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0화
권도언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휙 멀어졌다.
“뒤에서 대기하고 있을 테니까 필요하면 바로 신호 줘요.”
데아는 잠시 무감각하게 권도언을 바라보았다. 내가 어지간히 눈치가 없긴 하지. 그러니.
“네. 다치지 마세요.”
그러니 눈치 빠른 권도언이 먼저 알아채 줄 것이다. 나의 거절을.
“네.”
데아는 다시 경배를 잡고 정면을 바라보았다. 돌을 깨는데 맨손이면 충분하지. 우드득, 단단한 돌이 쿠키처럼 으스러졌다.
5분. 그 안에 모든 것을 끝낸다.
얼굴이 흉측하게 일그러진 괴물이 달려오고 있었다. 검, 활, 도, 창. 손안에서 빠르게 변화하는 바다의 경배를 잡자 사해의 화살이 완성되었다.
“약점 파훼.”
가장 어두운 바다를 눈부신 빛으로 조각한 활에 날카롭게 벼려진 활촉이 걸렸다. 그것이 데아의 붉은 눈동자 아래 목표물을 겨냥했다. 취객 괴물은 또 해일을 소환하고 있었다.
“저, 저기서 해일이 또 와!!”
“안 돼!!”
멀리서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소리가 웅웅거리고, 거침없이 뛰는 심장 소리가 들려왔다. 괴물이 무섭게 뛰어오자 활은 더 팽팽하게 당겨졌다.
“…….”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는 때, 모든 시야와 소리가 없어지는 순간. 데아는 저 멀리 흐려지는 권도언을 흘끗 바라보았다. 완연한 태초가 그곳에 있었다.
“미안해라…….”
손이 활을 놓는 순간은 너무나 고요해서, 그 누구도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때 바다가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인 모습은 모두가 정확히 보았다.
쏴아아아아―!!
“저……!”
화악! 치켜 올라간 바다는 쓰러진 괴물들과 붉은 얼굴의 괴물, 그리고 샤샤 본인까지 둥글게 감싸 올랐다.
가장 조용하고, 광활한 규모의 해일. 그것이 침잠하듯 다가오고, 괴물이 일으킨 해일이 그대로 집어삼켜졌다.
“말도 안 되는……!”
그건 몹시 자연스러운 섭리와 같았다. 강자가 약자를 잡아먹는 야생의 순리, 먹이 사슬 최상위 개체가 저보다 약하고 작은 파도를 잡아먹었을 뿐이었다. 이상한 건 없었다.
퍼억―!!
그러니 두부처럼 으깨진 괴물의 붉은 얼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대로 중심을 잃고 쓰러진 괴물과 그 충격으로 팍! 파이는 해변가의 젖은 모래. 파동으로 인해 철퍽! 튀는 비와 파도의 물방울까지. 데아는 조금의 표정 변화도 없이 전부 지켜보았다.
“아…….”
쓰러진 괴물의 얼굴. 그 처참함. 데아는 문득 궁금해졌다.
‘저것도 인어일 수 있을까?’
경배가 경고를 품고 웅웅거렸다. 그러나. 데아는 멈추지 않고 성큼성큼 다가갔다.
“데아 씨?”
걷다 못해 뛰었다.
철퍽, 철퍽! 데아는 다시 검을 휘둘렀다. 서걱! 푸르지도 붉지도 않은 점액질이 왈칵 튀어나왔다. 기이한 쾌감이 솟았다.
“데아 씨!”
학살을 저질러도 괜찮은 존재. 마음 놓고 살육해도 좋은 존재. 벌을 받아 마땅한 존재. 태초가 히죽 웃으며 눈을 떴다. 그런 편리한 존재가 있다니.
“이데아!!”
턱!
팔이 잡히고 강제로 돌려졌다. 비에 젖은 권도언이 데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무언가를 살피듯이 데아를 보다가 이내 느물거리며 웃었다.
“아하… 이런 게 취향이었어요? 진작에 맞춰 줄 걸 그랬네…….”
“네?”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뭐지?
“…….”
데아는 고개를 돌려 방금 전까지 있던 붉은 괴물의 시체를 보았다.
“무슨…….”
처참할 정도로 망가진 사체가 그곳에 있었다. 내장과 힘줄이 모조리 터진 괴이한 시체. 이걸 내가 했다고?
“멋졌어요. 이상한 건 없고요.”
그 말 진심이야?
거친 비바람 사이로 낙뢰가 떨어지고, 그 즉시 붉은 얼굴 괴물의 시체가 가루가 되었다. 모든 것이 정리되었고, 상황이 끝났다.
바다는 흔적 없이 깨끗했다.
“그러니 오늘은 그만.”
“…….”
따끔, 그때 데아는 눈을 질끈 감았다. 얼굴을 시작으로 전신이 저려 왔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머리가 너무 지끈거렸다.
“데아 씨. 왜 그래요?”
“아 잠시만요… 이거 장난 아닌데.”
태초인 나에게 이 정도의 영향을 미칠 만한 무기라니. 역시 멀찍이 지켜보기만 해서는 안 되는 거겠지.
“다, 다 끝난 겁니까?”
“이제 안전한 겁니까!”
마침 비도 그치고 있었다. 높은 곳으로 피신했던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데아는 고개를 흔들었다. 정신 차리자. 이런 건 아무것도 아니야.
“정말로 샤샤 헌터가 맞습니까?!”
“옆에는 권도언이야! 여파 길드장이 있다고!”
“아까 싸우는 거 봤어? 진짜 미친...”
“아무래도 맞는 것 같은데…….”
데아는 권도언을 확 돌아보았다.
“가시죠.”
“네?”
구름 밖으로 나온 햇빛을 받은 이데아는 이상할 정도로 눈이 부시다. 권도언은 자신의 팔을 낚아채고 바다 쪽으로 달리는 데아를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전부 바라보았다.
태양 아래 주홍색으로 달아오른 해변가. 권도언의 맥박이 빠르게 흘렀다. 무의식적으로 손을 맞잡고 힘을 주었다.
‘나 진짜 뻔뻔하네…….’
파도가 발목을 넘어 무릎까지 차올랐을 때, 데아는 창으로 바닥을 찍어 파도를 위로 솟게 했다. 상식선을 벗어나는 바다의 벽이 위로 치솟고, 데아는 모두의 시선을 가린 그 틈을 타 휙 선을 그었다.
“아니, 또?”
게이트는 바로 생기지 않았다. 그러나 몇 번 더 시도하자 다행히 생기긴 했다.
“그만 돌아가요. 창 너머에는 여파 길드장실이 있어요.”
“데아 씨, 상태가 지금 위험한 거 아니에요?”
“아직까지는 버틸 수 있어요.”
데아는 손으로 권도언의 손을 감싸 악수를 했다.
“오늘 고마웠어요.”
다시 낙하하는 파도 안에서 권도언은 데아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내가 오늘 도움이 됐어요?
“…그거 좋네요.”
그리고 권도언은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그 직후, 데아는 바로 또다시 게이트를 열었다. 불안정하고 흔들렸지만 생기긴 했다.
“샤샤 헌터님! 거기 계십니까―?!”
“헌터님! 잠시 이야기를―!”
그러나 데아는 파도가 완전히 사라지기 전, 곧바로 안으로 들어갔다.
모든 소란이 한순간에 잦아들고, 데아는 아무도 없는 자신의 기숙사 방 안에서 눈을 떴다. 이제야 두통이 터질 듯이 몰려들었다.
“아, 허억, 흐으…….”
이게 정말 뭐지? 마력의 범위도 좁히고, 능력도 축소시키며, 두통까지 유발하는 물체에 내가 찔린 건가? 그 연구실에서? 환상을 본 순간에?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렇게 몇 분을 가만히 있자 두통이 사그라들었다. 능력은 여전히 조금씩 나가리가 된 것 같지만…….
“남은 문제는 분명 방법이 있을 테니 찾아보면 되겠지…….”
움과 릴림에게 연락을 우선 넣어야 했다.
그러나 그때.
타다다다…….
데아는 문 쪽을 휙 돌아보았다. 누군가 멀리서 다급하게 뛰어오고 있다. 데아는 곧바로 목걸이를 찼다.
“…….”
그러나 다시 풀었다. 발소리만 들려도 누구인지 짐작이 갔다. 데아는 잠자코 곧 일어날 상황을 감내하기로 했다.
그래. 그러기로 했다.
벌컥!
“너……!”
숨을 몰아쉬는 세연과, 가만히 그런 그를 바라보는 샤샤.
세연은 놀라지 않았다. 그저 가쁜 숨만 몰아쉴 뿐이었다.
“내 침대 이렇게 한 거, 너야?”
샤샤가 물었다. 세연은 안으로 비틀비틀 들어와 철컥, 문을 닫았다. 손에는 똑똑 물이 떨어지는 노란 우산이 있었다.
“안녕?”
“…안녕,”
무슨 이런 어색한…….
“어디까지 알고 있어 혹시?”
그 말에 세연은 침묵했다.
“내가 어디까지 알고 있어야 해?”
이번에 침묵하는 건 데아였다. 데아는 싱긋 웃으며 다시 목걸이를 찼다. 찬란하게 밝았던 머리카락이 갈색으로 물들고, 신비롭고 어려운 인상의 미인 대신 친숙한 얼굴이 나타났다.
“고마워.”
“…….”
“정말 고마워.”
그 말에 세연이 비로소 웃었다. 물론 데아는 속으로 온갖 걱정을 사서하고 있었지만 티내지 않았다.
‘핵심은 모르고 있겠지……? 제발 모르고 있어라……! 설마 저번 던전에서 깨어 있던 거 아니었겠지? 그러면 릴림이랑 나랑 인어인 것까지 다 알 텐데, 설마 찌르기야 하겠어. 의리는 있는 애 같은데……. 만약 찌르면 어떡하지 죽이는 것까지는 좀 그렇고 기억을 없앤 다음 도망쳐야 하나, 아니면 제국으로 납치해서 온갖 혜택을 제공한 다음 공범을 만들어 버려?’
벌컥!
그때 석파란과 양철민이 달려왔다.
“너희들……! 여기 있었구나! 한지야, 몸 상태는 어때? 방금 밖에서 난리가 일어났는데 봤어?!”
“아뇨. 저 방금 일어났어요. 무슨 일 있었는지는 이제 세연이한테 들으려고 했는데…….”
“말도 마. 지금 전광판 확인해 봐.”
“어? 저거 뭐예요?”
데아는 호들갑을 떨었다.
“왜 샤샤 헌터가 1위예요? 무슨 일 있었어요?!”
제발 눈치 살펴라 내 연기력아.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고 밖에 괴물들이 왔었어. 하아… 샤샤 헌터가 와서 우리는 다행히 살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몇 명… 그러니까…….”
“아…….”
저 멀리 침통한 표정으로 시신을 수습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데아는 가만히 그들을 애도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죠. 너무나도 애석하지만…….”
“그렇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 그런데 샤샤 헌터 혹시 못 봤니? 갑자기 사라져서 사람들이 다 흩어져 찾고 있는데.”
석파란의 어깨 너머, 데아를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보는 양철민이 있었다. 데아는 일부러 그와 시선을 마주치지 않았다.
“사라졌다면 아무도 못 찾겠죠. 5년 동안 아무도 찾을 수 없던 헌터를 어떤 수로 찾아요.”
노을이 졌다.
◈ ◈ ◈
“이게 대체…….”
여례아와 MBL 소속 연구원 극소수의 수뇌부만이 초대받은 회의실 안. 모니터에 띄워 놓은 영상이 뚝 꺼졌다.
침묵이 내려앉았다.
“정말로 말도 안 되는 힘이군요.”
“저런 능력이 가능하다고? 샤샤 헌터가 바다 관련한 능력이 있던가?”
“그거야 모르죠. 5년 전에도 워낙 신비주의였으니.”
“특수 스킬이 다가 아니었다니…….”
“다시 틀어 볼까요?”
“잠시만요.”
길드 통합 팀이 합숙 중인 섬에 침입한 괴물들은 단 한 명의 헌터에 의해 사라졌지만, 괴물들의 경과를 지켜보기 위해 은밀하게 띄운 드론은 살아남았다.
“제 소속 연구원들이 밖에 있는데 데려와서 같이 봐도 괜찮을까요?”
“하지만 영상 유출이…….”
“다 믿을 만한 연구원들입니다. 이런 귀한 자료는 나중의 일을 생각해서라도 그들에게 보이고 싶어서요.”
정소진의 제의에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문이 열리고 한 무더기의 연구원들이 들어왔다.
“잘 봐. 이게 우리가 만든 실험작의 한계니까. 우린 결국 S급 헌터의 벽을 넘지 못 한 거야.”
“예!”
물론 샤샤 헌터는 S급 헌터가 아니라, 그 유명한 사해의 신이라는 걸 정소진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굳이 말하진 않았다. 그래야 더 동기 부여가 되지.
“너희들도 중에도 헌터로 각성한 사람이 있을 텐데, 그러면 더 잘 알겠지? 보고 단점을 보완해서 찾아내.”
“네. 알겠습니다.”
삑, 리모콘이 눌리고, 영상이 재생됐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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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발 샤샤 헌터 1위] 19:13
내가 ㅋㅋㅋㅋ 이럴 줄 알았음 ㅋㅋㅋ 그래 어떤 미친 오류가 한 달이 넘게 안 사라지냐고 설마설마했는데 역시구나ㅋㅋㅋ 혹시 이해 안 가는 헌터들 있을까 봐 정리해 줌
1. 포세이돈 3층 공략 당시 샤샤 헌터 4위 등극<< 이때부터 생존설 짜하게 돌았음
2. 어제 3시간 만에 포세이돈 7층부터 13층까지 한 번에 공략.
3. 그런데 전광판에 샤샤가 1위로 올라감
정리: 샤샤 헌터가 포세이든 7층부터 13층까지 다 공략했고 1위 됨. 전설의 귀환 ㅇ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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