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식인인어는 죽어야 한다-177화 (177/223)

※ 177화

‘너그러운 조력자… 설마 그럴 리가.’

데아는 고개를 저었다.

‘아냐. 그래도 불가능해. 애초에 그 힘은 남에게 양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하지만 그 마력을 일부 흡수했다면? 애초에 ‘태초’도 인간들의 실험 결과로 나온 존재가 아닌가? 지금 인간들이라고 해서 못 할 이유가 있을까?

“자, 그러면 열세 번째 물품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그건 바로 저 괴물의 ‘마력 감소 현상’에서 일정 시간 동안 자유로울 수 있는 ‘파훼석’입니다!”

“그게 왜 있는 거요? 인간에게는 안전하다고 했잖아!”

“자, 진정하시고 제 말을 들어 보십시오.”

사회자가 좌중을 훑었다.

“안전하지만, 물론 ‘일반인’기준입니다. 우리 헌터님들의 마력은 일정 부분 감소할 수 있습니다.”

“뭐, 그런!”

“물론 인어들이 인간계를 침략하는 비상사태가 아니라면 저 실험작들이 쓰일 일도 없습니다. 그리고 저 실험작들은 인어만을 적대할 뿐, 헌터님들을 적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파훼석은 혹시 모를! 만일을 대비한 물품이죠. 애초에 몇 개밖에 나오지 않았답니다?”

그러니까 안전과 불확실성을 빌미로 좀 팔아먹겠다는 소리였다. 데아의 눈이 짜게 식었다.

“자. 사용 방법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굉장히 단단한 돌처럼 보이는 이것은, 실제로는 더! 단단합니다. 맨손으로는 절대 으스러뜨릴 수 없으니 도구를 사용해 깨부수고 바로 효과가 적용됩니다. 대략 5분에서 10분 간, 실험체들의 마력 저하 능력으로부터 자유롭고 인체에도 무해하며…….”

그리고 쭉 설명이 이어졌다. 데아는 조금 김이 빠졌다.

“자, 2천부터 시작합니다!”

“2억.”

“뭐?”

장내가 술렁였다. 이번 물품으로 돈을 벌려는 생각으로 가득 차있던 여기은도, 그 건너편에 앉아 있던 차현도 우뚝 굳었다.

차현이 슬쩍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런 어두컴컴하고 음침한 장소에 나오고 싶지 않았지만 여기은에게 억지로 끌려나온 지 세 시간 째. 저런 별 효용성도 없어 보이는 물건을 2억에 낙찰하는 멍청이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그… 2, 2억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 파훼석은 총 열 개인데…….”

2억을 부른 사람은 9번이었다. 그가 직원을 불러 무언가를 속삭였고, 그 직원은 또 후다닥 달려와 사회자에게 귓속말을 했다.

“열 개 모두 낙찰하신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20억입니다! 자, 20억, 더 나오실 분 안 계신가요?”

데아는 저 멀리 9번을 바라보았다. 저거 권도언이잖아.

‘무슨 꿍꿍이지?’

그때 9번이 데아를 휙 돌아보았다. 그림자 아래 드러난 입가가 시원하게 호선을 그었다. 왜 웃어? 이 상황이 즐거워?

“네. 9번분에게 낙찰되었습니다!”

탕탕, 둔탁한 소리를 마지막으로 물건이 넘어갔다. 데아는 권도언이 즉시 가격을 지불하는 모습을 지켜보다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또 무수한 경매 용품들이 지나갔다. 점차 경매의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조명이 바뀌고, 커튼이 내려앉았다.

“뭐지?”

“어, 설마!”

사회자가 환하게 웃었다.

“드디어 모두가 기대하셨던 물품이 나왔습니다!”

데아의 옆자리에 앉은 남자가 143번 번호표를 땀에 젖은 손으로 꽉 쥐었다. 무대 안쪽에서 끼릭끼릭 소리가 났다.

“저건?”

“세상에!”

헌터와 다르게 일반인은 인어를 볼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애초에 포세이돈 밖으로 인어가 나오지 않아서도 있었지만, 인어가 자주 발견되었던 5년 전에도 일반인들은 대피하기 바빴기 때문이었다.

포세이돈 내부에서 유출된 사진 몇 장과 영상이 전부인 일반인들은 어느 순간부터 인어를 두려워하는 동시에 궁금해했다.

이상하고 아름답고 기이한 종족. 몇 수집가들이 인어를 소유하고 싶어진 것은 당연한 순리였다.

끼익, 끼이익.

두두두두…….

거대한 천이 덮어진 무언가가 무대 중앙으로 끌려 나왔다. 사람들의 얼굴이 환해졌다. 하이라이트의 등장이었다.

“포세이돈 안에서, 훌륭하신 헌터분들이 직접 포획한 하급 인어입니다.”

“하급 인어? 상급 인어는!”

“하하, 그 상급 인어들은 유난히 까탈스러워서 말입니다. 얌전해지려면 시간이 조금 필요하다는군요. 오늘은 곧 나올 하급 인어들로 만족해 주시고, 부디 다음 경매를 기대해 주시길 바랍니다.”

수조를 덮은 거대한 천. 그 안에서 무언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래도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런 끔찍한 모습의 하급 인어가 아니니까요. 완벽하진 않아도 모습도 인간과 어느 정도 비슷하고, 색도 굉장히 아름답습니다.”

쿵!!

그때 수조가 크게 울렸다. 천이 움찔 떨리고, 무대가 조용해졌다.

“하, 하하. 오래 가둬 놔서 화가 좀 났나 보네요. 이제 이 인어의 얼굴을 봐야겠죠?”

“성격이 조금 있어야 제압할 맛이 있는 게 아니겠소!”

관객의 말에 사회자가 웃으며 천을 끌어내렸다.

“자, 물건을 공개합니다!”

차르륵!

잔뜩 겁을 먹은 하급 인어가 모습을 드러냈다.

과연 사회자의 말대로 다양한 색을 가지고 있는 인어였다. 빛을 받은 지느러미가 오색찬란하게 반짝였다.

“오오!!”

“생각보다 괜찮은데……? 관상용으로 제격이겠어.”

어린 얼굴과 완전히 자라지도 못한 꼬리가 연약하게 흔들렸다.

데아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손톱과 이빨이 죄다 뽑혀 있는 저 하급 인어는 태어난 지 5년도 채 되지 않은 어린 개체였다.

“너무 어린 거 아니야?”

차현이 심각하게 중얼거리자 여기은이 비웃었다.

“인어의 나이는 아무도 몰라.”

“척 봐도 어리잖아. 키도 얼굴도 딱 다섯 살 먹은 어린아이야.”

“지금 인어를 동정하는 거야?”

차현이 주변의 눈치를 보며 입을 다물었다.

“딱히 그런 건 아니지만…….”

“자, 어떠신가요? 정말 아름답죠? 집에 수조가 있으신 분이 있나요?”

“나요!”

데아의 옆에 앉은 남자가 번쩍 손을 들었다.

“하하, 정말 빠르시군요. 먹이는 작은 생선을 주식으로 주시면 됩니다. 물론 식용으로 생각하셔도 괜찮습니다. 어리기에 살도 부드럽거든요. 인어의 살을 먹으면 영생을 산다는 소문이 있다죠? 그 소문을 확인하셔도 좋겠죠.”

사회자가 영상을 틀었다.

“공격성이 없는 인어로, 이빨과 손톱을 뽑아 독을 제거시켰습니다. 그 과정 영상을 같이 보실까요?”

영상은 5분을 넘지 않았다. 잡혀 온 인어에게 안정제를 투여하고 강제로 이빨과 손톱을 뽑는 영상이 그대로 송출되었다.

“저 정도면 정말 공격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겠군.”

“저렇게 치밀하게 제압시킬 줄이야. 믿어도 되겠어.”

그러나 차현은 영상을 끝까지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인어는 죽어야 마땅한 존재다. 모두가 그렇게 말했지만 차현은 포세이돈이 인공 던전이라는 것을 아는 몇 안 되는 사람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여기은이 술에 취해 떠들었으니까.

‘여기은은 자기가 그런 말을 했다는 걸 기억도 못 했지만…….’

그럼에도 차현은 자신이 그 사실을 안다는 것을 쭉 모른 척했다. 그건 본능적인 직감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포세이돈에서 죽어나가는 수많은 헌터들은… 아마 인어가 죽인 것이 아닐 것이다. 전에 경매로 나왔던 ‘실험작’과 그리고 MBL연구소에 왔다던 어느 ‘조력자’와 관련이 있겠지.

그렇다고 해서 5년 전 인어들이 인간들을 공격한 것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여기은의 말에 따르면, 현재 인어들은 인간에 대한 공격 의지가 없었다.

“태초? 태초는 오히려 싸움을 피할걸? 그래서 얼마나 이용하기 쉽던지! 태초는 중요하지 않아. 싸움을 피한다던 사해의 신이 얼마나 강하겠어? 조력자의 말에 따르면 병기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닐 텐데! 지금 봐봐. 5년이 지났는데도 아무런 소식이 없잖아! 태초도 분명 겁을 먹고 있는 거라니까.”

힘과 자본을 위해 같은 인간을 죽게 하는 여례아와, 잔혹한 식인 괴물들의 유일한 신 태초.

‘나는……’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여례아가 아직까지는 023의 헌터들을 건들지 않아 가만히 있긴 했지만 계속 묵인해야 하는 걸까?

마침 영상 안에서 어린 인어가 울음을 터뜨렸다. 고분고분하게 만들기 위해 위협을 하고 있는 장면이었다.

어제도 포세이돈 안에서 사망한 헌터의 유가족이 023을 무작정 찾아왔었다.

“저희 아들이, 포세이돈에 가기 전에 이상한 말을 했어요. 요즘 소문이 돈다고… 고, 공략을 성공해도 게이트가 열리지 않는다는 말이 괴담처럼 떠돈다고……. 이게 어떻게 된 걸까요……? 제발 제 말을 들어 주세요. 언론에는 올라가지도 않아요. 제발…….”

차현은 아는 것이 없다며 정중히 유가족을 돌려보냈지만 죄책감이 무겁게 가슴을 짓눌렀다.

‘뭘 위해서 이런 싸움을 이어 가고 있는 거지. 도대체 뭘 위해서…….’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였다. 두두두……. 아주 작고 미세한 떨림이 전해져 왔다.

차현은 퍼뜩 고개를 들었다.

유리잔에 담긴 물이 떨리고 있었다. 아주 작은 떨림이라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지만…….

“이게 무슨…….”

“쉿.”

유리잔을 본 건 차현뿐만이 아니었다. 여기은 또한 기이한 표정으로 유리잔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데아 또한 유리잔의 떨림을 알아챘다. 태초와 감정에 공명한 마력이 일시적으로 퍼져 나간 탓이었다.

‘아. 안 돼…….’

데아는 즉시 눈을 감았다. 동시에 덜덜 떨리던 물의 움직임이 거짓말처럼 멈췄다.

“자. 영상은 잘 보셨나요? 자아, 그러면 2억부터 시작합니다!”

수많은 번호표가 고개를 쳐들었다.

“네, 3억 나왔습니다! 네, 23번 4억! 104번 4억 5천 나왔습니다!”

5억, 7억, 10억, 낙찰가는 순식간에 올라갔다.

“네, 143번 33억! 33억이 나왔습니다!! 또 없으신가요?”

33억을 부른 데아 옆자리의 남자가 헉헉거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저, 저 인어는 내가 가져갈 거야!”

33억이라는 숫자에 사람들이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다음 인어를 노리도록 하지.”

“정말 아쉬워!”

남자가 환희에 젖었다. 그러나 그 순간, 데아가 손을 들었다.

“50억.”

일부러 낮게 깐 목소리가 적막을 후려쳤다.

남자가 화들짝 놀라 데아를 노려봤다. 사회자도, 관객들도 일순 숨을 들이켰다가 웅성거렸다.

“네. 네. 142번 50억 나왔습니다!”

50억이 정말 있냐고 묻는다면, 아니었다. 데아는 6,000원 음료도 고민하며 사먹는 소시민이었으니까.

하지만 괜찮았다. 어차피 돈을 지불할 일은 없을 테니까. 데아의 목적은 단 하나.

‘어떻게든 큰돈을 불러 낙찰받은 다음, 당장 저 이상한 모양의 족쇄를 풀도록 명령하는 거지. 그리고 족쇄에 이상한 장치가 없는지 확인해야 해.’

“이, 이이, 60억!!”

143번 남자가 소리 질렀다.

“100억.”

데아가 심드렁하게 낙찰가를 올리자 남자가 핼쑥해졌다. 저 앞에 9번 권도언이 흥미진진한 얼굴로 환하게 웃었다. 정말로 이게 재밌나.

“120억!!”

“200억.”

남자가 울먹이며 번호판을 내동댕이쳤다.

“네. 142번 200억! 낙찰되었습니다!”

다시 수조 위로 천이 덮어씌워졌다. 곧 팔려나갈 운명을 직감한 인어가 비명을 질렀다.

―무서워, 무서워어… 무서워…….

“잠깐.”

데아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높은 낙찰가로 인어를 구매한 큰손 손님에게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천을 덮지 말고, 저 인어의 족쇄를 풀어.”

사회자가 당황했다.

“하지만…….”

“안전하다고 하지 않았나?”

아니라고 자기 암시를 걸었지만 감정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데아의 시야가 붉어졌다. 분노로 인해 머리가 어지러웠다. 눈치가 빠른 자는 지금 저 ‘큰손’이 몹시 화를 내고 있다는 점을 알아챘을 것이다. 앎에도 멈출 수가 없었다.

“혹시 거짓 정보를 말한 건가?”

“아, 아닙니다!”

사회자가 혀를 차며 가드들에게 눈짓했다.

“지금 뭐 하나? 당장 풀어!”

“예, 예!”

철컹! 인어는 족쇄가 풀린 다음, 수조 밖으로 끄집어 올려졌다. 다행히 평범한 족쇄였다. 그렇다면…….

‘연극은 여기까지.’

데아를 발견한 인어의 눈이 당혹으로 물들었다.

―바다님?

한 걸음 두 걸음, 천천히 다가오는 그 거리가 아득했다.

“어, 이곳으로 오시면 안 되는…….”

사회자와 가드가 데아를 막았지만 데아는 무시하고 무대로 다가갔다.

가까이 본 인어의 상태는 더 참혹했다. 너덜거리는 사지, 멍든 얼굴. 두두두두……. 다시 유리잔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여기은이 인상을 사납게 굳혔다. 기이한 예감이 스쳐 지나갔다. 등골에 소름이 죽 돋았다.

“설마……?”

무대 조명이 검은 후드 위를 고스란히 비췄다. 은색 가면 아래, 차마 감추지 못한 백발이 몇 가닥 흘러내렸다. 여기은이 경악하며 벌떡 일어섰다.

“자, 잠깐!”

“왜 그래?”

“안 돼! 다가가게 두지 마!”

“네?”

이상한 위화감. 그건 착각이 아니었다. 맙소사, 맙소사!

“저건 태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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