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식인인어는 죽어야 한다-195화 (195/223)

※ 195화

“이런 건방진…….”

감히 이런 일을 벌여? 감히?

여기은은 아침부터 한탄만 늘어놓는 부모와 대놓고 비웃는 친언니의 전화를 받았다.

―네가 하는 일이 뭐 그렇지. 안 그러니?

―우리가 막아 주는 것에도 한계가 있단다. 다행히 지금은 의심을 피해 갔다지만 언제까지고 그러리란 보장은 없지 않느냐.

―정말 3위로 떨어졌네. 그래도 이번에는 운이 좋았지. 샤샤가 돌아왔어. 여기은. 정신 못 차리고 허튼짓 계속 했다간 바닥까지 떨어질 거야. 이왕 만든 포세이돈 활용이나 잘 하지. 어설프게 욕심을 부리다가 의심이나 받게 생겼네?

사람들이 ‘괴물’의 생김새를 모조리 알게 되었다. 예전에 어떤 MBL의 머저리가 유출한 동영상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상세한 동영상으로 인해.

현재 커뮤니티 헌팅에 올라온 동영상은 지워진 상태였지만 이미 수많은 사람들에게 각인된 후였다. 게다가 거짓말이라고 몰고 가기엔 동영상을 올린 이가 너무나도 큰 거물이었다.

헌터 샤샤. 랭킹 1위로 돌아온 전설.

“빌어먹을……!”

그깟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을 믿어? 모두가? 애들 장난 같은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지만 여론은 달랐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헌터들은 해당 게시물을 한 치 의심도 없이 믿었다.

그나마 새롭게 올라간 동영상의 화질 또한 그다지 좋지 않다는 점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사람들은 괴물들의 덩치나 기본적인 실루엣만 보았지 이목구비를 보지는 못했으니까.

그러나…….

“길드장님. 천랑 기업 회장님의 전화가…….”

“자리에 없다고 해.”

“…세 번째 전화이십니다.”

“…하아.”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이미 괴물을 잘 알고 있는 투자자들이었다. 여례아는 동영상이 유출된 즉시 해당 동영상과 상관이 없다 공표했지만 투자자는 당연하게도 그것을 믿지 않았다.

“네. 여기은입니다.”

뭐라고 변명을 해야 할까. 갑자기 괴물들이 통제가 되지 않았다? 고작 미완성작 통제도 못 하냐며 신뢰를 깎아먹기 딱 좋은 타이밍 아닌가.

―여례 길드장, 지금 밖에서 해당 실험작들이 유출된―!!

여기은은 폭발하듯이 쏟아지는 우려와 분노의 목소리를 한 귀로 흘렸다. 이걸로 벌써 다섯 번째 투자자의 전화다.

“일단 진정하시죠, 회장님.”

―지금 진정하게 생겼습니까? 애초에 강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헌터 샤샤의 손에 한순간에 쓸려버리는 건 도대체 무슨……! 샤샤 헌터는 막대한 지지를 받는 헌터요. 그와 대척한다면 대중의 지지를 받을 수 없습니다. 지금 제가 무슨 말 하는지는 알 거라고 믿습니다. 예? 혹시 우리 몰래 무슨 일을 벌이고 있다면……!

투자자들은 모두가 화가 나있었다. 포세이돈 내부로 보내져야했을 소중하고 비밀스러운 실험체의 외부 유출은 치명적이었기에 당연했다.

더불어 그 괴물들은 랭킹 1위 샤샤로 인해 무참히 척살되었다.

대중의 반감. 샤샤 헌터 하나 쓸어버리지 못한 약함.

포세이돈의 긴 유지 시간을 위해 두고두고 써야 할 개체들은 대다수의 헌터들에게 공개되었다. 그렇다면 나중에 난이도가 더 어려워진 던전 안에서 헌터들이 해당 괴물들을 봤을 때, 이상함을 느낄 확률이 더 올라간다.

그래. 이대로라면 투자를 끊겠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안 돼. 그것만은 막아야…….’

“하지만 회장님, 제가 이번 일로 인해 뭘 알게 되었는지 아십니까?”

그렇다면 여기서 해야 할 건 단 하나였다.

“아주 놀랍고, 충격적이며, 우리에게는 좋은 소식이지요. 더불어 해당 투자가 성공 선을 그을 거라는 근거이기도 합니다.”

더 큰 미끼를 던져 화제를 전환하는 것.

―그, 그게 뭡니까?

“샤샤 헌터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회장님은 대중들이 샤샤 헌터의 편을 들 거라 확신하셨는데, 제가 아는 바에 따르면…….”

여기은은 속삭이듯이 입술을 열었다.

“샤샤 헌터는 태초와 손을 잡았거든요.”

그래. 이거였다.

인어는 죽어 마땅한 존재라 알고 있는 사람들은 이 사실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애초에 5년 동안이나 살아남은 것 자체가 의문이지 않은가?

“네. 네. 그러면 이만. 끝까지 비밀 엄수 부탁드립니다. 네.”

아직 기회는 있었다. 그래. 일단…….

“이 지긋지긋한 헌터들.”

길드 통합 팀 안에 남아 있는 수십 명의 헌터들. 우선 그들을 끌어들여야 했다.

“부르셨습니까?”

“그래. 가서 전해야겠어.”

새롭게 여론 조성을 하자.

“이번 헌터 홀 개장 오프닝이 곧이지?”

“네.”

“여기 있는 헌터들 중에, 가장 등급이 낮고, 약하고, 가장 지원을 받지 못한 헌터… 그런 F급 헌터가 있나?”

“네? 네. 있습니다.”

“그 F급 헌터나, 그에 준하는 낮은 등급의 헌터들 서넛을 대표 자격으로 오프닝에 초대해.”

“이유가… 있을까요?”

“그들이 겪은 참혹한 사고를 직접 위로해 줘야지.”

여기은은 느릿하게 웃었다.

“하급 헌터들은 지원에 약하거든. 저 치들이 우리를 의심하고 있는 게 뻔하지만, 뭐 어쩌겠어. 당장 아무것도 할 수가 없을 텐데. 목숨이 안 아깝지는 않을 거 아냐.”

“…….”

“그러니 그만하고 같이 협력하자고 먼저 손을 내미는 거지. 가서 전하도록 해. 입을 다무는 조건으로 합당한 보상과 상급 헌터에 맞먹는 지원을 약속해 주겠다고.”

물론 거짓말이었다. 이 모든 일이 안정적으로 변했을 때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일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거절하면 어떻게 할까요?”

“과연 거절을 할까?”

여기은은 의자를 꺼내들어 빙그르르 앉았다.

“머저리들이 그대로 사장되고 싶은 것도 아닐 텐데.”

여기은의 비서가 얕게 숨을 들이쉬었다.

S급 헌터는 예민하다. 비서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 소리 없이 밖으로 나갔다.

“어.”

“아. 길드장님 안에 계시나요?”

“네.”

밖에는 수척해진 MBL 연구 소장 정소진이 서있었다.

그는 비서를 스쳐 안으로 들어갔다. 곧이어 안에는 서로 날카로운 말을 주고받는 음성이 들려왔다.

정소진… 정소진이라.

“여동생이 있지 않았나?”

그러고 보니 생각이 났다. 어렸을 때 헤어진 가족이 있다고.

수년 전이었다. 정소진은 그대로 포기하지 못하겠다며 밤이며 낮이며 가족의 행방을 수소문했고, 그에 연구에 차질이 생긴 상황을 여기은은 매우 싫어했다.

“유명해져. 네 가족이 널 보고 찾아올 수 있게. 내가 도와주도록 하지.”

그 후, 정소진은 미친 듯이 연구에 몰두했다. 그 소망만큼이나 결과는 빠르게 나왔고, 주변에서는 모두 혀를 내둘렀다.

천재 정소진.

그 기반이 가족을 찾고자 하는 간절함이라는 걸 대부분은 알지 못했다. 하지만 비서는 알고 있었다. 그의 여동생은 현재 여례아에 소속되어 있는 A급 헌터 연가을이었다. 지금은 길드 통합 팀에 있는.

“으음…….”

여기은이 입단속을 하라고 해서 하곤 있지만…….

“그 여동생이 자기가 만든 실험작들 손에 죽을 뻔한 건 아나?”

비서의 입꼬리가 기우뚱 비웃음을 머금었다.

◈          ◈          ◈

―…그래서 공문이 왔더라고요. 아마 백리서를 통해 데아 씨에게 연락이 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아하, 고마워요. 길드장님!”

권도언과의 전화를 뚝 끊자마자 데아는 쾌재를 내질렀다. 우우웅, 그때 백리서에게 전화가 왔다.

“응.”

―…목소리를 듣자하니 벌써 소식을 들으신 모양이군요.

“그럼 당연하지.”

데아는 주변 눈치를 살피고 히죽 웃었다.

“지원도 못 받고, 약하고 등급도 낮은 헌터라니. 내가 제격이네. 그 F급 헌터만 할 수 있다던 길드 통합 팀의 대표 자격이라니. 나 가도 돼? 물론 너도 내가 제격이라 생각해서 전화를 건 거겠지만.”

―…네. 일단 주군께서 직접 오시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서 연락드렸습니다.

“좋아. 그런데 나 혼자는 아닐 것 같은데.”

―원하시는 인원으로 대략 서너 명 말씀해 주시면 제가 그대로 전달하겠습니다.

“그래.”

좋은 기회였다. 예전 경매에서 마주친 차현의 말이 다시금 떠올랐다.

“여기서 더 날뛰어 봤자 당신이 찾는 건 안 나와요. 오히려 더 꽁꽁 숨겨지겠지. 그러니 다음 달에 이곳에서 열리는 헌터 홀 오프닝 파티에 오세요.”

헌터 홀 오프닝 파티. 몰래 가는 것보다는 정당한 자격을 얻고 가는 게 더 의심을 덜 받을 수 있었다.

“어떻게 잠입해야 하나 고민이었는데, 잘됐지. 그러면 오프닝 파티에서 인어들을 찾는 작업은 릴림에게 맡기고… 나는 다른 곳에 가야겠다. 이번에도 연구실에 갈 수 있을까?”

가서 모체를 더 자세히 보고 싶었다. 데아는 곧장 종이를 꺼내 피파글랜에게 전서를 보내려다가…….

“아니지. 직접 가는 게 더 빠른데, 왜 이런 방법을 쓰고 있지?”

데아는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기숙사 안의 문을 잠갔다. 그리고 그대로 창을 열어 넘어간 곳은 바로 피파글랜의 집무실 안이었다.

―으아악! 어어!

―뭐, 뭐야!

피파글랜의 집무실 안에는 피파글랜 대신 다른 인어들이 있었다. 간부로 고용된 익숙한 얼굴들이 데아를 반겼다.

―뭔, 뭔 인간이냐!

―정체를 밝혀라!

물론 지금 데아는 설한지의 얼굴이었으므로 그들은 데아를 알아보지 못했다.

냅다 소리를 지르며 창을 들이미는 유리와 제이제이. 그리고 저 멀리서 인상을 찌푸린 알레가 눈에 띄었다.

아차!

“그, 그러니까.”

―제기랄, 인간들이 인공 던전을 만들어 침략할지도 모른다는 피파글랜의 말씀이 진실이었나?

―하, 그럼, 그럼 정말 비상사태 아니에요? 어떡해! 이 인간 죽여?

여기서 정체를 밝히면 분명히 몇 시간은 붙잡힐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밝히지 않으면 이놈들이 엄청난 경각심을 가지고 진지하게 인어 제국의 미래와 안전을 위해 밤낮 철야를 설 가능성이…….

‘…괜찮은데?’

데아는 눈치를 슬쩍 보고는 와장창 피파글랜의 탁자 위로 뛰어올라가 깃펜과 종이를 훔쳤다.

―잡아라!!

―웬 놈이냐!

미안하다, 유리. 미안하다, 제이제이. 더 미안하다, 알레.

데아는 냅다 달리며 순식간에 필기를 마쳤다.

[곧 다가올 X월 XX일 어그로 좀 끌어 줄래?

―자세한 건 릴림한테 물어봐.]

그리고 바로 구겨 손바닥 아래쪽으로 숨겼다. 그리고 몰래 피파글랜의 탁자 아래 숨겼다.

“그럼!”

―저 인간이!!

―알레 님 도와주세요! 잡아라!!

―자, 잠깐!

알레가 무슨 말을 하려는 것 같았지만 데아는 후다닥 창을 열어 도망쳤다.

물론 머지않아 백리서에게 전화가 왔지만.

―주군, 피파글랜의 집무실 안에서 뭘 하신 거예요?

“그보다 피파글랜은 내 쪽지를 봤대?”

―하하, 네. 주군이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시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백리서가 어이없이 중얼거렸다.

―그래도 믿고 따르겠습니다. 나중에 뵈어요, 주군.

그리고 시간은 빠르게 흘러 당일이 되었다.

설한지는 길드 통합 팀 대표의 자격으로 적진 한가운데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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