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3화
‘다시 보니 천사 같다―’라는 말이 이럴 때 쓰이는 걸까?
데아는 주변 눈치를 살피며 슬쩍 발신자명을 엄지로 가렸다.
[네.]
[인어가 공격 안 하는 거 아니에요? 의심받음 어떡해…….]
[그래서 힐러 한 거ㅇ예요 힐러룰 공격받게 하면 그 ㅊ팀은 죽어야지…….]
[아.]
“훈련은 잘 했냐?”
“아뇨. 영상 보고 무슨 훈련을 해요.”
데아의 삐딱한 말에 배협이 킥킥거렸다.
“걱정 마. F급 힐러한테 뭐 바라는 사람 아무도 없으니까.”
[저 ㄱㄹ드장이 진짜 X새끼]
실수로 여기까지만 치고 보내버렸다.
[? 제가요?]
[인것가타요.]
[아니, 길드장님말ㅎㅗ 지금 갈드장이요, 이상해요 훈련을 미튜브 틀어주고 하는 곳이어디 있어요?]
[아하.]
그러더니 메시지가 우르르 올라오기 시작했다.
[제가 그립진 않아요?^^]
[혹시 거기 헌터들이 무시하지는 않아요? 찾아갈까요?]
[여파는 항상 열린 문인데…….]
[꽃 뭐 좋아하시려나.]
[그 전에 백리서한테 언급은 하지 말고요. 내가 먼저니까.]
“뭐래…….”
“다 왔다. 내려라.”
휴대폰을 끄려던 찰나, 진동이 두어 번 더 울렸다.
[보러 갈게요.]
[^-^]
“뭐?”
“설한지, 너 정신 안 차리냐? 어휴, 이러다가 탱딜러 버스나 타겠지.”
양철민이 계속 떠들었다.
“길드장님! 얘 진짜 짐 덩어리 되는 거 아니에요?”
“조용히 해봐.”
“이게!”
“길드장님, 혹시 포세이돈 던전에―”
데아는 짐을 챙기고 바로 배협 옆으로 갔다.
“남들이 내부를 볼 수 있는 시스템이 있어요?”
“…….”
즉답을 줄 거라 생각했던 것과 달리, 배협은 한동안 뜸을 들였다.
“…누구에게 들었냐?”
“있어요?”
배협은 데아를 질질 끌어 구석으로 데리고 갔다.
“조용히 해. 하긴. 유명한 소문이긴 하지.”
“있다는 거네요.”
“그래. 공략을 시작하자마자 영상이 외부로 그대로 송신돼.”
“어떻게 그러지? 던전 안에 카메라 미리 달아 두나?”
“가지고 들어가는 거지.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그 영상을 누가 보냐가 중요한 거다.”
그때 주변에 큰 단체 버스와 봉고 차가 끼익 더 멈췄다. 그 안에서 묘하게 상기된 표정의 사람들이 우르르 내렸다. 오늘 같이 공략을 할 예정인 다른 소형 길드의 헌터들이었다.
“누가 보는데요.”
“일명 스카우터.”
“네?”
“인재들을 발굴해 내는 높은 길드의 스카우터들이야. 아니면 그저 관람을 원하는 높은 등급의 헌터들이나. 참고로 여례아의 길드장은 꽤나 자주 온다는군.”
배협의 눈이 낮게 빛났다.
“그래서 하급 헌터들이 위험을 각오하고 이곳에 오는 거야. 자신의 실력을 잘 보여 주기만 한다면 신분 상승이 가능하니까.”
“…….”
”그 가능성에 뭐라도 걸어 봐야 하지 않겠어? 이대로 시궁창에서 죽을 수는 없잖아.”
“헌터분들은 이곳으로 와주십시오!”
그때 깃발을 든 누군가가 소리쳤다.
“우선 대기실에 입장합니다. 게이트 안으로 따라 들어와 주십시오!”
데아는 사람들의 틈에 섞여 안으로 뛰어들었다.
◈ ◈ ◈
“오늘 토벌에 참여한 길드는 총 다섯. 전체 인원은 45명입니다.”
고급스러운 연회실 안, 여기은은 초대장을 건네주고 내부로 들어왔다. 그리고 다리를 꼬며 의자에 몸을 기댔다.
“오늘도 차현은 안 오나?”
“바쁜 일이 있으시다고…….”
“됐어. 이런 자리 좋아하는 성정도 아니야.”
포세이돈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시시각각 관람할 수 있는 높은 천장의 연회실은 창백하리만치 높고 광활했다.
채도 낮은 베이지 벨벳 커튼이 차르륵 창문을 가리고, 하나 둘 높은 인사들이 들어와 자리를 메꾸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의원님. 오늘도 오셨군요.”
“네. 그럼요. 이것만큼 좋은 볼거리가 또 어디 있다고.”
“이번에는 어느 공략 팀에게 돈을 거시겠습니까?”
“으음… 팀이 세 팀으로 나누어졌군요. 저는 붉은 팀에 걸도록 하죠. 삼천만.”
“나는 푸른 팀에 걸도록 하지. 오천만.”
탁, 불이 꺼지고, 내부가 어두워졌다. 무수한 모니터가 깜빡거리며 밝게 빛났다.
“왼쪽부터 차례로 붉은 팀, 푸른 팀 그리고 녹색 팀의 실황입니다. 공략 시작은 10분 뒤에 이루어집니다!”
어느새 연회실의 내부는 높은 등급의 헌터들과 고위 정치인들, 그리고 호기심을 쫓아 온 재벌들로 그득그득 차있었다.
여기 모인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게 비슷한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인재를 발굴하거나, 돈을 거는 유희거리를 찾아오거나, 처참하게 죽는 헌터들의 모습을 보며 우월감 내지 희열을 느끼거나.
“이러니 끊을 수가 없지.”
과거 콜로세움에 갔던 사람들을 백번 이해할 수 있었다.
여기은은 자신이 눈여겨보았던 헌터가 있는 쪽에 1억을 걸었다.
그때 닫혔던 문이 끼익 열렸다. 모두의 시선이 뒤로 쏠렸다.
“어? 잠깐만, 저분은…….”
“저 사람이 왔다고?”
여기은 또한 뒤를 돌았다. 그 자리에는 올 거라 생각하지 않았던 누군가가 서있었다.
“벌써 시작한 건 아니죠?”
검은 수트를 차려입은 권도언이 들어오고 있었다. 사람들의 얼굴에 당혹감과 기대, 그리고 놀라움이 각자 들어찼다.
“어… 그런데 자리가 다 찼네.”
“궈, 권도언 길드장님! 이곳에 자리가!”
“제일 앞으로 오십시오!”
누군가 의자를 뒤로 드르륵 끌자 권도언이 산뜻하게 웃었다. 제일 잘 보이는 자리였다.
“받는 초대장은 족족 종이비행기로 만들어 날린다는 소문이 돌길래, 네가 여기 올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여기은이 권도언을 훑었다.
“무슨 바람이 들었지? 이번에 들어온 헌터 중에 유망주가 있나? 투자하려고?”
“투자는 무슨.”
권도언은 밝아지는 스크린을 보며 자리에 앉았다.
“주제껏 관람만 하러 왔지…….”
“뭐?”
그러나 권도언은 아무 말 없이 화면만 응시했다. 하급 헌터들은 상부의 명령대로 강제로 팀이 나누어져 공략에 투입된다. 왜 그런 비효율적이고 죽기 딱 좋은 짓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포세이돈이 인어들이 만든 게 아니라면, 정답은 MBL과 여례아에 있겠지.’
권도언은 손으로 입을 가리고 조소했다. 검은 눈동자에 화면이 가득 차올랐다.
◈ ◈ ◈
“한지야! 너 나랑 같은 팀이야!”
“깃발 아래 서십시오!”
붉은 팀, 푸른 팀. 녹색 팀. 포세이돈 안으로 들어온 45명의 헌터들은 각자 세 팀으로 나누어졌다.
“길드장님!”
“다 여기 있었군.”
“뭐야, 너희들도 여기 있냐?”
공교롭게도 배협과 양철민 그리고 세연과 데아까지 한 팀에 배정되었다. 데아가 소속된 팀은 붉은 팀이었다.
“다른 길드원들은요?”
“다 푸른 팀으로 갔어.”
“이봐, 다 모여 봐. 붉은 팀! 전략을 짤 거니까!”
열 명이 조금 넘는 붉은 팀의 사람들은 서로 전략을 짜고 있었다. 데아는 후다닥 그 사이에 꼈다.
“여기 탱커 누구 계신가요!”
“접니다! 제가 앞으로 갈게요.”
“네 그리고 딜러분들은 앞에… 아, 힐러분들은 안계신가요?”
사위가 고요했다. 데아는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제가 힐러인데요.”
“와! 그래도 있어서 다행이다! 혹시 등급이 어떻게 되세요?”
모두의 기대 어린 시선이 데아에게 꽂혔다.
“저 F급…….”
기대가 실망으로 변한 건 순식간이었다. 몇 사람들은 오히려 적의 어린 시선을 보내오기도 했다.
아니, 그래도 그렇지 이 정도까지 민폐 취급을 받는다고?
“아…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나으니까요!”
그때 퍼억, 누군가 데아의 어깨를 쳤다.
양철민이었다.
“차라리 오지나 말지. 지켜야 하는 짐이 더 붙었잖아. 넌 여기서 공적치 같은 거 얻어갈 생각 하지 마라. 알겠냐, 설한지?”
참자. 나는 착한 설한지다.
“시이발, 쫄아서 아무 말도 못하는 주제에. 너 훈련도 제대로 안 했지? 인어 한 마리 나타나면 그대로 쫄아서 뒈지는 거 아니냐? 그럼 너 시체는 두고 갈 거니까 그렇게 알아라. 어?”
“…….”
“재수가 없지. 이 정도면 공적치 기생충 아니냐? 지금이라도 나가면 안 돼? 상처 하나 제대로 손도 못 대는 새끼들이 어디서 헌터가 된다고 난리야.”
연이은 폭언에도 사람들은 익숙하게 자신의 무기를 점검하고 있었다. 세연 혼자만 안절부절 못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
“할 말 그게 다야?”
“뭐……?”
기본적으로 설한지는 착하다. 하지만 그게 호구라는 뜻은 아니었다.
“너는 다른 줄 알아? 여기서 비수 꽂는 놈을 누가 선호해? 토벌전이 암살이야? 괜히 아무도 안 찾아 주는 열등감을 저보다 더 낮은 등급한테 푸는 것 같은데, 나라면 기숙사 방 안에서 이상한 영상 찾아 볼 시간에 훈련을 1분이라도 더 하겠어.”
“그, 그걸 어떻게, 아니, 무슨!”
“하지만 못 했지? 나는 했고.”
데아의 갑작스러운 반격에 주변인들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도대체 힐러를 왜 무시하지? 패망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건 바로 힐러야. 나는 만약에 대비해 이 자리에 있어. 혹시 모를 두 번째 기회라도 팀에 주기 위해.”
“…….”
“그 순간이 오면 누구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힐러를 찾아. 너, 공격받을 만큼 나서 본 적 없지? 있으면 그렇게 말 못 해. 그때도 외면받고 싶으면 계속 입 털어 보던가.”
“자, 저, 진정하고.”
“붉은 팀, 게이트에 들어가시면 됩니다!”
그때 게이트가 찬란하게 빛났다. 저 멀리 여전히 자신을 노려보는 양철민의 사나운 시선이 느껴졌지만 데아는 무시했다.
역시 다이내믹 인간계. 하루하루 새로운 사람이 나오는 법이지. 근 5년 동안 사해의 신의 자리에 머물며 신전까지 지어졌던 데아에게는 새로운 자극이었다.
“한지야… 괜찮아?”
“응. 괜찮아.”
빈말이 아니라 정말이었다. 데아는 그대로 열린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순식간에 공간의 냄새가 달라졌다.
[포세이돈 2층 진입.]
[보스인어 ‘늪의 악마’(D)를 사냥하십시오.]
“아, 알림이 뜨네?”
“넌 공략이 처음이라 모르겠구나. 그거 원래 떠!”
‘뭐지? 어떤 원리지? 인공 게이트라 다른가?’
데아는 잠시 당황했지만 곧 익숙해졌다.
‘환경은… 예상대로네.’
울창한 숲속, 늪지대.
“긴장하고 탱커는 앞으로 가!”
“흐아아악! 인어다!”
늪지대에서 인어의 창백한 손이 불쑥불쑥 튀어 올라 헌터들의 발목을 낚아챘다. 그리고 데아의 발목 또한.
“어?”
‘왜 날 공격하지?’
데아는 가까스로 자리를 피했다.
왜, 하급 인어가 날 공격해? 데아는 곧장 늪지대에 손을 푹 집어넣고 인어의 멱살을 잡아 끌어올렸다.
“으아악! 한지야! 위험해!”
“힐, 힐러 맞아??”
‘아가미… 있고. 이빨… 있고. 눈… 동공도 정상이고. 인어 맞는데? 뭐가 문제지?’
인어가 끼아아악― 울었다. 그 목소리를 들은 헌터들은 귀를 막고 비명을 질렀지만 데아는 그 음성을 똑똑히 들었다.
―인간 죽여야, 다 죽여, 다 죽여! 여기 들어오면, 다 죽여야만!
‘말하는 게 정상이 아닌데……. 시간을 길게 끌어서 의심받으면 곤란해.’
데아는 인어가 퍼덕거리는 시간에 맞춰 손을 놓았다. 인어는 순식간에 늪지대로 숨어들어갔다.
“계속 잡고 있어야지!!”
“너무 반동이 강해서 어쩔 수 없었어.”
“여기 부상자가 있다!”
데아는 어서 부상자가 있는 쪽으로 달려갔다.
“사, 살려, 살려 줘, 살려…….”
인어의 손톱에 긁힌 길고 깊은 상흔이 허벅지에 나있었다.
하급 인어는 기본적으로 독을 품고 있다. 이 정도의 깊이라면 자칫하다간 다리를 절단할 것이다. 그런데…….
‘F급 힐러는 어느 정도로 치유해야 하지?’
엄청나게 미약한 수준이라는 건 아는데, 그 정도를 알 수가 없었다.
‘미튜브… 미튜브에서 본 정도로만 하면 되나?’
“이봐, 힐러! 빨리 치료해!”
“아, 알았어. 잠시만…….”
데아는 조심스럽게 상처 부위를 매만졌다.
‘그러니까… 이 정도?’
희미할 정도로 미약한 마력이 스며 나왔다. 예상대로 주변 사람들이 마력의 양을 보고 실망하며 탄식했다. 일반 헌터에 비해 터무니없을 정도로 적은 마력이었으므로.
‘F급이면… 이 정도면 됐겠지.’
그러나 데아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마력에도 농도가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평범한 A급 힐러의 마력 한 방울과 F급 힐러 마력의 한 방울은 다르다. 당연히 평범한 헌터의 마력과, 태초의 마력 농도는 어마어마할 정도로 차이가 났다.
“…어?”
“어어……?”
기적이 일어났다.
데아는 개미 똥만큼이나 떨어뜨린 자신의 마력이 일으킨 기적을 망연자실하게 바라보았다. 아니 이게 왜…….
“뭐, 뭐야?”
“맙소사……!”
인어를 사냥하던 헌터들도, 아픔에 신음하던 헌터들도 모두 말을 잃고 데아를 바라보았다.
데아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다, 다 나았어! 심지어 3년 전에 난 수술 자국까지 사라졌다고!!”
이게 뭔, 무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