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식인인어는 죽어야 한다-189화 (189/223)

※ 189화

온 삶을 걸고, 태초는 분명히 말할 수 있었다. 나에겐 가장 우선으로 삼은 가치가 있었노라고. 그건 아주 작았고, 너무나도 당연하고 보잘 것 없는 소망에 가까워서 대부분의 인어들은 듣고도 믿지 않았다.

첫 번째, 강함을 자랑하지 말 것. 그건 결국 인어를 적으로 삼는 적군의 훌륭한 정보가 된다.

두 번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누군가’가 죽는다면 나설 것.

‘태초’는 심장이 뚫려도 죽지 않는다. 머리와 몸이 분리되어도 사라지지 않는다. 뇌 안에 숨어 있는 근원이 살아 있기야 한다면 태초는 몇 번을 되살아날 수 있었다.

그렇기에 태초는 언제고 직접 전쟁터에 뛰어들었다. 수천 년 전, 트리야를 해친 마을을 그렇게 괴멸시켰고, 떨어지는 해적들을 그렇게 익사시켰으며, 더 나아가 대륙 위의 모든 인간을 그렇게 학살했다.

“데아 씨!”

태초는 모두에게 선량하지 않다. 태초는 이타주의자가 아니다. 태초는 신비로운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제왕의 자리에 오른 다정한 괴수에 가까웠다.

그래, 태초는 자신의 편을 든 소수를 지키기 위해 다수를 죽이는 자였다. 그 사실을 태초 또한 알고 있었다. 그래서 멈출 수가 없었다.

자신의 마지막 가치. 그것조차 지키지 않으면 정말 자신이 괴물이 되어버릴 것 같았으므로.

“경배야.”

데아는 허공에 물줄기를 띄우고, 그것을 밟으며 뛰쳐나갔다.

허공을 도약하는 누군가로 인해 해변가에 그림자가 졌다. 파도를 조각한 아름다운 검이 데아의 손에 잡혔다.

“으아악, 으악!! 살, 살려!!”

썩둑!

“…어어?”

해변가에서 괴물에게 한 팔을 잡혀 죽을 위기에 처해 있던 사람이 고개를 들었다. 괴물이 팔이 갑자기 잘렸다.

“누, 누구, 헉……!”

“누, 누구, 아니, 잠깐만……!”

이상하게 능력을 쓸수록 머리가 아파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아는 다시 검을 휘둘렀다.

“고개 숙여!!”

사람들은 영문도 모르고 고개를 숙였다. 쏴아아악―!! 강력한 광풍이 불고, 수많은 괴물들 앞에 선 누군가의 백발이 휘날렸다. 그리고 세상이 그대로 베였다.

“흐아악!!”

“흐으……! 뭐, 뭐 이런……!”

사람들은 직감했다. 바다가 일렁이는 광활한 마력. 해류를 닮은 무기. 사람들은 그렇게 생긴 무기를 다루는 헌터를 단 한 명 알고 있었다.

“저, 저걸 봐!”

미친 듯이 해변가로 달려들던 괴물들이 한 번에 우뚝, 멈췄다. 그리고 모든 머리가 후두둑 모래 위로 떨어졌다.

수백 명의 거구의 머리가 떨어지는 모습은 심히 공포스러웠다. 그러나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기도 잠시, 자신들을 휙 지나쳐 앞으로 달리는 누군가를 홀린 듯이 보았다.

“저, 저거 누구…….”

“잠깐만, 설마……?”

“해일이야!!”

빗줄기가 더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저 멀리 해일이 몰려들고 있다. 아가리를 벌린 파도가 코앞에 닥쳐오기 직전, 도망치지 못한 사람들은 눈을 질끈 감았다.

“이대로 죽는……!”

그러나 사람들은 바로 눈을 떴다. 누군가가 해일 또한 베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이것까지 흉내를 내다니.”

촤아아악!!

부채꼴로 흩어지는 거대한 물의 장벽. 사방으로 흩어지는 물방울 사이에 갇힌 누군가가 입꼬리를 비틀었다.

“하지만 이것도 완성은 아닌가 봐?”

결국 내 앞에서 무너지는 걸 보니까.

데아는 오른쪽으로 뻗은 검을 다시 비틀어 쳐냈다. 그러자 해일이 꿈틀거리며 반대쪽으로 우르르 무너졌다. 땅이 울렸다.

두두두두……!

“으아아악!! 으아악!!”

곧이어 엄청난 입력과 물살이 밀려왔지만 그 어느 바다도 섬 안쪽으로 들어올 수 없었다. 그러자 그 여파는 모두 바깥으로 향했다.

“!!”

바깥에는 붉은 얼굴의 괴물이 있었다. 해일을 불러일으켰던 그 괴물은 그대로 파도에 집어삼켜졌고, 허우적거리던 손은 이내 꼬르륵 주저앉았다.

쏴아아아아!!

쿠르르르르…….

항구에, 해변에, 그리고 섬의 높은 곳에 올라가 있던 사람들은 모두 보았다. 단 한 번의 일격으로 달려오던 해일을 쳐낸 누군가를. 그리고 손 하나 까딱해서 되돌아오는 바다까지 수월하게 막아 낸 누군가를.

“맙소사, 맙소사!!”

“찍었어? 저, 저거, 저 사람 설마.”

“저 사람 그 사람이잖아!!”

우아하고 정확하게. 허공을 더듬는 손끝은 유려했고, 살짝 젖은 머리카락은 그 신비로운 분위기를 더했다. 전혀 어렵지 않다는 듯 산뜻하게 모든 재앙을 물리친 누군가. 사람들은 경악했다.

“그, 그 사람이야. 헌터 샤샤……!”

“거짓말하지 마!! 장난하냐?!”

“아니, 진짜라고! 저, 저, 얼굴 봐!”

돌아온 전설 샤샤. 5년 전과 사뭇 달라진 분위기에 사람들은 때도 잊고 논쟁을 벌였다.

“저, 저렇게 강한 사람이 그 사람 말고 또 누가 있어!!”

“그런데 갑자기 그 사람이 여길 왜, 왜 와……!”

직접 목도한 샤샤의 능력은 사람들에게 허탈함을 넘어 경이까지 불러일으켰다. 압도적이었다.

“잠, 잠깐만! 저, 저 붉은 얼굴! 저 괴물 아직 안 죽었어!”

평범한 괴물들은 대부분 머리를 잃고 쓰러져 있거나, 샤샤를 경계하느라 뒤로 물러서 있었지만, 붉은 얼굴 괴물은 아니었다.

꼬르륵 사라졌던 얼굴이 수면 아래 불쑥 튀어나왔다.

“미, 미친! 달려온다!”

“피해! 빨리 피해!!”

그 사람들 속에는 세연 또한 있었다.

“야, 야, 일단 가야 해!”

어깨를 잡는 양철민을 뿌리치며 세연은 달려가 난간을 잡았다. 투명한 눈동자. 창백하리만큼 하얀 피부 속 돋보이는 사나움. 성난 재앙 속에서 미소 짓는 누군가. 샤샤 헌터는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세연의 동공이 커졌다.

“가야 한다니까! 저건 못 이겨!”

그때였다. 턱, 검은 군화가 난간을 디뎠다.

‘어느 틈에……?’

세연은 고개를 들었다. 옆에 있던 양철민도, 도망가던 석파란과 배협도, 등을 돌리던 그 모든 사람들 또한 고개를 들었다. 비가 와 축축하게 젖은 난간을 딛고 선 누군가는 감정 없는 얼굴로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샤…….”

역광이 진 얼굴이 하얗게 미소했다. 붉은 입꼬리가 올라가고, 서늘하기만 했던 길고 얇은 눈매가 휘어졌다. 형용할 수 없는 분위기와 종족이 다른 듯한 외모에 사람들은 말을 잊었다.

“지, 진짜 샤샤, 헌……!”

“왜, 왜 여길…….”

그때였다. 샤샤 헌터는 인벤토리에서 뭔가를 꺼내 팡! 펄쳤다. 그건 귀여운 캐릭터가 그려져 있는 노란 우산이었다. 그 우산의 정체를, 오로지 세연 혼자만 알아보았다. 세연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었다.

“샤, 샤샤…….”

세연은 자신에게 건네진 우산을 잡았다. 전신을 때리던 빗줄기가 사라졌다. 왠지 울 것만 같았다.

저, 정말로…….

이건 보답이었고, 동시에 단언이었다.

세연은 우산을 꼭 잡고 휙 몸을 돌려 달렸다.

“…구경났어요? 지금 괴물 오고 있는 거 안 보여요! 달리라니까!”

“어, 어? 그래야지! 그래!”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괜히 티가 날 것 같았다.

역시 그랬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나를 믿어서 밝혀 줬구나. 나만 알 수 있는 방법으로 정체를 넌지시 알려 준 그가 고마웠다. 괜히 코가 매웠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멀리 가서 응원이나 하는 일이에요!”

“그래, 가자! 어서 달려!”

“샤샤 헌터가 왜 여기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시간을 벌었으니까 좋은 거 아니겠어!”

배협도 가세해서 모두를 이끌었다. 그리고 가장 높은 언덕 위로 올라간 사람들은 다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거대한 괴물 앞에 홀로 서있는 샤샤 헌터는 너무나도 작았다. 솔직히 말해서 이길 거라는 확신이 서질 않았다.

“지, 지는 건 아니겠지……?”

그러나 그것이 기우였던 것처럼, 기적이 일어났다.

◈          ◈          ◈

“와, 미친.”

얼굴만 붉게 달아오른 취객 괴물(데아는 그렇게 부르기로 했다.) 생김새가 남다르다 했더니 과연 능력도 완성품에 가까운 모양이었다.

“아주 쪽쪽 빨리네.”

마력이 쫙 빨리고 있었다.

그래, 굳이 따지자면 100년 전, 한 번 필립의 병기에 당했을 때 느낌과 비슷했다. 그래도 아직 그 정도까진 아닌지라 버틸 수 있었지만, 문제는 몸의 이상 상태였다.

“머리가 아픈 게… 아직 덜 나았는데,”

“데아 씨.”

그때 바람을 차고 권도언이 탁 착지했다. 저 멀리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진 것 같지만 무시했다.

“이거 잡으세요.”

휘익―!

그리고 권도언은 데아에게 경매장에서 산 파훼석 열 개를 던져 주었다.

“사용법은 알죠?”

“이걸…….”

정말로 나 주려고 샀다고?

“이거 20억 아니에요?”

그러자 권도언이 수줍게 웃었다. 왜 그렇게 웃는 건데.

“푼돈이죠.”

“아… 예…….”

권도언 입장에서는 맞는 말이긴 하는데 묘하게 꼴이 받았다. 데아는 아홉 개를 낼름 인벤토리 안에 넣고 하나를 꼭 쥐었다.

“길드장님은 괴물 사정거리 밖에서 부탁해요.”

“아. 네.”

그 순간, 취객 괴물이 손을 치켜들었다.

괴물이 소리쳤다.

“목표, 방해자는 제거하고 움직인다!”

“뭐 하세요? 안 가세요?”

그러나 권도언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가 바짝 다가와 속삭였다.

“돌을 깨서 안에 들어난 결정을 자신의 마력과 공명시키면 단 5분. 괴물의 마력제압 능력에서 자유로워져요.”

“알고 있어요.”

“알아요.”

지금 나랑 뭐 하자는……?

아. 설마.

“고마워요. 이거 줘서.”

감사 인사를 듣고 싶어서 안 갔나?

그러나 권도언은 예상치 못한 것을 들었다는 듯이 인상을 찌푸리더니 작게 웃었다.

“딱히 감사 인사를 들으려는 생각은 없었는데, 막상 들으니 좋네요.”

“그럼 왜 안 가세요.”

“눈도장 찍으려고요.”

권도언이 팔을 확 휘둘렀다. 챙! 괴물의 첫 번째 공격은 권도언에 의해 쉽게 무산됐다.

휘이이이이―!

일순 거친 바람이 불며 데아와 권도언이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그러나 그들은 시선을 단 한 순간도 서로에게서 떼지 않았다.

“눈도장이요?”

“한 마디라도 말을 더 걸어서 백리서보다 더… 익숙한 얼굴로 만들려고?”

“길드장님이 릴림보다 더 저에게 익숙해진다고요?”

데아가 웃었다. 권도언의 낯도 빙그레 휘었다. 아 역시.

“불가능한 거 아시잖아요.”

넌 내 새싹 위로 흙을 부어버리는구나.

“아무래도 그렇죠?”

“네. 수천 년을 같이 본 릴림을 어떻게 따라 잡을 거예요?”

데아에게 악의는 없었다. 그래서 권도언은 피식 마주 웃었다. 그냥 웃긴 말을 들었다는 듯이 웃어버리는 저 사해의 신에게서 내 한 줌의 존재를 어떻게 각인시킬 수 있을까.

“음, 얼굴?”

“네? 릴림도 얼굴로는… 아아, 종족이 다르지. 그럼 인정할게요. 예전에 길드장님이랑 성격 비슷한 인간 남자 한 명 있었는데, 확실히 그 왕자보다는 잘생겼어요.”

“…왕자요?”

“아, 취소. 생각해 보니까 그 왕자 제가 죽였네요. 괜히 비교했다. 죄송해요. 길드장님이 훨 나아요.”

“……?”

챙! 취객 괴물이 또 한 번 달려들었지만 이번엔 데아가 경배를 휙 휘둘러 막아 냈다.

“그런데 그런 게 갑자기 왜요?”

“아뇨. 그냥.”

괴물이 저 멀리 나가떨어지든 말든 둘은 잡담을 이어 갔다.

“데아 씨가 호감을 느끼는 포인트가 궁금했어요.”

“포인트요?”

“돈도 아니고, 지위도 아니고, 힘도 아니고, 하다못해 얼굴도 효과가 별로 없는 것 같고…….”

“…….”

“참 어렵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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