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1화
교관들이 섬에 온 순간부터 직감했다. 저것들은 감시역이다.
“야, 말도 안 돼. 거짓말하지 마,”
데아는 일부러 바람을 잡았다.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하나도 안 믿는다고 웃어 댔다.
“왜, 왜, 안 믿어 주는, 거야……?”
“네가 말이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으니까 그렇지. 꿈 꿨어? 제정신이 아니구나?”
제발, 제발, 이렇게 믿어 주라. 목격 하나 했다고 천 명이 넘는 사람들을 죽인 사람들이 이 섬 인원 500명을 못 죽일 것 같아? 이건 그냥 웃고 넘어가는 게 나았다.
역시나 데아의 말을 들은 교관들이 상황을 더 주시하고 있었다.
“여러분 이상하지 않아요? 양철민 얘 어디 아픈가 봐! 보건실로 데려갈까요?”
“한지야, 말을 너무 심하게 하는 구나.”
미친, 지금 누구를 위해서 이딴 연기를 하고 있는데!
“일리가 있어. 요즘 도는 소문도 있잖아.”
“맞아요. 출구가 안 나온다고……. 그리고 5년 전에 공략한 사람들은 알 테지만 솔직히 예전 게이트에 비해 ‘포세이돈’이 이상한 점이 많은 건 사실이에요.”
아 제기랄, 이미 늦었다. 교관들의 눈이 다시 가라앉았다.
“5층 공략됐으면 지금쯤 나왔을 텐데, 우리, 우리 형이 정말로 연락이 안 돼요!”
“한지야. 철민이는 바닷속에서 발견됐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아.”
내가 지금 너네 살리려고 쇼를… 아, 아니다.
데아는 방법을 바꿨다. 교관들의 휴대폰을 지금이라도 다 뺏어서 협박한 다음 아니라는 정정 연락을 넣는 거다. 그런데…….
“어디 갔어?”
그 많던 교관들이 눈 깜짝할 새에 다 사라져 있었다. 있는 건 안절부절못하는 자잔뿐이었다.
데아는 곧 다가올 피비린내를 맡았다. 태풍이 부는 새벽, 거친 풍랑이 몰려오고 있었다.
◈ ◈ ◈
백리서는 1,200명의 헌터들이 포세이돈에 들어가기 전에 급한 연락을 받고 여파로 돌아간 상태였다. 태풍은 멈출 줄은 몰랐고, 비도 끊임없이 내렸다. 모든 날이 흐렸다.
“교관님들이 정말로 다 없어……. 아무도 안 계셔.”
세연이 허망하게 중얼거렸다.
“한 명 있잖아.”
“아. 그 잘생긴 교관님……. 그런데 그 교관님은 방에서 안 나오잖아. 말도 못하시는 분이고…….”
교관들이 철수했다. 이건 즉 이 섬을 확실하게 죽일 예정이라는 신호였다.
‘자잔에게 결국 찾아가야 하나. 눈에 뭐가 설치되었는지 확인부터 해야 하는데……. 잠깐, 눈만 피하면 되는 거 아닌가?;
“한지야, 어디에 가?”
“양철민 병문안.”
“아, 보건실에 있을 거야!”
데아는 병문안을 가는 척하면서 몰래 방향을 틀어 섬의 위쪽으로 달렸다. 그곳에는 교관들의 숙소가 있었는데, 지금은 다 빠져서 그런지 건물이 황량하기 짝이 없었다.
뚜벅, 뚜벅, 뚜벅.
온 복도가 고요했다. 데아는 일부러 맹한 표정으로 기척을 쫓았다.
203호. 여긴가?
“저… 교관님? 여기 계세요?”
노크를 하자 맞은편에서 똑똑 누군가가 노크를 했다. 자잔이었다. 그러나 문은 열리지 않았다.
“…교관님? 여쭙고 싶은 게 있어서 왔는데요.”
똑똑, 다시 문을 두드렸지만 똑똑, 안쪽에서 노크가 왔을 뿐 문은 그대로였다.
“…….”
누가 자잔한테 사람 있단 뜻으로 노크하는 거 가르쳤어? 그건 공중화장실에서나 통용되는 신호라는 건 혹시 안 알려 준 건 가?
‘뭐… 됐다.’
자잔은 문을 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눈과 관련이 있는 거겠지.
데아는 가만히 문에 손을 대고는 속삭였다.
“자잔. 나야.”
문 너머에 있는 인기척이 움찔 떨렸다. 호흡이 가빠지고, 심장 박동이 빨라지는 게 느껴졌다.
“들어가도 돼?”
―샤, 샤샤? 여기 있었어, 정말로?
“응.”
―오지 마.
“왜.”
―칸나니아가 내 눈에 뭔가를 심었어.
역시.
―그런데 그게 뭔지를 모르겠어. 내 눈에 뭔가를 넣은 건 확실한데 뭔지를 몰라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폭발할 수도 있는 거 아니야?
“어…….”
데아가 대답을 못하고 있자 자잔이 울먹였다.
―왜, 왜 대답을 못해…….
“아니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서…….”
―…….
“아냐. 그래도 그럴 가능성은 적을 거야…….”
―샤샤… 목소리에 확신이 없어…….
“…일단 지금은 서로가 안 보이잖아? 이러고 대화해. 어차피 여기에는 너 말고 아무런 기척이 안 느껴지니까.”
그때 철컥, 문이 열렸다. 그 안에는 비상 붕대로 눈을 칭칭 감은 자잔이 있었다.
“…네가 묶은 거야?”
―응. 방금 묶었어.
“그래 잘했어. 일단 들어갈게.”
방 안은 한적했다. 뭐야, 우리 기숙사 방보다 더 좋잖아?
“방에 TV도 있네.”
―응. 그런데, 샤샤, 나는 안 보려고 했는데, 역시 이 섬에 있었다는 건… 변장을 한 거지?
“당연하지.”
삑, 데아는 TV를 켰다. 뉴스가 흘러나왔다.
―포세이돈 5층 공략이 성공했지만, 바로 나타난 인어들의 공격으로 인해 모든 헌터들이 전멸했습니다. 해당 인어의 특징은 환각과 환청으로, 이에 길드 여례아와 MBL 인어 생체 연구소에서는 더 자세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환각과 환청이라…….”
이로써 양철민의 말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분명히 나오겠군.
“자잔. 네가 끌려간 직후의 일들을 말해 줘.”
백리서에게 연락할 게 더 늘었다.
◈ ◈ ◈
“…그래서, MBL에서 진행 중인 물건이나, 이상한 실험작이 있다면 조사 좀 해줘.”
―그 정도야 가뿐하죠. 그런데 주군…….
데아는 자잔의 방에서 나와 홀로 해변을 걸었다. 백리서는 통화음이 두 번 울리기 전에 전화를 받았다.
―이번에 6층 공략권이 곧 나올 예정인데, 이번에도 참전은 하지 않으실 예정인가요?
“음… 글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야.”
―참전하지 마세요.
“왜?”
여전히 흐리고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었다. 해변이 탁한 파란으로 물들었다.
―제가 섬으로 다시 돌아가려고 했는데, 이상하게 절 막아 세우더라고요. 섬과 헌터의 관리자들이.
“관리자들이? 그거 다 여례아 소속 아니야?”
―대부분은 그렇죠. 느낌이 이상해요. 그러고 보니 그 곳에는 별일이 없었나요?
데아는 양철민에 관련된 말을 해주었다.
―아, 역시. 그렇다면 조만간 그 섬이 위험해질 수도 있겠어요.
“그래도 나는 여기 남을게. 여기에 있어야 이곳 사람들에게 신뢰를 받으니까.”
―그렇군요. 저는 무조건적으로 주군의 뜻에 따를 겁니다. 다만.
백리서는 잠시 침묵했다.
―그 옆에서 제 의무를 다 할 수만 있게만 허락해 주세요.
내가 하는 온갖 위험한 일은 결국 나의 뜻이니 말리지 않겠지만, 나와 함께 싸울 수 있게 해달라는 뜻이었다.
데아는 푸하하 웃어버렸다.
“그래. 일단 무리하게 여기 들어오려고 하면 의심받으니까 우선은 그곳에 있어.”
―…….
“이 500명도 안 되는 헌터들에게 어떻게 하는지 먼저 보고 뒷일을 판단해야겠어.”
데아는 고개를 들었다. 우뚝 선 전광판이 보였다.
높게 올라간 랭킹표. 어디든지 볼 수 있는 거대한 전광판의 4위에 있는 건 자신의 이름이었다.
4위 이데아―샤샤
칸나니아와 손을 잡은 몇 인간들은 샤샤가 이 섬 안에 있다는 걸 알 것이다. 칸나니아가 다 말했다면 샤샤가 태초라는 것까지 알겠지. 그런데도 이 섬으로 공격을 가할까?
“태초를… 과대평가하고 있을지, 과소평가하고 있을지…….”
한낱 인간들의 죽음은 그냥 방관해 버리는 태초로 알고 있을지, 모르는 인간을 살리고자 살신성인하는 태초로 알고 있을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지만 확실한 건 데아는 둘 다 아니었다.
“난 그냥 너희들이 웃는 게 싫어.”
나를 배신하고, 나를 우습게 여기고, 감히 포세이돈으로 도전장을 던진 그들이 웃는 걸 보기가 싫을 뿐이었다.
그렇다면 그들이 기뻐하고 안심할 법한 일들을 원천 차단하는 것이 옳았다.
◈ ◈ ◈
“와아… 여기 분위기 왜 이래요?”
“뉴스 봤나? 그것 때문이지 뭐…….”
교관은 사라졌지만 우습게도 식사는 계속 나왔다. 데아는 세연과 같이 식당에 가 밥을 먹으며 주변에 귀를 기울였다.
“…그래, 이상하다니까. 연구소의 마크라니, 환청 환각의 여파가 분명해. 양철민 헌터, 쟤 이상하다니까.”
“나도 그렇게 생각해. 양철민은 고작 D급 헌터인데 홀로 던전 밖으로 나온 것 자체가 이상하다니까..?”
“그래그래. 소문은 다 지라시야. 애초에 이 판에는 다 출처 없는 헛소문이 난무하니까. 아무래도 충격에 정신이 좀 이상해진 것 같지?”
역시나군.
느낌상 절반 정도일까? 아냐. 더 많은 수의 인원들이 양철민의 증언을 의심하고 있었다.
초반이었다면 데아는 이 상황을 부추겼을 것이다. 이런 여론이 대세가 되어야 뒤늦게나마 이 섬을 없애버릴 의견이 철회될 것 아닌가.
‘하지만 이미 늦었어.’
교관들은 철수했다.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잔뜩 쌓여 있는 배 또한 한 척 두 척 사라지고 있었다. 그들은 우리를 죽이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불신하는 분위기는 협력에 악영향을 끼친다. 아무래도 언제 한 번 선동을 해야 할 것 같은데…….
그때 다른 곳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환각은 무슨 환각! 때맞춰 뉴스가 나온 거 보면 모르겠냐? 저거 다 묻으려고 수 쓴 거잖아!”
배협이 쩌렁쩌렁 소리를 질렀다.
“보고도 모르겠나? 다들 기억나는 장면 있지 않아! 4층에서, 보스 인어가 우리를 공격할 때, 웬 하급 인어가 나와서 우리를 도운 거. 기억나지?!”
“어, 그건 그런데…….”
“이게 뭘 의미하는지 아나? 그건, 포세이돈 안에서 출몰하는 인어와 진짜 바다에서 헤엄치는 인어가 서로 적대하는 거라고! 포세이돈에서 연구소 마크를 단 가짜 인어와! 진짜 인어는 다르다― 이거지!”
‘와, 저렇게 핵심을 간파한다고?’
그때 배협과 데아의 눈이 마주쳤다. 배협이 자랑스럽다는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뭐야, 저 눈……. 마치 충실한 신하가 ‘저만 믿어 주십시오.’ 하는 것 같았다.
데아는 물만 연신 들이켰다.
“말도 안 돼! 그 말을 책임질 수는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