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7화
“왜?”
“당연히 혼자 가실 생각이시니까요.”
백리서가 검을 다시 검 집에 집어넣었다. 얼굴에 푸른 피가 튀어 있는 모습이 소름끼치도록 잘 어울렸다. 옛날 모습이랑 많이 겹쳐서 그런가?
“저와 같이 가도록 하죠.”
“으음, 그런데 데아 씨, 문을 어떻게 여시려는 건지 여쭤봐도 될 까요?”
그때 권도언이 끼어들었다.
“MBL연구소 안에 잠입해서 뭐를 훔쳐오든, 부수고 오든, 죽이든, 한다는 말이잖아요.”
“그렇지.”
“거기 보안 엄청 철저한데. 이중, 삼중 문이 겹겹으로 둘러싸여 있어요. 그런데 백리서는 거기에 지문 등록이 안 되어 있거든요. 아마 가본 적도 없지? 그러면 대략적인 시설 위치도 모를 테고…….”
“부수면 안 돼요?”
“그러면 시간이 너무 촉박해지잖아요.”
그리고 권도언이 빙글 웃었다.
“그런데 마침 저는 지문 등록이 되어 있거든요.”
권도언은 옛적에 모든 연구원들의 눈을 피해 지문 하나를 더 등록시켜 놓았노라고 실토했다.
“자랑이다…….”
“데아 씨. 능력이라고 해줘요.”
데아는 결국 수긍했다.
“자 그럼. 차현 길드장님. 수고했어요.”
그리고 고맙다며 데아는 던전 안에서 곧바로 게이트를 열었다.
“023길드 길드장실로 연결해 두었어요. 대강 위치만 잡았는데 아마 맞을 거예요.”
“이렇게 끝이네요.”
차현은 씩 웃으며 가면을 돌려주었다.
“데아 씨, 샤샤. 그리고 태초. 오늘은 저에게도 잊지 못할 시간이었어요.”
“네.”
“잘 돌아가세요. 당신이 포세이돈을 없애는 것에 진심이라서 정말 다행이에요.”
그리고 차현은 돌아갔다. 곧이어 여파 길드 내부로 연결한 게이트도 열렸다.
“릴림. 네가 해야 할 일은 알겠지?”
그랬다. 우선 백리서는 여파 길드로 간 다음, 자연스럽게 하영주의 소식을 듣고 나온 척 포세이돈으로 다시 돌아와야 했다.
“당연하죠.”
백리서는 한국의 몇 없는 S급 헌터이자 여파의 공격대장이었다. 당연히 막강한 지위와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은과 대놓고 싸움을 하는 동시에 온갖 핑계를 대며 하영주 하나를 빼내오기는 수월하리라.
“그래도 주군. 무슨 일이 있다면 곧바로 연락 주세요. 그리고 요즘 분위기가 조금 이상한데, 특히 섬 안에서 이상한 기색이 느껴진다면 바로 갈게요. 눈에 띌까 봐 이동을 안 하고 있지만…….”
“알았어. 이만 가봐.”
“넌 보필 잘 해.”
“무서워라.”
그리고 백리서도 사라졌다. 데아는 마지막으로 권도언의 팔을 덥석 잡았다.
“저희도 가죠.”
연구소에 깽판을 치러.
◈ ◈ ◈
“지금 당장 섬에 괴물들을 풀어. 최근에 완성된 ‘그것’까지!”
―네? 하지만, 분명 섬을 망가뜨리는 일은 최소화하자고…….
“지금 그럴 때가 아니니까 빨리!”
―예, 예!
여기은은 툭, 휴대폰을 껐다. 태초와 샤샤와 두 명의 괴한들이 13층 게이트로 들어 간지 수 분, 클리어 알림은 떴는데 놈들은 나오지 않고, 빌어먹을 하영주는 약이라도 먹었는지 A급 수준을 벗어난 채 게이트 앞을 단단히 막고 있었다.
‘저 안에 샤샤가 있다면… 그래. 역시 변장을 하고 섬에 숨어들어 있던 거야.’
여기은은 잘근잘근 손톱을 뜯었다.
‘될지 안 될지 모르겠지만 유인 작전이라도 쓰자. 섬에 두고 온 게 하나라고 있다면 소식을 듣고 부리나케 뛰어가겠지. 그게 물건이든, 사람이든, 뭐든.’
◈ ◈ ◈
“자아! 여러분 오늘도 잘 보셨나요? 그렇다면 좋아요와 구독, 알림 확인까지 꼭! 부탁드려요~”
은색으로 머리카락을 탈색한 미튜브 스트리머가 셀프 카메라 앞에서 손을 흔들다가 이내 뚝 멈췄다.
“아흐, 피곤하다.”
“너 그거 아직도 해?”
“당연하지. 조회 수가 그냥 나오는 줄 아냐?‘
영상 편집… 렌더링… 그리고 영상 업로드!
스트리머가 영상을 올리자마자 조회 수가 우후죽순 붙었다. 역시 수년 전부터 온갖 뉴스거리, 가십거리를 찾아 직접 달려 다녔던 보람이 있었다.
그는 직접 사건 현장으로 달려가 진실을 캐고, 상황을 중계하는 중계 스트리머였다.
“와, 조회 수 벌써 만 넘었어?”
“응…….”
“그런데 왜 별로 맘에 안 드는 것 같냐. 무슨 일 있음?”
그러나 스트리머에게는 최근부터 시작된 고민이 있었다.
“요즘 들어서 조회 수가 영… 별로네.”
점점 하락세인 조회 수가 그 원인이었다.
“옛날에, 5년 전에 직접 던전 찍고 다녔을 때가 있거든. 그때가 전성기였어. 그 여례아가 직접 나 섭외하고 그랬었지.”
“여례아가? 진짜?”
“그렇다니까?”
물론 주작 방송을 권유받았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때 갑자기 난장판 일어나서 대―박이었어. 권도언이랑 샤샤랑 이름 모를 잘생긴 형까지 다 있었는데… 게다가 헌터들끼리 던전 앞에 두고 자기들끼리 싸우더라고? 진짜 와… 그거 조회 수 수익 아직까지 나와. 최고.”
“아 맞다. 그거 5년 전 여례아 사건 아니냐.”
“응. 그거 맞아.”
스트리머는 혼자 실실 웃더니 다시 침울해졌다.
“요즘 뉴스는 다 밍숭맹숭해. 던전도 다 포세이돈 안에만 있어서 거대 언론사가 독점하고……. 이게 뭐냐. 뭐 확! 이슈거리 되는 거 없나. 아직 늦지 않은 걸로.”
그때였다. 우웅― 우웅― 휴대폰에서 알림 음이 울렸다.
“어?”
이질적인 울림. 포세이돈 알림이다.
스트리머는 후다닥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이, 이게 뭐야?”
[포세이돈의 7층 공략을 축하합니다!]
[놀라운 업적 달성! 단신으로 82%의 공적치를 얻었습니다!]
[공적치를 합산합니다. 랭킹이 변화됩니다.]
2위 이데아―샤샤
“어?”
하지만 알림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포세이돈의 8층 공략을 축하합니다!]
[포세이돈의 9층 공략을 축하합니다!]
[포세이돈의 10층 공략을 축하합니다!]
[포세이돈의 11층 공략을 축하합니다!]
[포세이돈의 12층 공략을 축하합니다!]
[포세이돈의 13층 공략을 축하합니다!]
“이, 이게 무슨…….”
그리고 변화된 전광판. 1위, 이데아―샤샤.
방음이 약한 아파트 단지에서 온갖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흡사 월드컵에서 골을 넣었을 때처럼 울리는 탄성에 스트리머는 주먹을 꽉 쥐었다.
’이거다. 이거야!‘
“이, 이게 뭐, 뭐야? 샤샤? 오류가 아니었다고? 죽었다며!”
“귀환 신고식 제대로 한다 이거지.”
포세이돈의 7층부터 13층까지 클리어되는 데 걸린 시간은 단 세 시간 십 분. 기적적인 속도였다.
“샤샤가 정말 대놓고 돌아왔어.”
모두에게 전설로 각인된 그 이름, 오랜 역사의 새로운 신화가 될 누군가가 화려하게 귀환했다. 밤하늘의 별보다 빛날 성과와 모두의 기대를 품고.
“야, 야, 너 어디 가!”
“뭐라도 알아보러 가야지!”
스트리머는 땅에 떨어진 떡고물이라도 주워 먹을 형형한 눈으로 카메라를 들고 집 밖을 나갔다.
◈ ◈ ◈
1위 이데아―샤샤
“와…정말 1위까지 해버리네.”
“저 정도면 7, 8, 9, 10, 11, 12, 13층까지 다 샤샤 헌터가 깬 거 아니야?”
“아마 맞을 듯요.”
동 시간, 섬의 헌터들은 묘한 흥분으로 전광판을 올려다보았다. 처음에 7, 8층 클리어 소식을 들었을 때는 왜 우리의 몫을 뺏어 가냐며 웅성거린 사람들도 있었지만, 10층 이상으로 올라가자 모두 전의를 잃고 멍하니 입만 벌렸다.
“아냐. 오히려 우리에겐 잘됐어요.”
그때 안경을 쓴 헌터가 중얼거렸다. 예전에 길드들의 주가를 휴대폰으로 보여 준 그 헌터였다.
“적어도 우리들의 생존 가능성은 올라간 거니까요.”
“맞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저렇게 빠르게 클리어할수록 우리에겐 유리해요. 포세이돈이 정말 인공 던전이 맞는다면, 15층을 클리어해도 태초는 나오지 않을 테니까요. 더불어 16층도 나타나지 않는다면 대중들이 한 번씩 의심을 품겠죠. 이건 유리한 증거로 적용 될 거라고요.”
“그런데 진짜 이상하네… 샤샤 헌터는 처음에 우리가 3층 공략할 때 있었잖아?”
사람들이 심각하게 머리를 굴렸다.
“그런데 지금은 저기에 있다고? 그리고 샤샤 헌터가 저렇게 던전을 클리어할 이유가 왜 있겠어? 설마…….”
“서, 설마?”
“우리를 도와준 건 아니겠지?”
정곡이었다.
사실 내색은 안 해도 사람들은 각자 기대를 품고 있었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샤샤 헌터나 되는 전설이 자신들을 돕고 있다면, 못 해 볼 싸움도 아니라고 느꼈으므로.
“그, 그런가?”
“에이! 그럴 리가!!”
“하지만, 석연치 않은 부분이 한두 개가 아니에요. 저번 3층의 컨디션… 아직까지 의문이죠?”
사람들은 묘하게 들떠 자기들끼리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고요하게 다른 곳을 쳐다보는 연가을과, 괜히 말실수를 할까 말을 아끼는 배협만이 예외였다.
“야. 야, 세, 세연.”
그리고 세연과 양철민 또한.
“왜?”
“지금 여기 없는 사람 누구야?”
“…자꾸 왜 물어 보는 거야?”
세연이 휙 등을 돌렸지만 양철민은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세연은 그를 밀치려다가 멈칫했다. 양철민은 눈에 띄게 겁에 질려 떨고 있었다.
…너 왜 그래?”
“여기 없는 사람…설, 설한지.”
양철민의 눈은 간절했으며, 묘한 감정에 젖어 있었다.
당연했다. 샤샤 헌터. 그가 우리를 도와주었으면 좋겠어. 그건 양철민이 닳고 닳도록 빈 소망이었으니까.
“설한지 진짜 어디 갔어……?”
걔 진짜 자는 거 맞아?
그리고 그 말에 세연은 대답하지 못했다.
양철민은 어디까지 예측한 걸까. 그리고 나는 어디까지 아는 걸 허용된 걸까. 불현듯 두려워졌기 때문이었다. 그때였다.
“어어? 저거 뭐야.”
“저거 뭐야!!”
그때 사람들이 항구로 하나둘 달려갔다.
“뭐가 오고 있어!”
“하나, 둘… 흐엑, 뭐 저렇게 많아?”
둥둥, 바닷속에서부터 무언가가 떠내려 오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건 사람의 머리였고, 더 자세히 보니 그건 바닷속에서부터 걸어 올라오는 거대한 괴물의 머리였다.
저 괴물들. 세연은 파랗게 질렸다. 둘러보니 양철민과 석파란, 그리고 배협도 하얗게 굳어 있었다.
“저, 저거 왜…….”
“드디어 때가 된 거야.”
배협이 당장 소리를 질렀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오다니.
“당장 안으로 달려! 저거 그 괴물들이라고!!”
“뭐?”
그러자 양철민과 석파란도 따라 외쳤다.
“저 괴물들 맞아요!! 저것들은 못 이기니까 피해!!”
“다 죽고 싶지 않으면 달려!”
한동안 잠잠해서 오지 않을 줄만 알았던 공격. 섬 사람들을 포위한 학살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그, 그게 무슨……!”
“잠깐, 저건 또 뭐야?!”
수백 명의 거대한 괴물 뒤, 붉은 얼굴을 가진 누군가가 또 있었다. 특히 거대한 몸집을 가진 괴물. 그래. 저건 괴물을 넘어선 재앙 같았다.
그때였다. 꼭 하지 말라는 일만 골라 한다고. 겁 없이 해변가로 성큼성큼 다가간 누군가가 외쳤다.
“저기요, 대화로 풀어 봅시다. 갑자기 와서 이러는 경우가 세상에 어디 있……!”
“안 돼!!”
퍼억! 붉은 피가 튀었다.
한순간에 으깨진 사람의 몸에 피비린내가 확 끼쳤다.
“흐…….”
“흐아아악! 으아악!!”
“달려! 도망쳐! 공격이다!!”
우리를 다 죽일 셈이야! 드디어 그 공격이 오고야 말았어!
괴물들은 바다에서 느리게 걸어 나왔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공포스러웠다. 그때 연가을이 나서 소리쳤다.
‘분명 MBL 연구소와 길드 여례아는 협업 관계라고 했었지!’
“저는 여례아 길드 소속 A급 헌터 연가을입니다!!”
괴물들은 멈추지 않았다.
“소속 헌터가 여기 있습니다! 지금 당장 공격을 그만두시고……!”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사람들을 몰살시키는 놈들이 소속 헌터라고 해서 봐줄 것 같아요?!”
그때였다. 붉은 얼굴을 한 괴물이 휘익! 육중한 팔을 휘둘렀다.
“지금 저 괴물은 뭐 하는……?”
기묘한 마력이 일렁이고, 헌터들은 동시에 휙! 바뀐 공기의 흐름을 느꼈다.
쏴아아아아…….
“바닷물이 빠지고 있어…….”
저 멀리서부터 해일이 몰려들고 있었다. 물이 빠지는 속도나, 몰려드는 파도의 크기를 봐서는 그렇게 큰 규모의 해일이 아니었지만, 적어도 해변에 가까이 있는 사람들 전원을 삼키기에는 충분하리라.
“높은 곳으로 올라가!!”
“안 돼! 높은 곳으로 올라가면 고립된다! 저 괴물들한테 바로 잡힐 거야!”
“그럼 어떡하라고!”
진퇴양난. 괴물이 어떻게 바다를 다룬단 말인가? 바다는 그 누구도 감히 도달할 수 없던 영역이었다.
“저런 말도 안 되는……!”
모두가 도망치기 위해 등을 보였다. 그렇기에 허공에서 하얀 게이트가 반짝! 생긴 것을 사람들은 미처 보지 못했다. 홀로 시간을 두고 일렁이던 게이트에서 어느 한 사람이 뛰어내렸다.
“…어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