었는지 데아를 쳐다보며 굳어버린 수많은 사람들.
쾅! 데아는 또 한 번 큰 소리를 들었다. 그건 내부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철창 속의 괴물. 그 괴물이 굴러 들어온 사냥감을 보고 기뻐 철창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걸 깨닫자 피가 뇌에 몰렸다. 머리에 끓는 물을 부은 느낌이다. 세상이 붉게 물들었다.
“너는 여전히 이다지도 둔하구나, 칸나니아.”
마음껏 살육해도 괜찮은 존재들. 그것들을 떼로 몰고 오다니. 데아는 즐거워 웃었다.
데아의 극적인 표정 변화에 칸나니아의 눈이 움찔 굳었다. 바보 같은 인어. 머저리 같은 칸나니아. 이토록 성급한 내 권속.
사실 어느 순간부터 데아는 깨닫고 있었다. 대부분의 인어들은 데아의 능력이 봉인되었다고 착각을 했지만, 그건 단지 철창 안의 괴물을 견제하기 위한 자기방어였을 뿐이다.
연구실 안의 찰나. 손을 꿰뚫고 지나간 건 과연 무엇이었을까?
하지만 그 덕분에 철창은 이미 충분히 우그러졌다. 수천 년간 다정한 주군의 껍질을 뒤집어쓴 인어가 파랗게 이빨을 내보였다.
최초의 인어는 바다가 되었다.
바다는 평화롭고 동시에 흉포하다.
수많은 사람들을 삼키고 천연덕스럽게 입을 닦는 검은 파도. 데아는 그것을 막지 않았다.
“그걸 간과했던 넌 결국 실패할 거야.”
데아의 눈이 붉게 물들었다.
“정말 그럴 거란다.”
[심해의 눈(A): 당신은 승리할 것입니다.]
갑작스러운 능력 개방에 몸이 거부 반응을 일으켰지만 무시했다.
격통이 찾아오고 두통이 밀려들어왔지만 지금은 아무대로 좋았다.
“태초!”
퍽! 데아는 칸나니아를 밀치고 등을 돌렸다. 이미 몇 사람들은 맞서 싸우기 위해 밖에 나가 있었다.
데아는 비를 전신으로 맞으며 손을 뻗었다. 저 멀리 애들 장난 같은 해일이 몰려들고 있었다.
“경배야?”
오랫동안 웅크렸던 바다의 창이 고개를 들었다.
[바다의 경배(N): 머리끝까지 물에 젖은 당신의 손에 들린 것은 강력한 죽음입니다.]
회오리치며 창이 몰려들었다. 뒤에서 누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뒤돌아보지 않았다.
태초는 무언가를 먹지 않으면 결국 퇴화한다. 수없이 많은 시간 동안 식인을 저지르지 않아 얇아진 인간성 아래로, 괴물이 본성이 튀어나왔다.
전장. 마음껏 인간성을 버려도 되는 장소.
저 멀리 이성이 이래선 안 된다고, 지금 같은 상황이 지속되면 결국 넌 주군이 아닌 괴물이 될 거라고 경고를 날렸지만 데아는 무시했다.
철창 안의 괴물이 환호했다.
“한… 샤샤!”
태초의 능력은 유려하다. 그가 뻗는 손길 아래로 무수한 바다의 시간이 흐르고, 자연은 스스로의 뜻을 꺾고 사해의 신에게 주도권을 양도한다. 데아는 가장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는 훌쩍 뛰어내렸다.
사냥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