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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식인인어는 죽어야 한다-200화 (200/223)

※ 200화

초승달이 비추는 해변은 공허하다.

데아는 하얀 입김을 내뱉는 세연을 지켜보았다. 겨울이 오는 모양이지.

무서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 할 말이 있었다. 세연은 망설이지 않았다.

“그, 그 이후야.”

세연은 어렵게 입술을 열었다. 두 눈이 가늘게 떨렸다.

“그래도 나는.”

데아는 인내심 있게 다음 말을 기다렸다.

“아마, 다, 다… 알고 있을 거야.”

덜덜 떨면서도 끝까지 말을 하는 이유. 그건 데아가 자신을 해치지 않으리란 직감이 있어서였다.

“그래. 그렇구나.”

또 정적.

“말해 줘서 고마워. 그런데 괜찮아?”

물 밖으로 나온 직후의 대화를 들었다면, 그로 인해 나의 모든 것을 추론했다면 넌 지금 인어와 같이 있는 거야.

“이 밤에, 아무도 없는 곳에서 나랑 단둘이 같이 있는 게 괜찮아?”

세연은 말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내 그는 인상을 찌푸렸다.

“괜찮으니까, 이번 불침번 같이 나온 거야……!”

“…오.”

데아는 예상했다는 듯이 웃었다.

“너는 인어가 안 싫어?”

“그렇게 안 싫어.”

“그런데 포세이돈에는 왜 들어왔어?”

세연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엄마가 돈 벌으라고 해서 들어왔어.”

순식간에 데아는 죄인이 된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럼 나를 도와줄 수 있어?”

“한지야, 너도 알잖아. 지금 여기 있는 사람들이 누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지.”

세연은 눈을 피하지 않았다.

“우리가 너한테 도움을 받을 위치인데, 그걸 왜 네가 물어?”

“아니 나도 딱히 좋은 상황은 아니거든.”

그러나 말과 다르게 데아는 만족스러워 보였다.

세연은 달밤 아래, 파란 새벽 공기에 뒤덮인 데아를 멍하니 응시했다.

“그런데 말을 들으니까 또 좋네…….”

철썩!

파도가 쳤다. 세연과 데아는 불현듯 고개를 돌렸다. 몇 미터 떨어진 곳, 누군가 서있었다.

“누구세요!”

“잠시만.”

곱슬거리는 녹색 머리카락을 가진, 그리고 비상 붕대로 눈을 칭칭 감은 키가 큰 남자였다.

기이한 모습이었지만 데아는 놀라지 않았다.

“조교님?”

“자잔?”

아, 아는 사이인 건가?

세연은 망설이지 않고 남자에게 다가가는 데아를 놀란 눈으로 보았다.

“뭐야, 너 왜 여기까지 나와 있어.”

―배고파서…….

“…….”

데아는 그제야 자잔의 손에 들린 작은 물고기를 보았다.

펄떡! 펄떡!

“배고파서 이걸 잡은 거야? 이걸? 여기서? 너, 너, 식사 들어갔잖아.”

―입에 안 맞아서…….

자잔은 풀죽은 강아지 마냥 기운이 없었다.

―그리고 양이 너무 적어서, 아무도 없을 때 가끔 나와서 사냥했어.

그러니까 여기서 종종 나와서 작은 물고기나 조개를 잡으며 허기를 채우다가 저 멀리서 내가 보이니까 서둘러 칭칭 눈에 붕대를 감았다는 말이었다.

데아는 마른세수를 했다. 권속의 권속을 이렇게 배고프게 만든 죄. 모두 내 탓이다.

“미안하다…….”

―아냐. 샤샤. 이거 먹을래?

“마음만 받을게.”

자잔은 우걱우걱 물고기를 씹어 먹었다. 세연이 기겁하든 말든 뼈를 투, 뱉어 낸 자잔은 또 다시 파도에 들어갔다.

“잠시만.”

그리고 그 순간 데아는 완전히 결심했다.

“자잔. 피파글랜에게 가.”

혹시 모를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 그를 잡아 둘 수는 없었다.

―…내가 도움이 안 됐어?

“아니 됐어. 네 덕분에 이곳에 내가 왔잖아.”

자잔은 고민했다.

“그리고 피파글랜은 의사기도 해. 분명 네 눈의 문제를 잘 봐줄 수 있을 거야. 아, 진작 이럴걸.”

―샤샤. 내가 짐이 된 건 아니지?

“절대 아냐.”

데아는 자잔의 어깨를 토닥여 주다가 스윽, 허공에 게이트를 그었다.

“그러니 안심하고 가… 윽!”

욱신! 머리가 또 두통을 호소하고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잠시 정신이 어지러웠지만 용케 참아 냈다.

―샤샤?

“한지야?”

“아무것도 아니야. 일단 가!”

자잔은 밀려나듯 게이트를 건너갔다. 다시 뚝! 게이트가 닫힌 직후, 데아는 세연의 손을 뒤로 하고 무작정 걸었다.

심장이 크게 뛰다 못해 입 밖으로 나올 것 같았다.

“한지야!”

뭐지? 앞으로 창을 열 때마다 이런 두통을 느껴야 하는 건가?

창뿐만이 아니었다. 고유의 능력을 쓰려고 할 때면 이런 압박감이 느껴졌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 하나.

‘이건 능력을 봉인당한 것인가?’

데아는 단박에 부정했다. 이건 봉인당하고 규제당한 느낌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잔잔하게 길들여져 있던 사나운 이빨의 금수가 오래된 철창을 쾅쾅 두드리는 느낌에 더 가까웠다.

그리고 철창은 자신의 몸이자, 최소한의 인간성이었다.

“태초. 태초…….”

태초란 무엇인가. 그건 오래된 인간의 실험 결과물이다. 바다에 버려진 기생 생물이고, 만물을 먹어 만물이 된 괴물이고…….

“한지야!! 어디 가!”

정신을 차려 보니 익숙한 해변이었다.

‘여긴 내가 붉은 얼굴의 괴물을 죽인 장소야.’

그걸 깨달은 순간 제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래, 그래…….

그때 참 좋았지…….

붉은 얼굴의 괴물의 목이 날아가고, 눈알이 뽑히고, 그대로 난도질당해 발밑에 주저앉았다. 그때 느낀 본연의 쾌감은 아직도 그 자리 그대로 상주했다.

가장 비천한 짐승과도 같은 감정. 본능만 남은 괴수의 진짜 본성.

―그때만 좋았던 것 같아? 잘 생각해 봐.

철창 하나를 으스러뜨린 괴수가 히죽거렸다.

‘잠깐, 지금 내가 무슨 생각을…….’

―네가 언제까지 나를 모른 척할 수 있을까?

데아는 자신의 뺨을 감싸는 누군가의 차가운 환상을 느꼈다.

―이렇게 참아 봤자 결국은 재앙의 유예이지. 우리는 과도하게 많은 힘을 가진 괴물이야. 인간? 그건 껍데기일 뿐.

철창속의 괴물. 100년 전의 나, 태초가 속삭였다.

―그 아이가 한 건 단순 계기일 뿐이란다. 온화하고 다정한 우리의 아래. 잠들었던 심연의 괴물을 깨운 한 발자국일 뿐이지. 그래, ‘나’는 항상 그러고 싶었어.

연구실 안에서 내가 맞은 건 과연 뭐였을까?

무엇이 이 경계를 흐렸을까,

―너는 결국 변하게 될 거야. 원래 우리는 인내심이 짧아.

태초는 아름다운 얼굴로 절망을 예고했다.

◈          ◈          ◈

태초는 만물을 삼켜, 만물이 되는 존재. 태초는 바람처럼 변덕적이었고, 대지처럼 온화했으며, 파도처럼 모든 것을 품었다. 동시에 풍랑처럼 거칠었고, 야수처럼 잔인했다. 그리고 동시에, 인간처럼 생각할 줄 알았다.

그래. 인간처럼 생각할 줄 알았다. 잔혹하지만 따스한 한 줌의 이성을 태초는 늘 소중히 여겼다. 폭군과 성군은 한 끗 차이. 태초를 괴물이 아닌 ‘주군’으로 남게 하는 유일한 이성은 바로 인간의 것이었으므로.

그렇기에 한 때의 태초는 인간을 잡아먹길 즐겼다. 인간을 먹을수록 들어오는 ‘인간성’이 좋았으므로.

태초는 인간을 삼켜 인간의 이성과 따스한 감정을 흡수하는 존재. 그렇게 얻게 된 ‘인간다움’을 귀이 여기며 태초는 최초의 식인인어가 되었다.

하지만 충분히 많은 지성과 이성을 얻게 된 태초는 어느 순간부터 그 식인 행위를 그만두었다.

그때 어느 순간부터 떠오른 궁금증이 있었다.

‘내가 인간을 제외한 수많은 것들을 계속해서 먹는다면, 내 안의 ‘인간다움’은 줄어드는 게 아닌가? 그러면 어떻게 되는 거지?’

◈          ◈          ◈

5년 동안 데아는 ‘태초의 섬’ 안에서 평화롭게 안주했다. 이미 충분히 강했으므로 그 어떤 자극도 필요 없었고, 당연히 힘의 성장에는 눈길조차 두지 않았다. 그러나 오랜만에 데아는 힘을 늘려야 할 필요성을 절감했다.

정확히는 근육량을…….

“일어나!!”

어제 불침번을 서며 한바탕 난리를 피운 후, 겨우겨우 정신을 차린 데아를 세연이 질질 끌고 왔다. 강제로 눕혀지고 수마에 져 미친 듯이 자다 깨 확인한 시간은 바로 오후 두 시.

다른 사람들은 다 깨고 없는데 오로지 데아의 이불만 덩그러니 남은 강당 안, 데아는 누워서 소리를 질렀다.

“제발 일어나!”

자기 자신에게 하는 소리였다. 데아의 몸이 싫다고 아우성을 쳤다. 젠장, 몸이 너무 편해.

“쟤 미쳤나 봐.”

“한지야 깼어?”

“너 이제 깼냐?”

이미 옷까지 다 챙겨 입은 헌터들이 잠옷 차림으로 누워 있는 데아를 구경 왔다. 데아는 사람들이 모이고 나서야 주섬주섬 일어났다. 온몸이 뻐근했다.

“한지 헌터만 회의에 늦었어요.”

“좀 깨워 주지 그랬어요.”

“깨웠는데 안 일어났어요.”

“…그래서 무슨 얘기 하고 계셨어요?”

동그란 원형 탁자 주변으로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들었다.

“저번에 짰던 계획 기억나요?”

샤샤 헌터와 만나서 14층에 들어가자고 했던 그 계획이었다.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를 빠르게 15층을 공략하고, 그걸 만천하에 알리는 거예요. 다음 층은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리고 이왕이면 인어들의 협력을 미리 구해 놔서 우리들을 공격하지 않는 인어들을 보여 주는 것도 방법이겠죠.”

“맞아요. 저 연구원들이 16층을 만들기 전에 빠르게 클리어 해야 하죠.”

“저 그런데…….”

누군가 질문을 했다.

“인어들의 협력을 언제 구하죠?”

“바로 14층 공략에서요!”

계획표가 촤르륵 펼쳐졌다.

“우선 우리는 가능한 많이 육지로 건너갈 거예요. 그리고 그중에서도 선발대를 뽑아 여파 길드로 빠질 겁니다. 가서 샤샤의 협력을 구한 다음, 곧바로 다 같이 비밀리에 포세이돈 14층으로 진입합니다.”

몇 사람들은 정신없이 창밖을 내다보며 망을 섰다. 누군가가 우리의 회의 내용을 들을까 겁에 질린 게 티가 났다.

그렇게 정신없이 회의가 끝나고, 이제 실행에 옮길 때가 되었다. 사람들은 지원자를 뽑았다.

“선발대에 참가하고 싶으신 분? 열 명 이하로 뽑겠습니다.”

“이미 말을 해놨어요.”

여파 길드로 가는 건 자칫 미행이 붙을 수 있는 위험한 작업이다. 그래서 데아는 일부러 거짓말을 했다.

“배협 길드장님이랑 세연이, 저 그리고 연가을 헌터님. 이렇게 네 명이랑만 가기로 했어요. 다들 민첩도가 높고 길을 잘 알아서요.”

이 세 명은 자신이 샤샤라는 걸 안다. 아는 사람들끼리 가야 여파 안에서 편하게 말을 맞추고 올 수 있는…….

“나, 나도 갈래!”

바들바들 떨리는 손을 우뚝 치켜 든 양철민이었다.

“뭐?”

“어, 나도.”

석파란도 손을 들었다.

“언니는 여기서 남은 사람들 통솔하셔야죠.”

“으음, 그런 거야?”

“야, 설한지. 나도 민첩도 높아. 그리고 포세이돈 산증인은 나 아니야? 내가 직접 가야 샤샤 설득하기에도 쉬울걸.”

데아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은데? 그렇게 하지 뭐.”

뭐라 하기도 전에 결정되었다. 데아가 당황하든 말든 사람들은 해산했다. 밤은 서둘러 찾아왔고, 사람들은 서둘러 바다를 건널 방법을 물색했다.

“…이게 뭐야? 뗏목?”

사람들은 스티로폼과 빈 페트병, 그리고 나무를 잘라 조잡한 뗏목을 만들었다.

“뗏목만 열둘… 우리 인원을 다 태우기는 쉽겠네.”

“서로 밧줄로 연결 잘했지?”

정말 이걸 타고 가?

“이걸 타고 가라고? 어떻게?”

“노를 저어야지.”

“저도 운전할 거예요.”

부유 능력을 가진 헌터가 자신의 허리에 밧줄을 팽팽 묶었다.

“부유할 수 있는 시간은 5분이 고작이지만… 마력을 모으는 동안에는 저도 뗏목 위에서 쉬면 되니까요. 그럼 출발할까요?”

뗏목이 덜그럭 덜그럭 출발했다.

“달밤의 로빈슨이 된 기분을 간접 체험 하다니.”

“쉿. 이제 정말 시작이야.”

그랬다. 정말 시작이었다. 파국의 시작 말이다.

‘멍청한 거야, 긍정적인 거야. 애초에 이 거리를 뗏목으로 돌파할 생각을 하다니. 파도 한 번 오면 다 부서질 것 같은데.’

데아는 몰래 퐁당 바다에 손을 넣었다. 눈치를 살핀 연가을이 슬쩍 앞에 서 시야를 가렸다.

“우와, 한지야. 우와, 뭐야?”

“쉿. 사람들이 여기에 관심 가지게 하지 마.”

“아아. 응.”

파도는 가라앉고, 바람은 잔잔해졌다.

“너무 조용하지 않아요?”

“그건 그래요. 뭐, 하늘도 우리 편인가 보지!”

기이할 정도로 조용한 밤의 바다 위에서 뗏목은 순조롭게 목적지에 닿았다.

“큰일 났어요.”

“왜, 왜?”

“저기 사람들이 몰려 있어요!”

데아의 영향으로 무사히 작은 항구까지 도착한 건 좋았는데, 문제는 거기부터 시작했다. 척 봐도 무장한 사람들이 우글우글 몰려 있었던 것이다.

“저, 저거 다 헌터야?”

“모르겠어요……!”

“우리 알아챈 거 아냐? 그나저나 왜 항구로 왔어? 다른 곳 많은데!”

“그나마 여기가 가장 외딴 곳이에요!”

“외딴 곳이 아니잖아!”

부유 능력을 쓴 헌터가 허겁지겁 몸을 돌리려던 순간이었다.

“어!!”

타앙! 누군가 뗏목을 향해 권총을 쐈다.

그에 뗏목이 중심을 잃고 기우뚱 기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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