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8화
“너, 여기 헌터야? 길드 통합 팀?”
데아의 귓가에 자신의 쿵쿵대는 심장 박동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하영주는 ‘설한지’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여기에 샤샤 헌터가 있지 않아? 혹시 본 적 있어? 어?”
“…저는…….”
“이름은 이데아야. 너도 알지……? 5년 전에 그… 사람들이 전설이다 뭐다 하는 헌터 있잖아.”
덥석! 데아의 양 어깨가 잡혔다. 하영주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내밀었다. 액정에는 ‘샤샤’의 사진이 있었다. 초상권의 무게가 깃털보다 가볍구나.
“이, 이렇게 생긴 헌터… 못 봤어?”
고개를 들어 마주한 하영주는 울먹이고 있었다.
데아의 머리 위로 육중한 충격이 내려왔다.
“…못 봤어요.”
“잘 생각해 봐. 여기 수용 인원이 이천 명이라며. 너무, 너무 사람이 많아서 못 본걸 수도 있어.”
“영영 부길드장님! 이곳의 헌터에게 그러시면 안 됩니다!”
“놔! 지금 내가 묻고 있잖아!”
아, 역시 전광판에 이름이 올라가면 안 됐었는데.
“이데아!!”
하영주는 데아를 놓고 다른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똑같은 말을 외치며 하염없이 섬을 헤맸다. 데아는 멍한 얼굴로 그를 돌아보았다. 하영주의 목소리가 점점 떨려 왔다.
“데아야. 난데, 나 하영주인데…….”
왜 넌 나타나질 않느냐며 하영주가 울고 있었다.
느닷없는 영영 부길드장의 울음에 지켜보던 헌터들이 충격에 휩싸였다.
“뭐야? 미쳤나 봐…….”
“갑자기 와서 왜 저래? 설마 여기에 샤샤 헌터가 있다고 믿는 거야? 그 전광판 때문에?”
“하지만 그건 오류라고…….”
“영영!”
데아는 교묘하게 자신과 하영주 사이를 몸으로 가리는 백리서를 보고 정신을 차렸다. 백리서가 하영주를 끌고 질질 구석으로 몰고 갔다. 헌터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까지.
“여기서 뭐 하시는 겁니까. 나가세요.”
“하지만 이곳에 데아가 있잖아요. 돌아왔는데 여파 길드가 너무 멀어서 못 오고 있는 걸 수도 있어요. 그래서 직접 데려가려고 찾아온 건데…….”
“돌아가세요.”
“다 죽었다고 알고 있지만, 사실 살아 있잖아요.”
백리서가 고개를 저었다.
“샤샤 헌터는 5년 전에 사망했습니다. 전광판은 오류고, 이변은 없습니다. 물론 이렇게 찾는 심정도 이해가 가지만…….”
그 말이 기폭제였다. 하영주가 거침없이 웃었다.
“아, 알겠다.”
하영주가 히죽 웃으며 삿대질을 했다.
“나만 빼고 다 알고 있었네…….”
“네?”
“그으렇게 데아야. 데아야…거리면서 챙겨 주고, 그 어떤 길드원보다 샤샤 헌터를 아껴 주고, 챙겨 주던 건 바로 공격대장님이셨어요.”
“…….”
“그런데 왜 멀쩡해 보이죠? 심지어 인어에 대한 조금의 증오도 없네? 그런데 웃긴 건 길드장님도 그래요. 나만 화내. 나만. 나만 데아의 죽음에 대해 화내. 나만 인어들 다 죽여버리겠다고 벼르고 있어요.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평온할 수가 없어. 그래서 생각을 좀 해봤거든요? 결론이 하나 나왔죠.”
그 순간, 하영주의 표정이 사납게 변했다.
“나만 데아가 살아 있다는 걸 몰라요. 맞죠?”
“…돌아가세요.”
“알았어요.”
하영주는 순순히 대답했다. 그는 모종의 확신을 얻은 느낌이었다. 그의 눈동자가 더 불길하게 번뜩였다.
“이유가 있겠죠. 나만 바보 만드는 이유가.”
“영영 부길드장님. 하나만 말하겠습니다.”
“네. 뭔데요.”
“전장에서는 수십, 수백 명의 동료가 사망합니다.”
멈칫, 배에 다시 오르려던 하영주가 고개를 돌렸다.
“샤샤는 저에게도, 그리고 권도언 길드장님에게도 숱한 죽음 중 하나였을 뿐이에요. 그것이 특별하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백리서는 능숙하게 연기를 했다. 이번 연기는 꽤나 침통하고, 안타까운 사람의 슬픔이었다. 그의 긴 속눈썹이 바르르 떨렸다.
“어쩔 수 없이 무뎌진 죽음이었을 뿐입니다. 영영 부길드장님의 심정을 이해합니다. 전 그저 때를 기다리는 것뿐이에요.”
백리서의 말에 하영주가 미간을 일그러뜨렸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공격대장님은 데아의 마지막 모습을 모르잖아요.”
백리서는 순간, 연기를 잊고 흠칫 놀랐다.
“데아가 그, 그, 잿빛 머리카락 인어한테, 얼마나 잔인하게 죽었는지 아세요? 나는 그걸 다 봤는데, 데아가 그렇게 죽어가는 걸, 다, 다 봤는데……. 심지어 데아는 저를 지키려다가 당한 거였는데, 원래 내가 그렇게 죽었어야 했던 건데…….”
하영주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걸, 그걸 보면 그 정도로 못 화내요. 저는 매일 꿈에서 봐요. 가윗이 먼저 당하고, 그다음에 데아가 죽는 걸! 제가 힐러도 아니라서 아무것도 못하고 피랑 장기랑 줄줄 빠져나가는 걸 보고만 있어야 했던 그 무력감을, 공격대장님이 아세요?! 아신다면!”
정적이 내려앉았다. 하영주의 표정이 탁해졌다.
“숨죽이고 때… 그거 못 기다려요.”
그리고 그는 축축한 얼굴을 쓱쓱 닦고는 어선에 완전히 탑승했다. 작은 어선이 조용히 출발했다.
“소란 피워서 죄송해요. 갈게요. 그런데 저는 데아가 죽었다는 거 아직 못 믿어요. 전광판이 오류라면, 왜 일주일이 넘도록 고쳐지지 않고 있는 건데요?”
“그건.”
“실제로 측정된 공적치가 맞으니까 그렇겠죠. 맞죠? 언제까지 눈 가리고 아웅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거예요?”
“…….”
“…안녕히 계세요.”
대화의 단절이 찾아왔다.
백리서는 계속 애석한 표정을 유지하다가 배가 사라지자마자 싹 표정을 바꿨다. 미약한 피로와 짜증이었다.
“보고 있었어요?”
데아는 비죽, 고개를 내밀었다.
“영영은 길드 안에서도 가끔 저래요. 저런 모습은 보여 주기 싫었는데……”
“으음.”
“훈련장으로 돌아가세요. 의심받지 않게.”
“나 보건실 가려고 나온 건데.”
“데려다드릴게요.”
백리서는 데아가 들고 있던 담요를 들어 주었다.
“그리고 죄책감 같은 거 가지지 마세요.”
“그닥? 그냥, 조금 미안할 뿐이야.”
“저 인간에게 미안하신가요? 너무 저 인간을 신임하지는 마세요.”
그때 백리서의 진짜 표정이 설핏 드러났다. 그건 냉랭하고도 온화한 다정이었다.
“5년 전, 2차 게이트의 공략이 끝나고, 영영 헌터가 몰래 저를 찾아왔었습니다. 왜 왔을 것 같나요?”
“…그랬어?”
“일종의 고발이었죠. 주군이 둔갑한 인어로 의심된다는.”
데아가 어이없이 고개를 돌렸다.
“어? 그때? 뭘 보고?”
“게이트가 열린 찰나의 순간에, 갓 튀어나온 하급 인어들이 주군을 공격하지 않은 걸 목격한 거죠. 놀랍지 않나요? 사이좋게 주군과 돌아가 놓고, 홀로 다시 돌아와 그런 보고를 한다는 것이.”
영주 언니가 그랬다니.
“예리한데……?”
“그러니 부디 부탁드립니다. 저 자에게 너무나도 큰 믿음을 보여 주지 마세요. 영영 헌터는 주군이 인어라는 것을 아는 순간, 철저하게 등을 돌릴 자입니다. 앞에서는 웃어도 뒤에서는 다른 말을 할 자이고, 덩달아 주군이 그냥 인어가 아닌 그 태초라는 것을 아는 순간, 곧바로 칼을 뽑고 달려들 자입니다.”
릴림의 언변은 차갑다. 그의 본질은 다정이지만 그것은 오로지 태초의 앞에서만 국한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충고 고마워. 정신이 조금 드네.”
그러나 데아는 하영주가 인간 헌터 ‘샤샤’에게 보여 준 진심을 믿었다. 그 결말이 어떤 형태일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믿었다. 믿고 싶었다.
“그런데 여기부터는 나 혼자 돌아갈게.”
◈ ◈ ◈
랭킹 4위 샤샤―이데아. 그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진짜 귀신의 소행일수도 있지. 샤샤 죽었잖아.”
“아니면… 샤샤 헌터가 그 3층 던전에 나온 호수에서 죽었나? 그래서 귀신이 붙은 거야.”
“야! 재수 없는 소릴!”
“아니 근데 솔직히 좀 이상하지 않았어? 우리 그때 컨디션 엄청 좋았어!”
그러자 동조의 물결이 퍼져 나갔다.
“진짜 귀신에 홀린 것 같지 않았냐? 이건 확실해. 이건 귀신, 아니면 누군가의 엄청난 조작이야.”
“조작?”
“이건 조용히 말 하는 건데…….”
헌터들이 소곤소곤 귓속말을 했다.
“뭐? 샤샤 헌터가 전광판에 올라간 것 때문에 여파의 주가가 폭등했다고?!”
“야, 조용히 안 해!”
“아. 미안…….”
“그래. 뭐. 어찌 되었든 샤샤 헌터는 여파의 전설이었으니까. 살아 있다면? 완전 대박인 거지……. 샤샤 헌터라면 단신으로도 포세이돈을 클리어할 수 있을걸. 5년 전 영상 봤어? SS급 보스 인어를 그대로 혼자 깨부수는 거. 그것도 압도적으로.”
“봤지. 그거 아직도 레전드 영상이라고 올라와. 진짜 그만큼 싸우는 헌터를 본 적이 없어.”
“그런데 여파 측에서는 사실무근이라고 기사 올라왔잖아.”
“말로는 누가 못 해.”
“아주 난리가 났다.”
헌터들이 소리가 난 쪽으로 휙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해먹 위에 누운 ‘설한지’가 휴대폰을 톡톡 두드리고 있었다.
“여기 원래 내가 자는 곳이라서 그런데, 떠들 거면 나가 줄래?”
“뭐? 저 F급짜리가 뭐라는…….”
“야, 야, 쟤 설한지잖아. 그냥 가자.”
미친개 설한지. 수틀리면 등급 안 가리고 온갖 쪼잔한 수를 더해 상대를 쓰러뜨리고 마는 집념의 화신 설한지.
헌터들이 수군거리며 자리를 떴다. 그때 우웅, 데아에게 연달아 문자가 왔다.
[(사진)]
[여파 망하게 한 헌터들 수거 완료.]
[ㅜㅜ]
발신인 권도언. 사진 속에는 익숙한 헌터 여럿이 짐을 싸들고 건물 밖으로 나가는 뒷모습이 찍혀 있었다. 자신에게 시비를 걸고, 더 나아가 돌돔을 폭행한 양아치들이었다.
“아. 어쩐지 최근에 안 보이더라.”
한 길드에서 강제 퇴출되면 헌터의 이름에 빨간 줄이 그어진다고 봐도 과장이 아니었다. 심지어 그 빨간 줄을 그이게 한 길드가 1위 여파라니. 이건 뭐…….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넌 거지.”
잘 가라. 다시는 보지 말자.
괜히 휴대폰을 놓고 느긋하게 쉬고 있던 때였다. 저 멀리 작은 점이 점점 커져 왔다. 자세히 보니 새였다.
“새? 설마…….”
툭! 데아의 바로 위로 돌돌말린 천이 뚝 떨어졌다. 바로 피파글랜의 전서였다. 그 안에는 인어들만 읽을 수 있는 문자가 쓰여져 있었다.
[안녕하세요. 주군?
날씨가 굉장히 좋은 요즘이네요. 아. 물론 저희 제국에서만요. 주군이 계시는 인간계는 매우 더운 여름이라는 소식을 들었어요. 굉장히 습하다죠? 그런 나라에서라면 하급 인어들도 지상에서 헤엄칠 수 있을 거라는 예감이 드는 군요…….]
“서론이 너무 길어.”
쭉쭉 넘기자 드디어 본론이 나왔다.
데아가 신호를 쏘아 보낸 포세이돈의 위치, 호수 지역을 조사하고 얻은 성과가 쭉 적혀 있었다. 결론은 다음과 같았다.
1. ‘창’의 마력이 느껴지지만, 그건 비단 칸나니아만의 힘이 아니다.
2. 자연적이지 않은 무언가가 침범하고 있다. 아마 인간들의 능력인 것 같다.
“인간들의 능력이라면… 연구나, 병기와 관련된 힘일까.”
인간들의 연구가 인어들 고유의 성질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는 건 굉장히 큰 지표였다. 데아는 혀를 내둘렀다.
“연구원도 연구원이지만… 자금을 대는 투자자와 협력체부터 없애는 게 더 효과적이겠지.”
날이 기울었다.
◈ ◈ ◈
그리고 어느 날의 아침, 이상하게 섬 전체가 술렁였다.
“왜 그래?”
“새로운 교관들이 왔대!”
“교관? 그래서 지금 우리를 강당에 부른 거야?”
훈련소장들을 도울 교관들이 차출되어 한자리에 모였다. 데아는 수많은 인파 속에서 비죽 고개를 내밀었다.
“어?”
“왜? 아는 사람이라도 있어?”
“아니, 그건 아닌데…….”
사실 있었다. 엄청나게 잘 아는 인어가!
데아의 표정이 아리송하게 물들었다.
“왜…….”
자잔, 쟤 왜 저기 껴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