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2화
당연히 반박이 들어왔다. 그러나 배협은 자신만만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2층 기억나나? 나는 아직도 기억해. 몸만 이상하게 큰 괴물들이 헌터들을 다 공격했었어. 그건 분명 두 발 달린 인간이었다고.”
“그것만으로는……!”
“또, 포세이돈 안에서 바다를 본 적 있나?”
바다는 인어들의 영역지. 바다에서 멀어질수록 ‘진짜’ 인어들은 뭔가를 알아채기 어려워한다.
“잠, 잠깐! 이거 설마, 포세이돈이 정말 인간들이 만든 인공 던전이고, 진짜 인어들 몰래 만들어야 했기에, 바다에서 멀리 떨어뜨려 놓은… 그런 거였다는 겁니까??”
“일리가 있지.”
“미쳤어. 완전히 미쳤어! 그럴 리가!!”
“아니요. 가능성 있어요.”
그때 석파란이 휴대폰을 들어 화면을 보여 주었다. 포세이돈이 생기기 전, 바닥을 향해 기어가던 모든 대형 길드들의 치솟은 붉은 주가였다.
“이것도 보세요.”
석파란은 슉슉, 화면을 넘겨 온갖 기사를 보여 주었다.
“어느 현상이 이상하다면 의심해야 해요. 그리고 그 범인을 찾으려면, 사건이 일어나 가장 큰 이익을 얻은 사람을 찾아야 하죠. 그자가 바로 원인이니까.”
“…….”
“실제로 우리가 알던 게이트는 5년 전에 없어졌어요. 샤샤 헌터와 함께였죠. 인어들이 찾던 6년 전 생존자가 정말 샤샤 헌터였으니까 당연했죠. 인어들은 약속을 지켰어요.”
꽈악, 불현듯 데아의 주먹이 쥐어졌다.
“하지만 5년 뒤에 포세이돈이 생겼어요. 이상하지 않아요? 왜 갑자기 탑 형식 게이트인데요?”
“한자리에 게이트가 몰려 있어야 관리하기 편하니까.”
그 말은 세연에게서 나왔다.
데아는 수저를 떨궜다.
‘세연아……?’
“그 덩치 큰 사람들은 저도 봤어요. 2층에서요. 그곳에서 갑자기 도망치던 한 사람을 보았죠. 지금 생각해 보면, 연구원이 아니었나 싶은데…….”
데아에게 잡혀 도망치다 자폭해 버린 2세대 인어를 오해하는 듯싶었다.
“지금 포세이돈이 정상적인 곳이 아니라는 건 확신해요.”
“너무 넘겨짚는 거 아닌가?”
“넘겨짚는 건 그쪽이지. 왜 자꾸 길드를 믿으려고 해?”
“환각, 환청이면 말 다했지. 보아하니 양철민 성격도 원래 별로잖아요. 그런 이상한 애 말을 다 들어 주지 말자고요―!”
토론은 싸움이 되었고, 곧 난장판이 되었는데, 그중에서 유일하게 한 사람만 조용했다.
“…….”
표정이 좋지 않은 연가을이 묵묵히 음식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 ◈ ◈
그날 저녁, 데아는 전서를 받았다. 발신인 피파글랜.
[안녕하세요 주군. 오늘도 어김없이 파도가 아름다운 날이네요. 주군이 인간계가 아니라 이곳에 계셨어야 했는데 말이에요. 곧 이곳에서는 축제가 열린답니다. 해마다 열리는 축제라 모두 들떠 하고 있어요. 역시 주군이 이곳에 계셨어야 했는데 말이에요…….]
“얘는 여전히 서론이 너무 길어.”
[…최근에 이상한 흔적을 찾았는데, 저희들의 세계 안에선 처음 발견된 마력 흔적입니다. 인어의 것과 매우 유사하지만 묘하게 불쾌한 흔적이었습니다. 마치 주군의 능력을 흉내 낸 듯한…….]
“내 마력을 흉내냈다고……?”
[…그런 조잡하고 형편없는 능력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마력으로 게이트가 열린 흔적이 있기에 유의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인간들이 드디어 칸나니아의 힘이 아닌 자력으로 게이트를 여는 데 성공했나 보죠? 칸나니아가 버려질 날이 머지않았군요.]
“…….”
인어의 힘을 빌리지 않고, 오로지 인간들이 게이트를 연다……. 그건 비상사태였다. 언제 어디서 침입자가 쳐들어올지 모른다는 말이었으니까.
[그렇다고 해서 이곳에 급하게 오지 마세요. 혹시 모를 상황이 닥쳐온다면 제국은 제가 지키겠습니다. 아직 급한 건 절대 아니니까요.]
그 후로 몇몇 문장이 이어지다가 편지가 끊겼다. 데아는 침묵했다.
인간들이 자력으로 게이트를 만든다……. 그 능력을 가진 이가 하나일지, 여럿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혹시 그 괴물들이 다… 게이트를 만들 수 있는 건 아니겠지?
마력을 제한하며, 바다를 다루는 괴물들. 거기에 게이트 능력까지 추가된다면 그건 정말 병기에 가까웠다.
그러나 피파글랜은 분명 이번에 ‘처음’ 발견된 흔적이라고 했다. 괴물들이 아닌 걸까? 아니면 그 능력이 새롭게 추가된 걸까?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네?”
데아는 곧장 백리서에게 관련 내용을 전달했다. 인내심이 간당간당 한계에 다다랐다.
◈ ◈ ◈
“저게 오류가 아니었으면 좋겠어.”
데아는 세연과 함께 양철민을 보러 갔다.
보건실에 누워 있는 그는 데아를 보고 인상을 찌푸렸지만 하급 이동 스크롤에 대한 감사를 전했다.
“진짜 샤샤 헌터가 여기 있었으면 좋겠어.”
양철민은 창문 밖, 우뚝 보이는 전광판을 보고 있었다. 4위 샤샤. 데아는 괜히 입술을 축였다.
“도와주지 않을까? 3층, 이상하게 다들 기운이 넘쳤잖아. 그거 만약 샤샤 헌터 덕분이라면, 우리를 적대하지는 않을 것 같아서…….”
그 후로 며칠이 지났다. 수많은 사람들이 양철민을 찾아왔다. 누군가는 거짓말쟁이라며 대놓고 모욕했고, 누군가는 환각과 환청을 빌미로 조롱했다.
여전히 그를 믿는다며 응원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는 며칠 만에 빠르게 초췌해졌다.
“도와줬음 좋겠어……. 무서워. 여기까지 분명 올 거야. 여기까지 죽이려고 그 괴물들이 올 거야…….”
양철민이 덜덜 떨었다.
“사람들은 몰라. 만나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전혀 몰라……. 그, 그 헌터들, 사실을 숨기려는 헌터들은 우리를 같은 인간으로 안 봐. 내가 배에서 떨어지고도 보, 보고만 있었어. 총으로 쐈다고… 같이 도망쳤던 사람들, 다, 다 죽었을 거야.”
6층의 공략권이 내려왔다.
양철민의 말을 믿지 않는 자들은 직접 가겠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그중에는 여례아 소속의 상급 헌터들이 다수 섞여 있었다.
“쟤네들… 위에서 지령이 내려온 것처럼 행동하고 있어.”
그러나 상급 헌터의 의견은 곧 주류 의견이 되었다. 이윽고 6층 공략에 참가하지 않는 헌터는 대형 길드에 반기를 들고, 정신 이상자의 말을 믿는 헌터로 낙인 찍혀졌기에 대부분의 헌터가 6층에 참가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다시 봐도 어이없는 상황이었다.
“죽으려고 환장했어?!”
“하지만, 여기서 안 가면… 나중에 대형 길드로부터 불이익 받으면 어떡해?”
“그것보다는 목숨이 중하지!”
“잘 봐봐. 6층에는 게이트가 하나래. A급 헌터님들도 잔뜩 가잖아. 안전할 거야…….”
또 배가 떠났다. 섬 안에 남은 사람은 불과 100명 남짓이었다.
어쩌면 가는 게 나았을까? 섬 안에 있는 100명의 헌터들은 정말 완전히 여례아와 MBL의 눈에 난 헌터들일 것이다.
거름종이에 걸러진 불순물은 버려야 한다. 그것처럼 이 섬사람들을 없애기 위해 곧 공격이 올 거라는 근거 없는 예감이 들었다.
그러나 데아가 인간계에 와서 친해진 대부분의 헌터들은 남아 있는 걸 택했기에 데아 또한 가지 않았다.
“잠깐 대화를 할 수 있을까요?”
여례아 소속 헌터 중, 유일하게 섬에 남아 있기를 선택한 연가을이 데아를 찾아왔다. 데아는 곧장 아무도 없는 곳으로 그를 잡아끌었다.
“이상하다 생각하고 있었어요. 태초 님이시라면, 포세이돈 안에 들어가면 게임 끝일 텐데, 왜 쉬운 길로 가지 않을까 생각했거든요. 처음에는 아, 그냥 인간들 눈에 띄는 게 싫어서 그러셨구나 싶었는데…….”
“…….”
“그냥 마음대로 막, 할 수 없었던 거네요. 포세이돈은 자신의 영역 밖의 구역이었으니까. 인간들이, MBL연구소에서 만든 인공… 던전이었으니까.”
MBL 연구소. 만나고 싶지만 만나기 싫은 연가을의 언니 정소진이 소장으로 앉아 있는 연구소.
그러나 연가을은 이미 생각 정리가 다 끝난 얼굴이었다.
“어느 정도는 맞아.”
“역시네요.”
“포세이돈의 존재 자체가 우리에게 피해를 주니까. 자잔도 구할 겸, 이참에 완전히 없애버리려고 하고 있었어. 가장 쉬운 방법? 당장 쳐들어가서 칸나니아와 관련자들을 몰살시키는 거야. 증인이 있다면 증인도 죽이고, 협력자도 죽이고, 의심을 품는 자들도 모조리 죽여서 복수의 싹을 없애는 게 가장 쉬워.”
실제로도 한 번 했었다. 먼 과거, 태초는 대륙을 불살라 인간을 없앴다. 그리고 그날 태초는 깨달았다. 이런 방법은 두 번 다시 해선 안 된다는 걸.
영혼이 먹히는 기분이었다. 내면의 거친 파괴 욕구가 눈을 뜨고, 사납게 이를 드러냈다.
일방적인 학살은 이리도 통쾌했다. 그리고 태초는 자신을 마중 나온 권속들을 보고 생각했다.
‘저 애들도 똑같이 죽을까?’
그때 정신을 차렸다. 방금 내가 무슨 생각을 한 거지?
통치자와 폭군, 선인과 광인, 인어와 괴물은 한 끗 차이다. 태초는 스스로를 갈무리했다. 이런 일들이 반복된다면 자신은 변할 것이다. 그럴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는 안 해. 너무 야만적인 방법이야. 내가 원하는 건, 칸나니아를 회수하고 포세이돈을 없애고, 모든 설계도와 도면을 부수는 거야. 그렇게 추후 그 어떤 문제가 재발되지 않도록 싹을 없앤 다음…….”
데아의 눈이 먼 곳을 향했다.
“조용히 사라지는 거야, 이곳에서.”
“…….”
“그러기 위해선 협력이 필요해.”
인간이 인어에게 우호적일 필요는 없다. 그러나 인간들이 나서서 인어를 공격하지 않을 정도는 되어야 했다. 더불어 사해의 미친 신이라는 오명도 좀 벗고.
“그런데…….”
“네?”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네.”
데아는 어깨를 으쓱했다.
“이번 7층 공략권 나오면 참전해야겠다…….”
“아, 그러면 저도…….”
“아니. 나만.”
“네?”
데아의 눈이 서늘하게 빛났다.
“동시에 연구소도 털고. 가만히 있으려니까 좀이 쑤셔서…….”
◈ ◈ ◈
새로운 소식이 들려왔다. 바로 6층 공략이 성공했다는 소식이었다. 그것과 별개로 그곳에 참여한 헌터들은 그 어떤 이상 현상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연락을 넣었다.
―출구는 제시간에 떴어요. 다른 이상한 점도 없었고요. 난이도는 조금 있었지만 그뿐이었고……. 제가 말했죠. 그 양철민이라는 이상한 애 말 다 듣지 말라고.
“아, 그렇구나. 그래 알았어. 오늘 공략하느라 힘들었을 텐데 푹 쉬고, 일주일동안 그곳에 있다가 섬으로 오는 거지?”
―아, 아니요! 저희 6층 수고했다고 휴가 시간을 일주일 더 늘려 주셨어요. 저희는 2주 뒤에 갑니다. 하하.
“…그래?”
―네… 가서 뵈어요!
뚝, 전화가 끊긴 강당 안은 고요했다.
“방심시키려는 전략이네요.”
“그, 그렇지?”
“당연한 거 아니에요? 이렇게 의심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누가 덥석 증거를 보여 줘요.”
“그렇지…….”
“그나저나 7층 공략권이 또 내려올 텐데…….”
“저기! 잠깐만!!”
그때 강당 문이 열리고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들어왔다.
“왜 그래요?”
“큰일 났어. 그, 이상한 낌새가 느껴져서, 아무리 아니라고 생각해도 느낌이 이상해서 밖에 나가 봤거든?”
그의 눈에는 공포가 들어차 있었다.
“밖, 앞쪽 항구에, 뒤쪽 항구에도 배가 없어. 어제까지 많았는데! 그 많던 배가 하루 만에 싹 사라졌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