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식인인어는 죽어야 한다-167화 (167/223)

※ 167화

칸나니아가 슬며시 주먹을 쥐었다. 여기은은 눈치채지 못했다.

“오히려 나는 네가 이곳에 있는 게 더 이상한데,”

“나는 길드 통합 팀의 주최자야. 이번 공략을 마친 헌터들을 보러 오겠다는 게, 뭐?”

“그랬다면 나에게 연락을 먼저 하고 왔어야지. 엄연한 총책임자는 바로 난데. 왜 쥐새끼처럼 연락도 안하고 오는지…….”

백리서가 웃었다.

“와… 세다!”

그걸 지켜보던 세연이 중얼거렸다. 데아도 동의했다.

저 둘이 사이가 더 안 좋아진 것 같은데… 착각인가?

“네가 이곳에 온 목적은 하나겠지. 샤샤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 전광판에 걸린 이름이 그렇게 무서웠나? 단독 행동을 하지 않는 네가 여기까지 한걸음에 들이닥친걸 보면.”

“백리서.”

“혼자 보기 아까운 행동이로군. 궁금했다면 여파로 직접 찾아와 권도언에게 물어보거나 나에게 연락했으면 되는 것을. 아, 그럴 용기는 없고, 몰래 훔쳐보고 판단할 행동력은 있고? 내가 괜히 아는 척을 했나 봐? 미안해. 나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수상한 자들이 하나…….”

백리서는 칸나니아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둘…씩이나 있는 걸 보고 선전 포고인 줄 알았지?”

“너, 그만 못 해?”

“샤샤를 납치해서 살인 미수까지 저지른 게 고작 5년 전이야, 여례.”

백리서의 표정이 더없이 서늘해졌다.

살벌한 분위기에 백리서와 여기은 주변으로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모여들었다.

“전광판에 샤샤의 이름이 걸린 걸 보고 득달같이 달려온 꼴을 보면 좋은 말이 나갈 수가 없어.”

그 순간, 데아는 생경한 감각에 휩싸였다.

‘릴림… 정말 나에겐 예의를 지키는 거였구나…….’

“한지야, 저 둘이 뭐라고 하시는 거야? 잘 안 들려.”

“아무 말도 안 했어.”

“샤샤 헌터의 이름이 들렸는데?”

모른 척하긴 글렀군.

“그… 너도 알잖아. 이번에 전광판에 샤샤 헌터의 올라간 거. 그거에 관련된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아.”

“아… 역시 그렇구나. 어쩐지.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긴 하지. 다른 사람 말로는 오류라는데, 정말 오류일까?”

“오류지 않을까? 사람들 다 오류로 알고 있던데.”

데아는 필사적으로 오류라고 밀어붙였다.

“그건 그래. 사람들 다 괜한 오류로 샤샤 헌터가 끄집어졌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더라. 아! 맞아. 한지야, 우리 거기 갈래? 밖에서 밥 먹고 버스로 한 정거장만 가면 추모 공원 있거든. 그 안에 샤샤 헌터가 있어. 이번 일로 사람들이 또 꽃 들고 가고 있더라고.”

“…뭐?”

내 무덤? 내 납골당?

“그게 왜… 있어?”

“왜 있긴. 추모해야 하니까 있지. 5년 전에 샤샤 헌터 공식 사망 기사 떴을 땐 전 국민이 나서서 추모하고 그랬어.”

“아니, 그러니까… 왜?”

데아는 홀린 듯 세연을 따라 식당에 들어가 젓가락질을 하면서도 진심으로 이해가 가지 않아 물었다.

“왜 샤샤 헌터를 추모해? 샤샤 헌터만 없으면 안전해질 거라며?”

“어, 어?”

“인어들이 인간계 몰려든 이유가 6년 전 생존자 때문이고, 그 때문에 샤샤 헌터가 몰려서 억지로 게이트 넘은 거 아니야? 그걸 왜 이제 와서 추모해?”

5년 전, 데아는 정신적으로 몰려 있었다.

정체가 밝혀지자마자 서늘하게 자신을 눈짓하는 동료 헌터들과, 비명을 내지르는 시민들. 당장 안으로 들어가라며 소리를 내지르던 사람들이 5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눈에 선했다.

“그…렇게도 생각할 수도 있구나. 아니지. 그게 맞지. 그렇지? 그런데 사람들이 샤샤 헌터가 죽고 나니까 동정표를 던져서…….”

“동정표를 던진다고? 왜……?”

데아는 진심으로 궁금해졌다.

“죽고 나니까 조금 불쌍해졌나……?”

그렇게 말하는 데아의 표정이 멍했다.

나를 절벽 끝으로 몬 게 누군데. 6년 전 생존자의 얼굴을 확인하겠다며 길 가던 아무 사람이나 붙잡고 얼굴에 카메라를 들이대던 사람들이 누군데.

제기랄, 생각해 보니까 이 사달의 원인인 움한테는 아직 아무 말도 못 했잖아? 직접 만나면 한 소리 해야지.

“그… 추모 공원, 가지 말까?”

“아냐. 가자. 갈래.”

버스를 타고 공원으로 가는 길, 데아는 여전히 사람들의 심리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이제 와서 동정표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기가 찼다.

심지어 추모 공원에는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모두 하나같이 손에 꽃을 들고 있었다. 누군가는 포스트잇에 글을 써서 덕지덕지 붙이기도 했다.

“이게… 뭐야…….”

“우리도 글 쓸래?”

“그래. 뭐…….”

자기들이 뭔데 나를 동정해…….

어이없음과 허탈함이 폭포처럼 찾아왔다.

세연이 으응, 눈치를 보며 펜을 내려놓았다.

“쓰지 말까?”

“아냐. 써. 괜찮…….”

이게 이렇게 쉽게 해결될 갈등이었나? 쉽게 해소될 원망이었나?

데아는 자신의 감정 끝, 고여 있는 응어리를 발견했다.

그건 분노였다.

도대체 무슨 자격으로, 나를 동정해?

심장이 차갑게 식었다. 데아는 누군가 붙인 포스트잇을 한 장 떼어 냈다. 써진 글귀는 다름 아닌 ‘보고 싶어요.’였다.

“…실제로 있었으면 안 보고 싶어 했을 거잖아.”

“한지야?”

“‘영웅을 기리며’? 지금까지 거리에 게이트가 있었어도 과연 샤샤가 영웅이었을까?”

“한지야.”

“결국 다 죽어서지. ‘희생을 기억할게요’라고? 떠밀린 건 사회적 타살이라고 하지, 희생이라고는 잘 안 하지 않나.”

“한지야. 다, 다 들리겠어……!”

“들으라고 해. 어쩔 건데. 개자식들.”

어느새 데아의 호흡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자신도 통제할 수가 없었다.

“내가 왜…….”

아직까지 인간계에 맨얼굴로 못 나오는데.

칸나니아가 나를 노려서? 그 이유도 맞았다. 그러나 그것뿐만은 아니었다.

데아의 기억 속, 인간계 속의 ‘샤샤’는 언제나 숨어야 했던 죄인이었으므로.

“정말 어이가 없네…….”

“한지 헌터.”

그때 뒤에서 무거운 목소리가 들렸다. 언제 따라왔을지 모를 백리서였다.

백리서의 등장에 추모 공원에 모인 사람들이 놀란 비명을 질렀다.

“나오시죠.”

“…….”

백리서는 미간을 꾹꾹 누르며 손을 내밀었다. 데아는 만지작거리던 꽃다발을 툭, 바닥에 버리곤 휙 지나쳐 나갔다.

백리서가 끌고 온 세단에 올라타 다시 호텔로 들어갈 때까지, 시간이 흘러 다시 배를 타고 섬으로 돌아갈 때 까지, 데아는 그와 관련된 말을 더 하지 않았다.

◈          ◈          ◈

“무슨 영상 봐?”

쏜살같이 시간이 흘러 섬으로 돌아온 직후였다. 세연은 그날 이후로 데아에게 샤샤 헌터에 관련된 말을 꺼내기 심히 조심스러워했다.

“아, 어? 아무것도 아니야.”

그러나 데아는 똑똑히 헤드라인을 보았다. ‘샤샤 헌터 의심 영상’.

“줘 봐.”

“어?”

영상 안에는 해일을 멈추는 작은 인영이 있었다. 흐릿해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건 분명 자신이었다.

처음 인간계에 나왔을 때, 해변가에서 해일을 멈추고 아이를 구하던 이데아였다.

“그… 안 보여 주려고 해서 미안해. 그런데 네가 샤샤 헌터 관련된 일이면 그닥… 안 좋아하는 것 같아서.”

“응. 아니야. 내가 더 미안해.”

데아는 머리를 쓸어 넘겼다.

“요즘 부쩍 예민해져 있었나 봐.”

세연은 잘못이 없다. 데아의 사과에 세연이 다시 방싯방싯 웃었다.

“그런데 이 영상이 왜 샤샤라는 거야?”

“아! 이 해일 규모를 봐. 엄청나게 크잖아. 그런데 한 번에 막아 낼 정도의 힘을 가진 헌터라면 유명하지 않을 리가 없는데 아무도 누군지 모르고, 또 아이를 구한 직후에 혼자 사라졌대. 게다가 여자고, 체구도 샤샤 헌터랑 비슷하지 않냐고 해서 말 나온 거야. 물론 진실은 아무도 모르겠지. 다 추론인걸.”

그때 돌돔이 왱왱 울며 데아에게 다가왔다. 데아는 돌돔을 껴안고 열심히 쓰다듬었다.

공략에 간 동안, 공략에 참가하지 않는 가까운 헌터에게 케어를 맡겼더니 조금 살이 찐 것 같았다. 말랑말랑.

“그런데 이 헌터, 머리카락이 하얀 색이네.”

“응. 하지만 머리카락 정도는 탈색하면 되는 거니까. 그런데 이 헌터 진짜 멋있는 것 같아. 나라면 능력이 있어도 해일에 가까이 못 갈 것 같은데, 아이까지 구하고. 거기다가 보상 하나 안 바라고 훌쩍 사라져 버리고. 진짜 대단해…….”

“…으음. 그렇구나.”

데아는 편의점에서 산 캔을 탁! 뜯었다. 블루 레모네이드. 빨대를 꼽아 빨자 청량한 탄산이 확 차올랐다.

“애들아, 너네 아직도 방에 있어? 지금 오후 훈련 시간이야!”

그때 데아의 방문을 확 열며 석파란이 나타났다.

“지금 내려갈게요!”

“네. 가요.”

물론 데아는 가서 하는 일이 별로 없었다. 3층 공략 이후로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진 병약 F급 헌터 연기를 하느라 항상 그늘에나 누워 있었기 때문이다.

“설한지… 너 또냐? 또, 또 훈련 안 하고 놀아?”

훈련 소장이 발발 뛰자 데아는 말없이 발을 들어 올려 까딱거렸다. 그렇다는 표시였다.

그때,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어? 누가 왔는데?”

“누구야?”

“외부인이 무단으로 들어왔대!”

“외부인? 외부인 누구?”

데아는 느긋하게 고개를 들었다.

“누가 왔어?”

“여파 부길드장이라는데?”

그 말을 듣자마자 데아는 황급히 담요를 뒤집어썼다. 여름이라 더웠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어제, 세연이 한 말이 다시 떠올랐다. ‘하영주 부길드장님은 어때?’라는 데아의 물음을 들은 직후였다.

“영영 부 길드장님은… 인어 토벌에 그 누구보다 앞장서는 사람이야, 아마? 배협 길드장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어.”

세연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이어 말했었다.

“MBL 연구소의 최대 투자자라는 소문도 돈다고 하셨는데… 그 뭐지? MBL이 엄청난 걸 연구하고 있대. 아, 이건 어디 가서 말하면 안 돼? 소문으로는 인어를 단번에 죽일 병기를 만든다고 했어. 물론 확실한 건 아니야.”

‘병기를 만든다고.’

데아는 그 ‘병기’가 무엇인지 단박에 간파했다.

태초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바로 그 병기.

‘그런데 영주 언니가 그 병기를 만드는 MBL연구소의 최대 투자자라니.’

괜히 마음이 쓰렸다.

여파 건물의 1층 로비에서 보였던 이상한 적대감이 다시 떠올랐다. 인어를 감별하고, 죽이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만 같아보였던 눈빛. 그건 분명 그 일에 자신의 모든 삶을 바친 사람의 눈이었다.

그리고 데아는 왜 하영주가 그렇게 변해버렸는지 바로 이해했다.

하영주의 입장에서 인어는,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 둘을 송두리째 빼앗아버린 악마와 다름없던 것이다.

‘심지어 둘 다 바로 눈앞에서 다쳤지.’

‘이데아에게 치명상을 입힌 칸나니아가 그 여례아와, 그리고 MBL과 협력 관계라는 걸 알면 마음을 돌리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었다. 그러나 그러려면 데아가 어떻게 살아 있는지부터, 모든 것을 밝혀야 했다.

그리고… 결국 그 싸움에 가윗이 휘말리고, 하영주가 피해를 입은 건 사실이었으므로 데아는 입을 다물었다.

‘위험 부담이 너무 커. 자칫하다간 나에게 더 큰 배신감을 느낄 거야.’

추론이 아닌 확신이었다.

데아는 그것이 몹시나 두려웠다. 데아가 릴림에게, 날 속인 모든 인어들에게 화를 냈던 것처럼 그도 화를 낼 것이다.

‘나는 태초이기라도 했지, 영주 언니는?’

태초는 결국 인어들을 용서했다.

그러나 하영주는 다를 것이다.

“이대로 죽은 걸로 두는 게 서로에게 낫지 않겠어요?”

피파글랜. 그는 현명했다.

데아는 하영주와 마주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보건실에 들어가 있기로 했다.

“저 머리가 아파서 그러는데, 이만 들어갈게요…….”

하영주 여파 부길드장은 전 랭킹 4위, 현 랭킹 5위에 빛나는 실력자였다. 당연히 모든 헌터들이 그를 보기 위해 난리법석을 떨었다. 덕분에 데아는 샤샥 빠르게 훈련장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데아! 나와!!”

물론, 보건실에 가기로 한 건 아주 잘못된 선택이었지만.

“이데아! 샤샤!”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데아의 발걸음이 우뚝 멈췄다. 저 멀리 배가 정박한 항구에서 하영주가 자신을 막아서는 장정들을 밀치고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여, 영영 부길드 장……!”

“비켜!”

전직 유도 선수 A급 탱커. 아무도 하영주를 막을 수 없었다.

데아는 진짜로 어지러워졌다. 왜, 저기서 내 이름을…….

“이데아! 여기 있는 거 다 알아!! 너 살아 있는 것도 다 알아!”

하영주가 재차 소리 질렀다.

이데아의 이름이 연속으로 불리자 헌터들이 아예 노골적인 관심을 품고 기웃거렸다. 점점 데아의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

‘무, 무슨……!’

그때 하영주와 데아의 눈이 확 마주쳤다. 하영주의 얼굴이 확 굳어지며 성큼성큼 데아에게 다가왔다.

“너.”

정말 믿을 수 없게도, 데아는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다. 온몸이 굳어버린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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