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5화
“백리서 헌터님 맞죠!”
“와!”
결국 데아는 도망치듯 그곳을 나가 다시 차로 돌아왔다.
“내 예상보다 더 릴림이 유명하다.”
“…….”
“그… 제가 호위해 드리겠습니다.”
“여기서 호위하면 큰일 나, 헤타…….”
“그냥 사 가지고 가면 안 돼?”
그렇게 데아는 헤타와 함께 편의점에 들려 온갖 음료를 사고, 또 식당에서 안줏거리를 공수한 다음 후다닥 차에 올라탔다.
그렇게 데아는 자신의 방에 모두를 데려가 밤이 기울도록 웃고 떠들고, 마셔 댔다. 몇 년 만의 일탈인지도 감이 잡히질 않았다.
“어? 권도언 길드장님. 지금 왜 전화하셨어요?”
―…전화를 하신 건 데아 씨인데요?
“아, 그렇구나? 그것 참 죄송…….”
―술 마셨어요? 설마 랭킹 때문에?
“네. 마시고 걱정을 털어 내려고요. 지금 저 말고 다른 사람들, 아니지… 인어들도 있거든요. 몰랐는데 나 이런 거 좋아하네……. 재밌다.”
―인어들… 얼마나 있는데요.
“저 포함해서… 네 명?”
―…다 1세대예요? 백리서까지 포함해서?
“아 그렇죠. 어쩌다 만났어요.”
휴대폰 너머 권도언이 탄식하는 소리가 들렸다. 인어 네 명이 한자리에 있다니.
―오늘 인간계 침략하시는 거 아니죠?
“음… 생각해 볼게요.”
물론 농담이었다.
데아는 이위로가 자신을 이상하게 쳐다보는 것도 개의치 않고 웃어 댔다. 그 후에도 권도언은 끊임없이 말을 걸었다. 듣다 못한 백리서가 휴대폰을 강제 종료 할 때까지.
“주군, 주무세요.”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옆 호실이 비어 있더라고요.”
“거기 내 방이야. 그냥 써.”
“네.”
새벽 세 시, 백리서는 이위로와 헤타를 다른 호실로 내보낸 다음, 드르렁 코를 고는 데아를 침대에 눕혔다.
◈ ◈ ◈
새벽 다섯 시. 데아는 아무도 없는 방 안에서 눈을 번쩍 떴다. 두통이 몰려왔다.
“아, 아아, 악……!”
숙취 무슨 일이야……. 데아는 한동안 이불을 잡고 끙끙거리다가 간신히 일어났다.
“나, 두 시간밖에 안 잤어……? 아, 머리야.”
데아는 더듬거리며 침대 아래로 내려간 다음, 커튼을 차르륵 걷었다.
여름의 아침은 빠르다. 벌써부터 파란 동이 트기 시작한 하늘이 데아를 맞이했다.
웃고 떠들던 두 시간 전이 까마득한 옛날 같았다.
그 괴리감 속에서, 저 멀리 하얀 병원 마크가 보였다.
아, 가윗.
‘가윗이 있는 병원에 찾아갈까…….’
데아는 충동에 몸을 맡겼다. 자신이 생각해도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그래 인정하자. 난 술이 덜 깼다.’
“그래도 가야지……. 그나저나 병문안에 가려면 꽃이 있어야 하는데…….”
새벽 다섯 시에는 꽃집이 문을 안 열잖아.
다시 말하지만, 데아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모든 신경이 뒤흔들렸다. 데아는 홀로 창을 만들어 그곳을 넘었다.
도착한 곳은.
“주군?”
피파글랜의 집무실이었다.
지친 기색으로 남은 업무를 처리하고 있던 피파글랜이 안경을 쓱 올리며 엎어진 데아에게 다가왔다.
“갑자기 왜……. 잠깐, 혹시… 술을 드셨나요?”
데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척 내밀었다.
“갑자기 찾아와서 미안해. 나 꽃만 찾아서 갈게.”
“꽃이요? 저 뒤에 많으니 알아서… 아니, 제가 따오겠습니다. 여기 앉아계세요.”
“응. 알았어 고마워…….”
이윽고 피파글랜이 작은 꽃다발을 만들어 왔다.
“어어, 고마워. 그리고 내가 보낸 신호 확인했지? 그거…….”
딸꾹! 데아는 숨을 참았다.
“던전 포세이돈의 위치 신호.”
“…네. 확인했어요. 지금은 인어를 보내서 정보를 얻고 있답니다. 공략이 되자마자 사라진 것 같지만 괜찮은 정보는 얻을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있어요.”
“그래? 그러면 됐어…….”
“아, 그리고 주군. 전달해 드릴 말이 있습니다.”
“뭔데?”
피파글랜은 이 말을 지금 상태의 데아에게 해도 되나 고민했다.
“외곽 지역에서 실종 사건이 벌어지고 있어요. 무리에 포함되지 못하는 약한 하급 인어나, 문제를 일으켜 마을에서 퇴출당한 2, 3세대 인어들이 주로 사라지고 있어요. 인간들의 소행일 거라는 심증은 있긴 한데, 바로 어제 들어온 소식이라서 지금은 정보를 더 얻고 있는 중입니다.”
“실종이라니.”
“확실하진 않아요.”
“…그래. 인간계에 가서는 내가 알아봐 볼게.”
“아뇨. 릴림에게 따로 알리겠습니다. 주군은…….”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위험한 일에 발을 디디지 마세요.
그렇게 말하지 못한 피파글랜의 눈이 파랗게 빛났다.
인어들의 실종 사건은 확실히 중대한 사항이다. 태초의 힘이 필요한 건 명확했다.
“…적당히, 너무 큰 부담은 느끼지 마세요.”
데아는 알겠다고 대답하곤 또다시 창을 넘었다.
“맙소사… 리리타.”
“부르셨나요?”
“지금 당장 종이 새로 가져와. 므아나에게 편지를 써야겠다.”
“므아나 님께 편지를요?”
“그래. 주군이 저지경이 될 때까지 뭘 했냐고 따져야겠어.”
◈ ◈ ◈
저벅 저벅―
데아는 한 병실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1303호―서영호]
이 문을 열어도 될까.
데아는 고민하며 문을 당겼다. 드르륵, 병실 안이 드러났다.
“가윗.”
5년 만에 처음 보는 얼굴. 데아는 가윗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렸다.
처참할 정도로 많은 피를 흘리고 있던 가윗이 악몽처럼 되살아났다. 데아는 협탁 위에 꽃다발을 내려두었다.
“왜 이렇게 변했어…….”
가윗은 마치 앙상하게 마른 나뭇가지 같았다. 잘못 만지면 부러질 것 같아서 함부로 만지지도 못했다.
상상보다 더 참혹한 모습에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몽롱했던 정신이 싹 날아갔다. 데아는 가만히 의자를 끌어와 옆에 앉았다.
“…….”
5년간의 혼수상태. 오로지 링거로 삶을 연명하는 가윗.
데아는 과거의 동료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손을 올렸다.
“내가 널 고칠 수 있지 않을까?”
이제야 찾아와서 미안해. 데아는 느릿하게 가윗의 이마에 손을 올렸다.
그 순간, 머릿속에서 계산기가 펼쳐졌다.
내가 만약 가윗을 고쳐 준다면, 혹은 고쳐 준 기미라도 보이면, 누군가가 의심하지 않을까? 힐러를 중심으로 포위망이 좁혀 오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는 스스로가 증오스러웠다.
그럼에도 계산을 멈출 수가 없었다.
‘샤샤’가 전광판에 오른 순간, 이미 대부분의 헌터들은 ‘샤샤’가 살아 있음을 직감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대놓고 나오지 않는지 궁금해하겠지. 그리고 찾을 것이다.
용의자가 300명밖에 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 눈에 띄게 치료의 흔적을 남길 필요는 없었다.
‘내가 가윗을 치료해 준다면, 그건 분명 나에게 독으로 돌아와. 누군가 덜미를 잡을 거야. 모든 것을 들키고 말겠지.’
머릿속의 계산기가 멈추질 않았다. 죄악감이 목을 조르고 있었다.
“하지만…….”
방법이 그것만 있는 게 아니니까…….
바로 오늘 실험하지 않았던가. 치료가 아닌 지원, 당사자가 아니라면 그 누구도 알아차릴 수 없는 버프. 고작 그것만으로도 환자의 삶은 충분히 좋은 영향을 받으리라.
데아는 손을 다시 올렸다. 그리고 빠르게 지원 수치를 높였다. 아예 마력을 쏟아 붓고, 손을 뗐다. 겉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지만, 데아는 가윗의 안에서 확실히 맴돌기 시작하는 활력을 느꼈다.
“됐다.”
뚜벅, 뚜벅, 뚜벅.
그리고 그때, 데아는 퍼득 고개를 돌렸다. 저 멀리서 발자국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이쪽으로 오고 있다.
“안 돼.”
데아는 곧장 창을 넘었다. 목적지는 원래 있었던 호텔방.
번쩍! 형성되었던 게이트가 사라지자마자 가윗의 병실 문이 다시 드르륵 열렸다. 음울한 낯의 하영주였다.
“…뭐야?”
하영주는 침대 옆으로 빼진 의자와, 협탁 위에 놓인 꽃다발을 보고 걸음을 멈췄다.
“누가 여기 있다 갔나?”
불현듯, 하영주의 미간이 굳었다. 하루 종일 전광판에 새겨진 이데아의 이름으로 인해 신경이 날카로워진 그였다.
하영주는 빠르게 병실을 훑었다. 방금 전까지 사람이 있던 것 같은 온기가 느껴졌다.
“올, 올 사람 없는데…….”
가윗의 가족은 어제 지방으로 돌아갔고, 권도언은 하루 종일 길드 밖을 나서지 않았다. 다른 동료들도 3층 공략 성공으로 인해 정신없이 바쁘고…….
“마지막으로 여기 들른 게, 어젯밤 아홉 시인데,”
지금은 새벽 여섯 시. 즉, 밤과 새벽을 가로지르는 아홉 시간 사이에 누군가 은밀하게 왔다 갔다는 소리가 되었다.
하영주의 심장이 거침없이 뛰었다. 말도 안 되는 가정이 자꾸만 떠올랐다. 이게 다 오늘 본 전광판 때문이야. 그럴 리가 없는데…….
“설마.”
전광판의 랭킹은 오류다. 헌터 협회에서도 사실 관계를 확인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만에 하나. 오류가 아니라면?
“설마 데, 데아일 리가… 설마 데아가 여길 왔을 리가……!”
이데아는 죽었다.
그 잿빛 머리카락의 인어가 데아의 몸과 심장을 꿰뚫는 걸 두 눈으로 똑똑히 본 건 그 누구도 아닌 하영주 본인이었다. 그러니 분명 맞는데, 아닐 리가 없는데. 분명 데아는 죽었는데…….
하영주의 숨이 가빠졌다. 직감과 이성이 따로 놀았다.
하필 이때 네가 가윗을 찾아왔을 리가, 설마 네가 살아 있을 리가…….
“맙소사, 세상에……. 이데아.”
하영주가 뒷걸음질 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럴 리가, 설마 그럴 리가…….
그러나 하영주는 이미 확신하고 있었다. 숨이 턱 막혀 왔다.
살아 있다면 왜 내 앞에는 나타나지 않아?
나간 지 얼마나 됐지? 아직 이 병원 안에 있을까?
“데아야?”
정적. 새벽의 병원 복도는 언제나 그랬듯이 어둡고 차가웠다.
“데아야!”
우당탕! 묘한 직감을 감지한 하영주는 빠르게 병실 밖으로 달려 나갔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아무도 없었다.
“차, 찾아야 해.”
하영주의 호흡이 빨라졌다.
“그, 300명. 3층을 공략한 헌터들… 아냐. 그 모든 헌터들이 지내는 곳이 어디지? 그 섬, 맞아 그 섬…….”
하영주는 곧장 발걸음을 돌렸다.
“그 섬에 가자. 더 늦게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