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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식인인어는 죽어야 한다-150화 (150/223)

※ 150화

한참을 두리번거리던 권도언은 벌떡 일어선 데스크 직원에게로 다가왔다. 데스크 직원은 연가을을 턱 가리켰다.

“이분들입니다! 이분들이 길드장님을… 어, 한 분 어디 가셨죠?”

권도언과 연가을의 눈이 마주쳤다. 그는 가늠이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한참동안 창백해진 연가을을 내려다보았다.

‘궈, 궈, 권도언이다…….’

미의 기준을 새롭게 정립하는 외모였다. 깔끔하게 그어진 짙은 눈썹아래 음영이 진 날렵한 눈매. 곧고 높은 콧대와 압도적인 신장. 크게 벌어진 어깨와 살짝 패여 관능적인 인상을 더해 주는 뺨, 그리고 웃지 않고 있음에도 살짝 위로 휘어진 입꼬리까지.

1초, 2초… 연가을은 결국 눈을 질끈 감았다.

‘진짜 실물 미쳤다.’

“저, 저랑 같이 오신 분은…….”

“오신 분은?”

“지금 잠깐 저기 멀리 있는 자판기 가셔서… 여기 안 계세요.”

그랬다. 데아는 잠시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연가을의 말이 끝나자마자 권도언이 자판기가 모여 있는 쪽으로 향해 또 뚜벅뚜벅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권도언이 자리를 비운 지 얼마 되지 않은 그때, 아무렇지도 않게 음료수를 든 데아가 다가왔다.

“매실 좋아한다고 했지? 여기.”

“어? 안 만났어요?”

“누굴?”

“그… 길드장님. 권도언 길드장님. 방금 내려오셨는데, 지금 찾으러 자판기 쪽으로 가셨는데…….”

“어? 정말? 길이 엇갈렸나.”

“안 찾으러 가요……?”

“뭘. 없으면 다시 여기로 오겠지.”

딸깍, 음료를 딴 데아가 연가을에게 음료 하나를 건네주었다.

그리고 5분 뒤, 권도언이 오지 않았다.

15분. 역시 오지 않았다.

30분. 여전히 오지 않았다. 구석에서 기다리던 데아는 그제야 자신이 변장 중임을 깨달았다.

“그걸 이제 깨달으면 어떡해요!”

“영주 언니 때문에 정신이 나가서 까먹고 있었어. 어떡하지?”

‘놀란 것치고는 입은 너무 환히 웃고 있는데요……!’

그저 권도언을 의도치 않게 놀렸다는 사실 하나에 무의식적으로 뿌듯해진 데아가 등을 쫙 폈다. 그리고 어슬렁거리며 로비를 탐색하고 있을 때, 권도언이 로비로 들어왔다.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보아 하니 그사이 밖에 나가 건물 주변을 샅샅이 탐색한 듯했다.

‘오 이런…….’

조금 미안해진 데아가 어물쩍거리며 권도언의 옆으로 싹 다가간 순간이었다. 데아는 반가운 마음에 웃음부터 나왔다.

“그 저…….”

“바쁩니다.”

그대로 쌩 지나쳤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찰나였지만 데아는 분명 보았다. 바쁜데 왜 아는 척이냐는 짜증 어린 시선을!

“……?”

데아는 권도언의 팔을 툭 치려던 자세 그대로 굳어버렸다. 심지어 권도언은 이제 데스크 직원에게 가 ‘그 사람이 어디에 갔는지’에 대한 정보를 묻고 있었다.

‘방금 네가 피했어…….’

“어, 저, 저분이세요! 저에게 말을 전해 달라고 하셨던 분!”

그때 데스크 직원이 데아를 손짓하며 방방 뛰었다. 권도언이 쨍 굳었다. 그렇겠지. 완전히 낯선 사람이니까. 긴가민가할 것이다. 데아는 그제야 굳었던 몸을 풀고 입을 비틀어 올렸다.

“…….”

“오랜만이에요, 길드장님.”

연가을이 후다닥 데아의 뒤로 왔다. 데아는 천천히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권도언의 시선이 데아의 얼굴에서 손으로 느리게 내려왔다.

“5년 사이에 걸음걸이가 많이 빨라지셨어요?”

그 말에 비로소 권도언이 미소했다. 그리고 양 손바닥으로 눈을 가리더니 작게 웃기 시작했다.

“아… 왜 5년 30분씩이나 숨어 다녔어요. 한참 찾았네.”

“…….”

“못 알아 볼 뻔했잖아요.”

권도언은 고개를 저으며 데아와 연가을을 아무도 없는 안쪽 길드장실 직행 엘리베이터로 이끌었다.

“우선 가요, 데아 씨.”

◈          ◈          ◈

“세계 서열 1위?”

소파에 앉자마자 친근하게 입을 연 데아가 박장대소했다. 권도언은 예상했다는 듯이 웃음을 감내했다.

“…데아 씨가 없는 사이에 많은 일들이 있었어요. 알려 드릴게요. 우선, 랭커는 말 그대로 순위 시스템이에요. 5년 전에 게이트가 일시적으로 사라지고 각성자들의 힘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예상만 했죠.”

“그에 위기감을 느낀 헌터 협회가 토너먼트 형식 랭킹전을 열었어요. 1년에 한 번 열리죠. 헌터들의 쟁쟁함을 알리고, 어떻게든 시민들의 불안감을 해소하려는 목적이었죠. 랭커는 그 랭킹전에서 1등과 10등을 차지한 헌터들이고요.”

삑, 스크린 TV가 켜졌다. 그곳에는 랭킹전의 순위가 주르륵 10위까지 적혀 있었다.

1위 권도언―도원

2위 여기은―여례

3위 차현―차현

4위 하영주―영영

?

?

?

“그리고 제가 1위예요. 뭐, 예정되었던 결과죠.”

“가을아. 저런 말에는 대답해 주면 안 돼.”

“물론 지금 순위에 포세이돈의 공략 공적도가 합쳐지면 순위 변동이 일어날지도 몰라요. 거대 길드는 포세이돈의 공략권을 나중에 받으니까. 그래 봤자 랭킹전 5년 연속 순위권을 이기긴 어렵겠지만요.”

“어…….”

데아는 인상을 찌푸렸다. 보여야 하는 이름이 보이질 않았다.

“잠깐, 릴림… 리서 언니는요.”

“백리서는 아예 출전을 안 했어요.”

“왜?”

“저야 모르죠. 귀찮아 보였으니까.”

그 뒤로 권도언은 가윗이 혼수상태라는 것과, 부길드장이 된 하영주의 소식을 전해 주었다.

“가윗이 혼수상태……. 혹시 어디 병원인지 알려 줄 수 있어요?”

“그럼요.”

“그런데, 갑자기 무슨 부길드장이에요?”

“길드가 커졌으니까요. 사실 부길드장 직책은 백리서한테 먼저 제의하고 싶었는데…….”

또 권도언은 말없이 웃었다. 설사 제의했어도 백리서는 분명 재밌냐며 싸늘하게 거절했을 터다.

“데아 씨는 다른 얘기 없어요?”

“있어요. 오늘 영주 언니를 만났는데…….”

방금 로비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하자 권도언이 기가 차 픽 비웃었다.

“아직도 그러고 다녀요? 영영 헌터도 고집이 있네…….”

“그 아이템은 뭐예요? 팔에 막 끼우던데.”

“아, 그 아이템이요? MBL연구소에서 만든 아이템인데 순 쓰레기예요. 멍청한 놈들이 다 거기 있는데 당연히 그렇겠지.”

“뭐라고요?”

불쑥 화를 낸 건 연가을이었다. 권도언은 영문도 모르고 눈을 크게 떴다.

“아, 저, 아는 분이 거기 있어서, 무심코 반문을……. 제가 길드장님에게 그만 막말을…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기분이 나쁘셨다면 사과드릴게요. 이거 더 드세요.”

권도언이 연가을의 앞으로 음료가 든 잔을 죽 앞으로 더 밀었다.

“아무튼, 그 인어 감별 아이템은 3세대 이하밖에 못 걸러 낸대요. 그래 보이더라고요.”

바로 옆에 있는 백리서도 못 알아본 시점에서 아이템의 신뢰도는 바닥을 찍었다.

그렇게 권도언은 한동안 아이템을 신랄하게 깠다.

“백리서는 데아 씨가 여기 있다는 거 알아요?”

“아뇨. 말하지 마세요. 말해도 직접 말 할 거니까.”

권도언의 눈이 가늘어졌다.

“흐음… 그러세요.”

“이제 본론을 말할게요.”

“언제 말하나 싶었어요. 그런데 벌써 알 것 같은데…….”

두 세계의 정상이 대면하는 어마어마한 장소의 관엽 식물이 된 연가을이 음료를 쪽 빨았다.

“데아 씨 지금 신분증 필요하죠.”

“오……”

“숙소도 필요하고?”

“오……?”

“인간계에 돌아온 목표는… 역시 포세이돈? 헌터 신분증 필요해요? 아예 다른 인물의 것으로?”

“땡. 다 맞았는데, 제 목표는 포세이돈이 아니에요.”

포세이돈의 존재는 태초의 섬에 있었을 때부터 알고 있었지만…….

“제 부하 한 명이 여기로 납치를 당해서 구하러 왔어요. 물론 포세이돈과 관련이 없을 거라는 생각은 안 해요. 여차여차 포세이돈이 도대체 뭔지 구경도 하고, 없애기도 해야겠죠.”

“아하. 그래서 조작한 헌터증이 필요해졌어요?”

“네. 전문이잖아요.”

“예전에 샤샤 헌터의 등급을 조작했던 일을 기억해 주시다니. 영광이네요. 하지만…….”

권도언은 등을 기대고선 느른하게 웃었다.

“싫다면요?”

그러자 데아가 헛수작을 부린다는 듯이 웃었다. 권도언은 그 미소에서 위화감을 읽었다.

“싫다는 사람이 30분 동안 로비를 빙빙 도나……?”

“…….”

5년 만에 만난 이데아는 예전과 완전히 다른 얼굴을 하고 나타났다. 목에 달린 마석의 능력이라는 걸 알았지만 권도언은 달라진 게 외모만이 아님을 바로 알아챘다.

당신은 더 영악해졌어.

‘그럼에도 밉지가 않아. 그게 문제야…….’

“길드장님. 아직 인어가 궁금하시죠? 인어에 대해 더 알기 위해선 저와 손을 잡는 게 더 편할 거예요. 솔직히 포세이돈이 마음에 안 들잖아요. 스스로 통제할 수도 없는 위험 요소를 달갑게 볼 길드장님이 아닌데…….”

“포세이돈이 달갑지 않은 건 맞는데, 인어는…….”

권도언의 호기심은 그를 뛰어오르게 한 장점이자, 그를 옥죌 단점이었다.

권도언은 결국 발목이 묶일 미래를 내다보며 웃었다. 머릿속의 어린아이가 속삭였다.

‘뭐 해? 아니라고 해! 저 인어의 뜻대로 움직여 줄 거야? 진실을 말 해!’

“…맞아요. 궁금해요.”

“그렇죠?”

“전 아직 인어에 대해 큰 관심이 있어요.”

절반은 거짓이었다. 인어라는 종족이 가진 집단의 특수성은 이제 아무래도 좋았다. 그가 5년 전, 해룡을 타고 뛰어오른 눈부신 한 인어를 본 순간, 그 이외의 것은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어졌으므로.

“너무 궁금해서 잠도 못 잤지 뭐예요…….”

잠도 자지 못하고 그날을 생각했다. 미끄러진 손. 몸이 뚫린 채 토혈하며 추락하는 이데아. 그런 그를 삼키는 검은 파도.

따라 뛰어내리려던 권도언을 막은 건 이리나였다.

“태초는 파도로 시작되어, 바다로 귀결되는 존재. 따라가지 마십시오.”

권도언은 그 말을 마음껏 비웃었다. 나도 나지만, 당신들은 더 악질이로군.

“그 정도예요?”

“그러니 데아 씨는 이제 죽으면 안 돼요.”

데아는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 보니, 5년 전에 권도언의 눈앞에서 추락했던가.

“농담이에요. 등급은 뭘 원해요? 가명은 정했어요? 나이는 그대로 할까요? 어디 보자… 길드 소속은 어디를 희망하는…….”

“고마워요, 길드장님.”

“…….”

데아는 5년 전의 얼굴로 웃었다. 완전히 다른 얼굴이었지만 미소만은 한결같았다. 권도언의 고요한 심연에 작은 자갈이 와르르 떨어졌다.

“좋아! 이제 말할게요. 가명 설한지. 나이 26세. 우연한 기회로 각성한 지원계 힐러. 헌터 등급 F.”

“잠깐, F?”

툭, 연가을도 먹던 과자를 떨어뜨렸다.

‘…F?’

“데아 씨. F로는 여파 길드 못 들어와요. 최소 B는 되어야…….”

“여파 안 들어가요.”

권도언이 충격을 받고 우뚝 굳었다.

“잠…시만요. 특혜를 받으면 가능할 것 같기도 해요. 특수 스킬 능력 보유자 타이틀, 어때요?”

“필요 없어요.”

“이거 참… 이런 곳에서 이러고 싶지 않았는데, 저와 팔촌 관계라고 속이는 건? 이제 보니 바뀐 외모가 저와 꽤 닮은 것 같기도 하고. 길드장을 등에 업은 낙하산 타이틀은 싫어요?”

“네. 평범한 F등급 지원계 힐러가 좋아요.”

“…….”

권도언이 탁, 서류를 닫았다.

“데아 씨. 데아 씨도 느껴서 알고 있겠지만 대우받는 고등급 힐러와 다르게 F급 힐러는…….”

“무시받고 주목도 받지 못하죠. 모두가 있으나 마나한 존재들로 여겨요. 작은 상처 하나 겨우겨우 없애고 눈에 띄는 지원도 해주지 못하죠.”

권도언은 한동안 침묵하다가 이내 깊게 미소했다.

“…작정하고 온 거였어요?”

눈에 띄지 않는 돌멩이 같은 직업, F급 힐러.

모두가 두려워하는 사해의 신은 가장 낮은 곳에서 잠입하기를 희망했다. 그 누구보다 조용히, 무시의 틈새를 노려 빠르게 수뇌부에 침투하기 위해.

“전 눈에 띄지 않는 여례아 산하 소형 길드에 들어갈 거예요.”

포세이돈을 처음 발표한 건 MBL, 포세이돈 1층을 먼저 공략한 건 여례아, 포세이돈을 만든 건 칸나니아. 셋의 연관성을 눈치채지 못한다면 바보였다.

‘자잔은 그곳에 있겠지.’

“가장 눈에 띄지 않으면서도, 가까운 위치니까요.”

“역시나 MBL과 여례아에 포세이돈과 관련된 뭔가가 있기는 하나 보네요. 인어들이 만들었다는 헛소리를 누가 믿을까 했는데.”

권도언은 소파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좋아요. 가짜 헌터증과 가짜 신분증은 이틀만 기다려요. F등급은 어려울 것도 없으니까. 그러면…….”

권도언은 그제야 연가을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쪽은, 이름이?”

“여, 연가을입니다.”

권도언은 연가을에게 형식적인 질문 몇 개를 던지곤 고개를 끄덕였다.

“A급이라, 높은 등급이네요. 그런데 데아 씨. 연가을 씨는 뒤탈이 없을 만큼 믿을 만한 사람이에요?”

히익, 연가을이 겁을 집어먹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다 수가 있으니까.”

“흠… 연가을 씨가 이왕이면 데아 씨와 여파로 오셨으면 좋겠지만, 다른 길드를 선호하는 눈치니까 더 말을 얹지는 않을게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데아와 연가을이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순간이었다. 갑자기 길드장실의 문이 확 열리고 누군가가 안으로 들어왔다.

연가을은 그 자리 그대로 다시 굳어 앉았고, 권도언은 찰나의 순간, 빠르게 데아의 표정을 훑었다. 그리고 데아는 자신의 등 뒤에서 들리는 익숙한 발걸음 소리에 눈을 크게 떴다.

규칙적인 낮은 구두 굽. 심장이 느리게 존재를 알렸다.

데아는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

“손님들이 계셨군요.”

그건 백리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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