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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식인인어는 죽어야 한다-196화 (196/223)

※ 196화

길드 통합 팀의 대표로 선출되어 온 인원은 총 셋이었다. 권도언은 싱긋 웃었다.

“아, 안녕하세요. 여파 길드장님!”

“안녕하세요!”

“처, 처음 뵙겠습니다…….”

“…….”

“그, 마지막 분은 제가 별로 안 반가우신가 봐요.”

“아뇨. 반갑죠. 반가워요. 반갑습니다…….”

데아는 슬며시 어금니를 깨물었다. 자신과 석파란, 그리고 멀리서 얼굴만 봤던 남자 헌터. 이렇게 세 명이 대표로 뽑히다니. 도대체 어떤 기준인거야?

“와, 여기 상급 헌터님들이 정말, 정말 많아요! 우와…….”

그중 남성 헌터가 번쩍번쩍한 홀을 둘러보며 들떠 했다. 이름이 규진이었던가.

“규진 헌터님. 우리가 여기에 왜 온 건지 잊으신 거 아니죠.”

“네, 네? 아… 그렇죠.”

처음 세 명에게 세인트 H 백화점 헌터홀 오프닝 게스트 자격으로 초대장이 날아왔을 때, 섬 사람들은 꽤나 놀랐었다.

“무슨 꿍꿍이지?”

“위험한 거 아냐? 이렇게 갑자기 대표로 부르다니…….”

그리고 여례아에서 온 사람에게 직접 들은 소식으로 인해 분위기는 더 안 좋아졌다.

“결국 지원과 보상을 받고 입을 다물라는 거군.”

여기은이 내민 손. 사람들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죽느니 그게 더 나아.”

“하지만…….”

“무슨 꿍꿍이인지는 모르겠지만… 젠장! 어떻게 된 거야?”

섬사람들은 ‘샤샤’가 헌팅에 동영상을 올렸다는 걸 모르고 있었다.

“그래도 일단은 손을 잡는 척이라도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당장의 재난은 피해야 하니까. 그럼 다녀올게요. 그리고 가서 여례아의 길드장을 만나 이야기라도 할게요. 그러면 더 확실해지지 않을까요?”

데아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툭 대안을 던졌다.

“그, 그래! 좋은 생각이야.”

“괜찮겠어? 무슨 해코지라도 하면…….”

“괜찮을 거야. 괜히 대표 자격을 준 게 아닐 테니까.”

그렇게 셋은 떠났다. 그들이 이 어울리지 않는 상급 헌터의 세계에 온 이유. 여기은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였다.

“와, 떨린다. 그런데 그 여례 길드장을 어떻게 찾지?”

물론 이건 표면적인 이유고, 데아의 목표는 따로 있었다. 피파글랜에게 어그로를 부탁한 이유. 그건…….

모두의 시선이 쏠린 틈을 타, 연구실에 몰래 침입하기 위해서였으니까.

“안녕하세요, 헌터 여러분.”

그때 오프닝이 시작했다. 정갈하게 놓아진 고급스러운 다과들과 간간이 켜지는 카메라의 빛. 마이크를 잡고 소감을 말하는 관계자들과 그들에게 떨어지는 우레 같은 박수소리가 어지럽게 엉켰다.

“저기 여례 길드장이 있어요.”

그리고 여기은은 거의 끝 순서에 마이크를 잡았다.

“이렇게 바쁜 걸음을 해주신 많은 헌터 분들에게 감사인사를 드립니다. 이번에 여례아, 여파. 그리고 023이 전적으로 후원한…….”

‘쟤는 왜 빠지는 곳이 없지?’

여기은의 짧은 소감다운 연설이 끝나고, 권도언과 차현도 차례로 올라와 짧게 인사말을 건넸다.

‘차현…….’

차현은 평소와 다름이 없었다. 그러나 분명 그는 긴장하고 있었다. 직접 이곳에 오라고 했으면서, 언제 어디서 태초가 튀어나올지 몰라 긴장한 듯했다.

“그리고 이 자리를 빛내 주신 게스트 분들을 만나 뵙겠습니다. 여러분들이 모두 알고 계시리라 생각되는, ‘길드 통합 팀’의 영광스러운 분들이 이 자리에 오셨습니다! 자, 어서 나와 주시죠.”

그래. 이런 순간이 올 줄 알고 있었지.

그러나 데아와 다르게 석파란과 규진은 우뚝 굳어버렸다.

“우, 우리도 나가서 말해? 그런 말은 없었잖아!”

“어, 어떡하죠?”

“제가 나갈게요.”

설마설마했는데 정말로 부를 줄이야.

저 멀리 여기은과 몇 헌터들이 우리 세 명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너희들은 어리숙한 하급 헌터들의 우왕좌왕을 보고 싶었겠지만.

“안녕하세요. 길드 통합 팀 대표. F급 헌터 설한지입니다.”

내 특기가 기대를 저버리는 거라서 말이야.

“이렇게 좋은 자리에 초대받게 되어 영광입니다.”

너무 능숙해 보이지는 않게, 그러나 당당하고 자신 있게. 고개는 들고 시선은 정면으로. 어깨에는 힘을 풀고 동작은 크게.

“길드 통합 팀에 많은 지원을 해주신 헌터님들, 특히 여례 길드장님의 많은 지원 덕분에 F급임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포세이돈에 참여할 수 있었고.”

뛰어나게 만들어진 포세이돈. 그래. 데아는 싱긋 웃었다. 온화한 말 아래에는 칼날이 숨겨져 있고.

“한 발짝 성장해 이렇게 값진 자리의 대표 자격으로 마이크를 쥘 기회까지 얻었습니다.”

모두가 박수를 칠 때 오직 여기은만이 나를 섬뜩하게 노려본다.

“앞으로도 많은 지원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아주 짧지만 여기은에게는 경고가 고스란히 전해졌으리라. 우리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이 사실은 여기은에게 냉정을 잃게 할 것이다.

너는 손을 잡는 척, 섬 사람들을 죽일 계획을 짰겠지만 너는 우리를 내칠 기회조차 얻을 수 없을 것이다.

그 전에 내가 먼저 너를 가라앉힐 테니까.

다시 석파란과 규진이 있는 자리로 돌아가는 길, 검은 그림자가 슬며시 스쳐 지나가며 몰래 속삭였다.

“잘했어.”

권도언이었다.

“알아.”

“자, 그러면 이제―!”

그때 사회자가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또 큰 박수 소리가 들리고, 오프닝 주최자의 손으로 리본이 썩둑 잘렸다. 웨이터가 핑거 푸드를 들고 돌아다녔다.

“저 왔어요.”

연가을이 슬며시 데아의 옆으로 다가왔다.

그래. 길드 통합 팀의 대표로 선출 된 사람은 셋이었지만 섬을 빠져 나온 사람은 총 넷이었다.

연가을은 대표로 초대받지 못했음에도 직접 그 홀에 가고 싶다며 데아에게 부탁했다.

“분명 그 자리에 언니… 정소진 연구 소장도 올 것 같거든요. 말은 절대 안 걸 건데… 얼굴이라도 보고 싶어서…….”

섬 안에서 목숨을 위협받은 일이 큰 자극이었던 것 같았다. 데아는 그 길로 연가을을 몰래 밖으로 빼돌렸다.

“감쪽같죠?”

“그렇네.”

연가을은 검은색 웨이터 복장을 입고 있었다. 이건 또 어디서 빼돌린 거야?

“그런데 같은 여례아 임원들은 알아보지 않을까?”

“에휴, 그 근처에는 얼씬도 안 할 거예요. 다 저기 몰려 있잖아요.”

연가을이 가리킨 곳에는 연가을을 중심으로 모여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이 잔뜩 있었다. 그리고 그 중앙에는…….

“어.”

“아…….”

연가을의 언니, 정소진 또한 있었다.

“정말 안 가게?”

“…네.”

사람들 틈에 둘러싸여 향후 연구 계획과 근황을 주고받는 정소진은 굉장히 자연스러웠다. 갑옷처럼 두른 미소와 능숙한 제스처. 그래. 한 직위 한다 이거지.

“굉장히…….”

“행복해 보이죠.”

아니, 나는 그 말을 하려던 게 아니었는데…….

“여기은 길드장님 말씀이 맞아요. 언니는 가족이 없어도 이젠 뭐든 잘 할 수 있고…….”

“…….”

“저 정도의 직위면 나를 짐처럼 여겨도 납득이 가고…….”

데아는 조용히 천장만 바라보았다. 이걸 어디부터 설명하지?

“그, 아니야. 가을아. 내 생각에는 말이지… 아무래도 여기은, 저 길드장이 거짓말을 한 것 같거든?”

“저 위로 안 해주셔도 돼요.”

“아니…….”

여기은은 그렇게 해도 남을 인성이며, 이미 수많은 전과가 그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고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데아가 감을 잡는 와중이었다. 크고 넓은 오프닝의 연회, 그 중앙에서 시선을 느꼈는지 정소진이 고개를 돌렸다.

“어…….”

그 순간은 찰나와 같았다. 정소진은 무미건조한 눈으로 데아를 흘끗 바라보더니 이내 쓱 시선을 넘겨 데아의 옆 사람을 바라보았다.

연가을의 숨이 멈췄다.

1초, 2초, 그리고 3초.

연가을은 표정 관리에 실패했고, 정소진은 일순 모든 표정을 굳혔다. 갑옷처럼 두르던 미소가 한 순간에 녹아버리고, 동공이 커졌다. 연가을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잠……!”

굳은 얼굴은 이내 황망함으로, 다급함으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과 온갖 추측으로 도배되었다.

정소진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눈치를 챈 여기은이 마시던 와인을 탁! 내려놓고, 동시에 벌떡! 정소진이 일어 선 순간이었다.

콰아아앙!!

거친 광풍이 일었다. 철썩! 오프닝 홀에서 가장 높은 곳에 무언가가 떠오르고, 단란했던 오프닝은 완전히 뒤집혔다.

“저, 저게 뭐야!!”

“흐아아아악!!”

떠오르는 태양을 닮은 하얀색 원형의 게이트. 그 사이에서 거세게 튀어나와 홀에 찬물을 끼얹는 바다와 파도. 그리고…….

‘타이밍 한 번 죽이네.’

“하도 이곳이 떠들썩해서 친히 와보았는데,”

거만한 위엄을 품고 발을 내디딘 인어.

“기대 이하야. 괜히 왔구나.”

사람들은 멍하니 입을 벌렸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가질 않는 표정이었다. 당연했다. 이 모든 일을 꾀한 데아도 조금 당황스러웠으므로.

“뭐, 뭐야.”

여기은과 정소진은 물론, 권도언마저 갑작스러운 상황에 한 대 맞은 표정으로 그 모든 것을 바라보았다. 찰칵, 찰칵! 기자들의 카메라만 정신없이 돌아갔다.

“…정말 올 줄이야.”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몰래 이마를 감싼 건 백리서 뿐이었다.

“흐, 게, 게이트다!!”

“게이트 안에서 인어가 나왔어!!”

굽이치며 내려오는 옅은 갈색 머리카락. 화려한 안경 줄을 단 금테 안경과 금빛으로 빛나는 머리 장식, 오천 갈래의 은실로 정성스럽게 짠 제왕의 망토. 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몸을 감싼 천은 아름답게 반짝이며 파도의 선을 그었다.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수십 명의 근엄한 표정의 호위 기사까지.

그렇게 게이트를 넘어 온 인어의 군단은 그 누구보다 화려하고 강인했다.

헌터들의 얼굴 위로 절망과 놀라움, 그리고 큰 충격이 내려왔다.

작전명 어그로.

‘맙소사.’

…작정했구나.

‘다… 아는 얼굴이군…….’

물론 그랬지만 여기 와서 아는 척을 할 수는 없었다. 홀 안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난장판이었으므로.

“나는.”

그때 인어가 오만하게 웃었다.

“제국의 제왕이자, 위대하신 사해의 신의 네 번째 권속, 피파글랜이다.”

위대하신 사해의 신? 너 단 한 번도 나를 그렇게 부른 적 없지 않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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