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6화
“공적치는 제가 대부분 가져갈게요.”
그건 데아의 계획 중 하나였다.
“차현 길드장님이랑 권도언 길드장님은 랭커예요. 혹시나 지금 순위가 올라가게 되면 의심받아요.”
“저는 이미 여기은이 알고 있을 텐데요?”
“증거랑 심증이랑 같아요?”
[포세이돈 7층 진입]
[보스 인어 ‘어두운 밤의 망령’(B)를 사냥하십시오.]
[포세이돈 8층 진입]
[보스 인어 ‘유쾌한 계곡의 쌍둥이’(B)를 사냥하십시오.]
[포세이돈 9층 진입]
[보스 인어 ‘폭우의 정령’(A)를 사냥하십시오.]
“여전히 이 알림은 익숙해지질 않네……. 이건 누가 알려 주는 걸까?”
“데아 씨, 그런 게 궁금해요?”
“길드장님도 궁금하잖아요.”
“사실 맞아요. 그래서 나름 분석을 해봤는데…….”
권도언이 고개를 기울였다.
“인공 던전이잖아요. 연구소에서 만든 포세이돈의 ‘본체’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요?”
“본체?”
“근원 같은 거요. 그런 게 없을 리가 없어서… 뭐, 다 프로그래밍된 거겠지만.”
가능성이 있었다.
“뭐어… 연구소에서 알아봐야 될 게 하나 더 늘었네요.”
데아는 다시 한 발자국을 내딛었다.
“그럼 바로 공략 시작할게요.”
공략은 빠르게 이루어졌다.
들어가자마자 차현이 맹독을 풀어 주변 인어들을 제압하면 그 뒤를 이어 권도언과 백리서가 나섰다. 그들이 일사천리로 보스 인어로 들어가는 길을 뚫으면,
“약점 파훼.”
데아가 경배를 휘둘렀다. 경배는 가끔은 물렁한 파도로, 어느 때는 날카로운 흉기가 되어 보스 인어를 공격했고, 데아는 인어의 상태에 따라 다르게 대처했다.
“이번 인어는 가능성이 있겠어,”
9층 폭우의 정령. 다행히 칸나니아가 손을 댄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았다. 데아는 곧바로 그의 마석을 꿰어 내 손에 잡았다.
끼아아악―!!
폭우의 정령은 괴롭게 몸을 뒤틀었지만 이내 기력을 잃고 쓰러졌다.
“죽었어요?”
“아뇨. 기절했어요. 여기 계속 두면 정신을 차릴 거예요.”
“마석을 뺏은 거… 아니에요?”
차현이 놀라워하며 물었다. 인어는 마석을 뺏기면 보편적으로 죽는다. 그러나 마석이 여러 개거나, 당장 마석이 없어도 살 수 있는 풍부한 마력을 가졌으면 죽지 않았다.
“내가 마력을 주는데, 그게 무슨 상관이겠어요.”
데아는 심폐소생술을 하듯 마력을 불어넣어 주고는 기존에 있던 마력을 으깨 부쉈다.
그렇게 9층이 클리어됐다.
여전히 출구 게이트는 나오지 않았지만 데아는 익숙하게 허공을 찢었다.
“클리어됐어요. 다음 층으로 가죠.”
“그런데 지금쯤이면 엄청난 방해꾼들이 왔을 텐데…….”
“괜찮아요. 이미 어느 정도는 예상 했고, 곧바로 돌파하고 지나가면…….”
그렇게 나간 순간이었다. 데아는 기묘한 분위기를 맡았다. 자신을 둘러싼 수많은 사람들. 가면을 썼음에도 사람들은 자신의 백발을 분명 알아보았을 것이다. 특히 저기 있는 여기은이. 그러나…….
“…….”
그들은 섣불리 다가오지 못했다. 나가자마자 파국의 아수라장이 있을 거라 예측했던 데아는 드물게 당황했다. 그러나 곧 이해했다. 그건 바로, 앞에 서있는 누군가 덕분이다.
“…….”
5년 전과 비슷한 뒷모습. 곤란할 때, 당혹스러을 때마다 은근슬쩍 숨었던 누군가의 등이 시야에 들어찼다.
데아는 입술을 열었다. 그러나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전쟁, 싸움. 그 모든 것을 예측했어도 유일하게 예측하지 못한 누군가의 행동.
데아는 하영주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찰나였지만 여전히 생각 정리가 되지 않았다. 영주 언니가 왜? 여기에? 그러나 곧 이해했다. 공적도를 올렸으니 샤샤의 순위가 올라갔을 것이다. 그러면 당연히 알겠고…….
“영―”
“놈들이 나왔다!”
움찔, 데아를 삿대질하며 여기은이 소리쳤다.
“이 안에 있는 건 그냥 침입자들이야! 공격해!”
“영영 부길드장님. 지금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지 아는 겁니까?”
그러나 하영주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 어느 때보다 고요하게 수백 명의 사람들을 견제하며 우뚝 섰다. 언뜻 보이는 턱은 단단했다.
데아는 그를 다시 부르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그러나,
‘안 돼.’
태초와의 연결고리를 더 강화시킬 수는…….
“빨리 가!”
그때 돌연 하영주가 소리를 버럭 질렀다.
“하고 싶은 만큼 클리어해. 여긴 내가 막을게.”
“…….”
“대신 나중에는 다 설명해 줘. 뭐든.”
뭐든…….
데아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달렸다. 남은 세 명의 사람들을 데리고 뛰어 10층 안으로 들어갔다.
10층에 있는 게이트는 총 두 개. 그중 하나에 돌진했다. 뒤는 돌아보지 않았다.
“하영주가……?”
그때 따라 들어온 권도언이 턱을 문질렀다.
“이건 또 의외네?”
[포세이돈 10층 진입]
[보스 인어 ‘산에 매몰된 영물’(A)를 사냥하십시오.]
이번에도 보스 인어는 데아를 알아보지 못했다. 데아는 또다시 마석을 부쉈고, 10층은 단 몇 분 만에 클리어가 되었다.
“이렇게 쉽다니…….”
“그러게요.”
차현은 데아를 돌아보았다. 정면을 바라보는 눈이 차가웠다.
“이렇게 쉬운데, 그동안 너무 많이 죽었어요. 그렇죠?”
인어에게도, 인간에게도 없는 것이 좋은 게이트. 포세이돈. 데아는 처음부터 그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분명 칸나니아가 알고 지은 거야…….”
먼 과거, 바다의 경배를 든 태초는 한 때 포세이돈이라 불렀었다.
데아는 삼지창 형태를 한 경배를 손가락 사이에서 빙글빙글 돌리며 허공을 열었다.
하얀 빛 무리 사이로, 다시 대기실의 풍경이 나타났다.
“이대로 돌진해!!”
“놈들이 또 나왔다!!”
“젠장, 몇 층을 클리어하는 거야?!”
싸움이 일어나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하영주 혼자 버티고 있는 모양새였다. 근거리 공격수 하영주는 엄밀히 말하면 방어계 탱커는 아니었지만, 그는 꽤나 유능한 멀티 능력자였다.
하영주는 누군가의 방패를 뺏어 광범위 쉴드를 쳤다. 땀이 떨어지고, 모든 이의 공격을 막는 팔이 덜덜 떨렸다.
‘버프를 넣어 주자.’
100%.
“뭔……!”
하영주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11층으로 가죠.”
위로나 다독임은 불필요했다. 목표로 잡은 12층이 멀지 않았다. 데아는 곧바로 새롭게 생성된 게이트 속으로 뛰어들었다.
[포세이돈 11층 진입]
[보스 인어 ‘강가의 그림자’(A)를 사냥하십시오.]
같은 A급 보스 인어였지만 공략 방법은 갈수록 기상천외해져 갔다. 심해의 눈, 약점 파훼. 데아는 먼 기억에야 남아 있는 장소를 밟으며 달려드는 하급 인어를 베었다. 푸른 피가 무수하게 튀었다.
“먼저 독을 풀겠습니다!”
인어 제국을 위해 이 인어들을 죽이는 것이 맞는 것인가? 대를 위하여 소를 해치는 것이 과연 옳은가?
촤아악―!
데아는 자신에게 달려드는 하급 인어의 목을 베었다. 푸른 피가 허공을 긋고, 이내 천지가 진동하며 강가의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미 생각은 끝냈다. 돌아갈 수 없다면 여기서 중단시켜 주는 것도 자비이니.
자신의 피조물에게 내리는 태초의 고아한 안식.
바다의 경배가 다시금 모양을 바꿨다. 가장 아름다운 바다의 도. 모든 것의 시작이자 죽음으로 그들을 안내하는 초월자의 아량. 헛된 목표를 안고 태어난 괴물들 또한 결국 인어였다. 그렇기에 사해의 신은 그들을 직접 거두기로 마음먹었다.
모든 것은 시작으로, 죽음으로. 다시 바다로.
“모두 뒤로 물러서세요.”
바다가 휘둘러졌다. 그것은 직접 그들의 눈을 감겼다. 보스 인어가 탄식하며 주저앉았다. 거대한 산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지진이 울리고, 강이 마치 해일처럼 넘치며 막혀버렸다.
“뒤로!”
네 명의 S급 헌터는 기울어지는 인어를 피해 뒤로 물러났다. 쿠우웅! 굉음이 울리고, 인어의 얼굴이 땅에 떨어졌다.
“…….”
데아의 손안에는 인어의 마석이 있었다. 툭, 마석은 저 홀로 으깨져 버렸다. 이 인어는 살릴 수 없었다.
“이미 너무 늦었어.”
데아는 백리서가 건네준 물을 한 모금 마시며 등을 돌렸다. 푸른 피가 튄 그의 얼굴이 섬뜩하도록 무감각했다.
“다음 층에 가요.”
[포세이돈의 11층 공략을 축하합니다!]
[놀라운 업적 달성! 단신으로 86%의 공적치를 얻었습니다!]
[공적치를 합산합니다. 랭킹은 변화되지 않습니다.]
.
.
.
1위 이데아―샤샤
◈ ◈ ◈
12층의 공략 또한 수월하게 이루어졌다. 데아는 아무 말 없이 하영주의 전신을 치료해 주었으며 버프는 100%를 유지시켰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버프의 사실을 모르는 여기은은 고작 A급 헌터 하영주가 본인과 동등하게, 어쩌면 더 압도적인 실력으로 싸운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거기서 안 비켜―!”
그리고 데아는 일부러 권도언에게 따로 언질을 주었다.
“만약 이번 일이 잘 끝나고 돌아가게 된다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요, 데아 씨.”
권도언이 비죽 웃었다.
“영영 부길드장을 보호해야겠죠. 그 어떤 압박과 공격으로부터.”
그러나 모두가 알고 있었다. 하영주는 바보가 아니었다. 아마 여례아가 언론을 선동하면서까지 그를 압박하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리라.
“뭐 어쩌겠어요. 뭐로 하영주를 몰아넣겠어요? 포세이돈을 단시간에 깨준 사람들을 보호했다고?”
그리고.
[포세이돈의 12층 공략을 축하합니다!]
[놀라운 업적 달성! 단신으로 81%의 공적치를 얻었습니다!]
[공적치를 합산합니다. 랭킹은 변화되지 않습니다.]
“그나저나 정말 대단하네요. 그 지원 스킬.”
차현이 광활한 구덩이 전부를 메워버린 자신의 독 안개를 보고 감탄했다.
“내가, 내가 아닌 것 같아요. 이 힘이라면 단신으로 여례아 헌터 전원과 싸워도 손쉽게 이겨요. 정말로요. 많은 것을 경험하고, 알아 가네요.”
동시에 차현은 침을 꿀꺽 삼켰다.
“여례아가 얼마나 멍청했는지도 잘 알겠고…….”
태초의 힘에는 한계가 없다. 그는 그의 시야가 닿는, 그의 세계가 닿는 그 모든 만물에 능력을 적용할 수 있었다. 당장 하급 인어조차 이런 지원을 받게 된다면 말도 안 되는 괴물로 성장할 것이다.
그런데 그런 군대와 싸운다니.
“승산은 무슨. 자살하러 가는 거지.”
이길 수 없다. 결코.
차현은 태초의 힘과, 인간의 한계를 절감했다. 그건 좌절이었고, 동시에 찾아온 해방이었다. 자신을 한계를 깨달을 때 찾아온 해방이라니. 차현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내 위치가 이제야 더 자세히 보이는 느낌이에요.”
절대적으로 강해야 했던 길드장. 모두를 지켜야 하는 총책임자. 그것들의 무게를 견디는 건 싫지 않았다.
“이제야 나는 내 자리를…….”
더 안온하게 지킬 수 있으리라.
더한 욕심과, 인어를 도왔다는 죄책감을 가지지 않고, 나에게 주어진 것들에 만족하며 안정적으로 살아가리라.
“고마워요.”
“뭘요.”
데아는 기다란 창으로 변한 바다의 경배를 휘익! 한 번 털어 내고는 어깨에 걸쳤다.
“자. 목표로 정한 12층은 공략 성공했어요.”
데아는 자신과 함께 해준 세 명의 얼굴을 둘러보았다.
“전 한층 더 공략 하고 싶은데, 그만하고 싶은 사람 있어요?”
예상했듯이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데아는 씩 웃고는 허공을 찢었다. 끝까지 뒤를 돌아보지 않는 하영주가 나타나고, 데아는 거의 없는 그의 상처를 슬쩍 치료해 주고선 13층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13층 또한 수월하게 클리어되었다. 이제 남은 건 14층과 15층.
“하지만 여기까지 할게요.”
“왜요?”
“음… 여기부터는 전략이 필요하니까요.”
손목시계를 확인한 데아가 경배의 소환을 풀었다.
“오늘 수고 많았어요.”
“다시 섬으로 돌아가실 겁니까?”
“아니.”
세 쌍의 시선이 모였다. 데아는 탁탁 손을 털었다.
“난 연구실로 갈 거야. MBL.”
“안 됩니다.”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