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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식인인어는 죽어야 한다-144화 (144/223)

※ 144화

―내 말 못 들었습니까?! 당장 도망치래도!!

재앙의 소식을 전해 들은 사람들은 우선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정말인가? 해일이? 내가 아는 그 해일이……?

―어서 가래도!!

말을 마친 중년 남자는 자신의 일을 마쳤다는 듯이 마이크를 내팽개치고는 허겁지겁 밖으로 도망쳤다. 그제야 하나 둘 주춤거리며 돗자리에서 일어난 사람들이 흐아아악! 소리를 지르며 맨발로 도망쳤다.

“내가 차 어디에 세워 놨었지?!”

“엄마, 나 신발!”

“그거 챙길 시간 없어!!”

축제는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보던 인어 세 명과 인간 한 명은 나란히 침묵했다.

“나 아냐.”

자신을 슬쩍 보는 두 쌍의 눈동자를 느낀 데아가 항변했다.

“진짜 아냐.”

“…….”

―…….

“우, 우리도 도망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안 돼! 오늘 진짜 무슨 날이야!! 빨리 달려야죠! 뭐 해요!!”

연가을과, 얼떨결에 팔을 끌린 데아와 자잔, 그리고 이위로는 얼떨결에 사람들을 따라 뛰었다.

―보라색, 야! 우리 왜 뛰어?!

“나도 몰라!”

그러나 해변가 주변에는 낮은 건물들 밖에 없었고, 설상가상으로 5층 이상 건물의 옥상은 잠겨 있었다.

“그냥 가! 그냥 가!”

“저기 뭐가 보여!! 파도가 왜 저렇게 커?!”

“빨리 가! 빨리 가!”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자동차나 자전거를 찾아 미친 듯이 평지를 달렸다. 건물 안에 있던 사람들, 근처의 길을 지나던 사람들이 갑작스러운 대피 행렬에 비명을 질렀다.

“무슨 일이에요?!”

“해일이 와요! 해일이!!”

누군가는 집에 들어가 가족들을 데리고 다시 밖으로 나왔고, 누군가는 들고 있던 짐을 모조리 바닥에 버리고 사람들 사이에 섞여 대피했다.

“단순히 해변 위로 올라오시는 건 위험해요!! 더 위로 가야 합니다!! 따라오세요!”

“저기 언덕이 있어요!”

그 언덕은 바다의 경관을 보기 위해 지어진 높은 산책로였다.

“엘레베이터 말고! 계단으로 오세요!!”

그 외침에 사람들은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아! 어어!! 잠깐!!”

“뭐요!”

“연재야! 하연재!!”

그때 젊은 부부가 패닉에 빠져 소리 질렀다.

“우리 연재가 안 보여요! 연재야!!”

“늦었어요. 저기 파도 안 보여요! 이렇게 어두운데 누굴 찾아요!”

“연재야!!!”

그러나 부부는 사람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역행해 해변 쪽으로 달려갔다.

저 멀리 해안가에는 작은 아이가 홀로 엎어져 엉엉 울고 있었고, 바로 그 위, 어둑한 재앙이 추락하고 있었다.

주어진 시간은 단 몇 초.

“이미 늦었어요!!”

사람들은 해안가를 향해 달려가는 부부를 잡았다. 부부는 막무가내로 버둥거렸지만 사람들의 손을 다 쳐내기엔 역부족이었다.

“놓으세요! 연재야!! 이리 와!”

“제발 우리 연재 좀 살려 주세요. 제발……!”

검은 해일이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입을 틀어막는 그 순간, 이위로와 데아의 눈이 마주쳤다.

“안 돼. 언니.”

“…….”

“안 돼요.”

인간계에 잠시 나가며 약속한 것.

하나. 절대 과도한 간섭을 하지 않을 것.

둘. 눈에 띄는 행동을 하지 않을 것.

셋. 위험한 상황이 닥쳤을 때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창을 넘을 것.

“기억나? 절대 안 돼. 절대 안 돼.”

“잘 들어 봐. 하나. 나는 과도한 간섭을 할 생각이 없어. 둘. 지금은 엄청 어둡지. 얼굴은 절대 보이지 않을게. 맹세해. 그리고 셋.”

해일의 모양을 한 세상의 관 뚜껑. 비명이 난무하는 아수라장 아래서 데아는 홀로 미소했다.

“바다가 위험해?”

그 말이 마지막이었다. 이위로가 체념하듯 눈을 감자, 데아는 뛰쳐나갔다.

“그래도 큰 간섭은……!”

―샤샤! 아, 모르겠다…….

“어어, 저 여자 어디 가!”

“저기요!! 돌아오세요!!”

“어! 저분 그분 아니에요?”

연가을이 창백하게 질려서 이위로의 등을 퍽퍽 쳤다.

“저 사람 막아야죠! 뭐 해요!!”

“자잔. 우리는 이곳을 나가서 근처로 간다. 따라와.”

―알았어.

“나간다고요? 어딜요? 저 사람 안 따라가요? 같은 헌터 동료 아니었어요? 죽, 죽게 내버려 둔다고?”

연가을 혼자만 머리를 질끈 감싸 쥐었다.

이상한 사람들. 거대한 해일이 왔음에도 이상할 정도로 아무렇지도 않아하는 세 명의 사람들. 뭐라도 믿는 게 있나? 그런 건가?

“그딴 게 어디 있어 미친… 아, 무슨, 어떡해. 아, 죽으면 안 되는데.”

후다닥 가서 난간으로 고개를 내다보자 거 멀리 사라지는 그림자가 보였다. 데아는 언덕 아래, 어떻게든 달려가려고 하는 젊은 부부의 어깨를 턱! 잡아챘다. 그러자 부부가 숨넘어가는 소리를 냈다.

“내가 갈게요.”

“연재……! 네, 네……?”

“언덕 위에 올라가 계세요.”

“하지만…….”

“지금 죽으려고 작정했어! 저 애는 늦었다니까요?! 얼른 언덕 위로 올라가세요!!”

그러나 데아는 사람들의 틈을 거침없이 해쳐나갔다. ‘저기요! 안 돼요! 돌아오세요!’ 뒤에서 고함 소리가 들려왔지만 얼굴을 볼 틈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부부의 표정이 벼락처럼 변했다. 눈물을 펑펑 쏟으며 오열했다. 이제 정말 해일이 코앞이었다.

“우리 연, 우리 연재…….”

부부가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사람들이 그들을 질질 끌어 언덕 위로 올렸다.

그때,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수직 상승 했다. 어두운 먹이 엉킨 것 같은 해일이 지면에 부딪쳐 거칠게 내려치고 있었다.

콰과과과과―!!

어둠 속에서도 선명한 하얀 파도가 두 인영을 겨냥했다. 홀로 엎어져 울던 아이와, 뛰쳐나간 누군가였다.

사람들이 난간을 두드리며 손짓했다.

“보인다!! 어어!”

“어! 어!”

얼굴조차 불분명한 누군가. 그는 산 영웅이 될 것인가 죽은 영웅이 될 것인가.

연가을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았다.

“잡았다!! 잡았어!!”

“와아아아!!”

“안 돼, 이미 늦었어!”

그러나 사람들은 그대로 전부 얼어붙었다. 모두가 실패할 거라 여겼던 절망 속, 기적이 일어났으므로.

◈          ◈          ◈

“어, 엄마, 아빠……!”

데아는 곧장 아이의 목덜미를 잡고 뒤로 끌었다. 그대로 끌려온 아이가 데아의 다리를 구명줄처럼 잡았다. 작은 손이 흠뻑 젖어서 덜덜 떨렸다.

“사, 살려, 살려 주…….”

다섯 살도 되지 않은 아이는 공포를 학습했다. 검은 눈에 절망이 들이닥쳤다.

“뒤로 물러서.”

게걸스럽게 몰려드는 바다. 어두운 삶이자 푸른 죽음인 바다. 데아는 자신의 정수리 위에서 입을 다시는 무도한 폭군을 향해 손을 들었다. 그리고 그대로 허공을 덧그렸다.

해일은 어느 한 심해의 우울이지. 갑작스럽게 고개를 든 바다의 무덤일 뿐이야.

가장 작은 풍랑, 데아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떴다. 머리 위로 그림자가 졌다. 해일이 고개를 숙이며 웃었다. 그것을 마주하던 데아의 눈이 투명하게 빛났다. 손이 그어졌다. 기적이 일어났다.

우뚝.

해일의 움직임이 굳었다. 그리고 느리게, 그러나 확실하게. 그리고 퍼억―! 허공으로 으깨졌다. 누군가가 거대한 주먹으로 주먹질을 한 것 같았다. 일격에 목이 잘린 장수의 목처럼. 망나니의 칼에 베인 죄수의 몸처럼. 음울한 해일이 저 홀로 일렁이며 허공에서 터졌다.

휘이이이이!

보이지 않는 힘에 부딪친 것처럼 수많은 물방울들이 사방으로 튀기고, 주변의 모래가 일시에 패였다. 물줄기가 섞인 바람이 해안가를 강타했다. 그리고 연가을은 난간 위에서 그 모든 것을 목도했다.

비현실적인 광경에 언덕 위에 있던 모두가 숨을 죽였다.

해일을 저지시킨 각성자. 그런 사람이, 있을 수 있나?

“뭐야? 저 사람이 방금 해일을…….”

“사진 찍은 사람 있어? 저 사람 각성자지? 누구야, 저 각성자?”

“해일을 멈췄, 아니… 터뜨렸다고?”

“저게 가능해?!”

거친 바람이 일며 머리카락과 옷이 펄럭이고, 굶주린 아가리처럼 달려오던 해일은 치명상을 입고 흔들렸다. 아득하리만큼 높던 파도가 비틀거리며 휘청거리고 허공으로 날아간 물줄기들이 무력하게 투둑, 툭― 떨어졌다.

“임시방편이야. 이걸로 어림도 없어.”

그러나 데아는 곧장 애를 안고 달렸다. 자신은 해일의 일부를 저지시켰을 뿐이다. 이 해안가에는 곧 물이 차오르겠지. 그 전에 대피해야만 했다.

“와! 와!! 애를 구했다!!”

“세상에… 맙소사, 신이시어, 이런 일이…….”

“빨리 이리로 오세요! 뒤! 뒤! 물이 차오른다!”

물이 한가득 차오르기 직전, 데아는 사람들이 대피한 곳으로 뛰어올라갔다. 아이의 젊은 부모는 눈물을 닦지도 못하고 아이를 건네받았다. 그들은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어, 엄마!!”

“어, 아아… 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연재야, 이리 와. 감사합니다. 헌터님, 정말 감사합니다……!”

연가을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헌터는 대단하구나. 저런 능력도 있다니. 경이로움에 괜히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밑을 좀 봐요!”

사람들이 우르르 난간으로 아래를 내다보았다. 누군가는 ‘안 돼, 내 차!!’하며 소리쳤지만 안도하는 기색이 더 컸다.

‘그래, 살았으면 그만이지. 위기가 많았지만 살아남았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던 연가을은 자신의 발목에 닿는 축축한 체온을 느꼈다.

누군가 연가을의 발목을 잡고, 끌어내렸다.

“어……?”

모든 일은 순식간에 벌어졌다. 해일의 광경에 넋이 나간 사람들의 시야는 좁았고, 사방은 지나치게 시끄러웠으며, 산만했다.

그래서 연가을이 낡은 난간 사이로 쑥 빠져 파도 속으로 곤두박질치는 걸 아무도 보지 못했다.

“사람, 사람 살……!”

연가을은 언덕 끝을 잡고 버텼지만 자신의 발목을 잡고 끌어내리는 괴물의 힘이 더 강했다.

밑을 내려다보니 아까 전에, 분명 머리가 다 터져 죽었다고 믿었던 거대한 괴물 하나가 히죽 웃으며 연가을을 보고 있었다.

“저 남자. 아는 사이?”

“으아아악! 아악! 사람 살려, 도와주세요! 사람 살!”

그러나 자신 쪽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뒤를 돌아보니 무서운 속도로 차오르는 파도가 보였다. 주르륵, 더 미끄러졌다. 가슴 언저리가 차가워졌다.

“사람, 살, 살려 주세…….”

그때 철썩―! 거대한 파도가 연가을과 괴물을 크게 강타했다. 어떻게든 버틴 연가을과 다르게 괴물은 저 멀리 쓸려나갔다.

그러나 연가을의 상황도 좋지 않았다.

“허억, 헉, 허억!”

머리카락이 흠뻑 젖어 시야를 가렸다. 뼈가 시리도록 차가운 물살 속에서 조난자는 홀로 울었다.

“살려,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제 말 들리세요?!”

그러나 아무도 응답하지 않았다.

수면이 벌써 가슴까지 올라왔다. 첨벙거리는 소리가 청각을 메웠다.

“헉, 위로, 위로 올라가야, 허억, 위로 올라가야 하는데…….”

철썩! 또 한 번의 파도가 뺨을 때렸다. 그러나 얼어붙은 손에는 점점 힘이 빠져갔다. 전신이 사정없이 덜덜 떨렸다. 그런데 무정한 파도가 한 차례 더 오고 있었다.

이제까지 왔던 파도와는 다른, 아주 큰 죽음이었다. 연가을은 직감했다.

끝이다. 나는 저 파도를 견디지 못 할 것이다.

첨벙!

그때, 누군가 옆으로 뛰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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