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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식인인어는 죽어야 한다-143화 (143/223)

※ 143화

상대가 자신을 구해 준 인간이 아니었더라면 그냥 무시하고 자잔도 갈 길을 갔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그래, 자꾸 이상한 시선이 느껴진다 싶었는데……!

그래도 꾸준히 무시했다. 인간과 헤어지자마자 딱 둘로 나뉘어 자신과 인간에게 달려가는 검은 그림자들을 보지만 않았어도 계속 무시했을 거였다.

자잔은 연가을을 끌고 달렸다. 그런데…….

―인어 마력? 뭐야, 저 덩치들… 인간 맞아?

따라오는 그림자들에게서 느껴지면 안 되는 마력이 감지되었다.

아랫 세대는 둔갑한 윗세대 인어를 알아볼 수 없지만 윗 세대 인어는 아랫 세대 인어들이 둔갑을 해도 눈치챌 수 있었다. 촉각을 간지럽히는 오묘한 인어만의 마력이 있었으니까.

―밑 세대 인어들은 다 제국으로 돌아갔는데, 저 이상한 놈들은 뭐야?

“아는 사람들이냐고요!”

―몰라!

“왜 대답을 안 해! 아! 혹시 그쪽도 사채 썼어요?”

―사… 뭐? 그게 뭔데?

자잔은 등 뒤를 돌아보았다. 열 명이 넘는 거구가 쿵쿵거리며 뛰어오고 있었다.

인어지만 인어가 아니고, 인간이지만 인간도 아닌 이상한 생물체들.

“저 남자. 잡아. 나머지는 저 여자 잡아.”

“미, 미친… 들었어요? 잡으래…! 왜? 이게 무슨……?”

한 거구와 자잔의 눈이 마주쳤다. 눈이 소름끼치게 빛났다. 자잔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미친. 샤샤, 샤… 아, 여기 없지……!

자잔은 팔찌 안쪽, 작은 보석을 강하게 비틀어 뚝! 부쉈다. 상대가 위험한 상황에 처했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저기요, 그 뒤로 가면 안 되거든요. 거기 가로등 없어요. 다 막혀 있다고요. 밑에 절벽이고요, 숲이고요. 바다에요. 더 위험해요.”

―그러니까 가는 거야.

“제 말 듣고 있어요? 차도 뒤쪽으로 가면 안 되는데……! 제가 시간을 끌 테니까 아예 앞쪽으로 도망치세요. 네? 딱 보니까 그쪽이 빚쟁이들한테 쫒기는 것 같은데. 난 이해해요. 네? 도와준다니까?”

밤은 금방 찾아왔다. 습하고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지금쯤이면 샤샤에게 신호가 갔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자잔은 덩치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유의 대상이 공격 태세를 취한다.”

“대비하도록.”

―마력을 보아하니 간신히 하급을 피한 혼종인가 본데, 그래 봤자 2세대 밑이지. 충격ㅍ……!

쿠와아아앙―!

강한 파동이 덩치들을 강타했다. 거대한 그림자들이 저들끼리 엉켜 형편없이 나동그라지고, 주변의 나무가 휘청였다.

떨어진 나뭇잎을 한가득 맞은 연가을은 입을 틀어막았다.

“가, 각성자였어요? 대박이다! 와!”

그러나 자잔은 뻗었던 팔을 흠칫 떨었다.

―어? 왜 위력이… 이것밖에 안 나오지?

5년간의 훈련으로 괄목할 정도의 성장을 이룬 기술이었다. 겨우 몇 덩치가 나가떨어지고 나무가 우수수 흔들릴 정도의 충격에서 그치는 그런 약한 기술이 아니었단 말이다. 그런데 왜…….

―다시!

콰아아아앙―!

또 한 번 능력을 썼다. 일어서려던 덩치들이 다시 나가 떨어졌다. 그중에 몇 개체는 반대편으로 데굴데굴 떨어져 첨벙! 바다 아래로 잠수하거나 방파제 사이에 다리가 끼었다.

또다시 나뭇잎과 모래를 잔뜩 집어먹은 연가을이 ‘와우! 허우!’거리며 기이한 감탄사를 냈지만 자잔 홀로 웃지 못했다.

―위력이 약해졌어……. 굴러떨어지기만 하면 어떡해, 이건 암벽도 뚫는 기술인데!!

“강하다. 다시. 잡아!”

“아악! 다시 오고 있어!!”

상대의 실력을 가늠한 덩치들의 행동에 속도가 붙었다. 콰드득! 발밑에 디딘 흙바닥이 팍 패이고, 폭발적으로 앞으로 튀어나갔다. 그리고 순식간에 뭔가를 조립해 조준했다.

총이었다. 정확히는, 마취 총이었다.

“뭐야, 당신들! 빚쟁이 아니지?”

―아까부터 자꾸 무슨 소리를……!

충격파의 화력이 약해진 이상, 난투 전밖에 답이 없었다. 그러나 수적으로 너무 밀렸다. 그렇게 포위망이 가까워졌다.

도망가던 연가을이 먼저 퍼억! 땅바닥에 넘어져 그대로 제압당했다. 그러나 자잔도 상황이 다르지 않았다.

―이게……!

두 개체를 빠르게 따돌렸지만 결국 터억, 몸이 붙들었다.

―바다 아래서는 손 하나 까딱 못 할 것들이……! 이거 안 놔?!

하늘이 완전히 어두워졌다. 저 멀리 폭죽이 피유우우우― 펑! 하고 하늘을 수놓았다. 관광객들의 흐릿한 웃음소리 또한 웅웅거리며 들려왔다.

―그거… 무슨…….

“이거 놔! 안 놔! 아아악!!”

바로 눈앞에서 날카로운 주사 바늘이 반짝였다. 이대로 찔리면 정신을 잃을 것이다. 강력한 예감이 기도를 옥죄었다.

그러나 그때.

“이게 뭐야.”

피유우우우우― 펑!!

또 한 번의 폭죽이 터졌다.

사위가 아주 약간 밝아지고, 자잔은 숨을 멈췄다. 누군가가 왔다.

“인어도 아니고 인간도 아닌 게…….”

바람을 타고 하얗게 흐트러지는 머리카락. 어둠 속의 정적처럼 덩치의 위에 발을 디디고 선 초월자.

―…샤샤.

이데아가 자잔을 제압한 덩치의 어깨를 밟고 서있었다.

하얀 티에 검은 바지. 간편한 운동화에 모자, 그리고 마스크. 간편한 옷차림이었지만 분위기는 그렇지 못했다.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던 연가을마저 텁, 입을 막고 데아를 홀린 듯이 바라보았다.

“이런 이상한 괴물들한테 당하면 어떡해, 자잔,”

데아가 웃었다. 동시에 자리에 있던 모든 덩치들의 머리가 퍼억―! 하고 터졌다. 쏟아진 것은 건 피가 아닌 이상한 점액질이었다.

자잔은 그제야 숨을 내쉬었다.

―아니, 충격파의 위력이…….

“위력이?”

괜한 자존심이 고개를 들었다.

―…네가 너무 센 거거든?

“그래그래.”

“언니!”

저 멀리 모자에 마스크까지 야무지게 챙겨 쓴 이위로가 빠르게 뛰어왔다. 데아는 손을 툭툭 털고는 시체를 질질 끌어 절벽 아래로 퉁퉁 던졌다.

“언니 괜찮아?”

“응. 뭐 얼마나 어렵다고.”

“거기 2세대 놈. 장난해? 이런 덩치한테 당한다고? 훈련 다시 해야겠고만?”

―너한테 훈계 듣기 싫어!

“윌로, 쉿.”

“어?”

그때까지 나무 사이에 숨어 덜덜 떨고 있던 연가을 위로 그림자가 졌다. 히끅거리며 올려다보자 백발이 인상적인 누군가가 자신을 뚫어져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안녕.”

바람에 날려 부스스 흩어지는 짧은 단발, 모자에 가려 얼굴은 잘 모이지 않았지만 느껴지는 서늘한 인상.

목소리는 다정했지만 연가을은 속지 않았다. 설핏 보이는 눈은 일반적인 사람의 눈이 아니었다.

“언니, 목격자가 있어요? 어떡하지? 내가 처리하…….”

‘처리……?’

“조용.”

그에겐 상대방의 시야를 차단하고, 존재만으로도 말문을 막히게 하고, 상황의 주도권을 자신에게로 돌려버리는 묘한 능력이 있었다. 그건 수없이 사람들의 위에 군림해본 자가 가진 위압감이었다.

이 사람이다. 이 사람이 대빵이야.

연가을은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아무것도 못 봤어요!”

저 멀리 자잔이 콧방귀를 꼈다.

“…아, 아무것도 말 안 할게요!”

사람이 머리가 터져 죽었다. 범인은 눈앞의 여자. 분명 어마어마한 각성자임이 분명했다. 시체를 질질 끌고 아무렇지도 않게 죽이는 걸 보아하니 피도 눈물도 없을 게 분명했다.

물론 자신을 도와준 사람이긴 했지만, 호의를 모조리 밀어버릴 만큼 광경이 잔인했기에 연가을은 파리처럼 손을 샥샥 비볐다.

“사, 살려 주세요. 저, 저 집에 엄마가 있… 있는, 흐어엉…….”

나이가 몇인데, 눈물이 다 나왔다. 울기 싫은데 주인의 의지를 배반한 눈물샘은 미친 듯이 열일 했다. 짜증나게 콧물도 조금 나왔다. 쪽팔려서 죽고 싶었는데 죽기 싫어서 필사적으로 빌었다.

“저, 저 그냥 지나가던 길이었거든여. 정말루요. 흐, 그냥, 집에, 집에 가고 싶었던 것뿐인데……. 저 저 이상한 사람들하고 관련 없거든요. 이대로 놔주시면 조용히하고 집에 돌아갈게요. 누구한테도 말 안 해요. 네? 제발…….”

언니를 찾고 싶었고, 돈도 많이 벌고 싶었고, 엄마 병도 고쳐서 보란 듯이 호강시켜 주고도 싶었다. 멋지게 살아서 한 끼에 십만 원 하는 뷔페에 그냥 가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요거트 뚜껑도 안 먹고 버려 보고 싶었고, 비싼 티백도 딱 한 번만 우리고 버리고 싶었다.

그런 부자가 되고 싶어서 열심히 일했다. 자신은 그것 밖에 한 게 없었다.

울고 싶을 때 뺨 친 격이 이런 걸까.

갑자기 이전의 서러움이 한 번에 북받쳤다. 눈물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펑펑 쏟아져 나왔다. 갑자기 알바에서 잘린 일, 힘들고 고됐던 노동, 모이지 않는 돈……. 참치 캔을 숟가락으로 퍼먹으며 버텼던 나날들이 뇌리를 스쳤다.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일어나, 도대체 왜……! 아 진짜 사람 빡치게……!”

그리고 그렇게 울면서 화를 내고 있는 연가을을 보고 있던 세 명.

“…나는 아무것도 안 했다?”

데아는 흔들리는 눈으로 자신을 보는 이위로와 자잔에게 항변했다.

“저기요, 우선 진정하시고…….”

“내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 어요?”

“소리를 조금만 줄이시면 안 될까요. 지금 밤이라서 다 울리거든요.”

“내가, 조용히 하면, 살려 줄 거예요? 아니잖아!”

“안 죽여요.”

콧물과 눈물을 질질 흘리던 연가을이 퍼뜩 고개를 들었다. 그제야 눈동자가 가까이서 마주쳤다.

사람같이 않은 투명한 눈동자. 연가을은 다른 의미로 겁을 집어먹었다.

“…정말로요?”

“네.”

“아…….”

연가을이 주변 눈치를 쓱 보더니 옷으로 얼굴을 닦았다.

“미리, 큽, 말 좀 해주시지.”

“…….”

“저는 여기서 제 생이 끝날 줄 알았어요. 하긴, 절 도와주신 분이죠. 감사합니다. 막 울어서 죄송해요.”

연가을은 툭툭 다리를 털며 일어섰다.

“그럼 저는, 이만, 가도 될까요? 지금이 몇 시지?”

그러나 연가을은 액정에 금이 난 폰을 보고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안 돼, 아직 4년은 더 써야 하는데……!”

“액정이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

휴대폰의 상태는 처참했다. 깨진 유리 액정은 테이프로 감아 놨고, 플래시도 잘 켜지지 않았다. 오만 곳에 흠집이 나 있었고, 전원 버튼은 잘 눌리지도 않는 것이…….

“이 정도면 휴대폰이 자살을 한 게 아닐까요?”

“지금 장난해요?”

거미줄처럼 그어진 액정 위에 떠 있는 시간을 겨우겨우 읽어 낸 연가을이 슬슬 뒤로 내뺐다.

“오래 지난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얼마 안 지났네요. 이만가도 될까요? 저 버스 놓치면 안 되는데…….”

‘그래. 뭐, 인어인 걸 안 것도 아니고, 단순 각성자들의 싸움이라 오해하고 넘어가면 해가 될 일은 없겠지. 여기 다시 올 것도 아니고.’

그렇게 연가을을 보내 주려던 순간, 데아가 흠칫 고개를 돌렸다.

근처가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다.

“바다 높이 왜 저래?”

“네?”

“자잔, 너 이상한 거 못 느꼈어?”

―뭐가?

기이하게 얌전한 밤바다.

데아는 해안가 위에서 퍼덕거리는 물고기를 보았다. 기이하게 낮아진 해안을 가로지르는 짙은 선 또한.

“지금 사람들 다 해변가에서 폭죽놀이 하고 있는 거죠?”

“아… 네. 그게 왜요?”

“아침에도 저랬어요? 아침에도 저렇게 해수면이 낮았냐고요.”

도대체 무슨 대답을 원하는 거지?

“어... 제가 알바 시작이 오전 여덟 시인데, 그건 아니었어요. 지금 보니까 좀 낮긴 하네요. 해 지기 전에는 안 그랬는데……. 어? 그러네? 갑자기 물이 빠졌네? 왜지?”

여전히 사람들은 반짝거리는 라이트를 켜고 해안가에 바글바글 몰려 있었다. 아예 낮은 단상을 만들어 노래를 부르는 등,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빠진 물. 해안가의 위화감을 눈치챈 사람은 아무도 없어 보였다.

‘어……?’

연가을의 팔에 소름이 쭉 돋았다. 데아는 버럭 소리쳤다.

“지금 당장 5층 건물 이상 높이로 올라가세요. 언덕이나 건물이 없으면 평지가 안 나올 때까지 달려서 대피해.”

“아 설마, 지금 저거…….”

연가을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손이 벌벌 떨렸다. 바다의 해안가는 지금도 눈에 띄게 빨리 낮아지고 있었다.

“사실, 이미 늦었어요.”

“말도 안 돼……!”

그리고 그때, 폭죽 소리만 가득했던 밤하늘이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애애애애애애앵―!!

그건 재앙의 전조였다. 뚝, 시끄러웠던 폭죽과 마이크소리가 중단되었다.

“뭐야? 무슨 일이야?”

“왜 멈춰?”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밖에 있던 누군가가 헐레벌떡 뛰어나와 마이크를 잡았다. 그 사람의 얼굴이 땀으로 번들거렸다.

―지금 당장 위로 올라가거나 도망치십쇼!! 해일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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