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2화
한번에 게이트에 300명이 들어가는 걸 본 적이 있는가?
“아, 발 밟지 마!”
“자― 자― 순서 지키시고요―”
“와, 사람 너무 많아.”
데아는 게이트에 발도 못 디딘 채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래, 300명이라는 말을 들을 때부터 불안했지. 이렇게까지 미어터질 줄은 몰랐지만.
‘그래도 지금이 기회인 것 같은데.’
데아는 옆에 있는 헌터에게 자신의 마력을 슬쩍 흘려보냈다. 2%. 개미 눈물만큼이나 작은 양이었다.
“아! 발 밟지 말라고!”
오, 눈치 못 챈다.
그렇다면 서둘러 빨리 진행하는 편이 좋았다. 칸나니아가 또 다른 수작을 부리기 전에 빠르게 게이트를 클리어하자.
데아는 슬슬 주변인들을 중심으로 마력을 넣어 지원했다. 공격력 3% 증가, 4% 증가, 그리고 5% 증가.
“지금 들어가도 되는 거야?”
“그래. 너 설한지지? C급 상대로 이겼다던.”
“응. 맞는데?”
상대 헌터는 묘한 눈으로 데아를 보더니 한숨을 푹 쉬었다.
“걱정해서 하는 말인데, 몸조심 좀 해. 너 상급 헌터들 사이에서는 소문 진짜 안 좋은 거 알아?”
“……?”
헌터는 데아의 등을 턱턱 두드렸다.
“조심하라고 하는 소리야. 솔직히 나도 F급이지만 주제 파악은 할 줄 알거든. 하극상은 안 돼. 특히 이런 목숨이 걸려 있는 곳에선. 여긴 거의 군대야. 상하 질서가 엄격하다고.”
“어어. 그래.”
“내 말 듣고 있는 거 맞아?”
게이트가 성큼 다가왔다. 데아는 빠르게 버프 속도를 높혔다. 50명으로 잡았던 범위를 100명으로 확장하고, 더 확장해 150명으로 늘렸다. 공격력 6% 증가, 9%증 가. 12% 증가.
“어? 지원계 헌터분들, 벌써 버프 넣고 있어요?”
아차, 데아는 버프를 넣던 걸 일시 중단 했다. 그러자 지원계에 특화된 헌터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네네. 왜요?”
“아, 어쩐지, 컨디션이 지금 엄청 좋아져서요. 이렇게 많이 버프를 받은 적은 처음인 것 같은데, 역시 수가 많아서 그런가.”
“아, 그래요? 저희들은 D급이라 고작 2퍼센트 증가가 한계인데…….”
“2퍼센트요? 2퍼센트가 생각보다 큰데요?”
“어! 나도!”
그러나 저 멀리서 헌터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따라 소리쳤다.
“버프 여기까지 닿고 있는 것 같은데요!”
“네? 그럴 리가요! 저희 최대범위는 2미터가 고작이에요!”
D급 지원계 헌터 기준, 속도, 공격력, 방어력을 총 합해 지원 2% 증가가 최대였다. 아무리 A급 지원계 헌터가 와도 10%를 넘는 경우는 없었다. 그러나 데아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15% 버프를 흘려보냈다. 범위는 시야가 닿는 곳까지.
데아는 괜히 머리가 아픈 척 비틀거렸다.
“아 머리 아파…….”
“왜 그래요? 벌써 어디 아프면 안 되는데?”
당연히 거짓말이었다. 혹시나 버프의 출처가 의심받을 경우, 최대한 용의선상에서 피해 보고자 하는 처절한 발버둥이었다.
역시나 헌터들을 데아를 부축하며 잔소리를 뱉었다.
“아니, 왜 참가했어요?”
“어? 설한지 헌터 아니에요? C급 무릎 뒤를 차버리던 패기는 어디 갔어요?”
“이거 몸이 아픈 것 같은데… 하긴 그동안 무리하긴 했죠?”
“아니에요. 좀만 쉬면 괜찮아질 것 같아요. 게이트 안에 들어가면 뒤에서 가볍게 힐만 해드릴게요.”
“뭐. 그러세요. 힐은 잘 하실 수 있겠어요? 쓰러지시는 거 아니죠?”
데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치를 올렸다.
20%. 동시에 게이트를 넘었다.
[포세이돈 3층 진입]
[보스 인어 ‘호수속의 괴물’(C)를 사냥하십시오.]
우르릉―!! 쾅!!
“뭐, 뭐야!”
“무슨 던전이 이래! 날씨가……!”
거친 폭우와 번개가 들이닥치는 거대한 호수. 그것이 이번 던전의 배경이었다.
날씨만 아니었더라면 훌륭한 경관으로 찬사를 받았을 것 같은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아니, 우리 세계 안에 이런 곳이 있었다고?’
우르릉―! 펑!!
“피해! 나무가 번개에 맞았다!”
“으아아악!!”
인어를 만나기도 전에 압사당할 판이었다.
데아는 혼란을 틈타 마력을 더 넓게 풀었다. 모든 헌터들의 머리 위로 데아에게만 보이는 숫자가 떠올랐다. 21%. 익숙한 세계의 모든 마력이 태초를 환영하고 있었다.
‘지금 상태라면 체력부터 바닥나겠어. 더 빨리 수치를 올리자.’
쏴아아아아아…….
폭력적인 폭우가 머리카락을 적셨다.
“인어다!!”
“호, 호수 중앙에서 기어 올라오고 있어!”
“훈련받은 대로만 해라!”
모두가 우왕좌왕하는 아수라장 속, 데아는 그림자 속에 숨어 몸을 뒤로 뺐다. 이 정도면 카메라도 찾지 못할 것이다.
데아는 신발을 벗어던지곤 미끄러운 언덕길을 홀로 달렸다. 수없이 내리는 비로 인해 허공에서 파도가 일고 있었다.
“보스 인어는 아직이고…….”
저 멀리, 유일한 정적이 검을 뽑아들었다. 데아는 손가락 하나로 모래를, 더해 대지를 조종하는 인어를 목격하고 옅게 웃었다.
살아 있는 자아처럼 들썩이던 대지가 이내 하급 인어들을 우르르르 덮쳤다.
“사, 산사태인가?”
“아냐! 백리서 헌터님 능력이야!”
광포하게 일어난 눅진한 대지는 그대로 진흙이 되었다. 진흙은 물길을 막고 퇴로를 차단했다. 백리서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커다란 호수의 절반 이상을 단번에 메꾸며 소리쳤다.
“만들어진 길을 밟고 공격해!”
그건 신화 속에나 나올 법한 기적이었다.
암흑처럼 어둡기만 했던 곳에 새로운 길이 생겼다. 헌터들은 거칠게 소리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먼저 정비해라! 공격하는 인어들을 막고 뒤에서 능력을 써!”
“으아아악!! 으악!”
“비켜!!”
배협은 방패로 하급 인어 하나를 그대로 으깼으며, 석파란은 그런 배협의 뒤를 노리던 인어의 목을 잘랐다. 뒤에서 잔뜩 겁을 집어먹고 있던 양철민 또한 에이씨, 소리치며 거칠게 비수를 던졌다. 비수의 절반은 인어의 급소를 꿰뚫었다.
“내, 내가 뚫었어! 내가 맞췄어!”
“잘했어! 조심해!”
그중에서 세연은 가장 고요한 마법사였다.
세연의 주변에 잔잔한 미풍이 불고, 작은 규모의 마법진이 번쩍! 눈을 드러냈다. 작지만 위력은 강한 포획 마법. 세연의 사정거리 안에 걸려든 인어들이 끼이익! 이상한 소리를 내며 땅 속으로 끌어당겨졌다.
“세연 헌터! 뒤!”
“앗! 길드장님도요!!”
그때 모두의 위에 그림자가 졌다. 몸집이 큰 인어가 단번에 그들을 덮칠 때였다.
“조심해!!”
그러나 그다음 순간, 퍼억! 허공을 긋는 장창이 인어의 심장을 꿰뚫었다. 흩어지는 인어의 푸른 피가 모두의 시야에 다닥― 찍혔다.
“괜찮아요?”
장창을 던진 사람은 다름 아닌 연가을이었다.
본인의 키보다 더 크고 두꺼운 창을 거침없이 휘두른 그는 또 다른 인어의 머리와 몸을 동시에 투둑! 뚫고는 그대로 돌려 빼냈다. 인어가 온몸을 뒤틀었다.
“수가 너무 많아! 끝이 없는데?!”
“보스 인어는 언제 나오는 거야!”
장기전이 이어지는 만큼, 헌터들이 지치고 있었다.
데아는 하급 인어의 목을 비트는 백리서를 마지막으로 보고는 언덕에서 내려왔다.
“하, 한지 헌터! 어디 갔다가 이제 와요?!”
“제가 속이 너무 안 좋아서, 우욱…….”
“몸 상태가 이래서 어떡해요?!”
데아는 자신에게 바로 밀려오는 환자들을 치료하며 주변 상황을 살폈다. 헌터들이 하나 둘 헉헉거리며 주저앉고 있었다.
데아는 이쯤에서 버프의 속도를 더 올리기로 결심했다.
40%.
쿠르릉! 거대한 낙뢰가 날아와 땅을 폭파시켰다.
그 순간, 데아의 눈이 밝게 빛났다.
“으아악!! 피, 피했어!”
“어? 나 저거 어떻게 피했지?”
“너 속도 엄청 빨라! 뭐야? 아이템 낀 거 아니야?”
“아냐!”
헌터들은 당황스러워 하면서도 변화된 자신의 몸 상태에 기뻐했다.
“금방이야! 일어서!”
지쳐서 나가떨어지고 있던 헌터들이 죄다 일어섰다.
상황이 역전됐다.
배협의 방패는 인어를 완전히 묶어 두었고, 석파란은 인어 뒤의 바위마저 서걱 베었다.
“뭐, 뭐야? 내가 이렇게 강했다고?”
“힘의 출력이… 장난이 아닌데.”
“저, 저걸 봐!”
헌터들은 동시에 숨을 들이켰다. 섬광이 대지로 내리꽂히는 밤, 백리서의 유려한 검이 허공을 갈랐다. 그리고 동시에―
콰과과과과!!
호수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던 모든 인어들의 몸이 잘려 날아갔다. 처참하게 으깨진 시체가 참극을 장식하고, 그 위로 낙뢰가 콰과광!! 퍼부어졌다.
“여, 역시 S급……!”
“S급이 저, 정도나 된다고? 아니, 물론 대단하지만! 저건 좀 심하지 않아?”
“바, 방금 낙뢰도 자른 거 아니야? 검 하나로?”
그리고 그 순간, 데아는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는 백리서의 시선을 느꼈다. 빗줄기에 눈이 가려 보이지 않는 거리였기에 무슨 표정인지는 알아볼 수 없었지만.
“느려. 더 빨리.”
날씨가 공략이 미치는 영향은 어마어마하다. 사상자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앞으로 10분. 그 안에 모든 것을 끝내야 한다.
헌터들의 머리 위에 뜬 숫자가 끊임없이 올라갔다. 데아는 그냥 대놓고 구석에 누워버렸다.
“그, 그렇게 아파요? 다른 사람들은 다 팔팔 뛰는데 왜, 힐러님만……!”
“비 오는 날이라서 그런가 봐요…….”
남들이 데아를 보고 쯧쯧 혀를 찼다. 어디선가 ‘역시 F급.’이라는 말도 들려왔지만 무시했다. 그것이야말로 원하던 소리다.
출력 50%. 데아는 살풋 눈을 감았다. 그때 누군가 소리쳤다.
“지금부터 진영을 다시 짠다!!”
이례적인 숫자였다. 버프 50%라니.
사기가 올라간 헌터들은 잘 훈련된 군인처럼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모두의 눈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60%.
“시작한다! 돌격해!”
평소에 힘을 내지 못했던 탱커가 물길을 모조리 막아 내는 방패를 불러냈다. 평소에 겨우 인어 하나를 죽이던 검사는 인어들의 머리를 밟고 물길 위를 달렸으며, 항상 조준에 실패하던 궁수는 동시에 세 대의 화살을 날렸다.
70%.
“미친 것 같아.”
긁힌 상처 하나를 겨우 낫게 하던 힐러는 질린 다리를 완벽하게 복구했고, 작은 불똥을 간신히 날리던 마법사는 전장을 지배하는 화염법사가 되었다.
“지, 지금 다 귀신에 홀린 거 아니야?”
“몰라! 그런데 일리 있어!”
“우리를 막을 자는 없다! 지금이야!”
끼아아아악!! 끄아악!! 끼악!!
불길에 휩싸인 인어들이 처절한 비명을 내지르며 죽어갔다.
그리고 그때.
“엎드려!!”
“으아악!!”
쿠르르릉―!!
보스 인어가 몸을 일으켰다. 호수 터에 가장 먼저 자리를 잡은 오래된 인어. 창백한 표정의 괴물이 눈을 뜨자 사방이 뒤흔들렸다.
끼아아아아악!!
호수 속의 괴물, 목이 긴 괴생명체가 첨벙! 물 밖으로 튀어나와 포효했다.
데아는 그 괴물이 칸나니아가 만들어 낸 인어가 아니라는 걸 단번에 알아챘다.
‘하지만 변했어.’
호수의 영물, 긴 시간동안 터를 지켰던 인어는 이성을 잃은 괴물이 되었다.
분명 그렇지 않던 인어였는데, 어떻게? 어떤 수로? 왜?
‘칸나니아가 미리 와서 뭘 했군……!’
이렇게 당한 인어가 몇이나 더 있을까?
80%.
데아는 벌떡 일어선 다음, 카메라를 살폈다.
‘여긴 사각지대야.’
데아는 인벤토리에서 신호탄 하나를 꺼낸 다음 땅에 심었다. 그리고 낙뢰에 맞춰 신호탄을 쏘아 보냈다.
‘이걸로 피파글랜에게 신호는 보냈어!’
당장은 오지 않겠지만, 이걸로 포세이돈의 위치 하나를 알렸으니 그쪽에서도 조사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데아는 조용히 비바람 속에 몸을 감췄다.
혼란스러운 가운데, 아무도 힐러 한 명이 사라지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뒤로 물러서!”
백리서의 힘에 대지가 하늘 높이 치솟았다.
모든 헌터가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질 치던 때, 오직 데아만이 그 어떤 방해 없이 고고하게 토벽을 넘었다. 그리고 호수 속으로 발을 내딛었다. 몸을 떨어뜨렸다.
첨벙!
사납게 일렁이는 호수가 최초의 주군을 맞이했다.
데아가 떨어지는 것을 본 누군가 비명을 질렀지만 데아는 끊임없이 아래로 헤엄쳤다.
가장 오래된 호수의 인어를 만날 시간이다. 투둑, 데아는 목걸이를 풀고 빙글 몸을 돌렸다. 하얀 꼬리와 지느러미가 실타래처럼 몸을 스쳤다.
이제 익숙해진 하얀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향한 호수의 바닥, 그곳에는 보스 인어의 본체가 있었다.
“안녕.”
본체가 고개를 들었다. 데아는 무감각하게 속삭였다.
“내가 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