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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식인인어는 죽어야 한다-148화 (148/223)

※ 148화

그렇게 이데아는 ‘설한지’가 되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 가시방석에 앉은 사람은 연가을 혼자였다.

“그래, 한지구나? 우리 가을이랑 같이 여행은 잘 다녀왔구?”

“어, 엄마…….”

“네. 재밌게 잘 다녀왔어요.”

그리고 데아는 환하게 웃었다.

“어디로 갔니?”

“아니, 엄마 나한테 물어보지. 왜, 친구한테 물어봐…….”

“물어보는 게 어때서, 얘는,”

“바다로 갔어요. 가을이가 엄청 재밌게 놀던데요.”

투둑, 툭.

그때 밖에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졌다. 절반만 있는 유리창을 두드리는 빗방울이 세찼다.

“어머, 어머, 내 정신 좀 봐. 비가 오네? 으응, 잠시 둘이 이야기 나눌래? 아줌마가 빨래 걷는 걸 깜빡해서.”

급하게 오른 다리를 설질 끌며 나간 자신의 엄마를 바라보던 연가을이 인상을 푹 구겼다.

“그, 예전에 사고가 있었어요. 공장에서 일을 하시다가…….”

“아…….”

습한 공기 속, 침묵이 지나갔다.

끈적거리는 마룻바닥, 탈탈거리며 돌아가는 먼지 쌓인 선풍기. 하염없이 회전하는 바람이 그곳의 유일한 소음이었다.

“…그쪽이…….”

적막이 깨졌다.

“…….”

“…그쪽이 완전히 다른 존재라서 다행이에요. 창피한 거 아닌 거 아는데, 그냥, 다…….”

이 낡고 좁은 집도, 몇 개월 사이에 푹 늙은 것 같은 자신의 가족도, 엄마의 저는 다리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신도 남들에게 보여 주고 싶지 않았다.

나이 스물. 연가을은 제 가족을 사랑하지만 자신에게 쏟아지는 동정 어린 시선은 견디기 어려웠다.

“하지만 아예 완전히 높은 사람… 아니, 높은 자리에 있는 인어니까…….”

그리고 그쪽은 남들과는 다르게 나에게 동정 안 하니까… 오히려 비참함이 덜했다며, 자조하는 연가을은 노쇠한 노인 같았다.

“수술은?”

“한 거예요. 그냥, 다행히 절단은 피했는데, 그냥… 영원히 절어야 한대요. 돈이 없어서, 제대로 된 보험도 못 받고, 수술도 한 번밖에 못 했어요. 그래서 우리 엄마 긴치마 밖에 못 입어요. 다리 모양 이상하다고. 바지는 바로 티가 나서…….”

“아…….”

“남은 건 힐러뿐인데, 힐러분들께 부탁하는 건 너무 비싸서…….”

째깍째깍, 시곗바늘만 정적을 달렸다.

“…당신이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닌 거 다 알아요. 딱 보고 알았어요. 신은 하늘에서 모두를 굽어봐야 하는데, 당신은 같이 걸어 다니고 있었으니까. 엄청난 권능이 있는 것도, 소원을 들어주는 것도 아니라는 걸 바로 알았죠. 그니까… 걱정 마세요. 고쳐 달라고 안 해요.”

하지만 이윽고 그는 혼자 화를 벌컥 냈다.

“…세상이 나를 대상으로 깜짝 카메라를 찍고 있는 것 같아. 갑자기 알바에 잘리더니 이상한 사람들한테 습격받고, 해일이 닥쳐와서 죽었다 살아났는데 인어 제국으로 끌려갔다 나왔어. 그런데 내 옆에 있는 사람은 그 사해의 신 태초래. 이게 말이 돼요?”

“…….”

“나 왜 이렇게 운수가 안 좋지. 삼재인가……. 뭐라고 하지 마세요. 원래 아무도 못 믿어 왔으니까. 나한테 믿을 건 돈뿐이에요. 돈은 운에 따라 변화하지 않거든요. 그러니 각성한 능력으로 헌터가 되어서 잘 먹고 잘 살 거예요. 엄마 다리 수술을 다시 알아볼 거고. 너무 오래 지나면 수술도 불가능하다는데 그 전에 빨리…….”

“어우! 비가 왜 이렇게 많이 온다니?”

축축한 빨래 바구니를 든 연가을의 어머니가 집 안으로 들어오며 활짝 웃었다.

“자고 갈래? 이불 깔아 줄까?”

데아는 고개를 돌려 그를 외면한 연가을을 지켜보았다.

‘원래 아무도 못 믿어 왔으니까.’ 그 말 속에 담긴 건 수년간의 울분이고, 비참함의 끄트머리였다. 꾹꾹 눌러 담았던 불신과 대상없는 분노가 위태롭게 흔들렸다.

그러나 데아는 그 중앙, 모든 것의 본질을 내다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적을 바라는 기대가 그곳에 있었다. 기대가 클수록 실망 또한 커진다. 그렇기에 연가을은 실망하지 않기 위해 기대의 목을 비틀었다.

그는 현명했다.

‘그런데 저거 정말 안 고쳐지나.’

“어어? 미안하다. 여기가 좁아서… 잠시 길 좀 지나갈…게?”

죽죽 다리를 끄는 그의 어머니가 데아의 앞을 지나갈 때였다. 긴가민가하는 마음으로 데아는 손을 뻗어 살짝 스치듯 다리를 만졌다.

모든 마력의 근원 태초, 당연히 실재하는 모든 힐러들의 근원 또한 그였다.

“…어?”

그리고 결과는 상상 이상이었다.

쿠당탕―!

빨래 바구니가 바닥을 굴렀다.

충격에 빠진 창백한 연가을의 어머니가 데아를 내려다보았다. 데아의 손이 우뚝 굳었다. 아차.

“지금, 뭐, 지금 뭐 한…….”

“엄마?”

턱. 비스듬히 기울어진 자세가 아닌, 꼿꼿이 자리에 두 발을 디디고 선 연가을의 어머니가 와락 ‘어어?!’ 비명을 질렀다.

“엄마!”

우당탕! 긴 치맛자락을 밟고 뒤로 넘어졌다. 하나, 엉거주춤 앉아 뻗은 오른 다리는 멀쩡했다.

“어? 엄마 다리……!”

“뭐야? 뭐니? 뭐니 지금 이거?!”

연가을의 어머니는 자신의 멀쩡하고 곧은 오른 다리를 한참동안이나 더듬었다.

“뭐야? 뭐 한 거……. 지금… 지금, 무슨……!”

그리고 한동안 멍하니 있더니 허겁지겁 데아의 손을 잡았다.

“다리가 멀쩡해, 안, 안 아파…….”

“엄마, 정말이야?”

“혹시 치, 친구… 힐러니?”

‘원래 아무도 못 믿어 왔으니까.’

그 광경을 지켜보던 연가을은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이런 미친, 사해의 신!’

데아의 머리 위로 후광이 비춰졌다. 시발, 신인 이유가 있구나. 정말 신이라서 신이었던 거였어.

연가을의 머리 위로 먹구름이 떠나가고, 태양이 고개를 비췄다.

“맙소사… 신이시여.”

실재하는 사해의 신이시여, 나에게 기적을 내려 준 유일신이시여,

연가을의 머릿속에서 인어에 대한 뜬소문들이 싸악 사라졌다. 어리벙벙하고 맹한 낯선 얼굴을 한 사해의 신도 더는 거슬리지 않았다.

그래, 당신은 정말 신이었다. 멍청이는 나였다.

황폐한 길을 홀로 걷는 순례자에게 드디어 다가온 축복, 산을 평지로 만들고,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영원한 기적 아래서 연가을은 두 손을 맞잡았다.

‘내가 그대의 신도입니다! 태초!’

사해의 신 태초의 인간 제1호 신도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          ◈          ◈

두 쌍의 눈동자를 마주한 순간, 데아는 드디어 콘셉트를 확정했다.

‘이거다.’

“히, 힐러, 친구, 힐러 맞지……?”

“아… 네. 지원계 힐러 맞아요. 혹시 될까 말까 고민하면서 능력을 쓴 거였는데, 오히려 놀라게 해서 죄송해요. 바로 이렇게 효과가 나타날 줄은 몰랐어서…….”

“아냐, 고마워. 우리 가을이 친구야, 한지야. 고마워……. 친구는 참 선하고, 착하고, 어쩜 사람이 이리 곱고…….”

결국 연가을의 어머니는 눈물을 보였다. 그 옆에서 무릎을 꿇은 연가을에게 기대어 몇 번이고 고개를 숙였다.

“아니에요. 사람을 고치는 게 제 사명인걸요. 그런데… 부탁이 있어요.”

“부탁? 무슨 부탁? 그렇지. 돈은 얼마든지…….”

“아뇨. 비용은 괜찮아요. 제가 부탁드리고 싶은 건…….”

인간계에서 ‘사해의 신’의 소문은 그야말로 이빨 가진 악귀였다. 그러니 콘셉트를 소문과는 정반대로 잡아 보는 게 어떨까? 아무도 스스로가 둔갑한 인어라는 걸 모르게끔.

“어디 가서 이 사실을 말하지 말아 주세요.”

“어? 왜…….”

“제가 등급이 높은 힐러라는 건 비밀이니까요. 왜냐하면… 등급이 높은 힐러는 바로 정부에 소속되거나 거대 길드로 들어가게 되는데, 정부나 거대 길드의 길드원이 되면 정말 치료를 필요한 사람에게 무상으로 도움을 드릴 수가 없게 돼요.”

“세상에……!”

날개 없는 천사. 그것이 ‘설한지’의 콘셉트였다.

그 말을 들은 연가을의 어머니는 깊이 감동하여 짝짝 박수를 쳤다. 그러나 같이 황홀경에 빠져 있던 연가을은 번쩍 정신이 든 듯했다. ‘저, 저런 캐릭터 아니었는데…….’하는 눈치가 훤히 보였지만, 데아는 무시했다.

“바깥에서는 F급 헌터로 속이고 활동하고 있어요. 도와주실 거죠?”

“그야 당연하지. 너무 큰 도움을 받았는데, 걱정하지 마. 정말, 정말로.”

그리고 연가을의 어머니는 연가을의 어깨를 찰싹 때렸다.

“친구가 헌터였다니… 정말 대단해, 우리 딸!”

“그, 그런데 엄마… 나도 해야 할 말이 있어.”

연가을은 지금이 적기임을 깨달았다.

“나도 각성했어.”

“뭐?”

“나, 나도 각성했어. 공격계 A급…….”

그러나 좋아할 것 같았던 예상과는 다르게 연가을의 어머니는 딱 굳어버렸다.

“뭐라고?”

“그, 나 헌터 된다고…….”

기쁘지? 이제 우리 돈 걱정 안하고 살아도 된다?

그러나 굳은 얼굴은 풀어지지 않았다.

“A급이면 상위 4%래. 나 이제 유명해지면 언니도 보러갈 수 있…….”

“네가 헌터가 왜 돼.”

분위기가 한 순간에 날카로워졌다.

“아니, 엄마… 좋은 거잖아.”

“네가 헌터가 왜 되는데? 던전, 포세이돈에 들어가는 거 아니니?”

“그거야 그렇지?”

“네가 던전에는 왜 가!”

날카로운 비명이 치솟았다. 연가을의 어머니는 벌떡 일어나 손을 떨더니 이내 데아를 확 돌아보았다.

“…친구 앞에서 큰, 큰 소리 친 거 미안해. 미안한데, 가을아. 이 일은 내일 다시 말하자.”

“저는 이만 돌아갈게요. 오늘 가을이 데려다주느라 온 거라서요.”

“그래. 그래. 조심히 돌아가렴. 그래…….”

“가을아 내일 다시 만나.”

철컹! 겁을 집어먹은 연가을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현관문이 닫혔다.

데아는 귀뚜라미가 소리를 들으며 창을 열었다.

“어? 왜 벌써 돌아와. 언니?”

파도가 치는 밤하늘 아래, 이위로가 치즈케이크를 퍼먹고 있었다.

“뭔가 나가 줘야 할 것 같았어.”

“응?”

“내일 다시 나갈 거야. 생각해 보니까 나 거처도 안 정하고 밤에 나갔더라고?”

설마 헌터를 안 하겠다고 하지 않겠지? 걱정하는 부모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던전 안이 위험하긴 하지.”

“혹시 위험한 일이 생겼어? 잠깐 보고만 오는 줄 알고 있었는데, 같이 나갈까?”

“괜찮아.”

실시간으로 사망자가 방송되는 인간계라면 특히 그럴 것이다.

◈          ◈          ◈

그다음 날 이른 아침, 데아는 다시 창을 넘어 연가을의 집 앞에 섰다.

“밤새 엄마와 대화했어요.”

“응.”

연가을은 퉁퉁 부은 얼굴로 씩 웃었다. 등에는 수많은 물건이 든 배낭을 멘 채였다.

“반전은 없어요. 짠, 저 허락 맡았어요.”

“오, 의왼데.”

“혹시 제가 같이 안 갈까 봐 걱정했어요? 저희 엄마 다리 고쳐 준 은혜는 갚아야죠. 물론 그것 때문은 아니고요. 그냥… 헌터 상태 창을 보는 순간 깨달았어요. 나에겐 이 길뿐이다. 이거 아니면 답이 없다고요.”

자식을 이기는 부모는 없다고 하잖아요?

“지금 엄마 자요. 또 울 것 같아서 일부러 편지만 남기고 빠져나왔어요.”

“그래도 많이 걱정하실 것 같았는데. 정말 괜찮아?”

“그리고 사실 조금 속여서 말했거든요. 저한테 최소한의 안전을 선물하셨잖아요. 그거 스킬에 안전 관련된 스킬 있다고 살짝 바꿔서 말했어요. 잘했죠? 그래서 안전 보장되는 거대 길드 들어가는 조건으로 허락받았어요. 소형 길드는 절대 안 된대요.”

“거대 길드라면…….”

“여파, 023 그리고 여례아. 셋 중에 한 군데요. 아! 떨린다! 항상 동경만 했던 곳이었는데 면접을 보러가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잘됐네. 오늘 여파 길드에 가야 하거든. 가서 분위기 좀 봐. 길드를 정하는데 도움이 될 거야.”

나는 또 어디 들어가야 할까나. 낮은 등급의 힐러는 많이 무시당하는데……. 역시 거대 길드는 좀 힘들까.

“역시 헌터 등급 측정부터 해야겠죠? 아, 그러고 보니 여파 길드 소속 아니었어요? 여파의 전설. 헌터 샤샤가 여기 계시는데. 여파 어때요?”

“아 부끄러워…….”

이데아는 추억을 떠올리며 푸흐흐 웃었다.

그때 택시가 왔다.

“솔직히 여파는 들어가면 좋은 곳일 거라고 추천할 수 있어. 정말로. 시설 좋고, 돈 많고, 보상금 잘 주고, 아이템 지원도 잘 해주고, 밥도 맛있고, 기숙사 방이랑 침대도 넓고……. 아, 스케줄은 좀 빡빡하지만 그래도 사람들도 대부분 다 좋아. 그리고 무엇보다 사내 카페 메뉴도 다양하거든.”

“아. 그거 중요하죠.”

“그치.”

“그런데 저는 그분이 궁금해요. 공격대장 백리서 헌터! 진짜 유명한데 정보가 많이 없어서 늘 궁금했거든요.”

릴림.

“혹시 만나 봤어요?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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