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식인인어는 죽어야 한다-175화 (175/223)

※ 175화

“여파 길드장님이 왔대!”

“뭐? 왜?”

4층 공략을 끝내고 포세이돈을 나오는 길, 데아는 눈부신 기자들의 스포트라이트를 피해 뒷길로 빠졌다. 정신을 막 차린 세연도 함께였다.

“앞에서 공략 마친 헌터들한테 악수하고 있다는데?”

“…악수를 해?”

“응. 사람들 봐. 줄 서있어!”

저 앞에 길게 선 줄의 의미가 그것이었나. 왜, 왜 그런 짓을 하는 거지?

“우리도 악수하면 안 돼? 여파 길드장님 흔하게 볼 수 있는 사람 아니잖아……!”

세연이 가리킨 곳에 권도언이 있었다. 검은 정장을 차려입고 말끔하게 머리를 넘긴 조각 미남이 데아와 눈이 마주치자 눈웃음쳤다. 데아는 거슴츠레 흐린 눈을 했다.

“여파만 하는 행사는 아니라서요.”

그때 권도언이 인파를 뚫고 다가와 세연에게 턱, 가벼운 악수를 했다. 와! 세연이 환하게 웃었다.

“4층 공략을 축하하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온 길드의 소소한 행사죠. 가벼운 선물과 커피도 준비되어 있으니까 가져가세요.”

사망자가 있는 만큼 화려한 축제분위기는 아니었다. 살아남은 자들의 귀환을 축하하고, 죽은 자들을 추모하는 국화꽃이 앞에 가득 쌓였다.

공략에 참가하지 않은 대다수의 상급 헌터들이 악수와 선물을 나누고 있는 광경을 데아는 생경하게 지켜보았다.

“이름이 설한지였죠?”

“네. 네.”

하고 턱, 데아는 권도언과 악수했다. 맞잡은 손에, 무언가 잡혔다.

“아…….”

데아의 소매 안으로 무언가가 들어왔다. 데아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설마 이걸 위해서 이런 되도 않는 행사를 벌였냐?

“이변 없는 공략 성공 축하해요.”

그리고 권도언은 홀홀 떠나버렸다.

데아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누르며 묘하게 묵직한 소매를 뒤로 숨겼다. 이게 뭘까? 나에게 몰래 전해 주려고 했던 이건… 설마 도움이 되는 아이템일까? 아니면 쓸모 있는 정보?

“나 잠깐 화장실 좀.”

“어, 그래. 그런데 화장실은 이쪽이야!”

“아. 아아. 그래.”

데아는 사람들 몰래 슬쩍 종이를 펼쳤다. 내가 골머리를 썩고 있는 걸 권도언이 알았나? 칸나니아와 연구소에 대한 정보나, 그들이 계획하는 목표의 일부를 전달해 준 건 아닐까? 바스락! 종이를 완전히 펼친 순간이었다.

[길드장실 54층으로 이전했어요. 앞으로는 거기로 놀러 오기.]

“……?”

이게 끝인가? 권도언의 일터가 52층이든 54층이든 알게 뭐란 말인가. 놀러 오라니. 섬 밖으로 나가지도 못해서 놀러 간 적도 없는데. 왜 심심한 초등학생처럼 놀러 오라는 말을…….

“잠깐만. 뒷면, 뒷면.”

하지만 글씨는 없었다. 햇빛에 비추고 입김도 불고 살짝 물을 불러내 적셔도 봤지만 헛수고였다.

그때 툭, 아래로 뭔가가 떨어졌다. 소매 안으로 들어왔던 물건이었다.

“소포?”

어린아이의 손바닥만 한 크기의 작은 상자. 달깍 열자 무게감 있는 검고 납작한 카드가 만져졌다.

“이게 뭐야.”

음각으로 새겨져 있는 건 ‘세인트 H AUCTION 오프닝 초대장―VVIP’라는 글자였다.

auction. 경매.

“경매?”

대한민국 주가 1위를 자랑하는 세인트 H 백화점. 데아는 그곳에 새롭게 ‘헌터 홀’, 즉 오프라인 헌터 마켓을 개장한다는 소식은 들었었다.

그 오프닝의 초대장인 줄 알았는데, 경매라니. 더군다나 그 뒤에는 긴 쪽지가 하나 더 있었다.

[세인트 H 백화점이라면 유명하죠. 이미 알고 있을 수도 있겠지만, 다음 달 25일에 열리는 ‘헌터 홀’ 오프닝 파티 초대장은 4층 공략에 참가한 대부분의 F급 헌터들이 곧 받게 될 거예요.]

이게 본론이었군.

“왜?”

하지만 예상은 갔다. 등급에 국한되지 않는 ‘길드 통합 팀’을 효과적으로 이미지 메이킹을 위해선 F급이 대표로 뽑혀 나와 줘야 그림이 된다는 의도겠지.

[하지만 바로 내일 세인트 H 18층에 경매장이 열립니다. 그 초대장으로 그곳에 갈 수 있어요.]

“내일 경매가……?”

[MBL 연구소가 개발한 수많은 아이템과 실험의 결과물, 그리고 인어가 주로 경매될 예정이라고 들었어요.]

그 순간, 데아의 눈썹이 꿈틀 움직였다. 인어 경매라니.

[최근에 포세이돈 안에서 공격성이 없는 하급 인어와, 무리를 이탈해 떠도는 상급 인어를 밀렵한 사례가 있었어요. 관상용, 그리고 식용이 그 목표죠.]

데아는 검은색 초대장을 꼭 잡았다. 피파글랜이 말했던 실종 사건. 분명 관련이 있다.

[사실 이 경매는 달마다 열릴 예정이에요. 당장 내일 인어가 많이 나올 확률은 거의 없어 보이지만… 나올 수도 있으니까요. 혹시 알아요? 그만큼 흥미로운 것이 나오게 될지.]

어디선가 권도언의 확신에 어린 말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오고 싶다면 내일 밤 11시에 앞에서 만나요. 드레스 코드 블랙.]

그 밑에 작은 글씨가 적혀 있었다.

[추신, 세인트 H의 경매는 익명이 기본이에요. 가면을 쓰면 누구도 못 알아보죠.]

그러니까 어서 오라는 듯이 쪽지가 웃었다.

◈          ◈          ◈

“릴림. 윌로랑 헤타하고 연락돼?”

“될 리가요.”

다시 호텔로 돌아간 밤. 데아는 몰래 백리서의 방문을 두드렸다.

“움을 만나야겠어.”

언제나 태초만을 위해 예언을 했던 예언자가 너무 조용한 게 맘에 걸렸다. 백리서가 노트북을 탁 닫았다.

“무슨 일 있으신가요?”

“아니 그게…….”

권도언이 준 초대장과 쪽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기로 했다. 릴림 몰래 준 이유가 분명 있겠지.

“너도 피파글랜한테 소식 들었지. 자꾸 인어들이 사라진다는 거.”

“아, 그거…….”

“관련해서 이쪽에서도 조사가 필요할 것 같아서 물어봤어. 움은 어차피 여파 안에 있는 거 아니야? 5년 동안 못 만나기도 했고, 따로 겸사겸사 물어볼 것도 있어서 만나려고 하는데. 지금 호텔에 있는 김에 만나게.”

“그러세요. 지금이요?”

“지금.”

현재 시간이 새벽 두 시였지만 당장 행동에 옮기기로 했다. 이 중에 노약자와 잠이 필요한 아이는 아무도 없었으므로.

“위치만 알려 줘. 창을 열게.”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움을 만나지 못했다.

“일부러 오는 거 알고 튄 거 아냐?”

어두컴컴한 여파 안의 게스트 룸. 창을 열자마자 침대 위에 불룩 튀어나와 있는 형상을 향해 백리서가 툭 발을 걷어찼지만 침대 밑으로 떨어지는 건 쿠션뿐이었다.

“미리 알고 도망쳤네요. 주군. 뭘 물어보려고 했던 거예요?”

“아까 전에 말한 게 다야.”

물론 5년 전, 대놓고 6년 전 생존자를 찾아내라 시킨 것에 대한 사과를 받아 내려고 했었다. 젠장. 네 죗값은 두 배다. 제국 안에서 보자, 움.

◈          ◈          ◈

“어, 누구니?”

이렇게 공기 좋은 새벽에 하필 당직이냐며 퍽퍽 담배를 피우던 MBL의 직원은 서둘러 담배를 비벼 껐다. 저 멀리 어린아이가 혼자 있었다.

“새벽 두시에 무슨…….”

검붉은 머리카락으로 벼 머리를 한 여자아이였다. 눈치를 설설 보며 다가오는 모양새가 심상치 않았다.

“길 잃었어? 허우… 이게 뭔 일이다냐. 부모님은. 안 계셔? 지금 시간이 몇 시인데 혼자 나와 있어?”

“아빠가 여기 근무하시는데… 3일째 돌아오시질 않아요.”

3일째 집에 안 가는 연구원이 있나? 그런데 그 딸이 혼자 찾아온 건가? 새벽에?

“그, 그래도 새벽에는 오면 안 되지. 위험하잖아. 엄마는 어디 계시고?”

“이혼하셨어요.”

직원이 패닉에 빠졌다. 물어보면 안 되는 걸 물어봤구나. 직원의 머릿속에서 자극적인 가정사가 죽 펼쳐졌다.

홀로 집에 남아 새벽까지 아빠를 기다리던 아이는 결국 걱정하며 아빠의 일터까지 찾아오게 되고…….

“그… 아버지 성함이 어떻게 되니?”

“이현수요.”

“이현수… 이현수 연구원이라…….”

그런 연구원이 있었나? 일단 끙차, 직원은 다섯 살도 안 되어 보이는 아이를 안아들었다.

“안으로 들어가서 찾, 찾아볼까?”

“정말 그래도 돼요?”

“그럼! 아빠 얼굴만 보고 나오는 거야. 집까지는 내가 안내해 줄 테니까……”

삑! 직원이 손가락을 대자육중한 문이 열렸다. 삑, 삑, 삑. 이어서 막혔던 문이 지문 하나로 거침없이 열렸다.

이윽고 약품 냄새가 나는 연구실 복도가 죽 펼쳐졌다.

“일단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래?”

직원은 주변 눈치를 보며 아이를 빈 방 안에 들였다. 아이의 시선이 천장을 향했다. CCTV는 없군.

“궁금하다고 멋대로 건드리면 안 돼. 나오면 안 되고. 아빠 찾아서 여기로 데려올 테니까.”

“마음을 바꿨어.”

“뭐?”

직원이 흠칫, 몸을 일으켰다. 아이의 눈이 이상했다.

“목격자는 없어야 하는데, 꽤나 괜찮은 인간이니까…….”

아이는 호쾌하게 웃고 있었다. 직원의 얼굴이 굳었다. 그리고 그다음 순간, 툭, 직원의 정신이 증발했다. 그 방에서 나오는 건 한 명뿐이었다.

‘시간을 조금 지체했나?’

일주일 전, 움은 예지몽을 꾸었다.

창으로 들이닥치는 므아나가 곤히 자는 자신을 걷어차고, 주군이 자신을 쥐 잡듯 흔들어 대는 꿈이었다. 제기랄, 나한테 큰 악재가 오는 구나.

심지어 예언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화면이 바뀌었다. 움은 거대하게 닥쳐오는 파란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저건…….’

섬 안에 틀어박혀 놀고 있어야 할 태초를 인간계까지 끌어들인 주범. 포세이돈과 연구소 MBL이 화면을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움은 보았다. 배신자 칸나니아가 결국은 끌어낸 누군가를.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얼굴. 예언 속의 그의 얼굴은 짜증이 날 정도로 그대로였다.

하지만… 뭐지? 저 상황은?

어느 것이 정말 태초를 위한 것인가. 움은 고민하며 기절한 직원의 옷을 벗겨 입었다. 그리고 연구원을 구석진 곳에 처박고는 유유히 밖으로 나갔다. 저 연구원이 발견될 때까지 다 할 수 있을까?

아니. 해야 했다.

“안녕하십니까.”

“네. 안녕하세요.”

움은 모자를 푹 눌러쓰고는 실실 웃으며 퇴근하는 연구원들을 배웅했다. 띡, 카드를 찍자 연구실 내부가 훤히 드러났다.

‘여기가 아니야. 분명 예언에서 써있던 글자는, B1―3.’

움은 사람들을 피하기도 하고, 천연덕스럽게 인사하기도 하며 지하로 향했다.

그때, 믿을 수 없는 것을 목격했다. 한쪽 면이 전부 유리로 되어 있는 깊숙한 연구실 안,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유우라……?”

예언자 연옥의 손녀 김유라로 위장했던 어린 3세대 인어가 그곳에 있었다. 물속에 잠겨, 헤집어진 꼬리가 그대로 드러난 채였다.

‘살아 있긴 한 건가……? 그러고 보니 5년 전에 갑자기 사라졌었지.’

이위로는 찾아야 되지 않겠냐면서 은연히 부추겼지만 움은 유우라를 찾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그럴 이유가 없어서였다. 어린 3세대 인어의 실종에 대해 온 심열을 기울일 정도로 움은 한가하지 않았다.

그래, 움은 유우라를 방치했다.

‘기껏해야 내 패악질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친 줄만 알았는데…….’

대학원생과 비슷한 강도의 노동을 견디지 못하고 떠났거나, 열린 아무 게이트에 들어가 버린 줄만 알았다. 연구소에 잡혔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예언에서도 유우라에 대한 정보는 보지 못했다.

“…….”

움은 조심스럽게 유리관 너머로 손바닥을 짚었다.

턱!

“!!”

그때 안쪽에서 손바닥이 또 턱! 유리관을 짚었다. 움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유우라가 눈을 크게 부릅뜨고 있었다.

훌쩍 야윈 뺨과 툭 튀어나와 있는 눈. 버석 마른 입술이 뻐끔거렸다. 눈이 분노에 차 번들거렸다.

‘나를 왜 안 찾으러 왔어.’

움은 드물게 긴장했다.

‘예언으로 나를 볼 수 있었잖아. 내가 사라졌었잖아.’

유우라는 한참동안 유리를 더듬다가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왜 하필 나만……!’

“허억!”

움은 얼굴을 빠르게 비볐다. 다시 눈을 뜨니 유우라는 잠든 채 그대로였다. 뭐지? 잘못 본 건가? 하지만 잘못 본 것치고는…….

수많은 기기와 호스로 연결관 거대한 유리관. 그 중앙에 잠들어 있는 끔찍한 형상의 유우라. 푸른 불빛이 공명하듯 연구실을 비추고 있었다.

움은 살살 뒷걸음질을 쳤다.

‘이 주변에서는 마력이 잘 잡히지 않아. 설마 내가 유우라를 예언에서 보지 못한 것과 관련이 있나?’

확실한 건, 여기에 더 있으면 안 돼. 움은 발걸음을 돌려 도망쳤다.

‘원래 목표하던 곳이나 가자. 저곳은 이상해. 저기는 정말 이상…….’

묘한 죄책감이 가슴을 찔렀다. 미안해. 움이 처음으로 읊조린 사과였다.

‘내가 너무 늦게 알았어. 하지만,’

태초가 너를 구하러 오실 거야.

언젠가.

언젠가…….

이윽고 움은 목표하던 방을 찾았다. B1―3. 이곳이었다.

“누구냐!”

“뭐야!”

역시나 밤새 이곳을 지키는 헌터들이 있었다.

움은 우선 연구실 안의 전등을 모조리 깬 다음 단도를 꺼내들어 돌진했다.

쨍그랑! 쨍그랑―!!

“뭐, 뭐야!!”

“침입자다! 조심, 흐악!”

움은 다섯 명의 헌터의 목을 그대로 찔렀다. 붉은 피가 튀고, 헌터들의 숨이 멎었다.

“아, 안 돼. 살려……!”

연구를 진행하던 세 명의 연구원은 벌벌 떨며 도망가려다가 그대로 목이 꺾여 죽었다. 1분도 되지 않는 시간이었다. 한순간의 참극을 일으킨 움이 느릿하게 단도를 털었다.

“여기네… 하아, 드디어 찾았어.”

뚜벅 뚜벅, 피 웅덩이가 고이는 바닥에 붉은 발자국이 찍혔다. 움은 쭉 걸어갔다.

제일 뒤에 한쪽 벽을 점령한 무언가가 있었다. 그건 거대한 하얀 게이트 같기도 했고, 조잡한 인공 설치물 같기도 했다. 그 중앙이 하얀 파도처럼 일렁였다.

“야.”

움은 그곳에 대고 말을 걸었다.

“내 말 들리지? 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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