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식인인어는 죽어야 한다-140화 (140/223)

※ 140화 【백리서 외전】

태초가 죽었다. 그리고 트리야는 다음 왕좌를 고스란히 받았으며, 므아나는 거대한 제국을 무너뜨려 심해로 가라앉혔다.

“윌로. 창 열어.”

“으응… 알았어.”

추방당한 세 명의 인어는 태초의 시체가 있는 장소를 찾아야 했다. 그러나 차원은 무수하게 많았고, 그중에 인간계는 다수였다.

첫 번째로 간 인간계는 모래바람이 날리는 황야였다.

대부분의 인간들은 땅굴을 파고 지하에 숨어들어와 살았으며, 땅 위에는 절그럭거리는 전투 로봇이 항시 상주해 있었다.

세 명의 인어는 곧장 작업에 착수했다. 그들은 곧장 세상을 혼란으로 몰고 갔다.

“던전이 많이 열리면, 티가 나지 않으려야 나지 않을 리가 없어. 누군가 뇌를 이미 먹어 태초가 되었다면!”

뇌가 아무에게도 발견되지 않았다는 최악의 가설은 상상하지 않았다. 태초의 뇌, 그 안의 기생 생물이 훼손되었다면 인어들은 그 순간 전멸이었으니까.

던전이 열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각성을 시작했다. 인간들은 강해졌고, 그에 따라 던전 난이도 또한 올라갔다.

그 세계의 멸망은 정확히 47년이 걸렸다.

“여기에는 없어. 윌로, 다음 세계를 열어.”

“알았어. 그런데 움 언니, 미래 봐주면 안 돼? 또 시간을 버릴 순 없어!”

“미안한데 이건 잘 안보여… 태초의 실체가 희미해서 그런가, 내 예지력에도 타격이 생겼나 봐.”

두 번째 세계는 온갖 소드 마스터와 마법사가 난무하는 세계였다. 이 세계가 멸망할 때 까지는 5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여기에도 없어. 윌로. 다음.”

“으으으… 잠시만.”

그리고 도착한 세 번째 세계. 과학이 발달한 세계. 가장 세련되고 음습한 공간에 발을 디딘 세 명의 인어는 바로 작업을 시작했다.

“어, 므아나.”

“왜?”

움의 눈이 회오리치고 있었다. 그러곤 그는 씩 웃더니 이내 ‘아냐. 아냐. 알아서 잘하겠네.’라며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6년 전에 인어를 뭐… 예측한 사람으로서 인터뷰를 좀 해달라……. 하지만 저는 더 이상 언론에 오르고 싶지 않거든요. 정말 그 어떤 일로도요.”

기대 없이 갔던 정신 병동 안, 므아나는 우뚝 굳었다.

“…저희 길드 ‘여파’는 국내 최초, 그리고 세계에서 두 번째로 빠르게 등록을 마친 길드입니다. 무단으로 사진을 업로드하거나 악질적인 기사를 올리고… 그런 짓은 하지 않아요.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그러니까 3주 된 길드를 믿으란 말이죠.”

“뭐, 게이트와 던전이 나온 게 그때니까요. 저희와 인터뷰를 해주신다면 합당한 비용을 지불하고 이데아 씨의 6년 전 진실 규명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익숙한 마력. 여전히 확신할 수 없었지만 기이한 예감이 전신을 덮쳤다.

이거 설마… 설마?

“솔직히 말해서 인터뷰만 하기 아깝네요. 이데아 씨, 각성하셨군요.”

므아나는 미끼를 던졌다.

“…제가 각성한 줄 어떻게 아셨어요?”

그렇지.

“각성을 한 사람은 주변에 흐르는 마력부터 다르거든요.”

므아나는 유려하게 미소했다.

“이데아 씨를 길드 ‘여파’로 스카우트하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          ◈          ◈

이데아를 스카우트하는 것에 성공했다.

백리서는 먼저 나가 윌로와 움에게 연락을 전했다.

[찾은 것 같아. 확실하진 않지만.]

[우와!! 짱이다!! 미쳤다!]

[윌로 그런 말은 어디서 배워 온 거야?]

[여기 인간들이 다 써 재밌잖아. 그래서 주군은 외형은 어때? 어려? 늙어? 성별은? 성격은?]

“저… 여기 타면 되는 건가요?”

뚝, 휴대폰 화면을 끈 므아나는 데아를 향해 환하게 웃었다.

“그럼요. 뒷좌석에 타세요.”

이왕이면 상석에.

“자아, 그럼 이제 헌터 등급을 말해 줄 생각이 생겼어요?”

“저는…….”

“네.”

“조금 등급이 이상한데.”

“이상하다고요? 어떻게요?”

백리서는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등급. 그래 등급. 분명 그건…….

“N이라고 나와요.”

“N?”

백리서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는 부러 흥분을 감추기 위해 목소리를 낮췄다.

“그건 또 뭐지…….”

◈          ◈          ◈

모두가 ‘므아나.’라고 부르는 인어의 진짜 이름은 ‘릴리므아나’였다. 오로지 태초만이 그를 애칭으로 부를 수 있었는데, 그건 곧 ‘백리서’의 헌터명이 되었다.

“이것 봐, 므아나 언니. 이 세계의 신화인데, 이브에게 선악과를 먹도록 꼬드긴 악마의 딸의 이름이 릴림이래.”

“다물어.”

“그런데 언니는 왜 헌터명을 그걸로 지었어?”

태초가 아닌 남이 그를 ‘릴림’으로 불렀다가 그대로 살가죽이 뜯겨나간 적을 몇 번 목격한 바 있는 움과 윌로는 그런 그의 결정을 의아하게 여겼다.

“모든 인간들이 언니를 그 애칭으로 부를 텐데, 괜찮아?”

그러나 므아나는 너무나도 산뜻하게, 그게 뭐가 문제냐는 굴었다.

“됐어. 언젠가의 주군에게 불릴 수도 있겠지.”

그러나 야속하게도 그의 주군은 그를 ‘리서 언니’라고 불렀다. 그러나 그 호칭도 마음에 들었으므로 므아나는 굳이 정정하지 않았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다. 쏟아지는 파도처럼 그의 주군은 강해졌다.

태초는 모든 것을 삼키고, 모든 것이 된다. 므아나는 다른 길드원들이 수집한 마석과, 데아의 뒷주머니에 들어가 있던 인어의 마석을 훔쳤다. 그대로 가루를 내 음식에 섞었다.

“어? 마카롱?”

그 음식은 모두 주군의 목 안으로 넘어갔다.

므아나의 눈이 가늘어졌다. 열네 번째. 모든 일이 순조롭게 흘러갔다.

주군은 예상대로 거리 측정 불가 판정, ‘N’ 등급이었고, 미개한 인간들은 그 등급이 뜻하는 바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으며, 고맙게도 숨겨 주기까지 했다.

등급.

모든 마력과 이능력은 ‘태초’로부터 파생된다. 헌터들이 알파벳으로 나누는 등급표는 사실, ‘얼마나 태초와 더 가까운 힘을 내는지’가 기준이었다.

어스름하게 태초의 발자취만 밟은 F, 그보다는 가깝지만 여전히 멀리 떨어져 있는 인간 E, 애썼지만 애석한 D, 애매한 거리에 위치한 C, 나름 가깝지만 태초의 힘에 비할 수 없는 B, 놀라운 힘을 가졌지만 하급 인어 수준으로 여전히 약한 A, 그리고 태초와 아주 가까운 힘을 내지만, 결국 그의 권속인 1세대 인어만치도 따라오지 못하는 S까지.

그리고 N등급. NO FOUND

태초와의 거리를 측정할 수 없음.

태초 본인만이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등급.

본인이 태초이기에 측정할 수 없는 거리를 가진 유일한 헌터는 하루가 갈수록 싸움에 능숙해졌다. 숨기는 것 같지만 본래 태초가 가지고 있던 능력을 하나둘 깨우치고 있는 것도 같았다.

“므아나. 주군은 어때?”

“종종 홀로 허공에 말을 거는 게, 사해의 화살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 같아.”

“오, 좋은 징조네. 예전의 주군도 종종 갑자기 허공에 말을 하곤 했잖아?”

“그렇지…….”

이제는 정말 멀지 않았다.

태초는 본능적으로 우리의 바다를 찾는다. 인간계가 멸망하고 온 세상에 게이트밖에 남지 않게 되면 태초는 결국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태초가 어떤 인간계로 넘어갔을지 몰라 지난 100년 간, 두 인간계를 무작정 파멸시켰던 므아나가 혀를 찼다. 참 멍청한 짓을 했어. 다정한 주군은 이렇게나 빨리 나타나 주는데.

주군은 예상대로 ‘백리서’를 신임했고, 의지했다. 순조롭게 친해져 그에게 과거의 파편을 건네고, 기억을 찾지 못해도 그를 이끌어 제국의 제왕으로 올리려던 계획을 짜는 순간이었다.

“인어요? 왜요?”

“그냥.”

“인어는 죽여야죠. 내가 죽일 거예요.”

아이스크림을 먹던 데아의 표정이 처참하게 구겨졌다.

므아나는 아차, 주먹을 쥐었다.

므아나가 예상하지 못했던 하나. 그건 바로 주군이 인어에게 생각보다 큰 공포와 환멸을 가지고 있다는 거였다.

원인은 하나. 6년 전, 데아를 위협했던 붉은 인어.

그렇기에 므아나는 곧바로 칼리안에게 창끝을 돌렸다. 데아가 원망하는 대상은 그뿐이다. 붉은 머리를 가진 놈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 주군의 마음을 달랠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붉은 머리 인어들의 목을 가지고 데아에게 달려가는 백리서를, 움은 예지를 통해 보았다.

붉은 눈을 한 예언자. 미래를 바꾸는 예지자. 움은 잔혹한 충견으로부터 자신의 권속들을 지키기 위해 선택해야 했다. 수만 갈래로 나누어진 광활한 우주 사이에서 그와 그의 권속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

움은 오래된 은신을 깨고 행동했다.

“6년 전… 한 나라에서 우리는 어느 여자아이를 놓치고 말았지.”

이 일로 데아의 존재는 인간계에 부정적으로 인식되었다. 그리고 므아나는, 이 일로 인해 트리야가 이쪽을 주시하기 시작했다고 믿을 것이다.

“움, 네가 머리를 쓰는구나.”

므아나는 이를 갈았다.

트리야가 이쪽 상황을 주시하고 이데아는 심하게 불안해하고 있는 가운데, 내분은 치명적이다. 므아나는 칼리안과 붉은 머리 권속들의 처분을 다음으로 미루었다.

“주군은 어떡하고?”

“이게 우리에겐 더 이득일걸?”

이데아는 이 일로 인어와, 인간. 둘에게 진저리를 느꼈겠지만 인어만을 배척했던 과거에 비해서는 장족의 발전이었다.

므아나는 묘하게 뻔뻔한 얼굴로 결국 다 잘됐잖아? 하는 움의 멱살을 틀어잡아 내던졌다.

“두 번은 없다.”

“켁, 콜록! 하, 하여튼 성격…….”

움은 화가 난 므아나에게 선물을 건네야 했다. 선물은 곧 유능함의 증명이었다.

예지자는 속삭였다.

“곧 다가올 미래, 주군은 칸나니아와 싸운다…라 어쩌면 네 조언이 필요할지도?”

므아나는 분노를 거뒀다. 그때 우우웅― 휴대폰이 진동했다.

가늘게 떨리는 숨을 마저 들이쉰 움은 므아나가 통화를 받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꾹, 므아나가 부드럽게 웃었다.

“응. 데아야. 왜? 무슨 일 있어?”

멍청한 므아나. 바보 같은 므아나.

그것보다 더 머저리 같은 나.

거역할 수 없는 한 인어를 위해 수 없이 많은 삶을 짓밟은 우리는 결국 그 죗값을 치르게 되겠지.

그러나 움은 알고 있었다.

영생과도 같은 삶을 끝내고, 지옥 불에 떨어진다고 해도 이 순간을 후회하지 않으리라. 우리는 결국 당신에 의해 파생된 존재들이니까요. 당신의 눈부신 모습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존엄의 목을 매달 수 있으니까요.

이유는 하나였다. 인간들의 목숨은 비천하고, 당신은 옥좌가 가장 잘 어울린다.

우리의 시초는 우주를 품은 기생 생물. 가장 위대한 인어. 당신이 어떤 몸을 가졌던 간에, ‘우리’는 언제나 당신을 칭송한다.

이 모든 것은 태초를 위해서. 우리들의 주군을 위하여.

◈          ◈          ◈

움은 연옥으로서 길드 여파에 방문했던 때를 떠올렸다.

“안녕하십니까. 여파의 공격대장 릴림입니다.”

“네, 네. 연옥이라고 합니다. 여기는 제 손녀딸이에요.”

“…….”

“우리 유라는 사고로 말을 하지 못해요.”

“네. 우선 안으로 들어오시죠.”

세 명이 모여 있었지만 우습게도 세 명 다 인간이 아니었던 순간.

백리서가 등을 돌리려던 찰나, 움은 빠르게 입술을 달싹여 속삭였다.

‘성격 많이 죽였네?’

입 모양뿐인 말을 알아들은 백리서 또한 입 모양으로만 속삭였다.

‘다물어.’

‘혹시 몰래 우릴 보고 있는 저 세 개의 머리 중에 하나가 주군이야? 뭐야, 귀엽잖아? 저 단발이지? 예전에 예지로 본 모습과 똑같아.’

백리서는 무시하고 넘어갔다.

◈          ◈          ◈

“나도 한국 사람이야. 반가워! 난 프리 헌터고, 무기로는 활을 써. 그리고 JJ 길드가 임시적으로 날 고용했고, 헌터명은 위로. 본명은 이위로야. 이름은 들었는데… 데, 데아? 그럼 데아 언니라고 불러도 돼? 그런데 나랑 구면이지 않아?”

“왜 너랑 내가 구면이야?”

이위로는 씩 웃으며 다가왔다.

언제나 친구 같은 주군이 꿈이었지. 그 소원을 드디어 이뤘다!

“헌팅에서 봤잖아. 커뮤니티. 기억 안 나?”

그러자 주군의 얼굴이 아작아작 구겨졌다.

└위로 : 거기서 게이트 터지면 꿀잼이겠다.

└ㅁㅊ 이위로다

└헉 위로야

└위로 님 한국에 언제 들어오세요?

└월드 스타가 지켜보는 현피라니.

실제로 이위로는 댓글을 쓰며 한참동안 웃었었다.

“진짜 샤샤? 아, 진짜 웃겨!”

그리고 동시에 므아나에게 전화를 걸었었다.

“두 번째 게이트는 여기가 좋겠네. 지금 헌팅 봤어?”

물론 그 사실을 모르는 주군은 그저 데면데면하게 자신을 대우하고 있었다.

그때 주군의 어깨너머서 므아나가 허튼짓하지 말라며 눈길을 주었다. 하지만 이위로는 므아나의 시선을 무시한 채 데아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샤샤, 출발할 시간이야.”

대화는 끊겼다. 이제 출전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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