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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식인인어는 죽어야 한다-169화 (169/223)

※ 169화

‘역시 살아 있었구나…….’

칸나니아가 자잔을 데려갔다는 사실을 전해 들은 순간부터 예측했었다.

자잔은 1. 실험 재료로 비싸게 팔리거나, 2. 함정이 되어 내 앞에 나타날 것이다.

‘전자가 아니라서 다행인 건가.’

“와, 야, 저 교관 뭐야? 존잘인데?”

“와 씨, 나도 저렇게 생기고 싶다.”

예전과 달리 조금 마른 자잔의 눈은 음울했다. 그런 칙칙함마저 가산점이 되었던 걸까, 강당에 모인 대부분의 헌터들이 서로 자잔을 눈짓하며 열띤 토론을 시작했다.

“누구 닮지 않았어? 그 해외 배우. 이름 뭐였더라…….”

“배우 지망생 아니야?”

“헌터니까 여기 왔겠지. 그리고 뒤에서 뭐라고 하지 마. 딱 봐도 난처해 보이시잖아.”

“그, 저, 한지 언니…….”

그때 저 앞에서 연가을이 다급한 얼굴로 데아를 찾았다. 그리고 입 모양으로만 속삭였다.

‘저, 저 사람… 그 공룡 수영복… 그… 맞죠……?’

데아는 눈썹을 으쓱 들며 고개를 끄덕였다. 연가을이 ‘이럴 수가.’ 속삭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거 함정이죠?”

“아마.”

“헉.”

데아는 따른 사람들의 쑥덕거림에 동참하며 노골적으로 자잔을 응시했다. 자잔은 시선을 땅으로 처박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날 찾는 걸 경계하고 있어. 내가 이 중에 있다는 걸 어렴풋이 알고 있을 텐데.’

그것이 뜻하는 바는 하나였다. 자잔을 이곳에 들여보낸 사람은 이곳에서 자잔이 태초와 접촉하는 것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자잔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

“이제부터 새로운 교관님들을 한 명씩 소개드릴 겁니다.”

그때 훈련장이 마이크를 잡고 소리쳤다. 첫 번째로 자잔이 끌려 나왔다.

“참고로 교관들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모두 ‘교관님’으로 부르도록 한다. 그리고 새로 오신 이 분은 사고로 말을 하지 못하시지만, 훌륭한 능력치를 가진 A급 헌터로 모두에게 좋은 훈련 방식을 소개해 줄 것으로 기대합니다.”

“우와, A급 헌터래!”

“알겠습니까? 대답하십시오!”

“와, 수련회 같아. 지금부터 나는 너희들이 하는 것에 따라 천사도 될 수 있고, 악마도 될 수 있고 하는 거.”

수련회는 뭔지 모르지만 솔직히 뒷말은 조금 뻘하게 웃겼다. 그에 데아가 픽 웃자 갑자기 훈련장이 마이크를 뚝 껐다.

“방금 누가 웃었지?”

“……?”

나 그렇게 크게 안 웃었는데?

알고 보니 훈련장은 청력이 특히나 우수한 자였다. 수많은 헌터들이 우르르 데아를 쳐다보았다. 심지어 자잔 또한.

“설한지.”

미치겠네. 또 왜. 나야.

“위로 올라와라.”

설마 일벌백계? 이렇게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F급 힐러 한명 조져 놓고 잘도 훈육이 되겠다!

아니 그나저나 같이 떠들었는데 왜 나만…….

그러나 차마 오들오들 떨고 있는 세연을 고자질할 맘은 생기지 않았다. 데아는 뚱한 얼굴로 터벅터벅 앞으로 나아갔다. 자잔과의 거리가 하나둘 가까워졌다.

“지금 내 말이 우습나?”

―왜 갑자기 애먼 사람을 잡는 거지?

“설한지. 대답해 봐!”

―아니, 웃는 소리가 들렸다고? 정말 들을 소리가 없나 보군…….

가까이 와보니 자잔은 속으로 엄청나게 꿍얼거리고 있었다.

“설한지. 왜 입을 다무나?”

―너나 좀 다물어 봐. 시끄러워.

데아는 필사적으로 입 안쪽 살을 깨물었다. 여기서 웃으면 큰일 난다.

“자네… 지금 웃나?”

“아, 아닙니다.”

목소리가 이상하게 떨려나갔다. 그러자 자잔이 이상한 눈초리로 데아를 쳐다봤다.

―쟤도 좀 이상한가…….

‘아냐. 자잔. 나야! 나라고!’

훈련장은 데아가 겁을 먹어 말을 잘 하지 못하는 걸로 착각하고는 후,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이 정도로 봐주도록 하지. 내려가라.”

“가, 감사합니다.”

잘 참았다. 이데아. 잘했어. 잘했어……

데아가 내려가고, 차례차례 교관들의 소개가 이어졌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교관이 중대 발표를 했다.

“포세이돈 4층의 공략권이 나왔다.”

강당 안이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4층에서 나온 게이트의 수는 열 개. 그러나 규모는 그렇게 크지 않아. 그러나 이제까지 많은 중소형 길드들이 공략을 시도했지만 전부 중도 탈출한 것을 봐서는 공략법이 꽤나 까다로운 것으로 예측되고… 이번 게이트의 위치는 크게 변하지 않는 편이다. 공략은 당장 다음 주 월요일 오전이다.”

까다로운 공략법을 가진 4층 포세이돈.

“각 게이트당 100명씩, 총 1000명의 인원을 차출할 계획이다. 본인에게 의사가 있다면 오늘 저녁까지 지원하도록. 이상이다.

그리고 해산했다. 데아는 마지막으로 자잔 쪽을 흘끗 돌아보았다. 자잔은 기다렸다는 듯 자신에게로 몰려드는 헌터들을 어색하게 피하고 있었다.

“교관님, 왜 땅에서 고개를 못 드세요?”

“야, 말 못하신다고 했잖아……!”

“아. 맞아. 암튼 잘생겼어요, 교관님!”

“세연아, 잠시만.”

저 정도 인파면 섞여 들어가 말을 걸어도 특별하게 눈에 띄지는 않겠지.

“야, 야, 저게 뭐가 잘생겼냐?”

“어……? 그건 좀 아니지…….”

양철민이 툭 시비를 걸자 세연이 진심이냐는 듯이 물어보았다. 양철민의 말문이 턱 막혔다.

“혹시 미적 감각이 없는 편이야, 철민아……?”

악의가 없는 말이 더 아플 수 있다는 걸 데아는 처음 알았다. 앙철민이 어버버거렸다.

“교관님! 능력 한 번만 보여 주시면 안 돼요?”

그때 데아가 인파속에 쏙 껴서 환하게 물었다.

“A급 헌터는 여기서도 흔하지 않거든요. 잠깐만 보여 주세요.”

데아의 말에 근처 헌터들이 하나둘 동조했다.

자잔의 얼굴이 화르륵 불타올랐다. 이런 관심과 질문이 난생처음이라는 저 노골적인 태도라니. 하나도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아 다행이군.

―나, 나한테 왜 이렇게 인간들이 몰려드는 거지? 내, 내가 잘생겼다고?

자잔의 얼굴이 더 붉게 타올랐다.

―나… 잘 생겼나……?

데아는 뒤에서 입술을 꽉 깨물었다. 자잔이 그동안 지내왔던 주변 인어들의 외모가 너무 말도 안 되긴 했었지. 자잔의 기가 한순간에 살았다.

자잔은 꽤나 용기를 가진 표정으로 밖으로 나갔다. 훈련장에 가서 손을 조심스럽게 앞으로 내밀자 헌터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그리고

파아아앙―!

거친 충격파가 생성되며 주변 일대를 한순간에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헌터들이 더 크게 함성을 내질렀다. 자잔이 설레는 얼굴로 살짝 웃었다.

“얼씨구, 신났네.”

“그, 저, 한지 언니…….”

그때 연가을이 주저하며 다가왔다. 그리고 낮게 속삭였다.

“저 사람… 아니지. 저 인어 구해 가려고 오신 거 아니었어요? 이대로 낚아채서 게이트 열고 돌아가시면 될 것 같은데, 왜 가만히 계세요?”

“아무래도 혼자 온 것 같지가 않거든.”

“네?”

데아는 훈련소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나무 그늘 속에 숨어 눈을 감았다 떴다. 약점 파훼. 눈동자가 붉게 타올랐다. 자잔의 역린이 한눈에 들어왔다.

“약점의 위치가 늘어났어.”

원래는 머리와 심장. 딱 두 군데였었다. 그런데 한 군데가 더 늘어났다. 바로 오른쪽 눈이었다.

“저기에 뭐가 있어.”

아무리 트리야의 권속이라지만 칸나니아가 저렇게 무방비하게 자잔을 밖으로 내보냈을 리는 없다. 분명 어떤 대비를 했을 터. 그리고 그건 아마…….

“뭔지는 정확히 모르겠는데, 좋게 봐줘야 폭탄이거나… 독이거나 하겠지. 자잔의 몸에 뭘 심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저걸 해결하기 전에는 함부로 태초의 섬에 데려갈 수 없어.”

“어떻게 그런…….”

“뭐, 그래도 능력적인 면에서 제약이 걸린 건 아닌 것 같으니까 한숨 돌렸지. 그리고……”

데아의 눈이 낮게 가라앉았다.

“쟤가 나를 일부러 피하고 있는 것 같으니까, 일단 장단에 맞춰 줘야지. 말 못할 사정이라도 있는 것 같은데.”

◈          ◈          ◈

데아가 자잔을 철저한 무관심으로 일관한 일주일이 흘렀다. 그동안 배협이 데아를 한 번 찾아왔었다.

“너도 지원했나?”

“당연하죠. 저 공략 가는 거 좋아하는 거 아시잖아요, 길드장님. 아, 그리고 혹시 F급 힐러는 주제에 알맞게 빠져라, 이런 양철민 같은 소리 하시면 안 돼요?”

가볍게 말하고 가볍게 웃었는데, 배협은 웃지 않았다.

야심한 밤. 데아는 기이한 촉을 느꼈다.

“길드장님.”

“설한지. 너에게 물어볼 게 있다.”

“길드장님.”

“지난 2층 공략 때와 3층 공략 때 느껴졌던 의문점들이야. 4층 공략에 가기 전에 물어보고 싶어서,”

“길드장님, 따라오세요.”

쏴아아아아― 데아는 배협을 끌고 건물을 나섰다. 오늘따라 파도가 거칠었다.

해변가에 나란히 두 발자국이 찍혔다.

“여기서 말하세요.”

“왜 여기까지 나온 거지? 너무 어두우니까 안으로 들어가도록 하지.”

“밝은 곳에선 함부로 입을 여시면 안 되죠. 누가 엿듣고 있을 줄 알고.”

우뚝, 배협의 발걸음이 멈췄다. 심장이 서늘하고 격하게 뛰었다.

설한지. F급 헌터. 누가 봐도 상급 아이템인 것을 패션 액세서리라 속이고, F급 헌터의 타이틀을 가졌으면서 전혀 F급답지 않은 힘을 가진 기묘한 헌터.

철썩! 검은 파도가 바위에 부딪쳤다. 배협의 등줄기에 식은땀이 주륵 흘렀다. 설한지가 서늘한 표정으로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 그렇지. 밝은 곳은 위험하지…….”

배협이 습관처럼 뒷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피워도 되나?”

“저 담배 싫어해요. 하지만 이번만 피세요.”

“고맙다.”

치익, 붉은 점이 허공에 생겨났다. 배협은 느릿하게 목구멍을 넘겼다.

“너는 처음 봤을 때부터 이상한 점이 많았어.”

“이런, 역시 그랬나요?”

“…….”

‘설한지’가 숨길 생각도 없이 웃고 있었다.

배협은 떨리는 손을 가까스로 진정시켰다. 말리면 안 된다. 말리면 안 되는데…….

“하지만 아직까지 네 진짜 모습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정말요?”

데아는 배협의 흔들리는 눈동자와 마른침을 넘기는 목덜미를 빠지지 않고 지켜보았다.

그래. 그럴 수도 있으려나.

“한지 헌터… 네가 위험한 존재라는 건 아닐 거라 믿어.”

“네.”

“나는, 지금은 길드 통합 팀에 위치해 있지만 엄연한 정의의 길드장이야. 네가 세연과 그리고 철민이와 같이 지내는 이상, 나는 길드의 안전을 지켜야 해. 네가 위험한 인물로 판단되는 순간, 나는 너를 어쩔 수 없이 공격해야 한다는 소리다.”

“…….”

배협의 손바닥에 땀이 축축하게 고였다.

“하지만…….”

배협은 몹시 주저하고 있었다. 그는 허벅지에 땀을 문질러 닦고, 심호흡을 크게 했다. 담배 연기를 훅 부는 그의 얼굴은 두려움에 떠는 노쇠한 노인 같기도 했다.

“내가… 너를 이길 수 있을 것 같지는 않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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