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식인인어는 죽어야 한다-166화 (166/223)

※ 166화

“이미 늦었다. 태초는 이미 이곳에 왔어.”

MBL의 연구 소장 정소진은 어둡게 낯을 굳혔다. 칸나니아가 저렇게나 긴장하는 건 처음 봤다.

“태초가 헌터명 노출 시스템을 모를 리가 없는데, 이렇게 대놓고…….”

칸나니아는 헌터 샤샤와, 태초가 동일 인물이라는 것을 유일하게 정소진에게만 알려 주었다. 때문에 정소진은 전광판을 보자마자 망부석처럼 굳을 수밖에 없었다.

헌터 샤샤. 태초가 이미 이곳에 들어왔다!

까드득―

칸나니아는 어금니를 갈았다. 정소진이 황급하게 끼어들었다.

“몰랐을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요? 5년 동안 인간계는 많이 바뀌었잖아요. 칸나니아 님의 말씀대로라면 태초는 인간계에 나오지 않았으니까…….”

“그럴 리가 없다.”

태초에겐 므아나와 움이라는 훌륭한 눈과 귀가 있었으니까.

특히 므아나. 그 충성스럽고 융통성 없는 인어가 태초에게―

“말을 해주지 않았을 리가…….”

해주지 않았었다. 그러나 칸나니아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뇌했다.

“그렇게 소통이 되지 않았을 리가…….”

물론 되지 않았었다.

“그렇다면 역시 이건 과시인가?”

아니다.

그때 칸나니아가 작게 웃었다.

“과시로군. 역시 대담하군. 태초. 이렇게나 위험하고 거침없는 선전 포고라니…….”

의도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을 모르는 칸나니아는 정소진에게 명령을 내렸다.

‘행동을 조심해야겠어. 태초가 어디부터 어디까지 예측하고 있을지 모르니. 그리고 이건… 분명 함정이겠지.’

“정소진, 그 300명 가운데에서 샤샤 헌터를 찾는 건 쓸데없는 짓이다.”

“네?”

“대놓고 자신을 드러냈어. 어떻게든 들키지 않을 자신이 있던 거겠지. 그 말인 즉, 주어진 정보 안에서 자신을 찾지 못하리란 확신이 있었다는 거다. 그래. 원래 그랬지 당신은…….”

태초는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며 무방비하게 자신을 드러내는가 싶다가, 그 모습에 방심하고 들어온 사냥감을 단번에 물어뜯기도 했다.

“함정이다. 그 300명에게 다가가지 마라. 다른 것에 신경을 빼앗기지 마! 아니, 아니지. 가더라도 내가 가겠다. 분명 여기은은 관련된 곳에 찾아갈 테니까. 옆에서 섣부른 짓은 못하게 막아야겠어. 지금 여기은은 어디에 있지?”

가장 먼저 해야 할 건 태초의 눈과 귀를 잘라내는 일이다.

‘므아나, 그리고 움. 백리서 헌터와 예언자 연옥의 존재를 그냥 폭로해야 할까?’

어차피 이쯤 되면 자신의 위치를 다 파악하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그 둘이 인어라는 증거는 그 어디에도 없어.’

어설픈 폭로는 역풍을 빚는다. 칸나니아는 기다리기로 했다.

“어쨌든. 300명 안에는 없다. 그 시간에 완전히 다른 곳을 찾아보는 게 나을 거야.”

◈          ◈          ◈

“아, 망했어. 칸나니아가 벌써 나 알아챈 것 같아…….”

그 시간, 데아는 홀로 좌절 중이었다.

가윗의 병실에서 도망치듯이 나오고 이틀이 더 지났다.

300명의 헌터들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꿀 같은 일주일간의 휴식을 즐기고 있는 가운데, 오직 데아 혼자만 밖에 못 나가고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조용해서 더 불안해……!”

“한지한지 뭐해? 오늘도 아파? 밖에 나가서 놀면 좋은데……. 며칠만 더 지나면 또 섬에 갇혀 지내야 하잖아.”

“아 갑자기 열이 오르네…….”

“안 되겠다. 해열제도 먹었다며? 그런데 소용없는 거지? 병원 가자.”

세연이 텅 빈 약상자를 덜렁덜렁 흔들다가 데아의 팔을 꽉 붙들고 밖으로 나섰다.

근처를 지나던 연가을은 그 모습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아니, 사, 상대가 누군 줄 알고 그렇게 애 다루듯이 끌고 나와?!

“어, 어? 어디 가요?”

“저 한지랑 병원 가요. 약만 먹으면서 버티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아냐. 나 나았어. 아 나은 것 같아.”

“너 어제도 그 말했어. 얘 얼굴 뜨거운 것 좀 봐!”

그건 칸나니아 때문에 열이 올라서 그런 거였다.

“나 모자랑 마스크만 쓰게 해주면 안―”

아냐. 여기서 숨기는 모습을 보였다간 더 의심받을 수도 있었다.

“그래. 가자. 가. 가도 소용없겠지만.”

◈          ◈          ◈

의사는 대강 데아를 휙 보고는 체온을 쟀다.

36.6도.

“정상인데요?”

“네? 얼굴이 이렇게 뜨거운데요?”

“네 손이 차가운 게 아닐까?”

데아는 그 길로 빙 돌아서 병원을 나왔다. 계속 ‘이상하네…….’를 반복하는 세연의 거친 음성과 그 모든 것을 바라보는 연가을의 불안한 눈빛이 유령처럼 따라왔다.

“세연, 세연 헌터님.”

“네? 아, 그 여례아 헌터분 아니세요?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그런데 저분이 조금 힘들어 보이시는데 이만 안에 들어가시는 게 어떨까요?”

놀랍게도 연가을과 세연은 오늘 처음 통성명을 하는 중이었다.

세연은 새로운 헌터 친구가 생겼다는 생각에 들뜬 건지, 환하게 미소했다.

“그런가요? 그럼 어쩔 수 없지. 한지야 이만 들어가자!”

하고 호텔 입구 쪽으로 한걸음 내디딘 순간이었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회전문 사이로 누군가의 인영이 비춰졌다. 그리고 그 순간.

“…한지야?”

데아는 확 뒤를 돌았다.

“아냐. 지금은 때가 아닌 것 같아. 세연아 너 뭐라고 했지? 공원 산책 하자고? 밥 먹고 들어가자고? 어 좋아.”

“아니, 나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연가을의 발이 우뚝 멈췄다.

“어? 길드장님? 여기은 길드장님 아니야? 왜 저기서 나오시지?”

데아의 눈이 질끈 감겼다.

그래. 호텔의 회전문 안, 그곳에는 여기은이 있었다.

심지어 여기은은 혼자가 아니었다.

“옆에 저 사람은 누구야? 마스크에 선글라스에… 덥겠다.”

그래. 바로 그자가 문제였다.

마스크에 선글라스를 끼고, 얼굴 한쪽에 화상 흉터가 있는 큰 키의 여자. 그는 바로 칸나니아였으므로.

‘왜 둘이 거기서 나와??’

이로서 여례아―칸나니아의 결탁 관계가 확실해진 건 좋은데……. 데아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삐꺽거리며 슬슬슬 왔던 방향으로 도망쳤다.

‘릴림은 어디에 있지? 마주치게 하면 안 좋을 텐데…….’

특히 지금 상황에선. 데아는 빠르게 문자를 보냈다.

[카나나나이아 왔어 얻디야? 호테ㄹ로 오지 마.]

“나, 나 잠시만 다녀올게.”

“어딜?”

그때 연가을이 기대를 품고 환하게 웃었다.

“지금이라면 우리 언니에 대해 물어볼 수 있을 것 같아!”

그러고 보니 연가을의 언니가 여례아와 협력 관계인 MBL 안에 있다고 했었나. 데아는 알아서하라는 듯이 손을 휘젓고 담 뒤로 몸을 숨겼다.

연가을이 우다다 여기은에게 뛰어갔다.

“안녕하세요, 길드장님!”

그리고 곧장 90도 인사를 박았다.

“응?”

“저 여례아 공략 3팀 소속 A급 헌터 연가을이라고 합니다! 헌터명은 가을이에요.”

“아… 아아. 가을 헌터. 아, 맞아. 지난번에 새로 들어온 돌진계 공격수 맞죠?”

“네!”

나를 기억하고 계시다니! 연가을은 감격했다. 그러나 여기은은 간신히 삐딱한 비웃음을 감췄다.

‘얘, 정 소장 여동생이잖아.’

못 알아볼 리가 없었다. 연가을이라는 특이한 이름은 한 번 듣자마자 머릿속에 박아 두었으므로.

정소진이 가족을 찾겠다고 연구를 다 내팽개치고 전국을 돌아다니던 걸 어떻게 포기시키고 제자리에 앉혀 놨는데, 동생이 찾아와?

“반가워요. 무슨 일이시죠?”

그래서 여례아의 최종 지원에서 ‘연가을’이라는 이름을 봤을 때 일부러 합격시켰고, 곧장 길드 통합 팀의 일원으로 넣어서 섬으로 보내버렸다. 그쪽이 더 통제하기 편할 테니까.

“그… 혹시 뭘 여쭈어보고 싶어서요. 무작정 찾아온 점 정말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뭘 묻고 싶은데요?”

“저, 길드장님, 실례지만… MBL 연구소의 소장님과… 잘 아시는 사이시죠?”

여기은의 눈이 가늘어졌다. 역시나. 자기 가족을 찾아 왔군. 그러나 여기은의 속을 모르는 연가을은 마른 입술을 축이며 말을 이었다.

“그… 사실은 제가 그 MBL 정 소장님과―”

“가족?”

“어, 네? 어, 어떻게 아셨어요?”

연가을이 펄떡 뛰었다.

“마, 맞아요! 혹시 언니가 저에 대한 말을 한 적이 있나요? 한 번이라도 좋으니 만나 보고 싶어서요……! 사실 먼저 찾아가 보려고 했는데, 도저히 MBL에는 갈 수가 없어서…….”

“네. 많이 말씀 들었어요. 그런데 이걸 어쩌나…….”

여기은은 난처하게 자신의 턱을 매만졌다.

“이걸 말해 줘도 되려나 모르겠네요.”

“네… 네?”

“가을 헌터. 상처받지 말고 잘 들어요.”

둘을 절대 만나게 할 수는 없지.

‘병기’의 성과가 코앞이다. 정소진의 연구에 영향을 끼칠 만한 것들은 싹 제거해야 옳았다.

여기은은 일부러 슬픈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정 소장은, 오히려 가족을 피해 다녔어요.”

“…네?”

“가족을 그리워하지 않았다고요. 가난하고, 궁핍한 하수구 같은 곳에서 혼자라도 나올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이라고 했는지 몰라요.”

연가을의 얼굴에 혈색이 사라졌다.

“오히려 가족이 찾아오면 어떡하냐며, 저에게 고민을 토로했었죠. 그런 사람들에게 자신의 창창한 앞날을 방해받고 싶지 않다고 단호하게 말을 했었는데… 욕설의 수위가 너무 심해서 제가 그만하라고 말했던 것만 기억이 나네요.”

“…….”

“가을 헌터. 이런 말을 하게 되어서 미안해요. 하지만 도저히… 모른 척할 수 없었어요. 그래도 직접 본인에게 이 말을 듣는 것보다는 낫죠?”

그리고 여기은은 연가을의 덜덜 떨리는 손을 꼬옥 잡았다.

“그래도 제가 도와줄 수 있는 한, 최대한 많이 도와줄게요. 너무 실망하지 말아요.”

“…저, 저는.”

연가을은 필사적으로 울음을 참았다.

“가, 가보겠습니다. 말씀해 주셔서 감사해요.”

“미안해요.”

“길드장님은 잘못이 없으세요. 제가, 제가 눈치 없이…….”

최악의 상황이 현실이 되었다.

가난하고 궁핍한 하수구. 그 앞에선 그 어떤 말도 불필요했다.

그리고 동 시간, 저 멀리서 그들을 몰래 지켜보고 있던 자들이 있었다.

“너, 너무해, 어떻게 저런 말을 해……?”

라며 연가을의 언니를 탓하는 세연과,

‘저거 분명 구라다.’

라고 생각하는 데아까지.

‘여기은을 한두 번 봐? 저 입꼬리 올라가는 것 좀 봐. 저 즐거워 미치겠다는 표정.’

“왜 길드장은 하나같이 저 모양일까? 권도언도 여기은도 다 이상해.”

“어? 데아야, 뭐라고?”

“아니야.”

그러나 불쌍한 연가을은 고개를 꾸벅 숙이고 부리나케 호텔 쪽으로 달려갔다. 귀가 붉은 걸 보니까 우는 것 같았다.

“따라가야 할까?”

“아냐. 혼자 둬.”

그때였다. 데아의 옆으로 긴 그림자가 스쳐 지나갔다.

익숙한 마력. 데아의 눈이 크게 떠졌다.

“어? 아니, 왜…….”

‘내가 오지 말라고 했잖아 릴림!’

◈          ◈          ◈

“저 인간이 정소진의 동생인가?”

“그렇죠. 네.”

칸나니아는 날카롭게 연가을의 뒷모습을 살폈다.

“대처는 잘했군. 방해물은 치워야 하니까.”

등을 돌리는 순간이었다. 칸나니아는 날카롭게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비수 형태의 마력을 느꼈다.

“!!”

휘익! 간신히 피하자 마력은 팍! 터져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왜 그러시는… 아.”

여기은이 저 멀리 다가오는 인물을 보고 인상을 팍 구겼다.

“네가 여긴 어쩐 일이지? 백리서.”

“무슨 일이기는. 길드 통합 팀에 소속된 헌터인 내가 이곳에 있으면 이상한가?”

백리서는 여기은에게 가볍게 대꾸하여 시선을 느릿하게 돌렸다. 시선이 향한 곳은 여기은의 옆, 검은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쓴 칸나니아였다.

둘의 시선이 일순 차갑게 맞부딪쳤다.

‘므아나…….’

검은 정적 속, 칸나니아가 슬며시 주먹을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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