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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식인인어는 죽어야 한다-145화 (145/223)

※ 145화

첨벙!

그때, 누군가 옆으로 뛰어내렸다. 화들짝 놀라 돌아보자 익숙한 사람이 자신을 휘익 돌려세웠다. 절대자의 손끝 하나로 다뤄지는 수영 초보 강습생이 된 기분이었다.

“허, 헌터님?”

젖은 하얀 머리카락을 쓸어 넘긴 여자가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물을 뚝뚝 흘리며 무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헌터. 냉소적인 인상과 창백할 정도의 피부를 가진 누군가. 그의 푸르도록 투명한 눈동자가 자신을 투영했다.

같은 물에 빠졌는데 상대는 놀랍도록 아무렇지도 않아 보여서 연가을은 울상을 지었다.

“버둥거리지 마.”

“허, 헌터님, 저, 저 좀 살려 주세요…….”

연가을은 정신 나간 사람처럼 데아의 어깨를 더듬어 안았다. 바다에 간신히 고개만 내민 그는 본인이 무슨 말을 하는 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

“제, 제발. 제발 살려 주세요. 너무 추워요…….”

저 멀리 데아의 마스크가 둥둥 떠내려갔다. 그것을 잠시 안타깝게 바라본 데아는 입술이 파랗게 질려 헐떡이는 연가을을 확 안았다.

“크게 숨 들이마셔.”

“네, 네!”

“눈 감아. 절대로 뜨지 마.”

“저, 정말로요?”

“응. 숨 한 번에 들이 마시고, 눈 절대 뜨지 마.”

그의 말에는 이상한 설득력이 있었다. 연가을은 필사적으로 눈을 감고 입을 벌렸다. 하아압.

“고개 숙이고, 몸에서 힘 빼.”

그 말을 마지막으로 파도가 덮쳐왔다. 꼬르르륵― 청각이 마비되었다. 그건 수백 명의 사람들이 자신을 끌고 당기고 때리는 폭력과도 같았다.

숨을 들이쉴 것. 절대로 눈을 뜨지 말 것.

동아줄처럼 그 지시에 따르고 있는데 퍼억! 물살이 전신을 강타했다.

허억!

눈이 떠진 건 불가항력이었다. 풉, 푹, 머금었던 숨도 다 빠져나갔다. 공황에 빠져 허우적거린 순간, 뒤에서 누군가의 팔이 자신을 안아 왔다. 연가을은 반사적으로 자신을 구해 줄 그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어, 어?’

그러나 그 순간, 연가을의 몸이 빳빳하게 굳었다.

자신의 발아래, 뒤쪽, 홀로 빛나는 하얀 무언가가 일렁이고 있었다.

‘있으면 안 되는 건데 저거, 저게 왜 있지, 저거 인어 꼬리 끝이랑 지느러미 아닌가……. 저게 왜 지금 보이지…….’

깨달음은 빨랐다.

뽀글, 연가을의 눈이 크게 떠지며 조금 남아 있던 숨까지 전부 뿜어져 나갔다.

“!”

그때, 연가을의 허리를 안은 그의 팔에 힘이 들어갔다. 연가을이 버둥거리든 말든, 인어는 물살을 역류해 어디론가 그를 끌고 갔다. 속절없이 끌려가는 연가을은 압력에 고개가 이리저리 꺾였다.

‘그, 그 헌터님이, 인어였……!’

그렇다고 해서 갑자기 거부감이 들었느냐―

…그건 아니었다. 어찌되었든 현재 유일한 살길은 오직 이 인어 하나였으니까.

연가을은 뒤를 빙글 돌아 인어의 목을 꽈악 껴안았다.

‘해일 멈춘 것도 인어라서 그런 거였구나……. 역시, 그런 능력이 있는 각성자는 듣도 보도 못했는데, 어쩐지…….’

인어는 전부 사납고, 식인을 한다. 포악하고 잔인하다. 날카로운 이빨로 사람을 산 채로 찢는 무서운 악귀들. 괴물들. 괴담 속에나 나오는 몬스터들. 그리고 심지어 그들은 미친 신을 모시는 괴생명체들이었다.

그건 전 세상 사람이 알고 있는 상식 중에 상식이었다.

그러나 눈앞의 인어는 어린아이를 구하고, 지금은 자신을 구하고 있는 인어였다.

‘지금도 이렇게 물에 빠진 나를 구해 주려고 하고 있잖……!’

…구하는 거 맞겠지? 구해 주는 척하고, 데려가서 잡아먹지는 않겠지?

아냐. 직접 눈으로 본 것을 믿자.

사실 연가을은 여전히 인어가 무서워서 온 몸이 바르르 떨렸지만 괴물보다는 재앙이 더 두려웠다.

그가 무서워하는 건 재해지, 괴물이 아니었다. 괴물의 등에 올라타 재해를 피할 수 있다면 피해야 했다.

인어의 볼 캡이 휘익 날아갔다. 하얀 머리카락이 부유하고, 또 한 번의 물살이 등을 내리쳤다.

그것을 끝으로 연가을은 꼬르륵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해안가 뒤편 차가 윙윙 다니는 차도 아래 방치된 방파제가 있는 곳에서 연가을은 눈을 떴다.

태양이 아프게 내리쬐는 아침이었다.

◈          ◈          ◈

“저 친구는 어쩌다 저렇게 된 겨? 왜 쫄딱 젖었남, 둘이?”

“이거… 제 친군데 발을 헛디뎌서 떨어졌어요.”

“근데 자는 겨?”

“네. 여기가 해가 좋아서 잠이 잘 온대요.”

“요즘 애들 이상하다니까…….”

쯧쯧거리는 소리를 배경으로 연가을은 눈을 번쩍 떴다. 뜨거운 돌이 그의 등을 활활 태우고 있었다.

“아, 더워, 뜨거워, 앗 뜨거……!”

끼룩거리는 갈매기들, 쏴아아아― 밀려드는 낮은 파도들.

그 광경을 앞에 둔 연가을은 뒤척거리며 일어났다.

“어제 저어―만치 떨어진 곳에서 일어난 일 들었남?”

“해일 일어난 거요?”

“그래그래, 그거! 아주 큰일이지. 거 뭐냐, 다행히 사람들 다 대피했다고 들었는데, 참말로 다행이지 뭐어. 그치?”

“그럼요. 아무도 안 죽은 게 어디예요.”

“그런데 들리는 바로는 그 엄청난 헌터가 와서! 세상에, 애를 구해 줬대!”

“와~ 진짜요?”

“그래그래. 근데 찾으려고 보니까 사라졌다고 하던데 세상에 별난 사람들 많아 그치이?”

연가을은 끼릭끼릭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이 닿은 그곳엔 낚시를 나온 할아버지 할머니들하고 그 헌터. 젖은 모자를 푹 뒤집어쓴 그 백발의 헌터가 저들끼리 도란도란 얘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식은땀이 죽 흘렀다.

“저 친구 깼나?”

그때 한 할아버지가 연가을을 손짓하자 쓱, 백발의 헌터도 연가을을 돌아보았다. 연가을은 텁, 숨을 멈췄다.

“일어났어?”

“…….”

입가에 그어진 미소가 미소 같지 않았다.

저, 저 사람, 둔갑한 인어야. 둔갑한 인어라고! 할머니 할아버지들, 조심해요, 저 사람 사람 아니야……!

그때 헌터의 입술이 움직였다.

‘너, 나 봤지?’

연가을은 방파제 아래로 뛰어들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아, 그러면 인어한테 더 유리하려나? 어떡하지?

‘눈 뜨지 말라고 했는데 왜 떴어!’와 같은 삼류 괴담 같은 일이 자신에게 일어날 줄 꿈에도 몰랐다.

사람이 참 간사한 게, 엄청난 재앙이 눈앞에 닥쳤을 땐 인어를 구명줄 마냥 붙잡았으면서, ‘아, 해일로부터 살아남았다!’라고 여긴 그때부터 슬슬 인어가 무서워졌다.

‘너, 나 봤지?’ 너 나 봤냐고? 그걸 말이라고 하나? 비늘에 지느러미 색까지 싹 다 봤다!

연가을의 손이 차갑게 식으면서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표정 관리가, 표정 관리가 되지 않았다.

“그럼 잘들 돌아가!”

“네, 들아가세요~”

할아버지, 할머니… 가지 마세요. 제발 가지 마세요. 같은 인간까리 서로 돕고 삽시다. 제발, 아무나 가까운 길드에 전화 좀 해서 헌터 좀 호출해 주세요, 제발…….

“봤구나?”

“…예니요?”

목소리가 사정없이 떨렸다. 제발 단순히 쉰 거라고 오해했으면 좋겠는데… 망한 것 같았다. 연가을은 제 발이 저렸다. 몸이 천근만근 무거웠지만 엉거주춤 일어나 무릎을 꿇었다.

“봐, 봐주시면 안 될까요?”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양 손바닥을 맞대어 샥샥 비볐다.

“제발요. 네?”

내가 이렇게 빌잖아. 이 뜨거운 방파제 위에서 무릎도 꿇었잖아. 더워 죽겠는데 광합성도 하잖아……!

“저 진짜 아무것도 못… 어?”

그때 데아가 후, 소리를 내며 모자를 벗고 머리카락을 쓸어 올린 뒤, 다시 썼다. 그 잠깐의 순간, 연가을의 눈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어……? 어어… 어……?!”

“왜?”

“혹시! 5년 전에 그 헌터 아니에요? 와! 헐!! 그, 여파 헌터! S급 헌터! 샤샤! 맞아, 헌터명 샤샤! 맞죠!”

“…….”

데아의 입이 딱 다물렸다.

“와, 죽은 거 아니었어요? 다 사망했다고 영영 헌터가 땅땅 말한 거 저 실시간으로 봤었거든요! 진짜 인기 많은 헌터였잖아요. 아직도 전설인데! 사람들 다 추모하고 난리 났었잖아요. 어… 그런데, 그 샤샤 헌터가 왜, 여기…….”

연가을의 말이 실시간으로 느려졌다. 활짝 웃던 미소가 차츰 굳어 갔다.

“…에 없네요.”

“…….”

“…제가 잘못 봤나 봐요. 요즘 눈이 침침해서 그런가……? 하하……”

어색한 톤으로 말을 잇던 연가을은 벌떡 일어나 싱글싱글 웃으며 데아에게 다가갔다.

“아, 뭐야~ 가까이서 보니까 아니네! 완전 착각했잖아요. 하하! 샤샤 헌터 닮았다는 말 많이 듣죠? 어우, 이런 일 많으셨겠다!”

“…….”

“원래 유명인 닮으면 오해 많이 받잖아요. 착각해서 죄송해요. 저도 참, 헌터계에 관심이 좀 많아서, 많이 찾아봤거든요. 그런데 헛으로 알고 다녔나 봐요. 뭐, 세상에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는 거니까요! 그나저나 머리는 탈색하신 거예요? 우와. 색 잘 빼셨다.”

“…….”

“미용실 어디 가신 거예요? 탈색 잘하네! 저도 한번 해보려고 시도했다가 얼룩덜룩 장난 아니었거든요. 역시 머리는 미용실에 가야…….”

“…….”

치아를 환하게 보이며 웃던 연가을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입가는 미소했지만 눈은 다급하게 도주로를 찾는 꼴이 훤히 보였다.

‘망할, 제기랄.’

영화의 한 장면이 오버랩되었다.

‘형씨.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리셨어.’하며 건들거리는 사람들과, 그 가운데 읍읍거리는 자신. 연가을은 눈을 수십 번 깜빡였다.

‘아니… 잠깐. 그럼, 샤샤 헌터가 인어라는 거야?’

그 순간, 조만간 앞바다에서 자신의 시체가 떠오를 날이 머지않았다는 근거 없는 확신이 들었다. 사유는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린 죄. 모른 척을 해도 목숨이 간당간당한 처지에 대놓고 무덤길을 셀프 마련했다. 멍청이 연가을.

“에이씨!”

이판사판이다. 연가을은 그대로 뒤를 돌아 미친 듯이 달렸다. 방파제 사이를 뛰어넘고, 네 발로 오르고, 기어 올라가며 사람이 많은 곳으로 손을 뻗는데, 휘익! 발을 헛디뎌 그만 방파제 틈으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흐아아악!!”

하늘이 보이는 틈 사이로 머리 하나가 불쑥 튀어나왔다. ‘얘 뭐지?’하는 기색의 데아였다.

연가을은 가까스로 방파제 틈을 붙잡고 버텼다. 본인의 처지가 한심하고 창피해서 눈물이 나왔다.

“구, 구해 주세요…….”

데아의 한쪽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

“내가 왜?”

“잘못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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