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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식인인어는 죽어야 한다-184화 (184/223)

※ 184화

“오랜만이죠?”

하얀 머리카락에 인간답지 않은 눈동자 색, 묘한 분위기를 품은 샤샤, 이데아가 빙글 웃었다.

“저 그때 그 애인데, 협력 하나 할래요?”

“말도 안, 안 돼.”

“바로 내일. 같이 여기은과 MBL을 당황시키지 않을래요?”

정말 기대가 되지 않느냐며 신이 웃었다.

“맙소사, 이게 무슨… 설마, 포세이돈과 관련된 일인가요?”

“네. 같이 공략해요. 그 누구보다 빠르게. 최대한 많은 층을.”

이게 본론이었다.

“승산을 걱정하고 있다면 걱정하지 말아요. 나름 우수한 조력자가 있거든요. 당연히 익명은 지켜질 거고, 023길드에 피해가 가는 일은 없을 거예요.”

“…….”

한동안 차현은 침묵했다. 닥쳐온 상황을 판단하는 듯싶었다.

그는 여전히 혼란스러워하며 말도 안 돼, 를 연신 외쳤다. 결국 전광판에 올라간 이데아의 이름이 진실이었다. 차현은 그것이 오류가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 빠르게 추측한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래. 그래서 태초가 여기은한테 적대적인 거였어, 왜 그렇게 과도하게 훼방을 놓았나 싶었는데…….’

오히려 이상한 부분에서 납득했다.

차현은 결심한 듯이 입술을 깨물었다. 눈이 단호해졌다.

아. 됐다.

정의롭고 싶은 위선자 차현. 그러나 그는 최후에 용기를 내었다. 그 덕분에 023은 안전할 것이다.

“조, 좋아요.”

“오.”

“그래서 조력자는 누구죠?”

“아 그건…….”

똑똑, 그때 누군가 자동차의 보닛 두드렸다. 산뜻하게 웃고 있는 권도언이었다. 그 뒤에 백리서도 팔짱을 끼고 있었다.

“안녕 차현?”

“맙소사…….”

차현이 마른세수를 했다.

“잠, 잠깐, 그런 쟤네들도 다, 샤샤가, 태초라는 걸 알고 있……?”

데아는 끄덕였다.

“맙소사, 이거 특종감이야…….”

데아는 주섬주섬 수첩을 꺼냈다. 털컥, 그때 뒷좌석에 권도언과 백리서가 탔다.

“너희들은 왜 타?”

“그럼 밖에 세워 두려고 했어?”

“자. 제 목표와 계획을 말씀드릴게요. 내일 저녁, 일곱 시. 7층에 우리들은 잠입합니다. 그리고 최소…….”

데아는 손가락을 쫙 펼쳤다.

“7층, 8층, 9층, 10층, 11층. 그리고 12층. 최대 14층까지 줄지어 클리어할 거예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신속하게.”

“불가능해요. 그렇게 빨리 클리어가 된다면 분명 중간에 제재가 들어올 거라고요.”

“어차피 그곳은 제 세상이에요. 출구 게이트가 열리지 않는 것? 제가 게이트를 열 줄 아는데 무슨 소용이죠. 누군가 게이트를 열고 난입하는 상황? 오는 즉시 죽여버리면 돼요. 어차피 괴물들일 텐데.”

“…….”

“최소 인력으로 신속하게 모든 것을 끝내야 해요. 우리는 총 네 명입니다. 할 수 있겠죠?”

“하아… 그래. 다 좋아요.”

차현은 포기한 듯이 손을 내저었다.

“해보자고요. 그래요. 꼭 익명만 지켜 주세요. 최선을 다해 도울 테니까.”

“좋아요.”

사실 인간들을, 특히 차현을 이 계획에 참여시킬 생각은 처음에는 없었다.

‘하지만 공범을 만들어 놓으면 어느 정도 입단속도 되고, 편을 들게 할 수도 있으니까.’

데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좋아요. 내일 뵈어요?”

그다음 날은 쏜살같이 찾아왔다.

◈          ◈          ◈

이른 아침부터 데아는 밑밥을 깔았다.

“나 열나는 것 같아.”

“어? 정상 체온인데?”

“그 체온계 이상해…….”

독감을 흉내 내며 아침부터 저조한 컨디션을 호소하자 ‘당장 보건실에 들어가 있어!’라는 불호령이 떨어졌다. 그러나 데아는 냅다 무시하고는 기숙사 방 안에 처박혔다.

“나 죽도 사왔고, 먹을 것도 다 있으니까 아무도 문 열지 마. 알겠지?”

“그 정도라고?”

“응. 몸살이 오는 것 같아.”

그러곤 소리 내어 재채기를 하자 주변인들이 쌩하니 물러섰다. 교관과 각종 전문 인력들이 철수한 섬 안에서 전염병이라도 퍼졌다간 모두가 큰일이라는 걸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철컥, 데아는 문을 잠갔다. 기숙사의 잠금장치는 강하게 돌리면 곧바로 열려버리는 약골이었지만, 그래도 안 해두는 것보다는 좋겠지.

현재 시간 오후 다섯 시. 데아는 돌돔을 피파글랜에게 맡겼다. 이미 이위로 때문에 온갖 고양이 물품이 들어선 공간에서 돌돔은 상황 파악이 안 된다는 듯이 굴었지만 데아는 싹싹 빌고는 다시 기숙사로 돌아왔다.

현재 시간은 오후 여섯 시. 데아는 계획을 점검했다. 만나기로 한 장소는 여파의 54층 길드장실. 그곳에서 한번에 포세이돈으로 이동한 다음, 바로 7층에 진입한다. 차현의 말에 따르면 7층의 게이트는 총 다섯 개. 최고 10분 컷으로 한 시간 안에 전원 클리어한 다음, 8층 게이트가 생성되면 곧바로 넘어가는 식이었다.

오늘 마지막으로 7층 공략 시도를 하는 헌터들은 오후 여덟 시에 도착할 예정이기에 시간은 충분했다.

7층 게이트가 전부 클리어되면 분명 밖에 알림이 뜰 텐데, 그때부터 전 국민이 포세이돈 안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되겠지. 그러나 많은 기자들이 포세이돈 주변을 에워쌌을 때는 이미 늦었을 것이다. 이미 우리는 8층 공략을 시작하고 있을 테니까.

그러나 분명 대기실로 우리를 저지하기 위한 헌터들이 올 텐데, 그때를 대비하여 데아는 경매에서 썼던 인식 교란 마스크를 따로 챙겼다. 어차피 싸워서 질 리도 없고. 악착같이 그들을 밀쳐내고 또 다시 던전에 진입할 것이다.

“준비됐나요?”

오후 일곱 시. 데아는 여파 길드 54층에 툭, 착지했다.

가면을 쓴 세 명의 길쭉한 인영이 데아를 바라보았다.

“그럼 가죠.”

목표는 최대한 많은 층의 클리어.

데아는 곧장 창을 열었다. 포세이돈의 입구가 바로 펼쳐졌다. 그곳을 지키던 몇 헌터는 당황하여 바르작거렸지만 그보다 차현이 빨랐다.

“지금!”

푹!

푹!!

“으아악!”

차현의 주 무기는 봉. 그의 능력은 맹독이었다. 소리 없이 다가가는 무색무취의 암살자는 고요히 사람 둘을 기절시키고는 손짓했다.

“당장 들어가죠. 어차피 누군가 난입했다는 건 곧 퍼질 거예요.”

◈          ◈          ◈

[포세이돈의 7층 공략을 축하합니다!]

“뭐……?”

여기은이 벌떡 일어섰다. 동시다발적으로 뜬 알림으로 인해 거리에서도 탄성이 들려왔다.

“7층이 벌써??”

“6층이 며칠 전 아니었어? 그런데… 누가 공략 시도한다는 말이 있었나?”

여기은은 당장 밖으로 나갔다. 그의 비서와 길드원들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그럴 리가 없어. 누가 들어간 거야!”

“그, 방금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CCTV가 훼손되어 확인하는데 시간이 걸렸지만, 4인조 괴한이 지금 안에 들어가 공략을 시작했다는……!”

“그게 몇 시간 전인데! 그걸 이제 와서 보고하면 어떡해?”

“2, 20분 전입니다.”

“뭐?”

20분 전이라고? 그렇다면 4인조 괴한은 포세이돈 7층에 있는 다섯 개의 던전을 각각 4분 만에 처리한 셈이 된다.

“누구지?”

인간인가, 인어인가? 아마 둔갑한 인어일 확률이 높았다. 제기랄, 빌어먹을 놈들!

“저번 경매장에서 만난… 그래. 태초도 그 안에 있겠군. 그렇다면 그런 숫자가 이해가 가지.”

여기은은 겉옷을 챙겼다.

“당장 포세이돈으로 가지. 어차피 밖으로 나올 테니까!”

“그, 그게, 지금 그 헌터들이 곧장 8층 공략을 시작했다는 보고가 올라왔습니다!”

“그거 하나를 못 막아?”

“막으려고 했는데 실력 차이가… 턱, 턱없이 차이가 나서 불가능하다고…….”

“무능력한 것들.”

여기은은 속으로 혀를 찼다. 그야 당연하겠지. 상대는 태초다.

“어떻게 해서든 기자보다 일찍 가야 해. 기자들에게 당황한 기색을 보여 주지 마!”

그때 이어 알림이 떴다. 8층 공략 성공 알림인가? 설마 벌써? 그러나 그건 다른 내용이었다. 어쩌면 더 최악일 수 있는 알림.

[놀라운 업적 달성! 단신으로 82%의 공적치를 얻었습니다!]

80% 이상의 공적치를 독차지 하면 울리는 알림. 여기은의 걸음이 멈췄다.

훤하게 뚫린 통유리의 너머, 거대한 전광판이 새롭게 빛났다. 거리를 지나던 사람들이 고개를 들었다.

[공적치를 합산합니다. 랭킹이 변화됩니다.]

1위 권도언―도원

2위 여기은―여례

?

?

?

3위 이데아―샤샤

4위 차현―차현

사람들의 흥분한 숨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았다.

괴담처럼 떠돌았던 이름의 주인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3위라니?’

여기은의 머리가 팽팽하게 돌아갔다. 역시 샤샤는 살아 있었다. 그래. 이건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분명 추측했었으니까.

“하지만 분명 4인조라고 했어. 태초와 샤샤 헌터가… 관련이 있는 건가?”

그래, 가능성이 있었다. 샤샤 헌터는 인어들이 그렇게 찾던 6년 전의 생존자였고, 동시에 인어들의 세계 안에서 죽었다.

죽은 걸로 위장하고 살아 있을 수 있지. 인간을 배신하고 인어들과 협력 관계를 이어 갔을 가능성 또한 존재했고.

“포세이돈으로 가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괴한들을 제압하는 일이다. 괴물들을 우선적으로 풀어.”

“네!”

“그리고 만약 샤샤를 발견한다면…….”

여기은의 눈이 번뜩였다.

“4인조 안에 백리서나 권도언이 있을 가능성 또한 있겠군.”

“네?”

“유의해서 제압한다. 상대는 실력자야!”

◈          ◈          ◈

바뀐 전광판의 숫자. 전 국민이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누군가는 역시 살아 있을 줄 알았다며 탄성을 내질렀고, 누군가는 충격에 그저 신음했다.

그리고 섬 안에 있는 사람들 또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저, 저거 뭐야?”

“샤샤 헌터 랭킹이 올랐어!!”

“단순 오류가 아, 아니었다고?”

모두가 들떠 소리치고 있는 한편, 오직 세연의 얼굴만 창백해졌다. 손에 쥐어진 죽 봉지가 와그작 일그러졌다.

“…….”

“어, 세연아, 어디 가?”

“저, 한지 보려고요. 이거 전달해 주려고…….”

타다닥, 세연은 곧바로 기숙사 안으로 뛰어갔지만 철컥! 설한지의 방 안은 잠겨 있었다. 세연이 다급하게 문을 두드렸다.

“한지야?”

대답은 없었다.

“한지야. 미안해. 지금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나서……. 죽 하나 더 사왔는데, 나 좀 들여보내 줄 수 있어?”

역시 대답은 없었다.

똑똑똑똑. 노크 소리가 빨라졌다.

그때 옆방에서 누군가 삐죽 고개를 내밀었다. 한지와 친해 종종 돌돔을 맡기곤 하는 헌터였다.

“지금 뭐해?”

“한지 여기 안에 있어요?”

“글쎄……? 있지 않을까? 돌돔 나한테 안 맡겼는데.”

그러면 돌돔은 안에서 굶고 있는 건가? 세연은 기겁해서 문을 다시 돌려 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철컥, 문이 열렸다.

“어? 뭐야. 안 잠겼던 건가?”

“그래. 가끔 와서 확인해 주는 친구가 좋지. 어때, 한지 안에 있어?”

그러나 세연은 내부를 보고는 조심스럽게 죽이 담긴 봉지를 안에 내려두었다.

없었다. 돌돔도, 한지도.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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