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식인인어는 죽어야 한다-193화 (193/223)

※ 193화

“분명 샤샤 헌터는…….”

세연은 주저하며 말을 이었다. 데아는 일부러 끼어들지 않았다.

“…인어와 어느 정도 관련이 되어 있을 확률도 있으니까요.”

5년 전 샤샤는 SS급 게이트 안으로 들어간 후, 실종되었다. 그리고 다시 나타난 그는 섬 사람들과 인어에게만 좋을 7층~13층 공략을 이행했다.

물론 이렇게만 보면 단순히 인어의 횡포를 견디지 못한 정의의 헌터가 나서 준 거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샤샤는 어제 당당히 나서 괴물과 맞서 싸웠다. 샤샤가 섬 사람들의 편이든, 인어의 편이든, 이 문제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봐도 좋겠지.

“그러면 샤샤 헌터는 어디서 만나려고……?”

“권도언 길드장님 기억해요? 분명 옆에 있었잖아요. 여파 길드로 무작정 뛰어가서 길드장을 만나야 해요.”

“아!”

사람들이 급하게 웅성거렸다. 바로 실현이 가능한 길이 보였기 때문이리라.

“우리의 계획은 이래요. 잘 들어요.”

우선 이 섬을 나가 서울로 돌아가야 했다. 그리고 선릉 부근에 있는 여파 길드에 가 권도언을 만나고, 어떻게든 샤샤 헌터와 접촉해 같이 14층 공략을 시도한다.

“물론 여기서 14층 공략은 비밀리에 이루어져야 해요. 그래야 시간 벌기 더 쉬우니까.”

그리고 샤샤 헌터에게 부탁해 인어가 있는 밀접한 지역까지 이동 후, 인어를 만나 계획을 전달하면 끝!

“그 다음부터는 인어와 협의해서 계획을 짜면 되겠죠.”

“그런데 샤샤 헌터가 인어에 대해 잘 알거라는 확신이 있어?”

“아까 전에 설명…….”

“그것만으로는 부족해. 그건 예측이잖아.”

“어… 그건…….”

사실 말은 그렇게 해도 세연도 확신하는 얼굴은 아니었다.

‘세연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하지만 데아는 그냥 나섰다. 그래. 안다. 잘 알고말고. 도와줄게.

“네. 확실해요. 제가 알아요.”

저 멀리 배협은 ‘당연하겠지!’와 같은 표정을, 그리고 연가을은 ‘워어… 이걸 정말 나서네요.’와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세연의 표정 또한 확 밝아졌다. 본인이 확인 사살을 해줬으니 든든하겠지.

“어, 어? 설한지 네가 어떻게…….”

“사실 저 샤샤 헌터와 대화를 나눈 적이 있거든요.”

“언제?!”

“지난 밤이요.”

평소 같으면 씨알도 안 먹힐 말이었겠지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헌터들은 달랐다.

“지난 밤? 그게 언제… 아, 설마 그때인가? 샤샤 헌터가 사라진 그날 밤……!”

“너 뒤쪽으로 산책 많이 다녔었지? 그때 만난 건가!”

“그런데 왜 말을 안 했어! 아니지, 그분이 뭐라고 하셨는데?!”

“그냥…….”

데아는 대충 말을 꾸며 냈다.

“혹시 이런 일이 있을 경우에 자신을 찾아오라고 했었어요. 인어들에 대해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음…….”

또 뭐라고 하지?

“도와줄 수는 있다고 했으니까요.”

그리고 데아는 여기서 다시 사심을 채우기로 했다.

“또 이런 말도 했어요. 사람들의 생각만큼 사해의 신은 미치지 않았고, 지극히 정상적이며, 오히려 좋은 인어에 가깝다고요. 지금 있는 인어의 제국도 괜찮고, 인어에 대한 안 좋은 소문들은 모두 포세이돈으로 배를 불리기 위한 몇 인간 헌터들의 헛소문이니까, 겁먹지 말고 제발 호의적으로 손을 내밀어 달라고…….”

묘해진 시선들에 데아는 아차 했다. 너무 감쌌나?

“암튼. 뭐, 샤샤 헌터도 사연이 많아 보이더라고요. 비밀로 해달라고 했는데, 5년 동안 인어들의 도움을 받아 살았다고 해요. 인어들도 5년 전에 인간들을 공격했던 나쁜 인어들은 전부 퇴출당하고, 지금은 인간에게 호의적인 인어들이 많이 있다고 했는데. 믿어도 괜찮지 않겠어요?”

“오…….”

저 멀리 배협의 눈이 가늘어졌다. 진심이냐고 묻는 것 같았다. 데아는 뻔뻔하게 턱을 치켜들었다. 인간에게 호의적인 인어들? 물론 많다고 했지, 모두는 아니다.

“당장 5년 동안 숨어 살아야 했던 이유도 여례아 때문인 것 같던데. 우리보다는 더 잘 알지 않겠어요?”

여례아가 푼 사진으로 인해 인간계에 못 돌아간 거니까 이것 또한 거짓말은 아니었다.

“여례아가 그랬단 말이야? 설마 그건가! 5년 전의 납치……?”

“그래, 분명 이번에도 위협을 가한 거겠지!”

“여레아 이거 안 되겠네……. 우리도 죽이려고 하고, 샤샤 헌터까지…….”

“그런데 너 되게 자세하게 안다?”

양철민이 의심스럽게 물어봤지만 데아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중요한 정보를 왜 이제야 말해!”

“방금 생각났어요.”

“뭐……! 그러니까, 이게 정말 진짜인 건 맞지?”

“네. 그건 확실해요.”

크흠……. 상황을 보아하니 사람들은 내려진 지푸라기를 생명 줄 마냥 꼬옥 잡고 있었다. 이걸로 한숨은 돌렸군.

그때였다.

“지금, 지금 밖을 봐!”

누군가 강당 문을 타앙! 열고 들어왔다.

“무슨 일이야?! 설마 괴물이 또―!”

“아니, 아니야! 지금 저 밖에 배가 와있어……! 누가 왔어!”

배? 누군가 왔다고?

“누가 온 거지?”

사람들이 우다다 뛰쳐나갔다.

◈          ◈          ◈

“여러분, 잘 있었어요?”

배에서 내린 사람은 단 한명이었다. 그런데 얼굴이 익숙했다.

그래. 포세이돈 6층 공략에 참가한 헌터였다.

“네, 네가 왜 여기에 왔어? 아직 시간이 그렇게 안 됐을 텐데?!”

“아, 유진이가 여기 있어서요. 유진아!”

그러자 저 멀리서 갓 성인이 된 것 같은 남자가 우다다 뛰어와 헌터의 옆에 섰다. 가족인가 보다.

“할머니가 편찮으셔서 가봐야 할 것 같아서 제가 저만 섬에 잠시 들어와도 되냐 연락드렸거든요.”

처음에는 거절을 했다고 했다. 반복되는 거절에 이상하다고 느낀 것도 잠시, 곧 수락이 떨어졌다.

“가자 유진아.”

“어, 어, 형!”

헌터 유진은 섬 사람들을 쓱 훑어보았다.

“나, 나만 가?”

“어? 당연하지.”

“그…….”

갑작스럽게 침입한 괴물들, 죽을 뻔한 그날. 샤샤 헌터와 거짓으로 물든 포세이돈.

이 모든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내가 말할 게 있는…….”

“아 맞다. 그러고 보니 다들 괜찮아요? 채현이는 안 보이네.”

그가 말하는 채현이라는 헌터는 괴물들이 몰려온 날 살해당해 죽었다. 그러나 그것을 모르는 헌터는 단순히 항구에 나오지 않았거니 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다들 표정이 왜 그래요, 잠깐. 채현이 설마…….”

헌터의 얼굴이 바로 어두워졌다.

“그래, 네가 예상한 대로…….”

“인어에게 죽었나요...?”

“그… 뭐, 인어?”

“네. 맙소사, 세상에!”

헌터는 홀로 머리를 쥐어뜯었다.

“밖에 떠들썩하잖아요. 포세이돈에서 인어가 탈출했다고!”

“뭐?”

“바다를 통해 이 섬으로 기어들어 갔다가 처치당했다는 그 인어요! 환상계라던! 안 되겠다. 유진아 너는 괜찮아?”

“어, 어어. 나는 괜찮지만…….”

그때 모두가 깨달았다. 그랬다. 이 사람만 돌려보낸 이유, 모든 통신이 끊긴 섬에 이 소식을 전하기 위함이었다.

너희들이 무슨 말을 하든, 사람들은 환상계 능력에 당한 사람의 헛소리라 여길 것이다.

그건 단조로운 청천벽력이었다. 아무도 우리의 말을 믿어주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동영상 있잖아? 그거 찍었다며!”

“그래. 지금 나가는 저 유진이라는 애한테 부탁해서 어디든지 올리게 하면…….”

“그만해요. 저 유진이라는 헌터를 죽일 일 있어요?”

이 상황에서 동영상이 올라가면 용의자는 하나다.

“나중에 또 기회가 있을 거예요. 그러니까…….”

데아는 나긋나긋하게 속삭였다.

“그 동영상 저도 좀 보여 주세요.”

◈          ◈          ◈

익명 커뮤니티에 올리는 방법을 생각 안 해본 건 아니었다. 오랜만에 들어간 커뮤니티 헌팅은 5년 전과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활발해서 순간 혹했으니까.

“화력은 참 좋을 것 같은데…….”

그러나 지금 익명 사이트에 동영상을 올려서는 유진이라는 헌터를 위험하게 만들게 뻔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데아는 높다란 여파 건물 옥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눈부신 서울의 밤. 광활한 야경이 데아를 반겼다. 벌써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슬슬 오려는지 바람이 찼다.

데아는 동영상을 찍은 헌터의 휴대폰으로 몰래 자신의 번호로 동영상을 몰래 보내 놓았다.

“데아 씨, 갑자기 연락도 없이 무슨 일이에요.”

자신이 여기에 온 걸 알았나 보다. 권도언이 어슬렁 옥상 문을 끼익 열고 나타났다.

“길드장님. SNS 해요?”

“네? 네.”

“정말로 해요? 그건 좀 의외인데…….”

데아는 대충 자신의 휴대폰 액정을 휙휙 내렸다. 데아가 보고 있는 건 가장 많은 사람들이 사용한다는 글로벌 SNS 아웃스타였다.

“데아 씨, 계정 만들게요?”

“아뇨. 저 그런 거 관리 못 해요.”

“그런데. 왜…….”

“와, 여파 공식계정 팔로워 1,314만? 미쳤네요.”

“아무래도 그런 편이죠.”

“와, 길드장님 계정 팔로워 2,291만……. 이거 아주 인기 스타셨네.”

그러자 권도언이 난간에 팔을 기댔다.

“인기 스타면 뭐 해…….”

“그런데 이거 길드장님이 관리하시는 거 맞아요?”

권도언의 계정에는 사진이 세 장밖에 없었다. 남이 찍어 준 본인 사진 둘 그리고 책상에 올려 두고 찍은 레모네이드의 사진 하나.

첫 번째 사진이 5년 전, 두 번째 사진이 3년 전, 그리고 최근 사진이 2개월 전이다. 업로드 빈도가 어마어마하구만.

“뭐, 자주 들어가진 않지만요.”

“저 잠깐 계정 좀 빌려도 돼요? 아, 아니다.”

권도언의 계정을 빌려 올리는 것 까지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었지만, 그렇게 되면 지난 밤 포세이돈에 들어가지 않은 걸로 위장한 그에게 피해를 끼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데아가 들어갈 곳은 단 하나였다. 커뮤니티 헌팅의 공개 게시판. 익명으로 자신의 헌터명을 가릴 수 없는 곳.

데아는 곧바로 앱을 깔고 익숙한 그림을 꾹꾹 눌렀다.

닉네임 [진짜샤샤] 괜히 웃음이 나왔다.

“와 진짜 오래전이다…….”

“뭐 하시는데요?”

“음… 물밑 작업?”

여기은에게 이성을 앗아갈 큰 그림?

데아가 동영상과 같이 올릴 적당한 멘트를 고민하던 때였다. 저 멀리 꺼지지 않는 서울의 전광판이 보였다. 1위 샤샤. 2위 권도언. 이번 던전에서 공적치 몰빵을 해준 덕분에 순위는 쉽게 뒤집혔다.

“음…….”

동영상을 올리기 전 기념으로 한 장 찰칵 찍고 있는데 손가락을 잘못 놀려 카메라가 정면 모드로 바뀌었다. 맹한 자신의 얼굴과 자신을 보고 있는 권도언의 또렷한 얼굴이 화악 비춰졌다.

“같이 사진 찍을래요?”

그건 충동이었다. 데아는 난간을 밟고 섰다. 아슬아슬한 걸음걸이에도 그 누구도 걱정하는 사람이 없었다.

“길드장님은 뒤에 서세요. 그래. 그게 더 그림이 잘 나와서…….”

같이 사진을 찍자는 말에 냉큼 데아 쪽으로 다가오던 권도언은 곧장 후진을 했다.

“아, 이렇게요?”

“네. 네 그렇게.”

데아는 목걸이를 풀고는 환하게 웃었다. 밝게 미소하는 백발의 샤샤의 뒤로 빛나는 서울의 야경이 절반, 그리고 난간에 상체를 기대고 고개를 옆으로 숙인 권도언이 절반 기우뚱 나타났다. 권도언 특유의 무겁고도 서늘한 표정 대신, 개구진 소년 같은 미소가 자리 잡았다.

“하나, 둘.”

찰칵!

“데아 씨, 하나만 더 찍어요.”

그리고 권도언은 난간 아래로 내려온 데아와 함께 얼굴을 가까이 붙이곤 더 사진을 찍었다. 찰칵, 찰칵, 찰칵!

물론 데아는 싫어했다.

“아, 사진 그만.”

“네. 네. 그런데 데아 씨.”

“네?”

권도언의 표정은 답지 않게 가라앉아 있었다.

“상태 괜찮아요?”

데아는 그제야 이마를 뒤덮은 땀을 느꼈다. 묘하게 춥다 여겼는데, 열이 나고 있었나?

“아니에요. 가끔 이러더라고요.”

가끔은 무슨. 분명 연구소 안에서 당한 일의 연장선이다.

그날 직후로 데아는 예고 없이 으슬으슬 앓았다. 깊은 독감 같기도 했고, 심한 현기증 같기도 했다.

‘능력을 쓰려고만 들면 더 심해져서 한동안 안 쓰고 있었더니……. 역시 여기로 오기 위해 게이트를 쓴 게 큰 무리가 갔나.’

“괜찮아요. 신경 쓰지 마세요.”

데아는 다시 헌팅을 열었다.

이제 글을 올릴 시간이다.

23:12

작성자: 진짜샤샤

(동영상)

그 섬 안에 이상한 괴물들이 있더라고.

그리고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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