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4화
“누군가 찾아왔어요!”
그리고 바로 소란이 들려왔다.
“아, 들어가게 해주세요!! 여러분, 여기서 분명 냄새가 나거든요? 혹시 알리고 싶으신 이슈 있으세요?”
“뭐야, 이 사람은! 어떻게 들어온 거야?”
“어선을 몰래 타고 왔나 봐요.”
“어? 저 사람 어디서 많이 봤는데? 어디더라…….”
데아는 소란의 원인을 바라보았다. 머리카락을 은색으로 염색한 훤칠한 남자가 작은 캠코더를 쥐고 섬 안으로 들어오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서 많이 본…….
“저 구독자 40만 명이 넘어요!! 촬영에 협조 좀 해주세요!”
“아.”
5년 전 여기은에게 납치를 당할 무렵, 여례아의 주작방송에 협력했던 스트리머였다.
조회 수가 나올 것 같은 곳에는 어디든 간다는 불굴의 미튜버. 하지만 콧대가 높아 당시 여례아 헌터들 사이에서 원성이 자자했던 그 미튜버!
‘저자가 왜 여길 왔지?’
하지만 그러던 찰나, 스트리머의 눈이 섬광처럼 데아에게 못 박혔다.
“어……?”
그는 잠시 얼빠진 소리를 내더니 우수한 세공사가 닦은 다이아처럼 눈을 거침없이 빛냈다.
“저, 저기요! 저기, 헌터님! 샤샤 헌터 맞죠!! 와!! 그래, 역시 있을 줄 알았다니까!!”
“뭐야…….”
“죄송합니다, 헌터님. 저희가 몰아낼 테니까…….”
“뭐 하고 있어! 어서 끌어내!”
헌터들이 우르르 달려들자 스트리머는 가녀린 비명 소리를 내며 멀어졌다. 그렇게 일단락되는 듯 했으나 그의 집념은 참으로 어마어마했다.
◈ ◈ ◈
“왜 저기에… 사람이 있지?”
내 눈이 잘못됐나?
모두가 모이는 강당의 지붕 위, 내려오고 싶어 훌쩍이는 사람이 있었다. 그 스트리머였다.
보아하니 자신을 내몰려는 사람들을 피해 올라간 것 같았다. 그러나 강당은 내려오기엔 지나치게 높았고…….
“사, 살려 주세요! 저 혼자서 못 내려가요……!”
훌쩍, 어느 순간부터 강당 근처로 구경꾼이 몰렸다.
“어떻게 올라간 거야?”
“잘 됐네요. 영원히 저 위에 격리시켜 버려요.”
“혹시 사다리 이 근처에 있어요? 다 치워버립시다.”
스트리머가 힝힝거리며 울기 시작했다. 보아하니 카메라의 배터리도 다 닳은 것 같았다.
“어떻게 할까요?”
아직 변환석을 착용하지 못한 데아에게 헌터들이 옹기종기 몰려들었다. 데아는 눈을 질끈 감았다.
저 사람은 골칫덩어리다. 기자는 아니지만 어느 면에서는 기자보다 더 막대한 파급력을 가진 사람. 카메라와 편집 하나로 골 때리는 적군이 될 수도, 든든한 아군이 될 수도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저 사람을 과연… 써도 될까?’
툭, 투둑.
“어? 비가 오는데요?”
“전 이만 돌아가 봐야겠습니다.”
“예?”
데아는 인벤토리에서 변환석을 몰래 꺼내며 등을 돌렸다.
다시 설한지로 돌아갈 시간이다.
“그래도 저 사람의 모든 통신기기를 다 뺏… 아, 하긴 안 뺏어도 이 섬 안에서는 쓸모가 없으려나.”
쯧, 데아는 대충 손짓했다. 혹시 쓸 수도 있는 패는 아껴 두는 게 좋았다.
“일단 따뜻한 내부로 들여보내세요. 포세이돈에서 일어나는 일을 폭로해 줄 고마운 동료가 될 수도 있으니까.”
◈ ◈ ◈
“헉, 허억… 헉,”
포세이돈 14층 공략 성공 메시지가 뜬 날, 공교롭게도 14층에서 아직 빠져나가지 못한 헌터가 있었다.
바로 하영주였다.
“이게 무슨… 뭐야.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생각할 거리가 많아 집무실에서 가비와 함께 술을 마시던 참이었다.
가비는 남동생 가윗의 혼수상태 이후, 이상한 사상에 빠지기 시작했다. 인어에 대한 수많은 미신들을 정설처럼 믿었고, 그들을 원망함과 동시에 탐닉했다.
“그거 아세요? 부길드장님… 상급 인어요. 그러니까 진짜 사람의 형체를 갖춘 그런 인어들 있잖아요. 그 인어의 고기는 죽어 가던 사람도 살려 준대요.”
그리고 가비는 기이하게 웃었다.
“죽어 가는 사람도요……. 그 인어의 고기만 있으면, 상급 인어의 고기만 있으면…….”
헛소리였다.
그러나 가비는 좀처럼 깨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 남동생에게 상급 인어의 고기만 먹이면 기적이 일어날 거라고 믿었고, 술김을 빌려 하영주을 부추겼다.
“부길드장님. 같이 14층에 들어갈래요? 몰래요. 보니까 보안도 영 꽝인 것 같던데…….”
그리고 하영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이 술에 취한 탓이라 생각하며.
하지만 그렇게 음주 운전을 하며 접근한 포세이돈. 차 안에서 가비는 잠들어 버렸고, 하영주는 혀를 끌끌 차며 홀로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보았다. 몰래 포세이돈에 접근하는 한 무리의 괴한들을.
‘뭐야?’
하영주는 뭐에 홀린 듯이 행동했다. 본능적으로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알았다고, 그들의 뒤를 밟아 닫혀 가는 14층 게이트 안에 마지막으로 뛰어서 몸을 던졌다.
그리고 숙취로 인해 발을 헛디뎠고.
쾅!!
어딜 잘못 부딪혔는지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하영주가 눈을 뜬 건 꽤나 시간이 흐른 뒤였다.
“여기는, 어디… 아. 14층이구나.”
한참을 걸으니 드넓은 공터에 낭자한 푸른 피가 보였다. 젠장, 게이트를 빠르게 클리어하는 세력이 또 있었다니. 잡아서 막아야 하는데 이미 놓쳤나?
하영주는 빠르게 뛰었다.
“헉, 하아, 하지만 탈출구는 없어……. 보스 인어는 아직 못 잡은 거야.”
그렇다면 늦지 않았다.
그때.
“어……?”
작은 계곡 근처에서 푸하―!! 하급 인어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뭐어야……? 어어……? 안 간 인간이 남아 있었어……?
인어의 말을 듣지 못하는 하영주는 이 인어가 MBL이 만들어낸 가짜 인어가 아닌 진짜 인어임을 단박에 알아보았다.
가짜 인어와 다르게 인간에게 공격을 하지 않아 온순하다는 인어.
5년 전과 다르게… 온순해졌다는 인어.
―무리에서… 낙오됐어어?
‘온순하다면 죽이기가 쉽지.’
―따돌리는 건 안 되는데에…….
인어는 죽여야 한다.
어차피 포세이돈에서 충분한 부산물을 얻은 인간 헌터들이 제국을 침략하면 다 죽게 되겠지만, 한 마리쯤은 미리 죽여도 좋으니까.
그렇게 주먹을 쥔 순간이었다.
―너 등에 타아……! 타!
“……?”
등을 왜 보이는 거지?
―뭐 하고 있어! 타! 지금 따라가면 안 늦어써…….
인어는 마지 자신의 등에 타라는 듯이 꼬리를 흔들었다. 하영주는 직감했다.
“여기 들어온 그 괴한들이… 다 사라진 이유와 관련이 있나?”
이 하급 인어가 다 그들을 데려갔나?
어디로?
정신을 차려 보니 하영주는 하급 인어의 등에 타서 바다를 넘고 있었다.
분홍색으로 물드는 거대한 원형의 하늘. 사람을 압도하는 자연의 경광에 잠시도 시선을 빼앗긴 적 없다고 하면 거짓이다.
“저기는……?”
그러자 저 멀리 하얀 건물의 형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하영주의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왕궁?”
인어 국인가? 정말로? 말로만 듣던 그 곳을 이렇게 간다고?
하급 인어가 이상하다는 듯이 돌아봤지만 하영주는 애써 표정 관리를 했다.
아냐, 차라리 잘됐어. 그래… 어쩌면 여기서 태초를 볼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더 운이 좋으면 죽일 수도 있겠지. 설사 태초가 아니더라도 여긴 상급 인어가 우글우글하다고 들었으니까…….
“상급 인어의 고기는 죽어 가던 사람도 살려 준대요.”
이건 기회다.
―다 왔어―!
하영주는 자신을 데려다준 하급 인어의 목을 비틀어 죽이려고 했다.
갑작스럽게 종이 울리고 다른 인어들이 한 무더기 나오지 않았다면 분명 죽였을 것이다.
데엥―!!
뎅―!
데엥―!
연달아 울리는 타종.
―어어! 시간 늦었다!
―이봐, 비켜!
―뭐야? 이 인어는. 저리 안 꺼져?
퍼억!
종이 울리자마자 물 밖으로 불쑥불쑥 나와 인간의 다리로 뛰어가는 인어들은 하영주를 의심스럽게 한 번 보기만 했을 뿐 큰 관심을 주지 않았다.
하영주는 가장 먼저 입을 막았다.
‘설마 나를 인어로 착각한 건가?’
하지만 대부분의 인어들은 성대로 말하지 않는다. 그러니 직접 말을 하는 순간 의심받을 것이다.
하영주는 너클을 제외한 모든 무기를 인벤토리 안으로 집어넣고, 자연스럽게 그들 사이에 섞였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순백색의 기둥이 하늘을 받치고 선 거대한 신전이었다.
‘설마…….’
인어 제국 안에는 사해의 신전이 있다.
‘이곳이 태초의 신전인가?’
데엥―!
데엥―!
그때 또 종이 울렸다. 인어들이 기대 어린 얼굴로 위를 쳐다보았다. 뭐지?
―오신다!
―사제님!
드높은 단상 위에는 하얀 베일을 전신에 두른 작은 체구의 인어가 있었다.
눈부신 보석이 비산하듯 흩뿌려졌다. 하영주는 그 인영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와아아아―!!
―사제님!
인어의 말을 듣지 못하는 하영주는 바로 오해를 했다.
‘설마 저것이… 태초?’
얼굴도, 비늘의 색도 드러나지 않은 인영. 그 인영은 잠시 모습을 비추다가 이내 훌쩍 사라졌다.
‘잠……!’
따라 가야 해. 가서…….
하영주의 목울대가 꿀꺽 넘어갔다.
가서 어쩌려고? 상대는 태초다. 단신으로 잡을 수야 있나?
아냐. 불가능해. 하지만 기습이라면…….
저 인영이 태초인지 아닌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하영주는 자신의 직감을 믿기로 했다.
‘잠입하자.’
하영주는 고개를 숙여 얼굴을 가리고는 신전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 몸을 숨겼다.
◈ ◈ ◈
“14층 공략 메시지가 떴는데 정보가 없다뇨?”
급한 신호를 받고 출동한 포세이돈. 14층 공략 메시지가 떴지만 나오는 헌터들은 없었다. 단 한 명도.
여기은은 이것과 비슷한 일이 벌어졌던 때를 알았다.
샤샤가 던전 안을 들어갔을 때. 단번에 13층까지 공략했을 때도 괴한들은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설마 이번에도…….”
지난날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상급 헌터들만 추려내 감시를 세웠지만 헛수고였다.
사람들과 언론은 어떻게 14층이 공략될 수 있었는지 궁금해 했지만 정작 헌터계 쪽에서는 아무런 답변을 해줄 수 없었다.
“길드장님, 전화가…….”
“닥쳐!”
챙!!
가족들의 비웃음은 이제 지긋지긋했다.
기적과도 같은 경영 실력을 가진 언니에게 밀려 만년 2등으로 살았다.
여기은이 손톱을 빠드득 깨물었다. 뭐라도 성과를 보여 줘야 할 시점에서 이런 일이라니…….
“잠시만.”
여기은은 정소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정소진. 16층의 개발 단계는?”
―…죄송합니다.
클리어 속도가 예상보다 1년은 더 빠르다. 지금 이 상태에서 16층을 공개해 봤자 세간의 의심만 받을 것이다. 여기은은 쾅! 휴대폰을 던졌다. 액정이 깨지자 덜덜 떨리는 손으로 서랍에서 새로운 휴대폰을 꺼내 개통시켰다.
“제기랄, 제기랄, 제기랄…….”
“길드장님. 전화가…….”
“내가 분명 닥치라고 했지!”
“칸나니아 님이십니다.”
뚝, 여기은의 눈이 비서가 건네주는 휴대폰에 고정되었다. 그리고 탁! 채어 갔다.
“네.”
여기은은 길게 설명하지 않았다.
소란스럽게 패악을 부린 것이 거짓말이었다는 듯, 조용해지더니 이내 입가를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여기은이 희미하게 웃었다.
“칸나니아 님도 저를 못미더워하시는 건 아니겠죠?”
분위기가 변했다. 비서는 불안해하며 조심스럽게 뒷걸음질 쳤다.
“가만히 있으라니……. 어떻게 그런, 여기서 가만히 있으면 어떻게 일을 해결합니까? 그러지 말고 한 번만 기회를 주십시오. 이제까지 제가 한 일은 전부 잘 되었지 않습니까.”
가시 돋친 말이 퍼져 나갔다.
여기은은 휴대폰을 부술 듯이 콱 움켜잡았다.
“똑똑히 보십시오. 제가 옳았다는 걸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휴대폰 스피커 너머에서 뭐라 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여기은은 뚝, 통화를 종료했다.
“14층을 공략한 자들이 15층을 공략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나?”
비서는 덜덜 떨며 고개를 저었다.
“아, 아뇨.”
“그렇지?”
여기은의 눈이 번들거렸다.
“그러면 그 전에 확실하게 막으면 되는 거야. 아무리 그쪽에 샤샤가 있다고 해도, 그 수족이 되어 줄 길드 통합 팀 헌터들을 다 죽이면 자기가 뭘 어떻게 하겠어?”
“네?”
“설사 그 배후에 태초가 있다고 해도 인어들은 이곳에서 입지가 없어. 그러니까 그 누구보다 빠르게… 습격하면 돼.”
여기은은 다시 MBL로 전화를 걸었다. 묘하게 불만이 섞이고 지친 목소리의 정소진이 받았다.
“방금 내가 한 말을 잘 들어. 그대로 따르도록 해.”
―섬 습격이라니……. 하지만 그 방법은 예전에도 한 번 쓰지 않았나요?
“그건 정면 돌파였지. 하지만 지금 계획하는 건 기습이야. 오늘 새벽에 일을 진행해.
그들이 15층을 공략하기 전에 우리가 더 먼저 선수를 쳐야 해.
“그리고 그곳에는 나 또한 갈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