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식인인어는 죽어야 한다-154화 (154/223)

※ 154화

“F, F급 맞아?”

“방금 뭐였어?”

사람이 너무 당황하면 사고가 마비된다고 누가 그랬던가. 지금의 데아가 딱 그랬다. 와이파이가 잘 통하지 않는 장소에서 튼 미튜브마냥 뇌에 무한 버퍼링에 걸린 것 같았다.

“지금 이럴 시간이 없어! 당장 인어를 잡아!”

“공격한다!”

다행인 점은 지금이 던전 안이고, 전투 중이라는 거였다. 데아는 서둘러 정신을 차리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자신을 바라보는 헌터들의 표정이 기묘했다.

그래. 저건 분명 힘을 숨긴 무림 고수를 보는 일반인의 표정이다.

“호, 혹시 F급으로 등급을 속, 속이신 거라면…….”

“아닙니다.”

“한지 씨. 그, 아, 아무도 뭐라고 안 해요.”

“아니라고요.”

데아는 필사적으로 뇌를 굴렸다. 샤샤 때의 데자뷰가 눈앞을 스쳤다.

“사실 특수 스킬이 있어요.”

“특수 스킬이요?”

“네. 아주 상황과 장소가 딱 맞아 떨어져야만 발휘되는 스킬인데, 그 조건이 굉장히 어렵고, 딱 한 번만 발휘 되거든요. 저분은 운이 좋았네요.”

“그, 그러니까 이제 앞으로는 저런 치유가 불가능하시다는……?”

“네. 그렇게 됐네요.”

그렇게 됐다. 미안하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하며 물러났다. 물론 다 물러난 건 아니었다. 배협을 포함한 몇몇 헌터는 이제 노골적으로 데아를 수상하게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뭐, 내가 아니라는데?’

데아는 서둘러 진정하곤 뒤로 샤샤샥 빠졌다. 상황을 주시할 시간이었다.

“부상자가!!”

“가요!”

이번에 데아는 수 없이 마력을 깎고 다듬고 덜어 내고 조절하여 툭, 떨궜다. 다행히 의심받지 않을 정도의 치유되었다.

“걸어갈 수 있겠어요?”

“이, 이 정도라면 괜찮을 것 같아요!”

부상자는 많았고, 힐러는 한 명뿐이었다.

저 멀리 숨어있던 양철민이 인어에게 걸려 넘어졌다. 절뚝거리며 일어났지만, 그는 악착스럽게 데아 쪽은 쳐다보지 않았다.

“저러다 죽지…….”

“히, 힐러님! 여기도 와주세요!”

“네!”

―죽여! 죽여! 죽여라! 죽여!

―다 죽여어!! 죽여!

하급 인어들은 하나같이 눈을 까뒤집고, 입에는 거품을 물고 있었다.

인어를 볼 기회가 적은 헌터들은 모르겠지만 데아는 단번에 알아보았다. 이들은 만들어지지 얼마 되지 않은 인어들이다. 심지어 정상적인 방식으로 자란 인어들이 아니었다.

그래. 저 인어들은 단 한 번도 태초를 보지 않은 인어들이었다.

‘왜 이런 곳에 갓 만들어진 하급 인어들이 있는 거지? 혹시… 칸나니아의 권속들이 사라진 것과 관련이 있나? 칸나니아의 권속들이 남몰래 하급 인어를 만들어 낸 건가? 이렇게 많은 인어들을 일회용 몬스터로 쓰기 위해?’

피파글랜만큼 많은 권속을 탄생시켰던 칸나니아라면, 그리고 그 권속들을 군대처럼 통솔했던 칸나니아라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였다.

데아의 이가 빠드득 갈렸다.

‘건방진…….’

데아가 알기론 이미 저렇게 만들어져 자란 인어들은 원래의 사회로 돌아갈 수 없었다.

하급 인어는 처음의 본능에만 충실했으므로. 현재 태초의 섬에서 자유롭게 노니고 있는 하급 인어들은 모두 100년 전 태초가 죽기 전에 탄생했던 하급 인어였다. 그러니…….

‘죽여야 해. 죽일 수밖에 없어.’

헌터들은 생각보다 잘해 주었다. 그들은 순조롭게 인어들의 목과 급소를 찔러 비틀었고, 함정에서도 빠르게 빠져나왔다.

“하, 한지야, 괜찮아?”

“넌?”

“난 아직까지는 괜찮아!”

“으아악!!”

“여기, 여기에도!! 저게 뭐야!”

그때 거대한 하급 인어가 진흙을 첨벙! 흩뿌리며 나타났다. 더럽고 긴 이빨에는 사람의 살가죽일지 모를 잔해가 너덜거렸다.

보스 인어였다.

“사, 사람이 죽었어!! 끌려갔다!!”

“저 인어가 보스 인어야!”

모두가 두려워하는 식인인어. 끌려간 사람의 몸뚱어리를 잘근잘근 씹는 인어는 과연, 잔인한 괴물이었다.

모든 헌터들이 그 인어를 겨냥했다. 그때, 갑자기 질퍽한 땅 속으로 인어가 도로 파고들어갔다.

“어, 어디 갔지?”

두두두두두―!

땅이 크게 울리기 시작했다.

“인어가 땅을 타고 이동하고 있어!”

배협이 뭔가를 눈치챈 듯이 바락 소리쳤다.

“어그로가 풀렸다! 힐러를 지켜라!”

“!”

촤아아아―!!

데아는 자신의 뒤에 드리우는 그림자를 느꼈다.

뒤를 돌자 아까 전 그 거대한 식인인어가 데아를 덮치며 달려들고 있었다.

“한지야!”

“방어계는 당장 나서!!”

그리고 그 순간, 시간이 멈추는 듯한 착각에 사로잡혔다.

데아는 눈을 감았다 떴다. 이상하게 위험하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은 전투. 데아는 기묘한 악취 사이에서 고개를 들이민 하급 인어의 절박함을 느꼈다.

―아, 아아…….

데아의 눈을 똑바로 쳐다본 보스 인어가 가늘게 떨었다.

―당신은…….

데아의 눈이 크게 떠졌다.

“인어 새끼들, 죽어!!”

퍼어억!

그러나 그다음 순간, 퍼억! 푸른 피가 데아의 얼굴을 적셨다.

데아는 허공을 나는 보스 인어의 살가죽과 그대로 잘린 몸을 보고 숨을 들이켰다.

“뭐 해! 비켜!”

“뒤로 빠져라! 이곳은 우리가 맡을 테니!”

보스 인어가 멈칫하지 않았더라면 애초에 들어먹지 않을 만큼 조잡한 공격이었다. 그러나 헌터들의 공격은 성공적으로 인어를 향했고, 데아는 이미 처참하게 죽은 보스 인어를 보며 강제로 뒤로 당겨졌다.

이미 사람을 수 없이 죽이고 먹은 인어다. 죽어도 괜찮은 존재. 애초에 그런 의도로 만들어진 인어.

데아의 어금니가 까드득 다물렸다. 데아는 부러 고개를 숙였다. 아무도 보지 못하도록.

그리고.

약점 파훼.

모두의 사각지대 안, 데아의 눈이 붉게 달아올랐다. 5년 동안 세상을 보지 못했던 스킬, 심해의 눈이 기쁘게 기지개를 폈다.

이곳에 과연 하급 인어만 있을까?

모두의 역린을 꿰뚫는 초월자의 눈이 세상을 훑었다.

그리고 데아는 보았다. 늪의 끝자락, 가까스로 몸을 감추고 상황을 관망하는 어느 인어를.

‘하급 인어가 아니야. 적어도 2세대…….’

그를 잡아야 했다. 그러나 이미 보스 인어의 죽음을 본 인어는 허겁지겁 달아나고 있었다. 어디 잡을 방법이…….

퍼억!

“흐윽!”

데아는 뒤에서 발만 동동 굴리고 있던 양철민의 뒷목을 내려친 다음, 곧장 비수를 손에서 잡아 뜯듯 뺏고는 빠르게 나무 위로 올라갔다.

‘이쯤이면 카메라가 없을까?’

그리고 곧장 휘둘렀다.

목표는 두 다리로 도주하느라 역린을 고스란히 드러낸 인어의 등.

쐐애애애액―!

모두의 시선을 벗어난 한 줄기의 날붙이가 허공을 가로질렀다. 붉은 점과 비수의 끝이 맞닿고, 그대로 퍼억! 찔러 푸른 피를 내었다.

하지만 치명상은 아니었다. 일부러 역린을 빗맞혔으므로.

―흐, 흐아악! 흐아악!!

그러나 잿빛 머리카락을 한 2세대 인어는 등을 부여잡으며 나동그라졌다.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모든 헌터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렸다.

“저기에 뭔가 있다!!”

“인어인가? 잡아!!”

―아, 안 돼, 안 돼!

데아는 높은 나무의 가지를 밟고 허공으로 몸을 던졌다. 그리고 다른 나무의 기둥을 밟고 버텼고, 다시 다른 나무로 뛰어올랐다.

잿빛 머리카락을 가진 인어가 고개를 치켜들었다. 데아와 눈이 마주쳤다.

속도는 21(+12)(+50) 그리고 거기에―

[타고난 몰이꾼(N) : 인어의 주목을 받는 동안 속도가 +60 증가합니다.]

이미 수치는 한계량을 뛰어넘었다.

믿을 수 없는 헌터의 속도에 인어의 눈동자 속에 공포가 차올랐다. 그러나 데아가 나서기 전, 소리를 듣고 찾아온 헌터들이 쓰러진 인어를 빠르게 포위했다.

“이… 건 뭐야? 사람 아냐? 인어야? 꼬리가 없잖아?”

헌터들은 인어를 중앙까지 질질 끌어 놓은 다음, 일으켜 세워 흔들었다.

“거, 괜찮으십니까? 예? 제 말 들려요?”

―안 돼, 이럴 수는 없어……. 안 돼, 안 돼, 칸나니아 님에게 피해를 입힐 수는 없어. 안, 안 되는데, 이렇게 된 거……!

“말을 왜 안하지? 저기요? 많이 놀라신 거라면 손이라도 들어 주실래요?”

“헌터는 아닌 것 같은데…….”

그때, 인어의 손이 빠르게 부풀어 올랐다.

자폭의 전조였다.

“다들 엎드려!!”

데아의 외침에 헌터들이 잠시 굳더니, 이내 빠르게 엎드렸다. 데아도 그들과 섞여 엎드리며 빠르게 하늘을 훑었다.

‘나무 위 반짝이는 카메라가 하나, 둘. 저기까지 셋.’

큰 독극물을 퍼뜨리며 자폭하는 방식의 경우, 그 근처에 있던 모든 생명체까지 치명상을 입힐 수 있었다.

선택해야 했다. 의심받지 않으며, 동시에 최대한 많은 생명을 보호할 수 있는 행동은…….

데아는 엎드린 그대로, 모두의 시선을 피해 늪지대 아래 손을 꽂아 넣었다.

태초는 바다와 마력을 먹어 세상이 된 존재. 이 세계의 모든 마력이 반응하는 존재.

“어, 어! 지금 땅이 울려!”

“조심해! 지진이다!”

땅을 짚은 데아의 손등에 두둑, 둑 푸른 힘줄이 돋고, 인어의 하얀 비늘이 팔뚝을 타고 올라왔다. 숙인 고개 속 눈동자도 하얗게 타올랐다.

‘여기가 늪지대라 다행이다.’

이 모든 이상 현상을 진흙으로 가릴 수 있으니.

데아는 늪을 휘저으며 마력을 불러냈다. 땅이 더 크게 울리기 시작했다.

“지진이야!”

“나무 위로 올라가지 마!! 공터로 가라!”

“여기에 공터가 어디 있는데!”

“던전 안에서도 지진이 일어난다고?!”

그 순간, 자폭한 인어의 몸이 믿을 수 없이 부풀어 올랐다.

“저, 저 사람 모양이 이상해!! 인간 맞아?”

“괴, 괴물이다!”

터지기 일보 직전, 데아는 마력의 흐름을 비틀었다. 그 순간 거대한 지진이 찾아오며 그대로 늪이 갈라졌다.

“늪으로 빠졌어!”

“구해야 하는 거 아니야!?”

“피해!”

늪은 순식간에 일어났고, 그대로 인어를 집어삼켰다. 그리고 저 아래, 뭔가가 터지는 쿠앙! 소리가 들려왔다.

‘됐다.’

아무도 자폭에 휘말리지 않았다.

데아는 천천히 손의 비늘과 마력을 갈무리했다. 변한 눈동자 색도 원래대로 되돌아왔다.

“한지야! 괜찮아? 안 다쳤어?”

“응 난 괜찮아…….”

데아는 일부러 연약한 척 철퍼덕 엎드려 끙끙 신음했다. 세연이 안절부절 못하며 그를 부축했다.

“어떡해, 기, 길드장님! 한지가 아픈 것 같아요!”

“힐러라 그런가, 유리 몸이네. 이 정도로 지쳤다고?”

“지진이 워낙 컸어야지! 빨리 쉬게 둬라!”

“하나뿐인 힐러가 아프면 어떡해!”

데아는 안심하고 사람들의 손에 몸을 맡겼다.

‘나름 잘 행동했겠지?’

그러나 모니터로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여기은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칸나니아의 권속. 포세이돈의 극비로 다뤄지는 2세대 인어가 노출되었다. 때문에 현재 연회장 내부는 아수라장이었다.

“바, 방금 저게 뭐죠?”

“이상한 사람이 있지 않았나? 완전히 부풀어 올라서는……!”

“그게 뭐야!”

여기 있는 멍청이들은 대충 희귀한 인어라고 하면 관심을 돌릴 것이다. 영상에 찍힌 정보는 아주 단편적이었으니까. 그러나 실제로 2세대 인어를 본 헌터들은…….

‘전부 죽여야겠지.’

여기은은 몰래 휴대폰을 켰다. 그리고 문자를 띡 보냈다.

[붉은 팀 내부로 괴물 투입해. 몰살한다.]

그 즉시, 모든 영상 화면이 뚝 검은 색으로 물들었다.

“뭐야! 갑자기 꺼졌어!”

“아직 헌터들이 밖으로 안 나가지 않았소? 왜 꺼진 거요!”

“자, 자. 진정하시고.”

여기은은 능숙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관객들을 진정시켰다.

“가끔 이런 일이 발생합니다. 방금 어마어마한 지진 보셨죠? 던전은 마력이 뒤틀리면 지진이 발생합니다. 때문에 출구 게이트와 영상 전송에 문제가 생긴 모양입니다. 그런데 참 걱정이네요. 이런 지진 다음에는 항상 큰 괴물이 등장하던데……. 뭐, 헌터들은 잘해 내겠지만!”

“그 말인 즉슨… 화면이 꺼졌으니 그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새로운 ‘괴물’을 우리는 보지 못한다는 이야기 아니오?”

“아무래도 어쩔 수 없죠. 영상은 여기까지입니다.”

탁탁, 연회실의 불이 켜졌다. 사람들이 아쉬워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누구도 헌터의 안전을 걱정하지 않는 모양새에 여기은이 속으로 히죽 웃었다.

카메라가 꺼진 틈을 타 ‘괴물’들을 투입하고 몰살시킨 다음, 안타까운 던전 난이도로 인해 전멸했다고 기사를 띄울 것이다.

‘그 2세대 인어만 보지 않았어도 붉은 팀 헌터들은 살 수 있었는데…….’

푸른 팀과 녹색 팀 헌터들은 이미 전멸했다. 붉은 팀 또한 그 뒤를 따라 갈 것이다.

그러나 그때,

“여례. 장난해?”

여기은은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권도언이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모니터를 잡고선 이리저리 기울이고 있었다. 그의 손아귀에서 타다닥, 전기가 튀었다.

“이렇게 끝내는 건 반칙이지.”

권도언의 행동에 밖으로 향하던 사람들이 걸음을 우뚝 멈췄다. 타악! 꺼졌던 화면이 다시 켜지고, 여기은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권도언!”

권도언의 휘어진 시선은 화면 속, 갈색 머리카락을 가진 F급 힐러를 향해 있었다.

“그 끝이 죽음이든, 공략이든. 나는 그걸 봐야겠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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