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식인인어는 죽어야 한다-202화 (202/223)

※ 202화

“인어다!”

“조심해! 분명 가짜 인어일 테니까!”

14층의 환경은 안개가 낀 넓은 들판이었다. 비가 왔는지 군데군데 깊게 파인 웅덩이가 있고, 습한 냄새가 지독한 질척한 들판.

“여기 다 진흙이야!”

“조심해. 빠지면 안 돼.”

데아는 이번에도 버프 능력을 썼다. 티는 나지 않게, 그러나 낙오되는 사람은 없을 정도로만.

“우선 여기서 최대한 버텨! 샤샤 헌터가 올 수도 있으니까!”

“그 전에 신호탄부터 터뜨려! 위치를 알리게!”

피유우우우우우―!

붉은 신호탄이 올라갔다.

“인어들이 더 몰려드는 것 같은데, 뭐야!”

“조심해! 공격해! 가짜 인어는 죽여도 돼!”

“이것 봐!”

그때 누군가 사냥한 인어를 들어올렸다.

“이 꼬리에 이거 뭐야!”

꼬리에는 선명하게 찍혀 있는 마크가 있었다.

[MBL]

“정말이었어…….”

“조금만 더 있었으면 마크 지워졌을걸. 지금 발견해서 다행이야. 누구 휴대폰 있어?”

던전 안에서도 작동이 되는 휴대폰은 귀했다.

“나 있어!”

“좋았어, 찍어서 증거를 남기자.”

찰칵찰칵!

데아가 최소한의 힐만 하며 주변을 살피던 와중이었다.

어지럽게 싸움이 벌어지는 들판. 자, 이제 여기서 빠져나가야 하는데……. 마침 뒤에 울창한 숲이 보였다. 저기로 빠지면 되겠군.

“세연아. 나 다녀올게.”

“응.”

데아가 후다닥 몰래 사라진 후, 이상하게 인어의 수는 더 불어났다.

“젠장, 14층치고는 강한 것 같지는 않은데… 수가 지독하게 많네.”

“위험해요. 힘이 더 빠지고 있어서…….”

“샤샤 헌터는 언제 오는 거지?”

사람들은 애타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사람의 그림자는 없었다.

“괜찮아. 곧 오실 거야. 신호탄을 더 피워!”

“히야압!!”

챙! 계속해서 인어를 사냥하는 그때였다. 땅이 흔들리며, 들판이 쩌적 갈라졌다.

“이게 무슨……!”

그 안에서 기어 올라오는 인어들은 인어라기보다는 악귀 같았다. 온몸에 묻은 진흙이 번들거렸다.

“다 처리해! 공격해!”

“수가 너무 많아!!”

인어의 수는 어림잡아도 100마리 이상. 헌터들이 피를 줄줄 흘리는 상처 부위를 움켜잡고 뒷걸음질 쳤다. 그리고 주춤거리며 서로의 등을 맞댔을 때 깨달았다.

“포위당했어……!”

어느새 수백 마리의 인어들이 그들을 빙 둘러싸고 있었다.

사람들의 이마에서 땀이 뚝뚝 떨어졌다.

“조심, 조심해.”

언제, 언제……. 혼자 중얼거리는 배협과 숲 쪽을 아슬하게 바라보는 세연, 그리고 경계를 늦추지 않는 연가을의 심장이 크게 뛰었다.

인어들이 사냥하기 전의 맹수처럼 몸을 둥글게 말았다. 벌어진 입 안에는 날카로운 이빨이 번뜩였다.

곧 맹수처럼 뛰어올라 자신들을 물어뜯을 것이다. 모두가 무기를 쥔 손에 힘을 준 순간이었다.

두두두두두……. 다시금 땅이 진동했다. 강한 진동이 울려 퍼지듯, 바닥의 자갈이며 돌멩이가 탁, 탁 튀었다.

“뭐야……?”

“지진인가?”

“잠깐!! 저기 봐!”

자욱한 안개 사이로 누군가의 인영이 보였다.

“샤샤? 샤샤 헌터인가?”

“드디어 오셨나 봐!”

누군가는 손을 들어 휘둘렀다. 그러자 파도치는 물결처럼 돌이 일시에 다닥다닥 붙어 거대한 파동을 그리더니 이내 인어들에게 가 박혔다.

순식간이었다.

“!!”

헌터들은 허겁지겁 입을 틀어막았다. 단번에 심장을 뚫려 즉사한 인어들이 털썩 쓰러지고, 습하고 푸르렀던 들판은 푸른 피가 낭자한 살육의 현장이 되었다.

뼈가 갈리고 내장이 뚫리는 소리. 눈도 감지 못하고 절명한 수백 구의 시체들.

헌터들은 직감했다. 이건 샤샤가 아니다. 이건 샤샤 헌터의 방식이 아니다.

“누구지?”

그때 누군가가 물었다. 2미터가 넘는 장신의 거구. 낮게 깔린 음성. 뱀처럼 번뜩이는 눈과 짧은 머리카락. 어두운 피부.

“누구냐고 물었다.”

짙은 해저를 삼킨 듯한 목소리. 고요한 심연이 움직이는 것 같은 발걸음. 낯선 인간들을 발견하고 두두둑 돋아나는 얼굴의 은색 비늘.

낯선이의 흰자가 순식간에 검어졌다. 그 모습이 심히 공포스러워 헌터들은 저도 모르게 떨었다.

‘이, 인어다!’

히끅, 누군가가 딸꾹질을 했다. 심장이 거칠게 뛰었다. 엄청난 위압감에 헌터들이 덜덜 떠는 손으로 낯선이를 향해 무기를 겨누려던 때였다.

휘이이이―!

우연히 바람이 불고 안개가 흐려졌다. 그러자 누군가의 얼굴이 공개되었다.

“주군은 여기 안 계시는 건가?”

헤타는 어리둥절해하며 인간들을 바라보았다.

◈          ◈          ◈

“이로써 아홉.”

챙캉!

돌아온 세상에서 나무타기의 선수가 된 데아는 무작정 위로 올라가 포세이돈의 카메라를 부쉈다.

“열!”

챙그랑!!

“이젠 없지?”

곳곳에 설치된 카메라들이 렌즈를 번뜩이며 바라보는 꼴을 두고 보고만 있을 수 없어 다 찾아내 부쉈더니 시간이 꽤나 흘러 있었다.

뭐, 아직까지 비명 소리가 들리지 않은 걸 보아하니 다들 무사한 것 같지만…….

“이제 슬슬 가야지”

탁!

훌쩍 대지로 내려온 데아는 헌터들이 있는 장소를 향했다.

변환석 목걸이를 벗자 어느새 조금 긴 백발이 흘러내렸다.

“그냥 나가면 되겠지.”

그런데, 저 멀리 헌터들의 분위기가 이상했다. 데아는 본능처럼 나무 뒤에 숨었다.

누구지? 저 안개를 뚫고도 보이는 2미터의 거구는?

“쟤… 왜 저기 있냐.”

누구긴 누구겠어. 데아는 단박에 알아보았다.

“그래…….”

기이한 세상의 방랑자. 방랑자처럼 싸돌아다니는 권속이 누구인가 싶었는데……. 역시나 너구나, 헤타.

“포세이돈은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니고, 우리는 이 오해가 바로잡히길 원한다.”

“정말로 포세이돈이 싫, 싫습니까?”

“이름은 뭔가요!”

“이름은 헤타. 그리고 당연히 싫어한다. 그건 아주 번거롭고 이기적인 인간들의 산물로, 주변 생태계를 무너뜨리는 주범이니까.”

“이것 봐! 정말로 인어들은 포세이돈을 싫어해!”

“호, 혹시 본인뿐만 아니라 다른 인어들도 다… 포세이돈을 싫어하는 거 맞죠?”

“당연한 말을 하는군. 누군가 우리의 흉내를 내고 있는데 좋아할 인어가 어디 있단 말인가?”

“다행이다……!”

“인어 제국은 실존하나요?”

“실존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분의 의지를 받들어 그 인공 ‘창’을 적대하지.”

“의지요? 누구의 의지…….”

헤타가 말 한마디를 하면 90명의 헌터들은 들떠 수십 가지 질문을 던졌다.

“이 모든 것은 태초의 뜻대로.”

“태초라니!! 그 사해의 신!”

“신? 너희에게도 주군이 신인가?”

“아, 아니, 그건 아닌데, 그렇게 불려요…….”

“우리의 제국에는 신전도 있다. 언젠가 봤으면 좋겠군.”

그리고 헤타는 슬며시 가슴을 폈다. 내심 자랑스러워하는 기색이 만연했다.

‘정말 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심지어 이번 일은 헤타에게 전하지 않은 상태였다. 이상한 말을 하지는 않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샤샤가 이렇게 늦게 나오면 안 되는데…….

“내가 들었는데, 이렇게 말을 할 줄 아는 인어는 엄청나게 상위 인어라고 들었어. 그런 인어가 지금 우리를 두둔한 거라고!”

“그래. 역시 인어 제국이 답이었던 거야. 그 ‘진짜 인어’들은 우리를 도와줄 유일한 자들이야……!”

“하, 하지만, 그래도 인어는 꺼림칙해서…….”

“여기까지 와서 꺼림칙하다니. 나는 우리를 죽이려고 하는 그 사람들이 더 꺼림칙해!”

아 모르겠다.

데아는 무작정 밖으로 나갔다.

“다들 여기 있었네요.”

연기 on.

안개 사이로 나타난 천연덕스러운 데아의 등장에 모두의 이목이 쏠렸다.

“우와!!”

“어, 어!! 샤샤 헌터!!”

사람들은 바로 반색했다.

“다들 뵀던 얼굴들이네요.”

“기억하셔! 우리를!”

데아는 거칠게 흔들리는 헤타의 눈동자를 캐치했다. 분위기 읽고 이상한 말 하지―

“주ㄱ……”

말라고 하려고 했는데 이미 늦었다. 데아는 무작정 헤타에게 턱! 어깨동무를 걸었다. 헤타가 혀를 씹고 헌터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진짜 오랜만이다. 그치.”

키가 어정쩡해 어깨동무보다는 기이한 자세의 매달리기가 됐지만, 데아는 까치발을 들어 가까스로 되도 않는 키를 맞췄다. 헤타가 슬며시 무릎을 굽혀 줬다는 건 나중에 안 사실이다.

우리 친해요. 이만큼이나.

“안녕하세요. 여러분 권도언 길드장님에게 소식 들었어요. 그나저나 제가 말했던가요? 인간에게 이렇게 우호적인 인어들도 있다고.”

“예?”

‘주군이라 부르지 마라.’

헤타가 조심스럽게 입을 다물자 데아는 미안함을 담아 등을 두드리고는 사람들을 이끌었다. 안개가 자욱한 곳에서 90명이 넘는 사람들 무리. 그 안에서 사람 한 명 사라진 건 대부분 모를 것이다.

“다들 인어 제국으로 우선 가죠.”

“어? 저, 정말로요?”

그때 배협이 후다닥 달려왔다.

“저 할 말이 있습니다.”

“네.”

배협은 슬며시 입을 가리며 속삭였다.

“알다시피 시간이 없습니다. 인어의 협력을 구했으니 우리는 돌아가야 해요.”

“어떻게 돌아갈 건데요.”

“그야 왔던 대로…….”

“지금 밖으로 나가면 그대로 포위예요. 그리고 설사 협력을 다 구해 놨어도 아군이 많은 인어 제국까지 가는 길 정도는 알아 놔야 편해요. 배협 길드장님. 15층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요. 이건 필요한 절차예요.”

데아는 차근차근 설득했다. 사실이었으니까.

“제왕 피파글랜은 창, 그러니까 게이트를 만들 수 있어요. 미리 언질을 주었으니 그 게이트를 타고 한 번에 섬으로 넘어가면 훨씬 안전하고요.”

“아…….”

“그리고 지금도 솔직히…….”

데아와 배협은 90명의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인어와 협력을 하는 걸 납득은 했어도 여전히 반신반의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저들에게 확신을 주기 위해서라도 제국에 가는 건 필요해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배협은 물러섰다. 그리고 헤타가 다가왔다.

“왜 직접 창을 여시지 않는 겁니까?”

“…….”

이유는 당연했다. 창이 열리지 않았으니까. 연구소에서 따끔한 감각이 손을 스친 이후 지속되어 왔던 이상 현상이었다.

데아는 남몰래 창을 열었다가 한 번은 이상한 사막에서, 또 다른 한 번은 초면의 하늘에 발을 찍고 왔다. 미친 듯이 몰려드는 두통은 덤이었고.

그러한 과정을 거치자 데아는 단념했다. 창은 이제 나에게 위험하다. 당분간 쓰지 않는 것이 좋겠어.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헤타에게 말해 괜한 걱정을 살 필요는 없지.

“그냥. 요즘 너무 피곤해서.”

“아하…….”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아가 이 작전에서 빠지지 못하는 이유. 배신자를 처단하고 제국을 지키고 싶었으니까. 최소한의 희생으로 많은 것을 구하고 싶었으니까. 자신에겐 병기의 모든 것을 없앨 의무가 있으니까.

태초인 본인이 하지 못한다면, 그 누구도 하지 못하니까.

“어떻게 하실 겁니까.”

“뭘.”

뒤를 돌아보니 사람들은 이미 지쳐 비틀거리고 있었다.

“제국은 한참 멀었는데…….”

그래서 데아는 꼼수를 썼다.

“뱃멀미하시는 분?”

◈          ◈          ◈

“저, 정말 인어들이 우리를… 도와주고 있다니……!”

“멀미 있는 사람은 눈 뜨지 마!!”

“우워억, 으엑,”

―악! 이, 인간이 내 머리에 토했어……!

―저런…….

―저런…….

―저러어언…….

데아는 가장 가까운 바다로 가 하급 인어를 대량으로 불렀다. 마치 이 상황을 예견하고 준비한 것처럼 착착 나타난 하급 인어는 헌터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데아는 저 멀리 작게 보이는 나무를 향해 손짓했다.

“여러분. 저 나무 보이세요?”

태초의 고목. 제국과 함께 지상 위로 떠오른 성지.

“네, 네! 와… 정말 거대한 나무네요. 가지 쪽만 조금 보여요!”

“길을 잃었다면 무작정 저곳으로 가면 됩니다. 저 나무가 있는 곳으로 갈 수 있는 건 태초와 해룡… 그 둘 뿐이지만, 근처에는 인간들에게 우호적인 인어들이 많거든요. 급할 때는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예요.”

“아하, 네!”

그렇게 인어들을 타고 건너 간지 몇 시간. 노을이 졌다.

분홍색으로 해가 지는 기다란 수평선. 그 아름다운 광경을 헌터들은 홀린 듯이 지켜보았다. 그러던 와중, 저 멀리 왕궁의 꼭대기가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파랗게 날리는 깃발 또한.

“우와, 깃발 봐! 옆에 저건 장식인가? 멋지다……!”

‘깃발 장식……?’

자세히 보니 저건 깃발 장식이 아니라 깃대를 붙잡고 바람을 즐기는 해파리 형태의 인어였다. 데아는 그를 애써 모른 척했다.

“주군. 다 왔습니다.”

“주군이라 부르지 말래도.”

많은 수의 인간들이 한 번에 오면 제국의 주민들이 패닉에 빠질 수 있었기에 데아는 그들을 먼 뒤쪽으로 인도했다.

“후, 이제 이곳의 제왕, 피파글랜 폐하를 알현하기 위해 왕궁을 방문해야 합니다.”

데아의 말에 헤타가 귀를 의심했다.

“저와 같이 가실 분은 없겠죠?”

헌터들은 데아의 시선을 피했다. 데아는 예상했다는 듯이 애석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어쩔 수 없어요. 이 중에 몇 명은 저와 함께 알현실로 가야 하니까요. 저 다섯 명이 좋겠군요. 따라오시겠어요?”

“저, 저희들이요?”

데아가 지목한 사람들은 가장 입이 가볍고, 겁이 많은 초면의 헌터들이었다. 인어의 관계가 우호적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 흥분해 마음껏 입을 놀릴 사람들.

“하, 하지만… 왕궁에 사해의 신이 있진 않겠죠?”

“사해의 신 태초가 그곳에 있으면 어떡하려고요!”

이것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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