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식인인어는 죽어야 한다-183화 (183/223)

※ 183화

순간 강당 안이 조용해졌다.

“…배를 타고 나가려고 했었어요?”

“교관도, 훈련장도 대부분 없으니까 괜히 무서워서, 나, 나가려고 했던 건 맞아. 하지만 배가 없는 걸 어떡해! 우리는 완전히 이 섬에 고립됐다고!”

“고립은 아닐 거예요. 2주 뒤에 참가했던 사람들이 오잖아요.”

“오지 않으면! 혹은 그 안에 우리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자, 자, 진정하세요.”

“진정하게 생겼어!”

난장판이다. 데아는 강당을 뒤로하고 홀로 나왔다. 텅텅 빈 복도에 발걸음 소리가 울려 퍼졌다.

뚜르르… 뚜르르…….

―네? 데아 씨?

“물어볼 게 있는데… 옆에 백리서 있어요?”

◈          ◈          ◈

걱정과 다르게 누군가가 바로 섬을 침략하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변수가 생겼다. 7층에 공략권이 바로 나온 것이다.

“3일밖에 안 지났는데… 벌써 나왔다고?”

평소 3~4주 텀이 있었던 것과 비교하면 압도적으로 빠른 속도였다.

“이거 혹시…….”

“맞는 것 같네요.”

요즘 섬의 사람들은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잔뜩 예민해진 사람들이 회의를 하는 강당으로 몰려들었다.

“한 번 더 기회를 주, 주려는 거 아닐까요?”

맞을 거다. 한껏 불안감을 조성해 놓고 너그럽게 공략권을 앞으로 당겨 주었다. 지금이라도 모든 의심을 거두고 유일한 증인, 양철민에게 등을 돌린다면 모든 죄를 사해 줄 것처럼.

하지만 데아는 그들의 희망에 초를 쳤다.

“그런데 그거 다 거짓말일 거예요. 여기 참여해도 살진 못해요. 6층 공략에 간 헌터들도, 7층에 공략 갈 헌터들도.”

“뭐?”

“어?”

“잘 생각해 봐요. 양철민 말에 따르면 저 살인자들은 심증만으로 1,200명을 말살시킨 놈들이에요. 그런데 기밀 사항을 똑똑히 들어버린 500명을 살려 준다? 우리가 양철민 목을 잘라 섬에 효수해도 소용없을걸요. 이미 우리는 들었으니까요.”

사람들이 다시 침울해졌다. 물론 믿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런데 왜 공략권을 앞으로 당겨 주겠어?! 6층 공략은, 아무 이상 없이 클리어 됐잖아!”

“아마 7층 인원들도 무사히 나올 거예요.”

“그래, 그런데 왜.”

“문제는 8층부터죠.”

데아는 바닥에 깔린 종이에 죽 선을 그렀다.

“자, 눈치를 살피며 6층과, 7층에 참여한 헌터들이 8층을 거부할 수 있을까요? 아니죠. 아마 대부분의 인원들이 8층에 그대로 쭉 올라갈 거예요.”

펜이 수직선을 그었다. 8층에 가서 멈췄다.

“그래요. 어쩌면 여기서도 운이 좋을 수 있어요. 어쨌거나 MBL이나 대형 길드들은 대중들의 눈치를 살피니까요. 그렇다면? 이쯤에서 9층의 난이도가 지옥이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할 겁니다.”

펜이 또 올라갔다. 9층에 붉은 표시가 찍찍 그어졌다.

“그리고 이변 없이 헌터들은 9층에 참전하게 되겠죠. 그럼 끝이에요. 여기서 우리는 다 전멸해요. 10층, 11층, 12층, 13층, 14층, 마지막 15층에서까지. 우리가 죽을 수 있는 기회는 많으니까요.”

“자, 잠깐. 우리를 정말 죽일 작정이라면 여기서도 다 죽일 수 있지 않아? 이 섬에서! 그런데 굳이 우리를 포세이돈까지 끌어와서 죽인다고? 너무 번거로운 짓이야. 그런 짓을 왜 해?”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는데…….”

데아는 강당의 창문을 죄다 열었다.

한때 한적한 무인도였다고는 믿을 수 없는 근사한 시설들과 건물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곳에서 싸움이 붙으면 필연적으로 섬이 망가질 텐데, 아까운 거 아닐까요? 이 섬을 지원한 것도 여례아 주도라면서요?”

“잠깐, 여례아는 왜…….”

“MBL 연구소랑 여례아랑 협업 관계인 거 몰랐어요? 둘이 한패예요.”

그래서 일전에 여례아 소속 헌터들이 앞장서서 선동한 것도 그 탓일 거라며 데아는 대충 설명했다.

“7층 공략 정확한 날짜는 언제예요?”

“지금으로부터 사흘 뒤야. 사흘 뒤 오전에 출발한다.”

“아하…….”

그렇다면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이틀뿐이로군.

“젠장, 그러면 어떻게 하라는 거야?! 7층에 가도 죽고, 8층에 가도, 앞으로 계속 포세이돈에 가면 죽을 텐데!!”

“저야 모르죠. 누군가…….”

누군가? 모두의 시선이 데아에게 쏠렸다. 데아는 장난스럽게 웃었다.

“누군가 몰래 한꺼번에 다다다 클리어해 주면 괜찮지 않을까요?”

“넌 지금 이 상황에 농담이 나오냐?”

양철민이 빈정거리고 사람들이 웃었다.

유일하게 웃지 못하는 사람 둘. 배협과 연가을을 제외하고.

“아 맞다. 세연아. 내가 오늘 산에서 산책하다가 뭘 떨군 것 같거든? 오늘 밤에는 그거 찾으러 갈 건데 혹시 내가 안 보여도 찾지 마.”

“뭐어? 같이 찾을까?”

“아냐. 나만 알아볼 수 있는 거야.”

“조심해. 혹시 이상한 사람이 공격하면 어떡해.”

“괜찮다니까.”

당연히 괜찮을 것이다.

“저는 이만 나가 볼게요.”

데아는 배협과 연가을에게 꾸벅 눈인사를 하고는 일어섰다. 아직까지 7층에 참여하느냐 마느냐로 아웅다웅거리는 사람들의 소리가 아스라이 멀어졌다.

결국 다 쓸모없는 걱정들이었음을 지금은 모르겠지.

우웅― 우웅―

때마침 전화가 왔다. 데아는 기숙사에서 캡 모자와 품이 넓은 검은 후드 티, 트레이닝 바지를 걸쳐 입고는 휴대폰 하나만 달랑 들고 밖을 나섰다.

“여보세요?”

―네. 준비됐어요?

“묘하게 기뻐 보이네요, 길드장님.”

권도언이 해맑게 웃었다.

―당연하죠. 오랜만에 보잖아요.

“…경매장에서도 본 걸로 기억하는데.”

―아, 그 이상하고 감각도 없는 가면으로 가려진 얼굴 말이죠. 그 가면은 정말 최악―

턱!

―주군. 여파 54층에 오십시오.

“어 응. 알았어.”

아무래도 도중에 권도언이 휴대폰을 빼앗긴 것 같은데…….

데아는 주변을 확인하고는 주욱, 게이트를 열었다. 하얀 입이 벌어지고, 데아는 거침없이 뛰어들었다.

◈          ◈          ◈

“어. 어. 나? 지금 퇴근하지. 약속 없어. 그런데 피곤해서 이만 들어갈 거야…….”

서울 종로에 위치한 023길드. 멀리 떨어지지 않은 펜트하우스가 바로 차현의 거처였다.

차현은 오늘도 여러 가지 수난을 겪고 지친 몸을 이끌어 퇴근했다.

“그러게… 여례아 쪽에서는 아무 말 없는데……. 그놈들 생각을 읽을 수가 있어야지. 응. 그래. 너도 곧 퇴근해. 오늘 수고했어.”

023의 지하주차장. 차현은 삑, 차키를 누르곤 운전석에 올라탔다. 그리고 후, 한숨을 쉬고는 이어 말했다.

“뭐, 전광판? 그건 오류라고 해도. 그래. 사실 헌터라면 아무도 안 믿지. 됐어. 그래… 이상 있으면 바로 연락주고. 주말 잘 보…….”

뚝, 차현은 일순 굳었다. 차 안에, 누군가 있다. 그런데 내가 지금까지 몰랐다고?

―길드장님?

“…아냐. 주말 잘 보내.”

뚝! 통화를 끊은 차현은 곧장 백미러를 통해 뒷좌석을 확인했다.

모자와 후드를 겹쳐 쓴 누군가가 있었다.

“누구야.”

“놀라게 해서 미안해요.”

묘하게 익숙한 목소리. 차현의 눈이 거침없이 떨렸다. 갑작스럽게 차에 잠입한 괴한의 목소리가 익숙하다니.

잠깐만, 설마…….

“태초?”

“네.”

“왜…….”

인어들의 신이 왜 차 문을 따고 들어오는 좀도둑 짓을 한단 말인가.

차현은 곧장 기척을 살폈다. 이 주변에는 태초 혼자밖에 없었다.

“뒤에 있으니까 더 불안하죠. 미안해요. 앞으로 갈까요?”

“네, 뭐, 뭐?”

쑥, 그때 태초가 발을 먼저 앞으로 쑥 뻗더니 조수석에 털썩 주저앉았다. 때가 탄 하얀 운동화와 회색 트레이닝 바지……. 신적인 존재치고는 꽤나 캐주얼하다.

“아, 밖에서 만나면 먼저 저만 두고 출발해 버릴 것 같아서요. 이렇게 왔는데…….”

“왜 여기에 있는 건가요.”

차현은 단번에 말을 잘랐다.

“어 음… 할 말이 있어서요.”

태초는 주섬주섬 뭔가를 꺼내더니 턱, 차현의 손에 쥐어주었다. 초콜릿이었다.

“일단 이렇게 등장해서 놀라게 한 건 먼저 사과할게요. 그런데 어쩔 수 없었어요. 대화는 반드시 해야 했거든요.”

“…네.”

“차현 길드장님. 전에 저를 도와주신 적이 있었죠.”

“…….”

“왜 그러셨어요?”

냠. 태초는 본인도 초콜릿을 하나 까먹었다.

차현은 불시에 얻어맞은 사람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왜, 왜 그랬냐고? 그야…….

“내가 더 옳다고 생각해서?”

“그건…….”

정곡이었다.

당장 자신의 이익을 위해 수많은 목숨을 사지로 밀어 넣는 여기은보다, 하급 인어 몇 마리를 구하기 위해 사지를 뛰어드는 인어들의 신이 더 눈부셔 보였으니까. 세상에 정의가 있다면 그가 더 가까웠으니까.

차현은 스스로가 비겁한 위선자이자 방관자임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괴로워했다.

그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우리들에겐, 그런 신은 없으니까요.”

“…….”

“여기은을 안 좋게 보는 저조차도, 위협을 느끼면 뒤로 빼는 비겁한 사람이니까요. 그래서 당신을 신으로 가진 인어들이 처음으로…….”

조금 부러웠다.

동시에 그도 태초에 대해 더 알고 싶었다. 그는 누구길래 강한 힘을 가지고도 당당하게 약자의 편을 들 수 있는가? 어떻게 저렇게 자유롭게 난장을 칠 수 있지? 역시 강한 힘이 원천인가?

차현은 진지했는데 태초는 웃고 있었다.

“…제 말이 재밌으신가요.”

“조금요. 전 그렇게 성인 같은 사람이… 아니, 인어가 아닌데.”

“…하아.”

“그보다 조금 안심했어요. 다행히 길드장님은 여전하시네요.”

‘여전?’

그때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차현은 불현듯 고개를 돌렸다. 가볍게 웃던 태초가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몇 가닥 튀어나온 머리카락의 색은 하얀색이었다.

“저는 5년 전에 납치를 당했었어요. 순식간이었죠.”

태초는 과거를 더듬었다. 언뜻 보이는 턱이 어쩐지 익숙했다.

“위급한 상황을 헤쳐 나갈 방법도, 체력도 없어 바위 뒤에 숨어만 있었는데… 기적처럼 조력자들이 모이더라고요. 신호탄도 그중 하나였고.”

“신호탄…….”

차현의 눈동자가 거칠게 떨렸다.

5년 전, 납치, 신호탄.

차현은 그날이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턱, 그때 태초가 차현의 손을 확 잡아 눌렀다.

“!”

“차현 길드장님이 여기은의 계획을 전부 알고 있었지만, 말하면 023 길드와 길드원들에게 해를 끼칠까 봐 말해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어요. 그렇지만… 그걸로 탓할 생각은 없어요. 결국 위험을 무릎 쓰고 도와주셨으니까.”

“…….”

“하지만 그 일을 두 번 다시 반복하지는 마세요. 저는 지금 기회를 주고 있는 거예요.”

“당신, 설마…….”

“결국은 선이 되고 싶으시잖아요. 모두가 안 된다고 해도 되는 마지막을 보여 주고 싶으시잖아요.”

지하주차장에 또 다른 차가 부앙 들어왔다. 헤드라이트가 차현의 차를 스쳤고, 동시에 투명한 눈동자가 반짝 빛났다.

“그러니까 내가 주는 기회를 잡아.”

아.

차현은 패닉에 빠졌다.

태초가 모자를 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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