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식인인어는 죽어야 한다-160화 (160/223)

※ 160화

“왜 천이야?”

“응? 몰라. 그냥 뱉었어.”

그러자 세연이 다급하게 속삭였다.

“너 천 없잖아……!”

‘아냐, 나에겐 든든한 두 장의 카드가 있다고……!’

데아는 하고픈 말을 꾹 삼켰다.

“…괜찮아. 어차피 벌 돈인데 뭐.”

“그, 그렇지? 나, 너 믿어도 되지?”

세연은 손을 발발 떨며 데아에게 오십을 걸었다. 아, 이렇게 착한 애가 불법 토토에 한걸음 가까워지다니……. 큰 책임 의식을 느낀 데아는 반드시 이기겠노라 맹세했다.

그렇게 연가을과 세연, 석파란과 데아를 눈여겨본 헌터 몇, 그리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모를 배협만 데아에게 걸었다.

당연했다. 상대는 도끼를 다루는 공격계 C급이었으므로.

“학습 능력이 없네…….”

‘능력을 쓰지 않고 이겨야 하는데, 릴림 때처럼 꼼수는 안 통하고… 음, 어쩌지?’

그러나 생각은 짧았다.

데아는 C급이 달려오자마자 바닥에 떨어진 흙을 냅다 뿌렸다.

“으아악! 으악! 퉤퉤!”

“어어! 치사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데아는 이겼다. 타고난 신체 능력으로 모든 능력을 피한 것도 있었지만, 수많은 전투 경험으로 인해 몸에 밴 개싸움의 기술도 톡톡히 빛을 발했다.

“F급이라는 거냐! 정정당당하게 싸워라! 제 실력을 드러내라고!”

“눈에 흙 뿌리지 마라! 머리카락 잡아당기지도 마라!”

“이런 치사한……!”

“그, 그런 말 하지 마!”

“어쭈, 연가을! 너도 F급 쪽에 돈 걸었다고 편들어 주냐!”

연가을은 손톱을 물어뜯었다.

너희들이 사해의 신을 알아? 무슨 정신머리로 제 실력을 드러내라고 하는 거야? 저 사람이 제 실력을 드러내면 이 섬이 가라앉는다고!

그러나 그런 연가을의 속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야유는 C급 헌터가 기어코 무너졌을 때에도 계속되었다.

“저게 대련이냐!”

“야, 야! 욕하지 마!”

“이런 야비하고 비열한 설한지 같으니라고!”

“욕하지 말라고!”

‘그만해! 저 사람을 화나게 하지 마!!’

그러나 이미 싸움의 승패는 갈렸다.

데아는 건 돈의 수십 배를 수금하며 밝게 미소했다.

“응. 고맙다―!”

◈          ◈          ◈

“그, 이미 알아차리신 거 아니에요?”

“뭐가.”

“그… 백리서 헌터님이… 태초 님 샤샤인 거…….”

“…….”

밤 열한 시가 넘은 시간, 몰래 에어프라이어로 구운 버팔로 윙을 호다닥 데아의 방 안으로 가져온 연가을이 윙을 뜯으며 데아의 눈치를 살폈다.

“뒤에서 백리서 헌터님이 태초 님 엄청 쳐다보고 있잖아요. 언니 요즘 걸어오는 시비 줄었죠? 그거 다 백리서 헌터가 무서워서 다 사리는 거예요.”

“…준 게 그 정도라고?”

오늘 당한 시비만 세도 열 손가락을 다 접을 수 있었다.

“아니, 그보다 날 보고 있다고? 날 노려봐? 막?”

“노려보진 않았던 것 같은데……. 탐색하듯이 본 것 같긴 해요.”

“왜?”

“저한테 물어보면 제가 아나요…….”

“그래. 아무래도 그렇겠지…….”

데아는 윙 속에 들어있는 뼈 두 개를 쏙 빼곤 한입에 삼켰다. 그러자 돌돔이 옆으로 와 그르렁 엎어져 버렸다.

“어어 그래. 먹고 싶어? 안 돼. 기름 많아. 너 급성 췌장염 걸려.”

“되게 잘 아시네요. 고양이 이것저것 찾아보셨나…….”

우뚝, 데아가 눈동자만 돌려 연가을을 노려보자 연가을이 접시에 코를 박고 남은 윙을 해치웠다.

“그런데 돌돔이는 어떻게 할 거예요? 계속 인간계에 있으실 건 아니잖아요.”

“당연히 데려가야지.”

“고양이 용품 없지 않아요?”

“이미 윌로한테 연락해 놨어.”

그랬다. 데아는 이미 돌돔을 데리고 새벽에 몰래 창을 넘었다. 고양이를 본 이위로는 ‘자잔 대신 고양이를 구해 오시면 어떡해요!’라며 소리쳤지만 결국 소중하게 고양이를 안아 올렸다.

“가끔 맡기신다고요? 그럼 준비해야겠네…….”

“공략 가거나 그러면 윌로한테 맡겨야지.”

“아, 그 이위로 헌… 아니, 그 인어님…….”

갑작스러운 방송 음이 들린 건 그때였다.

―아, 아, 동관 서관 1층부터― 3층까지― F, D, E급 헌터부터 언덕 아래로 내려오시길 바랍니다. 보충 훈련을 진행할 계획이니, 앞으로 10분 이내 언덕 아래로―

“엥, 왜?”

“이 시간에 보충 훈련? 아 귀찮게…….”

데아는 캡 모자를 푹 눌러썼다.

“저, 저는 해당 사항 안 되는데…….”

“나는 돼. 너 여기 있다가 그거 다 치우고 가. 나 다녀올게.”

“네. 다녀오세요!”

돌돔과 단둘이 남게 된 연가을이 히죽 웃었다.

◈          ◈          ◈

밖에 나가 언덕 아래로 간 데아는 얼마 지나지 않아 머리를 쥐어뜯었다.

‘바다… 그냥 건너버릴까?’

“어, 아! 담력 훈련이 진행 될 예정이니까 빨리빨리 모여라!”

훈련소장들이 고래고래 소리쳤다.

담력 훈련? 데아는 이 익숙한 네 글자를 모음 자음 따로따로 곱씹었다. 정말 내가 아는 그 담력 훈련?

“지금 밤 열두 시인데, 훈련소장들이 미쳤나 봐……!”

“진짜 그런가 봐…….”

예전에 길드 여파에 있을 때에도 담력 훈련 비슷한 걸 한 적이 있었다.

사유는 간단했다. 헌터는 담력이 세야 했으니까.

인어는 특성상 어두운 곳에 똬리를 틀고 서식하는 걸 좋아하며(물론 하급 인어에 한해서다), 갑작스럽게 툭툭 나타난다. 그렇기에 공략에 참가한 헌터들이 입에 거품을 물고 뒤로 넘어가는 상황이 심심치 않게 발생했다.

때문에 데아는 가윗과 하영주와 셋이서 덜덜 떨며 손전등을 비추며 야산을 수없이 넘나다녔다.

심지어 야산은 일반 야산도 아니었다. 헌터들을 놀래 키기 위한 온갖 기상천외한 장치가 설치되어 있는 야산이었다.

“이런 걸 누가 무서워한다고…….”

그러나 데아는 그날 귀신 가면을 쓰고 튀어나온 권도언을 보곤 기겁하며 그의 무릎을 깠다.

권도언은 으깨진 자신의 무릎을 보곤 잠시 침묵하다가, ‘제가 S급이라서 다행이에요.’ 한마디를 하고 힐러에게 실려 갔었다.

그다음부터 권도언은 귀신 역할로 출현하지 않았지만, 담력 훈련을 하는 날이면 권도언의 신난 방송이 기숙사 복도를 쩌렁쩌렁 메꾸곤 했다.

그런데 그 담력 훈련을 여기서도 한다고?

‘5년 동안이나 너무 평화롭게 살긴 했지, 내가…….’

“와, 설마 저 위를 올라가는 거야? 정말로? 말도 안 돼……!”

가로등 빛 하나 없는 야산의 어두컴컴한 숲길, 데아는 이성을 지키기 위해 눈을 감았다 떴다.

“자, 자, 2인 1조로 올라갈 건데, 랜덤으로 짝이 정해지니까 그렇게 알고―”

“훈련소장님. 저는 저기 있는 설한지 헌터랑 같이 올라가고 싶은데…….”

“자. 다들 이상 없지? 각자 호명하는 대로 모여라.”

뭐지? 이 익숙한 학교의 느낌은? 세연은 중학교 체육 시간으로 돌아간 것 같다며 혼란스러워했다.

“설한지, 양철민!”

데아는 애써 겁먹은 기색을 보이지 않으려는 양철민을 응시했다. 꼿꼿하게 서서 식은땀을 흠뻑 흘리고 있는 모습이 참 가관이었다.

“겁나냐?”

“누, 누가 그래?”

“너 솔직히 내가 짝이라 다행이라 생각했지?”

“…내가? 웃기지 마. 넌 F급이야. 겨우 F급이라고.”

그러나 양철민이 이제까지 봐온 ‘설한지’는 F급치고는 창대한 담력과 강인한 힘을 가지고 있는 쪼렙이었다. 그래, 그냥 쪼렙보다는 강한 쪼렙이 낫지.

데아는 양철민의 생각을 훤히 읽으며 인상을 구겼다.

“어, 올라가야 돼.”

“지, 지금?”

“응.”

◈          ◈          ◈

2인 1조. 한 팀이 올라가고 5분 뒤에 다른 팀이 또 올라가는 방식이었다.

양철민은 데아의 팔을 움켜잡으며 조심조심 야산을 올랐다. 데아가 자신을 버리고 갈까 봐 두려운 것 같아 보였다.

“진짜 어둡다. 아무것도 안 보여. 야, 손전등 잘 비춰 봐.”

“잘 비추고 있어……!”

“나 너 안 버리고 가……. 그만 달라붙어라. 덥다.”

“누구는, 누구는 너 좋대? 내가 진짜 이깟 담력 훈련만 아니었으면 진짜…….”

하지만 그렇기에 양철민의 담력은 너무나도 작고 하찮았다.

저 멀리 새가 푸드덕 날아가자 양철민은 끼루룩 이상한 소리를 내며 주저앉았다.

“…간다.”

“잠시만! 잠시만! 같이 가!”

그러나 곧 첫 번째 고비가 찾아왔다.

앞서나간 팀의 비명 소리가 아스라이 들리는 풀숲, 데아는 갑작스레 눈앞에 확 튀어나온 마네킹 인형을 보고 눈을 질끈 감았다.

‘아, 망할 진짜 깜짝 놀랐네…….’

“으아아악!! 으악! 흐, 끄윽, 흐억, 학, 흐으…….”

그러나 금세 침착을 되찾은 데아와 달리 양철민은 온갖 기괴한 소리를 내며 헐떡였다. 잘 보니까 울고 있었다.

‘어, 잠깐 이거…….’

어쩌면 사소하게 괴롭혔던 일에 대한 복수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아닌가?

데아는 온화하게 웃으며 양철민을 일으켰다.

“정신 잘 붙잡아. 이건 새 발의 피일 것 같으니까. 앞서간 팀 소리 지르는 거 들리지?”

“나 안 놀랐거든……? 나 안 놀랐다고!”

“그래. 그래.”

사방에서 비명 소리가 튀어나오는 밤, 데아는 옆에 없지만 분명 어딘가에서 어둠을 헤매고 있을 다른 사람들의 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분명 세연은 옆 사람에게 흐어엉 하며 달라붙어 있겠고, 배협은 벌벌 떨면서도 앞장설 것이며, 석파란은 의외로 겁이 없어서 마네킹도 퉁 치고 지나갈 것이다.

‘그리고 양철민은…….’

데아는 양철민의 손에 따라 같이 덜덜 흔들리는 손전등 불빛을 지켜보았다.

그래, 이때다. 데아는 손을 쭈욱 뻗어 양철민의 반대쪽 어깨를 짚었다.

“뭐, 뭐야? 손 놔.”

“응? 뭐가.”

“내 어깨 잡지 마. 더워.”

사람의 공포감이 극에 달하면, 판단 능력이 현저하게 저하된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아닌 것을 아니라 생각하지 못한다는 거였다.

“무슨 소리야. 나 너 어깨 안 잡았어.”

그 말에 양철민은 조용히 숨을 멈췄다.

“무슨… 소리야?”

“내 손 다 여기 있잖아, 뭘 말하는 거야?”

데아는 한쪽 손만 내밀었지만 양철민의 눈동자 안에 아득한 공포가 들어찼다.

그래. 이때다.

“워!!”

“으아아아악!! 흐아악!! 으아!!”

그래, 데아는 여기서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자신은 양철민을 과대평가했다. 그건 자신의 잘못이 맞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데아는 양철민이 젖은 손에 잡힌 고등어마냥 쏜살같이 튀어나갈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아니, 야!! 손전등은 두고 가!”

“흐아아아아아아……!”

양철민이 기척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어, 어디 떨어진 건 아니겠지? 뒤늦게 걱정이 조금 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자신의 코가 석자였다. 데아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조심스럽게 일어났다.

“젠장. 이게 자업자득이지.”

이 막막한 어둠 속에 혼자 남겨졌다.

그래, 이건 별것 아냐. 여긴 그냥 산길이야. 밤이라서 무서운 거지 낮이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러나 벌써부터 식은땀이 흐르고 숨이 가빠지고 손이 차가워졌다.

데아는 필사적으로 더 무서운 것을 찾기 위해 애썼다. 그래, 5년 전에 칸나니아한테 배를 뚫렸을 때? 지하 감옥에서 빠져나가려는 순간 트리야를 맞닥뜨렸을 때? 내가 태초라는 걸 알아챘던 그 순간? 그때에 비하면 이건 달달한 주스다.

그래. 이까짓 어둠이 뭐가 무서워? 어둠은 무섭지 않다. 진짜 무서운 건 당장 인어 제국을 파괴할 병기가 무럭무럭 크고 있는 이 현실이 더…….

덜그럭!

“아!!”

그때 거꾸로 매달린 헝겊 인형이 붉은 물감을 뚝뚝 흘리며 데아를 덮쳤다. 인형 주제에 축축해서 데아는 더 기겁하며 인형을 내동댕이쳤다.

그래, 이거다! 진짜 무서운 건 여기에 사람을 놀래 주기 위한 장치가 있다는 거다!

“지금 여기서 뭐,”

“으아아악!!”

부스럭, 소리가 나더니 하얀 얼굴이 튀어나왔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을 보고 놀란다고, 데아는 연이은 비명을 지르며 철퍼덕 엎어졌다.

“…….”

“…….”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어둠 속 손전등을 비추고 있는 인영은 너무나도 익숙한 사람이었다.

“아, 안녕하세요…….”

데아는 입술을 씹었다. 이건 과연 행운인가 불운인가.

‘왜 하필 여기서 백리서가 튀어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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