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식인인어는 죽어야 한다-149화 (149/223)

※ 149화

데아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느리게 입술을 열었다. 옅은 미소와 함께였다.

“…진짜 좋은 사람이야. 보는 거랑 다르게 속이 좀 깜깜하고 생각을 알 수가 없는데, 본질적으로 사람이 다정하고…….”

태초의 두 번째 권속 릴리므아나. 데아는 5년 전 그날 이후로 백리서의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데아가 묘하게 그를 피했기에 백리서 또한 데아를 찾아오지 않았다.

묘한 죄책감이 가슴을 찔렀다. 심지어 직접 가서 만나겠다는 데아의 고집 때문에 피파글랜은 백리서에게 데아의 이번 인간계 방문에 대한 전서를 띄우지도 못했다.

‘내가 만나러 가는 걸 꿈에도 생각하지 못 하고 있을 텐데.’

“내가 헌터 생활할 때, 그 릴…….”

마음만 같아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친해지고 싶은데.

“…리서… 언니한테, 도움을 많이 받았어.”

“우와! 언니라고 부르는 것 좀 봐! 정말 많이 친했나 봐요!”

“응. 그래서 리서 언니 앞에서는 내 얘기 꺼내지 마.”

데아는 진실을 슬쩍 감췄다.

“내가 대외적으로 죽고 나서 많이 힘들어 했을 거야.”

“아… 그건 그렇죠.”

“짐은 트렁크에 실을까요?”

그때 택시 기사가 나와 트렁크 문을 덜컹 열었다. 보통 배낭의 서너 배 되는 거대한 짐이 그 안으로 말려 사라졌다.

“아, 그런데 거기 길드장은 믿지 마.”

“여파의 길드장이라면… 권도언 길드장님 아니에요? 지금 랭킹 1위잖아요?”

“랭킹? 그건 뭐야,”

내가 인간계에 없던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아무튼, 그 사람 미친 사이코 패스에 인어 머리에 폭발 칩 심고 배 가르는 게 취미인 미친놈이니까. 오래 엮이지 마.”

“헉…….”

“아예 너에게 관심을 가지게 하지 마. 정신 차렸을 때 실험대에 묶여 있는 자신을 발견하기 싫으면. 혹시 몰라 경고하는데, 갑자기 너한테 실수인 척 구정물을 뿌린다면 그대로 일어서서 머리채를 뜯어.”

“에, 에이……. 지금 권도언 길드장님 말씀하시는 거 맞아요? 묘사가 왜 그래요? 그분 얼마나 유명한데요. 지금 세계랭킹 1위에 영향력도 엄청나서 인기 무지하게 많아요. 이미지 좋고, 단정하고, 성격까지 좋잖아요. 얼굴도 잘생겨서 뭐라도 입으면 그게 다음 시즌 유행으로 돌아올 정도의 유명인인데.”

“권도언…이?”

“네? 그게 아니라…….”

“지금 여파 길드 권도언 얘기 하는 거 맞아요?”

그때 운전하던 택시 기사가 툭 끼어들었다.

“그~ 엄청나게 높은 사람 얘기 하는 거 맞지? 그렇죠? 저~ 뭐냐, 국회 의원 악수도 거절했다던!”

국회 의원 악수? 도대체 뭘 하고 다니는 거지?

“저것 봐!”

택시 기사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건 버스 옆면의 생일 축하 광고였다. ‘여름의 태양 아래 빛나는 도원의 생일을 축하해!’라는 글씨와 함께 붙어 있는 권도언의 매끈한 면상이 반짝거렸다.

“저, 저, 저거 뭐야?”

“팬이 해준 거네요.”

데아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스스로의 사비로 저딴 광고를 붙인 줄 알고 순간 식겁했다.

“대통령한테도 고개를 안 숙이는 사람이 뭐가 귀엽다고 팬들이 저리 많아?”

“잘생겼잖아요. 1위기도 하고. 전 세계에서도 팬이 많아요. 그런데 공식 석상에만 얼굴 비춰서 찾아도 나오는 영상은 몇 없을걸요.”

“거참 보니까 사람이 잘생기긴 했더만! 하지만 내가 말이지… 관상을 조오금 볼 줄 알거든요? 그런 기생오라비상한테 여자들은 다가가면 안 돼야. 큰일 나, 남자 잘못 만나면! 힘이 무지하게 강해서 랭킹 1위면 뭐 해! 눈빛이 안 좋아. 차라리 혼자 살아!”

“아 예…….”

데아는 연가을에게 묘한 눈빛을 주고는 슬그머니 차오르는 웃음을 참았다.

“들었지? 그렇다니까.”

“저~허~ 뭐냐. 근데 사람이 또 선한 구석은 있긴 한가 봐요. 이번에 던전 피해 복구 뭐? 어디 사업? 단체? 거기에 1억이나 기부했지 뭐야? 그래. 사람이 어떻게 한 면만 있겠어. 그렇죠?”

“…….”

“그런데 학생들, 지금 우리가 이렇게 얘기해도 다 쓸모없는 짓이에요. 그렇게 노~옾은 사람들은 이 시간에 또 돈을 갈퀴로 쓸어 모으고 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이야 그 사람들 털끝이나 보면 영광인거지.”

택시가 빨간불에 정차했다. 택시 기사가 주섬주섬 자신의 딸 사진을 꺼냈다.

“우리 딸이 카페 사장이거든. 그런데 이번에 내 딸이 우연히 카페에서 그 사람을 봤대! 그 권도언이!”

이게 본론이었군.

“우리 딸은 또 그놈 팬이라고 실실 웃기는 뭘 웃어……. 사인까지 해주고 떠났댄다. 허참, 아빠한테는 그렇게 쌀쌀맞게 대하더니 기가 막혀서.”

“오… 권도언 길드장님이 직접 카페에도 가시는구나.”

연가을이 작게 감탄했다.

“비서한테 커피 심부름만 시킬 것처럼 생겼는데 의외네요.”

“그런데 또 인기가 그렇게 많은지, 권도언이가 사간 메뉴가 유명해졌대요, 아주! 그래서 우리 딸이 아주 고생해.”

“무슨 메뉴인데요?”

“브루 레몬인가, 블루인가 하는 그거.”

데아의 손이 멈칫 굳었다.

“와. 이미지랑 다르게 청량하고 상큼한 거 좋아하나 봐요. 진짜 안 어울린다! 생긴 건 에스프레소 300밀리리터 꽉꽉 채워서 마실 것 같은데.”

“원래 우리 딸이 하는 카페 그 브루… 블루 레몬이가 제일 맛있어. 좋은 걸 아는 거지 그 권도언도!”

그렇지 않냐며 맞장구를 치는 택시 기사의 말소리가 택시 안을 가득 채웠다. 생각에 잠긴 건 데아 혼자였다.

“혹시 카페 주소 좀 알 수 있을까요? 저도 그 메뉴 좋아해서…….”

‘권도언 인증 맛집이면 믿어볼 만하지.’

◈          ◈          ◈

데아와 연가을은 여파 길드 앞에서 내렸다.

“와… 여기 들어갈 수 있는 거 맞아요? 경비가 너무 삼엄한데.”

검은 옷을 입은 가드들이 문에 각각 서서 들어오는 인원을 주시하고 있었다. 척 봐도 5년 전보다 더 삼엄해졌다.

“그런데 여기 왜 온 거예요? 위험하신 거 아니에요? 여긴 인어를 사냥하는 길드인데!”

“어느새 꼭 인어의 훌륭한 앞잡이처럼 말하고 있는 거 알아?”

“아니, 아니… 나는 그럴 의도가 아니었어요.”

“가짜 신분증 발급받으러 온 거야. 조력자가 여기 있어서.”

“예? 누군데요?”

“여기 길드장.”

“에… 기, 길드장님……?”

“응. 권도언은 내가 살아 있는 것도, 내 정체도 알고 있거든.”

“세상에… 진짜 앞잡이는 따로 있었잖아?”

사해의 신 태초의 진짜 앞잡이가 인간 랭킹 1위 헌터 권도언? 설마 포세이돈이 그렇게 공략이 안 되는 이유가……! 연가을은 머리를 감싸 쥐고 이 시대 최악의 결탁 관계에 신음했다.

“그런데… 저 사실, 가고 싶은 길드는 정해 놨어요.”

“어디?”

“여례아요.”

왜 하필 거길.

데아가 휙 돌아보자 연가을이 머리를 긁적였다.

“여례아가 MBL이랑 협력 관계래요. 저희 언니가 거기 있어서… 만나려면 여례아가 좋을 것 같아서요.”

“뭐… 마음대로 해.”

데아는 슬쩍 정문을 지나 여파 길드 로비를 가로질렀다. 그러곤 곧바로 데아는 목걸이가 잘 착용되어 있는지 확인하고는 로비 안내 데스크에 슬쩍 다가갔다.

“뭐 여쭤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네. 무슨 일이신가요?”

“길드장님을 잠깐 만나 뵙고 싶은데…….”

그러자 데스크 직원의 얼굴이 조금 이상해졌다.

“어… 길드장님을요? 아니면 부길드장님을요?”

“부길드장님이요?”

부길드장이 있었나? 릴림인가? 누구지?

“그 사람이 누군데요?”

그러자 데스크 직원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옆에서 연가을이 식겁하며 빠르게 속삭였다.

“영영 헌터, 영영 헌터!”

“뭐, 뭐? 영주 언……!”

영주 언니가 부길드장이라고?!

그때 옆이 소란스러워졌다. 사람들이 다 같이 인사를 하며 엘리베이터 쪽으로 다가간 탓이었다.

“안녕하십니까, 부길드장님!”

“부길드장님, 오늘도 좋은 아침입니다.”

“아, 마침 오시네요.”

손끝까지 맥박이 빠르게 돌고, 심장이 크게 뛰었다.

하영주. 헌터명 영영. 짧으면 짧았고, 길면 길었던 데아가 사귄 거짓이 없던 유일한 사람.

“너까지 다치면 안 돼. 그럼 나는 정말로…….”

“안 돼, 데아야!”

강제로 창 뒤로 밀쳐지며 마지막으로 봤던 그의 얼굴은 우는 얼굴이었다.

‘이렇게 빨리 만나게 될 줄은 예상 못 했는데……!’

데아는 5년 전의 일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처음 만난 자신을 매치기로 던져버렸던 하영주. 괴담을 보여 주겠다며 가윗과 함께 기숙사 방문을 열고 들어온 하영주, 억지로 자신을 끌고 카페에 가 신메뉴를 먹인 하영주, 몰래 훈련장을 나가 곱창을 구워 먹고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입에 물었다가 그대로 훈련장에게 잡혀 혼이 났던 하영주…….

“어,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어요?”

“아니. 그냥…….”

데아는 입꼬리를 문질러 내렸다.

‘가윗은 괜찮으려나. 권도언한테 그것부터 물어봐야겠다.’

그리고 고개를 든 순간이었다. 데아는 자신을 보고 있는 하영주를 보았다.

“어…….”

데아가 알고 있는 하영주는 경쾌한 주황색을 닮은 사람이었다.

언제나 활기차고, 능동적이며 재치와 배려, 그리고 유머가 넘쳤다. 그의 주변은 사람이 끊이질 않았고, 하영주 본인도 크게 웃고 떠드는 대외 활동 하기를 좋아했다.

데아는 그의 부스스한 머리카락과, 활력을 내심 좋아했다.

“뭐지……?”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하영주의 얼굴 위로 가느스름한 비웃음이 걸렸다. 그 순간, 소란스러웠던 좌중이 일제히 조용해졌다. 로비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은 큰일 났다는 표정으로 데아를 돌아보거나, 고개를 숙였다.

데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큰일 났다. 너무 눈에 띄게 고개를 돌려서…….’

그러나 이미 늦은 때였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하영주는 데아가 알고 있던 것과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깔끔하게 올린 머리, 검은 정장, 딱딱하고 차가운 얼굴.

5년 전의 활기는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는 서늘함이 갑옷처럼 그를 두르고 있었다.

데아의 심장이 땅 끝까지 떨어졌다.

“가비. 라일라.”

가비. 라일라. 그들은 모두 데아와 같은 첫 번째 공략 팀 소속 헌터들이었다.

“저 사람 확인해.”

“네.”

하영주가 말하는 ‘저 사람’은 데아였다.

데아는 머리카락을 당겨 색을 확인했다. 짙은 갈색. 변장은 확실했는데, 왜…….

“잠시만 확인하겠습니다.”

심장이 쿵쿵 몸을 두들겼다. 데아는 벽처럼 뚜벅이며 다가오는 싸늘한 얼굴의 가비에게서 뒷걸음질 쳤다.

“…왜 그러시죠?”

“필요한 절차일 뿐입니다.”

“설명부터 해주세요.”

“라일라. 제압해.”

“아니, 지금 그게 뭐 하시는 거예요!”

옆에서 연가을이 그들을 막았지만 가비와 라일라는 막무가내였다. 그들의 어깨 너머서 여파의 부길드장 하영주가 팔짱을 끼고 데아를 지켜보고 있었다. 온정이라고는 한 톨도 보이지 않는 무표정. 데아의 머리가 차가워졌다.

하영주가 변했다.

‘다가오지 마!’

데아는 연가을에게 신호를 보내고는 순순히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철컥! 그리고 강제로 팔에 뭔가가 씌워졌다. 두껍고 무거운 기계 장치였다.

“둔갑한 인어가 많기에 진행하는 절차입니다. 수상한 낌새를 보이는 분에게 진행하는 검사이니 협력 부탁드립니다.”

“그러니까… 이 기계가 인어인지 아닌지 확인한다는 거예요?”

“그렇습니다.”

아, 미친. 초장부터 망했네.

다급한 눈으로 데아가 도주할 경로를 찾던 때였다. 예상치 못한 결과가 벌어졌다.

삑, 삑, 삑, 삐―

“협력에 감사드립니다. 인어가 아님을 확인하셨으니 이만 가셔도 좋습니다.”

‘…뭐?’

그제야 하영주가 형식적인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이거 정말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 모두가 인어를 잡아내는 과정이므로 이해해 주실 거라 믿습니다.”

턱턱, 데아의 어깨를 두드리는 하영주의 시선이 서늘했다.

“제 말 잘 알아들으셨죠?”

“…….”

“가지.”

“네.”

“네!”

그리고 하영주는 냉기를 뚝뚝 흘리며 걸음을 돌렸다.

폭풍이 지나간 자리, 데아와 연가을만 우두커니 서있었다.

“여기 사람들 다 좋다면서요……?”

“아니, 그게 그랬는데…….”

내가 안 본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그나저나…….

‘영주 언니 그 기계 버려요…….’

맞는 거 하나 없는데 왜 들고 다니는 거야…….

데아는 다시 본래의 목적에 집중하기로 했다.

“저, 길드장님 불러 주시겠어요? 방금 부길드장님 말고.”

“혹시 약속을 따로 잡으셨습니까?”

“음… 아뇨.”

“죄송합니다. 길드장님은 그렇게 쉽게 만나 뵈실 수 있는 분이 아니십니다. 게다가 약속을 따로 잡지 않으시면…….”

“혹시, 이 한마디만 전해 주실 수 있나요?”

데아는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짤막하게 읊조렸다.

“소라를 되돌려 받으러 왔다고만 해주세요. 바로 내려올 거예요. 부탁드려요.”

5년 전에 전해 준 통신 소라. 그건 아직도 권도언에게 있었다.

◈          ◈          ◈

그리고 정확히 2분 뒤, 여파 길드의 로비가 소란스러워졌다. 이유는 하나. 머리와 넥타이가 흐트러진 채 허겁지겁 로비까지 달려온 권도언 길드장의 등장 덕분이었다.

“기, 길드장님!”

“안녕하십니까, 길드장님!”

“길드장님? 오랜만에 만나 뵙네요!”

권도언은 여파 길드원에게도 자주 볼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때문에 로비 안은 권도언에게 말 하나라도 더 걸어 보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이 되었다. 물론 권도언은 형식적인 손인사만 해주고 있었지만.

“그… 길드장님, 혹시 어느 분을 찾으십니까?”

“네. 조용히 좀 있어 봐요. 찾는데 집중이 안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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