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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식인인어는 죽어야 한다-151화 (151/223)

※ 151화

“손님들이 계셨군요.”

백리서는 데아와 연가을을 한 번씩 훑어보았다.

권도언은 데아를 흘끗 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냐. 곧 배웅하려고 했어. 손님들이야. 당분간 게스트 룸에서 지낼 예정이시지.”

“아하… 그래? 안녕하세요. 백리서라고 합니다.”

데아는 서류를 팔랑팔랑 넘기며 다가오는 백리서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날 코앞에 두고도 알아보지 못하는 백리서. 태초가 없는 장소에서 인간을 연기하는 백리서의 모습은 꽤나 낯설었다.

“말해도 직접 말할 거니까.”

그 말이 무색해지게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혀가 굳어버린 것 같았다.

“자꾸 나 모른 척하지 마. 나 슬퍼.”

새벽이 수평선 너머 가라앉던 시간. 음울하게 자신을 떠나고 찾아오지 않았던, 정확히는 데아 스스로가 피했던 그는 너무나도 어려웠다. 입안이 바싹 말랐다. 도저히 입이 열리지 않았다.

“알아요. 릴림 헌터…….”

나온다는 소리가 이따위였다.

데아는 자신을 의아하게 쳐다보는 권도언의 시선을 애써 무시했다.

‘그래, 여기엔 연가을이 있잖아. 연가을은 백리서가 인어라는 사실을 모르니까 이럴 수밖에…….’

“릴림?”

그러나 백리서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제 그 헌터명 안 쓰는데…….”

데아는 당황했다.

“5년이나 지났는데 아직 모르시는 분이 계셨네. 다음부터는 조심하세요.”

백리서의 시선이 서늘하게 내리꽂혔다.

황금에 가까운 노란색이 차가울 수도 있다는 걸, 데아는 그때 처음 알았다.

‘왜, 왜? 왜 릴림이 아니야?’

“…그러고 보니 그랬죠. 죄송해요. 제가 소식에 느려서.”

하지만 데아는 우선 항변부터 했다. 다행스럽게도 백리서는 금방 관심을 껐다. 데아에게 닿는 권도언의 시선이 제법 따가웠다.

“참, 백리서. 부탁 하나만 하자.”

“부탁?”

“이분들, 게스트 룸까지 안내 부탁해.”

‘권도언 이 미친 자야! 지금 내가 어색해 하고 있는 게 안 보이냐?’

그러나 백리서는 ‘의외네? 네가 그런 것도 부탁하고.’라며 흔쾌히 수락했다.

“우선 이건 여기에 두고, 나중에 다시 돌아올게. 그럼 가실까요?”

백리서는 데아와 연가을을 데리고 길드장실을 나섰다.

“길드장님이… 손님을 맞이하고 게스트 룸까지 안내하는 경우는 별로 없는데. 혹시 성함을 여쭈어봐도 될까요?”

“아, 저는 연가을이라고 합니다! 이번에 A급 헌터로 각성했어요.”

“유망한 헌터시군요. 축하해요.”

그 유명한 백리서를 마주한 연가을은 거의 로또를 맞은 사람마냥 들떠 있었다. 물론 데아와 백리서의 어색한 기류를 보고 자중했지만.

“아, 그리고 얘는 제 친구인데…….”

연가을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물 보듯 뻔했다. 일전에 해준 말을 조합해서 대충 죽은 줄 아는 옛 동료의 믿을 수 없는 재회쯤으로 여기고 있겠지.

“내가 말할게. 설한지라고 해요.”

데아는 자신을 바라보는 무심한 노란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약하고 천사처럼 착한 헌터 설한지. 이렇게 되어버린 거 최대한 콘셉트에 충실하자. 그리고 끝까지 정체를 지키자. 이왕이면 자잔을 데리고 돌아갈 때까지…….

“F급… 힐러예요. 잠깐이지만 잘 부탁드려요.”

A급 공격계 헌터 옆에 낀 F급 힐러. 분명 친구 옆에 꼽사리 낀 존재로 보일게 뻔했지만 데아는 당당하게 밝혔다. 물론 백리서 또한 그런 유의 눈길을 보내지 않았다.

“그랬군요.”

그러나 데아는 그게 배려가 아니라, 정말 상대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에서 나온 시선 처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맙소사… 그래도 트리야와는 나름 친했던 거였어.’

오기가 생긴 데아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고 게스트 룸으로 안내받는 내내 계속 백리서와의 대화를 시도했다.

“저건 뭐예요?”

“액자입니다.”

“5층에는 뭐가 있어요?”

“회의실이 있습니다.”

“왜 헌터명을 안 쓰세요?”

“개인 사정입니다.”

“머리 색은 염색이에요?”

“아뇨.”

“키가 진짜 큰데, 헌터가 되고 나서 크신 거예요?”

“네.”

어디서 거짓말을…….

옆에 있던 연가을이 눈물을 꾹 눌러 참으며 그만하라는 제스처를 취했지만, 데아는 꿋꿋이 계속 질문을 던졌다.

그때였다.

“설한지 헌터님.”

“네.”

게이트 룸 앞. 찰칵, 문이 열렸다. 호텔 같은 내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연가을 헌터님. 불편한 점이 있다면 안에 따로 적혀 있는 관리 팀 번호로 연락주세요. 편안하게 지내시길.”

“…….”

무심한 축객령이었다. 데아는 자신이 던진 무수한 질문들 중에 단 한마디도 백리서는 머리에 집어넣지 않았음을 확신했다.

백리서는 고개만 까딱이고는 멀어졌고, 데아는 우두커니 서서 황망하게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어, 어떻게 대화를 저렇게 끊어 내지?”

“오, 우리 옆방이에요!”

물론 알아봐 주길 기대하지도 않았다. 복면을 벗고 정체를 공개해 달라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이 노골적인 무관심 뭔데? 불가사리랑 동급의 대우 아니야, 이거?

“그래도 태초 님……. 아는 척 안 한 건 정말 잘하셨어요. 죽은 줄 알았던 동료가 사실 살아 있는데, 더군다나 인어라니. 심지어 사해의 신이었다니……. 저 같으면 그 자리에서 심장 마비 걸려서 죽어요.”

“…그렇지?”

“네. 어떻게든 말을 걸어 보려고 하는 게 솔직히 좀… 그랬지만.”

“웃어도 돼.”

“웃으라뇨. 슬펐는걸요.”

놀랍게도 연가을은 진심이었다.

“다음번에 또 기회 있을 거예요.”

“…….”

◈          ◈          ◈

권도언이 기다리라고 했던 이틀.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자. 받아요.”

약속한 날 아침. 권도언은 붉은색 연가을의 헌터증과 검은색 데아의 헌터 등록증을 각자에게 넘겼다.

“헌터 등록증이에요. 이제 길드 가입도 할 수 있고, 헌터 마켓도 이용 가능해요. 던전에도 들어갈 수 있고, 일반인에게 위협만 해도 폭행죄로 잡혀 가십니다. 알겠죠?”

“고마워요, 길드장님. 이제 갈게요.”

“무슨 일이 생기면.”

권도언은 드물게 말을 아꼈다.

“제 이름 대고 빠져나오세요. 인간계에서는 제 이름이 유용하니까.”

“그 이름을 대고 대출까지 받아버릴 수도 있어요.”

“그걸로 어디까지 나오려나. 궁금하니까 한번 해봐요.”

“지금 허락한 거예요? 가을아. 방금 우리 자금 해결 됐다.”

모두가 농담조로 얘기하는 가운데, 나름 그 상황에 익숙해진 소시민 연가을은 그저 따라 웃기만 했다.

“아니면 지금 드릴까요?”

“뭘요?”

권도언이 내민 건 검은색 카드 한 장과 일반 카드 한 장이었다. 옆에서 연가을이 입을 틀어막았다.

“와, 와!”

“카드? 두 장씩이나 줘요? 저 이걸로 정말 다 긁어버릴 거예요? 마침 돈도 안 들고 나왔는데, 잘됐다.”

“마음대로 하세요. 이 초록색 카드는 그냥 편하게 아무거나 구매하시고,”

권도언은 검은색 카드를 직접 데아의 손에 쥐어 주었다.

“이건 크게 아이템 구매하시거나, 사고 수습용.”

데아는 의심스럽게 권도언을 쳐다봤다. 어서 꿍꿍이를 털어놓으라는 눈초리가 사나웠다.

“싫어요?”

“아니. 좋아요. 좋은데… 왜 이렇게까지 해줘요?”

권도언은 말없이 웃었다.

5년 전, 해룡을 타고 오른 눈부신 누군가를 본 순간 승패는 확정되었다. 권도언은 묵묵하게 패자의 의무를 이행할 뿐이었다.

“그냥… 점수 따려고?”

“와, 가을아. 이 사람 말하는 것 좀 봐. 장난 진짜 잘 쳐.”

그러나 순식간에 분위기를 파악한 연가을은 웃지 못했다. 엄마야… 나는 왜 여기 껴서…….

“전 이렇게라도 해야 하거든요. 경쟁자에 비해 조건이 너무 없어서.”

라고 랭킹1위에 손꼽히는 재벌 권도언이 말했다.

누군가 들었으면 거품을 물었겠지만 놀랍게도 권도언은 진심이었다.

“저는 수명도 짧고… 인어들이 몰려오면 그만 죽어버리는 인간이고… 바다도 못 다루고…….”

“바다는 저만 다룰 줄 아는데요.”

“못생겼고… 금방 늙고… 데아 씨 옆에 오래 못 있겠죠.”

“…길드장님이 못생기시진 않았는데…….”

심지어 높은 등급은 노화도 늦지 않나? 그런 연구 결과를 본 것 같은데……. 그러자 권도언이 보란 듯이 웃었다. 본인이 잘생겨 보이는 각도를 아는 것 같았다.

“데아 씨는 여전히 무르네요.”

뭐야, 지금 너 나 낚았냐?

데아가 확 돌아보자 권도언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남은 아이템과 이동 스크롤을 건네주었다.

“하지만 오래 펴봤자 한철 피고 시드는 꽃이죠.”

꾸욱, 그다음 그는 직접 나가는 문을 열어 주었다.

“그러니 폈을 때 열심히 감상해 주세요.”

“…….”

“잘 가요?”

문이 닫혔다. 데아는 큰 충격받은 듯한 연가을의 옆에서 슬쩍 카드를 인벤토리 안에 넣었다.

“왜 저러지?”

‘그걸 모르시면 어떡해요!’

연가을이 소리 없이 울부짖었다.

“길드장님이 갑자기 내 시종들처럼 나한테 아첨을 해.”

연가을의 포효가 딱 그쳤다.

아, 인어 제국은 신분제였던가. 그렇다면… 그래, 저걸… 저렇게 해석할 수도… 있겠… 있겠지?

“갈까?”

“네. 네…….”

데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길을 떠났다.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지난 이틀 동안 권도언에게 포세이돈에 대한 정보를 전해 들었으니 이젠 행동할 때였다.

“여기부터 헤어져도 돼. 나는 여례아 산하의 소형 길드로 들어갈 거야. 여건이 안 좋고 사람이 자주 죽어 나가는 소형이라고 해도 F급 힐러라면 그 어떤 의심 없이 쉽게 가입할 수 있겠지. 넌 목표했던 여례아로 가. 참고로 거기 길드장 옛날에 나 납치했었음.”

“네, 네? 방금 뭐라고요? 아니, 그보다, 그리고 지금 헤어지자고요?”

“그럼. 갈 길이 다른데. 나중에 인연이 되면 다시 만날 수 있겠지. 그리고 혹시 몰라 경고하는데.”

바싹, 데아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나는 이 얼굴을 몇 번이고 바꿀 수 있어. 네가 혹여나 나에 대해 정보를 흘려도 나는 또다시 다른 사람으로 날 속일 수 있다는 뜻이야.”

“저, 말, 말 안 해요…….”

“응. 믿어. 그럴 것 같아. 하지만 만에 하나 나에 대한 소문이 들린다면, 나는 그 즉시 용의자를 하나로 확정하고 널 죽이러 갈 거야. 알겠지.”

“…….”

연가을은 눈을 깜빡였다. 차가운 눈으로 위협을 하는 이데아에겐 신분이 많았다. 인간, 인어, S급 샤샤 헌터. 태초, 사해의 신. 설한지. 그리고 F급 헌터.

연가을은 샤샤를 처음 봤던 그 순간을 상기했다. 바다에 닿는 태양처럼 하얗고 반짝이던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던 어느 한 사람. 그래. 그렇게 연가을은 이데아를, 그렇게 무섭고 포악하다는 태초를 마주했다.

“어려운 거 없어. 네가 비밀만 잘 지키면 돼. 나중에 우연히 보면 아는 척하자. 만약 큰 잘못을 저질러서 도망쳐야 한다면 날 찾아와. 도움 줄게.”

“…그렇게 말하시는 이유, 이해해요.”

미친 신, 태초. 그의 고양이처럼 올라간 눈매에는 사람을 현혹시키는 투명한 눈동자가 보석처럼 박혀 있었다. 빛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하는 파도를 얼려 조각한다면 저런 눈이 만들어질까? 연가을은 문득 저 목걸이를 풀어 다시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하지만 나는 확인하지 못하겠지. 태초는 남의 손을 타지 않을 때 가장 자유로우니까.

연가을은 결심한 듯이 데아의 눈을 똑바로 마주쳤다.

“태초 님은 저희 엄마의 다리를 고쳐 주신 분이잖아요. 거기다 저를 해변가 위에서, 그리고 해일 속에서 구해 주셨죠. 태초의 섬에 간 덕분에 A급으로 각성해 인생 역전도 해보고…….”

“…….”

“저는… 당신을, 태초 님을 믿어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전 큰 도움을 받았어요. 전 당신을 믿어요. 배신 절대 안 해요. 믿으세요.”

“그래……?”

“네. 그게 인간의 도리예요. 저도 태초 님을 끝까지 도울 거예요. 포세이돈 안에서도 계속.”

그들의 앞에 버스가 정차했다. 데아는 여기서 연가을과 헤어져야했다.

“나중에 또 봐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연가을은 버스에 탔다. 버스가 떠나고, 정류장에 홀로 남은 데아는 고개를 숙였다.

그래 여긴 이런 곳이었지.

하루에도 수십 번 목숨을 위협받고, 배신감과 절망감에 신음하다가도 온기를 만나는 곳. 의외로운 인연이 예기치 못하게 이어 가고 끊어지는 곳. 그럼에도 다음을 나아갈 수 있는 곳. 거대한 인구의 도시.

“택시!”

이제 정말 오롯이 혼자다.

오랜만의 인간계 생활이다. 데아는 5년 동안 단 한 번도 펼쳐 보지 않았던 상태 창을 펼쳤다.

“상태 창.”

[상태 창]

[등급 : N]

이데아―헌터명 : 사샤

마력 : 21(+53)(+50)

체력 : 20(+12)(+50)

생명력 : 30(+12)(+50)

속도 : 21(+12)(+50)

―획득한 스킬―

[물속의 발자취(N) : 물속에서 제약 없이 빠른 행동력을 보여 줄 수 있습니다.]

[심해의 눈(N) : 당신은 승리할 것입니다.]

[타고난 몰이꾼(N) : 인어의 주목을 받는 동안 속도가 +60 증가합니다.]

[바다의 경배(N) : 머리끝까지 물에 젖은 당신의 손에 들린 것은 강력한 죽음입니다.]

[잃어버린 아이를 찾아서(N) : 이건 유폐된 자들의 목소리이다.]

[인어화(N): 나는 그대의 본질. 그대의 자유는 하얗다.]

[우리의 온화한 종착지(N) : 우리는 당신으로 인하여 서로와 대화합니다.]

―미획득 스킬―

[○○○ ○○○ ○○](??)

등급 N. 옛날에는 몰랐지만 지금은 어렴풋이 이해가 가는 등급이 시야에 가득 들어왔다.

“그래서 N이었나…….”

◈          ◈          ◈

데아는 전날 알아보았던 신생 소형 길드의 문을 두드렸다.

“누구쇼?”

“길드에 가입하고 싶어서 왔는데요……!”

맹한 얼굴의 어린 여자애. 여례아 산하 길드 ‘정의’의 길드장 배협은 데아를 보자마자 한숨을 푹 내쉬었다.

“또 F급 떨거지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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