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식인인어는 죽어야 한다-163화 (163/223)

※ 163화

“내가 왔어.”

―끄아, 흐으으, 저리가! 저리가아!

데아는 느릿하게 본체에게 다가왔다. 이미 전신을 덜덜 떨며 눈을 까뒤집고 있는 인어의 상태는 척 봐도 심각했다.

―크, 죽, 죽어, 죽여!!

“고통 없이 보내 줄까.”

이렇게 변해버렸다면 다신 돌아오지 않는다. 데아는 가만히 보스 인어의 머리카락을 넘겨주었다.

“누가 널 이렇게 만들었어?”

―크, 죽……!

턱! 데아는 자신의 목을 조르려는 손을 단번에 제압하곤 다시 물었다.

“칸나니아가 널 이렇게 만들었어?”

―크, 크륵, 흑, 흐으…….

보스 인어의 미간이 인정사정없이 일그러졌다.

그는 분명 슬퍼하고,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데아의 입이 다물렸다.

“내가 정리해 줄까?”

그 말에 보스 인어는 무너졌다. 그가 양 손을 싹싹 문지르며 고개를 미친 듯이 끄덕였다. 눈물은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 울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첨벙!

누군가 호수 속으로 뛰어 들어왔다.

데아는 빠르게 모습을 숨겼다. 호수에 뛰어든 사람은 백리서였다.

백리서는 단번에 본체를 발견하고 헤엄쳐 왔다.

인어화를 하지 않은 백리서의 모습에 보스 인어가 격렬하게 저항했다.

―끄아아아아악! 죽어!! 죽어어!!

“건방진…….”

백리서는 검을 가볍게 털고는 다시 겨냥했다. 이미 수많은 푸른 피를 묻힌 칼날이 섬뜩하게 빛났다. 그러자 보스 인어가 더 격렬하게 저항을 시작했다. 호수의 바닥 전체에 퍼져 있는 기다란 촉수와 몸이 뒤흔들리자 물살이 거칠어졌다.

90%.

그러나 백리서는 곧장 직진해 검을 치켜들었으며, 그대로 인어의 목을 향해 검을 내리찍었다.

아니, 내려찍으려 했다.

“…….”

흠칫, 백리서는 숨을 멈췄다. 누군가 백리서의 뒤에서 손목을 잡고 있었다.

93%.

돌아보지 않아도 누군지 알 수 있었다.

백리서는 흐르는 물처럼 들어오는 누군가의 마력을 고스란히 받아먹었다.

95%.

“…전 지원 필요 없는 거 아시잖아요.”

“나도 알아. 그냥 힘을 보태 주고 싶어서 그러는 거야.”

5년 만에 보는 태초의 본래 모습이었다.

백리서는 시야 끝에 살짝 비치는 하얀 잔상을 홀린 듯이 지켜보았다. 꼬리와 비늘, 흐트러진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붉은 눈. 심해의 눈.

5년 동안 감히 찾아갈 수도, 보러 오라고 청할 수도 없던 존재가 지금 자신의 뒤에 서있었다.

백리서는 짧게 숨을 내쉬었다.

“…지금은 가짜가 아니네요.”

“저 인어의 역린은 목이 아닌 등. 척추 중앙을 뚫어.”

“처음에는 설마설마했는데, 나중에 확신하고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경배를 빌려줄게.”

“왜 마력을 인간들에게까지 나눠 줘요?”

백리서는 어서 마력을 거두라고 소리치고 싶은 충동과 싸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에 무리는 안 가요?”

“…난 괜찮아. 그리고 저 인어는 한 번에 죽여. 어차피 너무 늦어버렸어.”

백리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자신은 그저 한낱 권속에 불과했으므로. 압도적인 강자 아래 고개를 숙이며 경탄하면 그만이므로.

백리서는 바다의 경배를 불러내는 데아를 바라보며 아무 생각도 하지 못했다. 아무 생각도.

“왜 주군이 직접 처리 안 하시고?”

“공적치 올라가면 안 돼.”

그 말에 백리서는 웃었다.

“이미 늦은 것 같은데…….”

“뭐?”

“아니에요.”

데아는 백리서의 손목을 잡고 검의 형태로 변한 바다의 경배를 끼워 주었다.

백리서는 자신의 손에 잡힌 바다의 경배를 가만히 응시했다. 바다를 닮은 태초의 무기는…….

“인어들에게 안식을 가져다주기로 유명하죠.”

태초가 원한다면, 상대는 그 어떤 고통도 느끼지 못하리라.

“주군.”

“왜.”

“이제 나 아는 척해 줄 거예요?”

데아는 고요히 백리서를 응시했다. 백리서의 입가가 느릿하게 올라갔다.

5년 전, ‘샤샤’가 끊임없이 신뢰했던 공격대장 ‘리서 언니’가 그곳에 있었다.

순간의 향수에 데아는 멈칫했다.

“처음 정신 병동에서 만났을 때보다 더 낯을 가리면 어떡해요. 그래도.”

그 순간, 버프의 수치가 100%를 뛰어넘었다.

백리서는 전신에 맴도는 힘을 만끽하며 한 걸음 내딛었다. 온몸의 피가 역류하며 뇌를 달구는 느낌이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역시 대단해요.”

백리서가 사납게 읊조렸다.

데아는 번뜩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하필 그때 백리서가 단번에 보스 인어의 역린을 꿰뚫었기에 그의 표정을 볼 수가 없었다.

콰과과과과과과!!

보스 인어의 거대한 몸이 허물어졌다. 그 충격에 호수에 크게 파문이 일었다. 간혹 떨어지던 낙뢰가 거짓말처럼 멈췄다. 세상이 완벽하게 조용해졌다.

“그래도 그렇지, 솔직히 권도언보다 늦게 아는 건 너무했어요.”

푸른 피가 후각을 메꾸는 어둠 속, 차가운 물을 타고 들어온 흐릿한 음성이 투덜거렸다. 데아는 결국 웃었다.

◈          ◈          ◈

[포세이돈의 3층 공략을 축하합니다!]

그리고 동일한 시간에, 시민들이 지나가던 모든 도시의 스크린이 바뀌었다. 집에 있던 헌터들도, 거리를 나서던 사람들도, 직장에 있던 직장인들도, 학생들도, 휴대폰을 집어 들고 홀린 듯이 화면을 바라보았다.

[놀라운 업적 달성! 단신으로 95% 이상의 공적치를 얻었습니다!]

“뭐야? 뭔데?”

“누가 혼자 95%이상 공적치 얻었나 봐.”

“미친 거 아니야?! 누군데?”

“야, 야 대박이야, 지금 뉴스 속보 떠!”

[공적치를 합산합니다. 랭킹이 변화됩니다.]

“랭킹? 랭킹이 변화된다고?”

랭킹의 변화. 그건 랭커 중 누군가의 순위가 상승했거나, 새롭게 10위 안으로 진입했다는 뜻이었다.

모든 유동 인구가 걸음을 멈추고 위를 쳐다보았다. 새로운 랭커를 환영할 준비를 하며.

“누구야? 갑자기 이렇게 치고 올라올 정도면 유명한 헌터일 텐데?”

“나도 몰라……!”

“어, 지금 뜬다! 지금 뜬다!”

새로운 영웅의 등장이다. 달갑지 않을 리가 없었다. 수업을 하던 교사마저 학생들을 말리지 못하고 화면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전광판에 새겨진 새로운 이름은…….

“…어?”

도시가 싸늘한 침묵에 감겨들었다. 사람들은 환호성 대신 비명을 질렀다. 실시간 속보를 전달하던 뉴스의 앵커조차 말을 잊고 입을 틀어막았다.

쨍그랑!

뉴스 속보를 보던 하영주가 컵을 떨어뜨렸다.

권도언조차 우뚝 굳었다.

가비와 라일라 또한 새된 비명을 내질렀다.

“부, 부길드장님.”

“야, 저게 뭐야? 저게 뭐야?”

“길드장님!!”

“어… 뭐지?”

권도언은 애써 낭패의 기색을 지웠다.

“저도 저게 어떻게 된 일인지 잘…….”

맙소사, 이데아. 뭘 한 거야.

◈          ◈          ◈

“저게 무슨…….”

속보를 보던 여기은 또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포세이돈 3층 공략 영상 다시 틀어!”

“네!”

영상에는 군더더기가 없었다. 300명이나 되는 인원은 일사분란하게 잘 싸웠고, 허점 없이 보스 인어를 공략했다.

“하긴 이상하긴 했어.”

등급에 비해 지나치게 우수했던 헌터들의 능력들. 여기은은 곧바로 영상을 되짚었다.

“버프 능력인가? D급 딜러가 저 정도의 위력을 내는 게 말이 돼? 저건 최소 B급의 능력이야!”

“제, 제 눈에도 그렇습니다.”

“누군가 버프 능력을 사용했어. 하지만 불가능해. 저 정도나 되는 버프를 줄 수 있는 헌터가 실존한다고?”

300명에 가까운 헌터들에게 전부 버프를 준 것도 엄청난데, 버프의 양은 감히 상상을 할 수도 없는 수준이었다. 심지어 영상 안에는 수상한 사람도 찍히지 않았다.

“당장, 당장, 길드 통합 팀 총책임자 불러와. 명단 싹 가져와!”

“길드장님, 그게 지금은 게이트가 아직 정리가 다 되지 않은 상태라, 당장은…….”

“내 말이 지금 안 들려?!”

비서는 여기은의 흉흉한 눈빛에 바로 꼬리를 말았다.

“곧, 명단을 가져오겠습니다.”

비서가 부리나케 나간 후, 여기은은 다시 자리에 앉았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불가능해. 하지만…….

똑똑, 문이 조심스럽게 열리고, 익숙한 얼굴이 불쑥 튀어나왔다.

“정 소장님.”

“오랜만이에요, 길드장님.”

MBL 연구 소장 정소진이 싱긋 웃으며 다가왔다.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왔는데… 시간 괜찮으신가요?”

“아니 없어. 지금 당장 다른 사람 만나야 하거든.”

“그 사람. 저랑 같이 있는데.”

여기은과 정소진의 눈이 마주쳤다. 정소진이 입만 올려 웃었다.

“칸나니아 님과 말씀도 나눌 겸, 제 연구 결과도 보러 오세요. 실망 안 하실 테니까.”

“…칸나니아가 너와 있다고?”

“어머, 새삼스럽게 왜 그러세요. 우리는 언제나 좋은 동업자였는걸요?”

정소진은 느릿하게 모니터 쪽으로 걸어갔다. 충격적인 랭킹 변화를 실시간 중계하는 앵커의 얼굴이 붉었다.

“참 대담하기도 하지…….”

“…….”

“저분은 언제나 예상을 뛰어넘네요. 예전에는 만나 보지 못한 게 참 아쉬웠는데.”

정소진은 환하게 웃으며 자리를 떴다.

“조만간 만날 수도 있겠어요. 저 랭킹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요. 세상에 놀라워라. 어떻게 이런 일이?”

그리고 정소진은 MBL로 언제든지 찾아오라는 말만 남기고 훌쩍 떠나버렸다.

홀로 남은 여기은의 이빨이 빠드득 다물렸다. 전화벨이 울렸다. 받자 높은 미성이 들려왔다.

―기은아. 뉴스 봤어?

“…….”

―회장님께서 걱정을 정말 많이 하셔. 그러게 쉬엄쉬엄 하라고 했잖아.

그리고 정적, 상대는 이내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

―랭킹 2위까지 올라가면 뭐 해. 자칫하다간 3위까지 추락하게 생겼는걸. 그러게 왜 욕심을 부려서 우리 가족 기업 이름에 먹칠을 하니?

“여차은, 미쳤어?”

―친언니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니. 이사장님이라고 불러야지.

“지금 누구 놀려?”

―놀리다니, 사실인데. 왜, 그러다가 수틀리면 또 납치시도하게? 네 길드 잘 돌아간다?

악의가 섞인 웃음소리가 이어 들렸다.

―기업이 뒤를 봐주는 것도 한계가 있어. 난 지금 경고를 해주는 거야. 혹시 네가 ‘치기어린 실수’를 또 할까 봐. 그만 포기해. 넌 절대로 1위가 될 수 없…….

거기까지만 듣고 여기은은 휴대폰을 집어던졌다. 빠직! 액정이 고스란히 으깨졌다.

“흐으으, 으, 으으…….”

누군가 불 꼬챙이로 뇌를 헤집어 놓은 것 같았다. 도저히 진정이 되지 않았다. 여기은은 얼굴을 감싸며 신음했다.

‘이게 다 저 사람 때문이야.’

눈동자가 번들거리며 한 곳을 향했다. 이제 두 번 다시 볼 수 없으리라 생각한 이름이 그곳에 있었다.

‘죽여야 해. 더 늦기 전에. 저자가 여파에 힘을 실어 주기 전에… 죽여야 해.’

뚝, TV가 꺼졌다. 여기은은 서둘러 길드장실을 나갔다.

◈          ◈          ◈

[공적치를 합산합니다. 랭킹이 변화됩니다.]

새로운 역사가 쓰여졌다.

전광판이 깜빡거리며 새로운 순위가 차례로 매겨졌다.

1위 권도언―도원

2위 여기은―여례

3위 차현―차현

여기까지는 동일했다. 그러나 있으면 안 될 이름이 새롭게 쓰여졌다. 모두를 경악으로 몰고 간 누군가의 이름은 보란 듯이 전광판의 정중앙에 박혀 반짝였다.

그 누구도 잊은 적 없던 전설의 이름. 5년간 서서히 풍화되어 다듬어졌던 헌터명. 한때 구원이었고, 절망이었으며, 동시에 신화가 되었던 누군가.

4위. 이데아―샤샤.

그가 돌아왔다. 단독 공적치 95%에 빛나는 압도적인 존재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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