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9화
“시, 신이요?”
“그래. 신.”
“…인어에게도 신이 있다니.”
“일종의 상징성이 다분한 유일신이지. 그들은 그를 ‘사해의 신’이라고 부른다.”
“그건 상상도 못 했던 정보인데…….”
연구 소장은 침을 꿀꺽 삼켰다.
“정말 당신은 대단하군요. 나중에 개인적으로 확증을 하고 신용하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그에 대한 정보는 더 알려 주시는 거겠죠?”
“당연하다.”
“정말 마음에 드는 답변이군요. 참고로 우리도 가만히 있던 건 아닙니다. 이거 보이십니까? 우연히 경매를 통해 발견한 유적입니다. 무려, 무려! 인어를 막을 수 있는 병기를 개발할 수 있는 설계도라고요!”
병기? 칸나니아는 가만히 그 천 더미를 들여다보았다. 너무나도 오래되어 없어진 부분도 많은 설계도였지만 과연 흥미로웠다.
그러고 보니, 먼 과거, 태초를 죽음으로 이끌었던 정체불명의 병기도 이렇게 생겼다고 들은 것 같은데……. 언젠가 펑펑 울며 말했던 윌로의 묘사가 정확하다면 어쩌면 저것은…….
“인어에게 당하고만 살 수 없진 않습니까. 직접 게이트를 열 수 있는 인어가 우리 편에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지지요. 제 가설을 들어 보시겠습니……?”
덜컥 고개를 들어 시선을 옮긴 연구 소장은 잠시 말을 멈췄다. 연구 소장의 눈에 미친 칸나니아의 입꼬리가 죽 찢어져 있었다. 순간 숨을 들이켠 연구 소장은 섬뜩함을 느꼈다. 하지만 곧 도리어 더 흥분해 그에게 더 바싹 다가갔다.
“역시 마음에 들어 하실 줄 알았어요. 자, 들어 보세요. 시나리오 1, 이번에는 인간이 직접 그 인어 제국이라는 곳을 침략할 겁니다. 그러기 위해선, 관리가 편한 탑 시스템을 개방하는 것인데…….”
그들이 시끄럽게 떠들 때였다. 똑똑, 누군가가 노크를 했다.
“아, 우리의 투자자가 오셨군요.”
“투자자?”
칸나니아는 후드를 다시 뒤집어썼다.
“네. 저희 MBL 연구소에 큰 기대를 걸어 주시고 계신 분이십니다. 이번에만 잠시 오신 거라 아마 많이 마주치시지는 않을 거예요. 그러니 잠시만…….”
칸나니아가 뒤로 기척을 숨기자 문이 열렸다. 어, 저 인간은……? 칸나니아의 눈이 커졌다.
“안녕하세요.”
“아,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하영주입니다.”
여파의 부길드장 하영주. 이자는 분명 이리나의 섬에서 피를 뚝뚝 흘리는 동료를 붙잡고 있던…….
“영영 부길드장이라고 부르셔도 됩니다.”
“하하, 당연히 알죠. 이번에 새롭게 부길드장이 되셨잖아요. 우선,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평소 절 신뢰해 주신 권도언 길드장님 덕분인걸요.”
“네. 저는 MBL 정소진 연구 소장입니다. 편하게 정 소장이라고 불러주세요.”
“네. 정 소장님.”
예전에 봤을 때와 분위기가 달라졌다. 탁한 눈을 하고 있는 하영주를 본 칸나니나의 입매가 싹 말려 올라갔다.
“그래서 이게 인어들을 멸종시킬 수 있는 병기의 설계도라고요?”
“네. 설명을 드리자면…….”
칸나니아는 고민했다. 무엇이 더 주군을 괴롭게 만들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주군의 뇌를 갈취하고, 그것으로 인어들을 협박하고, 조종하며, 뜻대로 움직이게 할 수 있을까.
무엇이 더 트리야를 더욱 폭군답게 만들 수 있을까.
트리야의 의지는 이제 중요해지지 않았다. 칸나니아의 사고의 흐름은 이미 단 두 가지밖에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칸나니아에게 남은 것은 태초를 죽이고 뇌를 얻어 트리야의 신임을 받는 인어가 되겠다는 야망과 오로지 저만의 폭군을 높은 곳에 올려 두겠다는 욕심뿐이었다.
생각은 길지 않았다. 칸나니아는 결정을 내렸다. 굳건하게 바위를 뚫는 나무가 되기 위하여, 앞으로의 수년간은 뿌리를 내리며 준비해야만 했다.
가장 조용하게 이루어진 여섯 번째 1세대 인어의 역모 계획은 이제 시작이었다.
◈ ◈ ◈
5년 후, 인간계에 큰 전쟁의 조짐을 알리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인어들도 나라가 있고, 종교가 있는 문명 생명체라는 것. 그리고 사라진 줄 알았던 그들은 사실 사라진 게 아니며, 거대한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마침내, 그 전쟁의 준비가 거의 끝에 달했다는 것.
그들의 오랜 신이 드디어 돌아왔고, 그 악신에 의해 인간들은 모조리 도륙될 될 것이라는 것.
근거도 출처도 없는 인터넷 지라시에 불과한 소문은 이상하리만큼 잘 퍼졌다. 물론 많은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허공에 게이트가 생겼다. 5년 만에 처음 생긴 게이트였다.
“저, 저게 뭐야!!”
“으아악!”
서울의 한복판에 갑자기 생성된 게이트. 튀어나오는 파도도, 인어도 없는 형체뿐인 게이트였지만 그것만으로도 시민들의 불안감을 조성하기는 충분했다.
“헌터들을 참전시켜!”
우선권을 얻은 한 중형 길드의 공략 팀이 우선 참가했다. 그러나 아무도 빠져나오지 못하고 게이트가 도로 열렸다. 전멸이다. 그러자 또 다른 팀이 참가했지만 마찬가지로 결과는 참혹했다.
유일하게 이동 스크롤을 써서 빠져나온 한 생존자는 덜덜 떨며 이렇게 증언했다.
“괴물이, 괴물이, 괴물들이 너무 많아요!! 살려 주세요! 사해의 신이 왔다고요! 우리를 다 죽일 거예요! 준비가 머지않았다고 했어요!! 동료들을, 헌터들을 산 채로 집어삼켰어요! 식인인어라고요!”
해당 증언을 한 사람은 머지않아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하더니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에 주목을 받는 건 출처불명의 괴소문이었다.
‘인어들의 악신이 드디어 미쳤다! 인간에게 증오심을 품은 신이 거대한 저주를 내리려 한다!’
인간들이 혼란에 잠긴 그때, 심지어 거대한 게이트가 하나 더 생겼다. 그 안으로 들어간 헌터들은 들어가자마자 괴성을 지르며 뛰쳐나왔다.
“기, 기존에 봤던 게이트와 너무 달라요!”
게이트의 시스템이 달라졌다. 변화는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
괴소문은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다. 두려움에 떠는 인간들의 유일한 희망은 다시 능력을 되찾고 있는 헌터들과 청렴한 연구로 명성을 떨쳤던 인어 생체 연구소 MBL이었다.
―다사다난했던 지난 연구 끝에, 저희는 드디어 길드 ‘여례아’의 헌터들과 함께 해당 게이트에 대한 분석을 완료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MBL와 여례아는 자신들의 분석을 발표했다.
―인어들이 지구에 새롭게 뿌리를 내린 이 새로운 게이트는 겉보기에는 일반 게이트와 다를 바가 없지만, 내부로 들어가면 조금 다릅니다. 안으로 들어가면 대기실이 있으며, 그곳에는 새로운 게이트가 또 펼쳐져 있습니다.
-게이트 안에 게이트가 또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네.
-그 게이트의 정체는 뭔가요!
―1층으로 연결되는 게이트입니다.
1층? 정적이 내려앉았다.
―일명, 탑 게이트라고 불리는 것이죠.
―탑 게이트…….
―1층을 클리어하면 2층으로, 2층을 클리어 하면 3층으로 올라서는 시스템을 가진 게이트죠. 1층은 1층답게 그에 걸맞은 낮은 난이도의 던전입니다. F등급보다 낮은 수준이었죠. 그리고 이곳에 나와 계신 여례아 헌터 분들께서 이미 1층 게이트를 손쉽게 클리어해 주셨습니다. 그러고 나니 새로운 게이트가 열리더군요. 그건 바로 2층으로 향할 수 있는 게이트였습니다. 예상이 들어맞은 거죠.
방송을 지켜보던 수많은 사람들이 인어들이 악랄한 수법을 쓴다며 욕을 했다. 그러나 그들이 모르는 사실이 있었다. 바로 해당 게이트를 만든 건 MBL이라는 사실이었다.
―해당 게이트는 몇 층까지 있습니까?
―좋은 질문입니다. 해당 던전은, 15층까지 있습니다. 그러나 확정된 사실은 아닙니다. 현재 측정 가능한 층이 이 정도이니 나중에 가서는 더 늘어날 지도 모르죠.
연구 소장은 히죽 웃었다. 예상보다 빨리 클리어하거나, 거의 다 클리어하게 되었을 때 미처 준비가 되지 않았을지라도 더 층을 늘릴 생각이었다.
―2층은 아직 토벌 중에 있습니다. 많은 헌터분들의 참전을 환영합니다. 해당 게이트는 무려, 인어가 먼저 튀어나오지 않아도 먼저 들어가 공격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있으니까요!
먼저 들어가 공격 할 수 있다고? 그 말의 파급력은 엄청났다. 기자 한 명이 덜덜 떨며 손을 들었다.
―그렇다면, 인간이 인어를 먼저 공격하는 것도 된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헌터분들도 들어가면 느끼시겠지만, 해당 인어들은 먼저 우리의 도시로 나오지 않을뿐더러, 선공격을 하지도 않습니다.
―선공격을 하지 않는다니!
―그리고 알고 계시나요? 인어들의 제국에도 신과 제왕 그리고 제국이 있다는 사실을요.
연구 소장은 배부른 맹수처럼 좌중을 훑었다. 출처 없는 지라시가 MBL이 공인한 실제 상황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 소문들이 사실이라는 겁니까?
―예.
―사해의 신이 인간들의 멸종을 꿈꾸고 있다는 것도 말입니까?
―예.
기자들이 시끄러워졌다. 플래시가 찰칵찰칵 무수하게 터졌다.
―이건 기회입니다. 인간들을 우습게 보고 항상 공격하기만 했던 인어들이 방심하고 있는 틈을 타! 먼저 그들의 신과 제왕. 그리고 제국을 멸망시킬 기회란 말입니다.
인어에게 가족이나 동료를 잃었던 자, 인어를 학살하는 모습을 동경했던 자들의 심장이 일제히 뛰기 시작했다.
―먼저 치지 않으면 우리가 당합니다. 이미 그들의 신은 미쳤으니까요! 최대한 많은 던전을 클리어하고, 인어를 죽여 재화를 얻어야 합니다. 그 힘으로 15층까지 올라가자고요! 분명 15층에는 제국의 심장부, 왕궁이 있을 것입니다! 인어들의 예상보다 아주 빠르게 왕궁을 몰락시킵시다!
방송을 보던 수많은 사람들이 발을 쿵쿵 굴리며 소리를 질렀다. 늘 당하기만 했던 우리가 선공격을 할 수 있다니! 그 포악한 인어들을 기다리지만 않고 직접 나서서 공격할 수 있다니, 그들의 의지를 직접 저지시킬 수 있다니!
능력을 각성하고도 직접 게이트에 참여할 기회가 적었던 수많은 헌터들이 길드에 지원서를 내기 시작했다. 기록에 남을 법한 지원 수였다.
그렇게 방송을 끝낼 시간이다. 연구 소장은 마이크를 꽉 잡으며 마침표를 맺었다.
―저희는 이 새로운 형식의 게이트 탑을 포세이돈(Poseidon)이라고 명명하기로 했습니다.
포세이돈! 기자들의 플래시가 미친 듯이 터지고, 우레 같은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카메라가 꺼지고, 단상에서 내려온 연구 소장은 소리 내어 웃었다. 기자들이 몰려들어 질문을 던졌지만 노코멘트로 일관했다.
◈ ◈ ◈
“당신 덕분입니다, 칸나니아.”
차에 올라탄 연구 소장이 읊조렸다. 뒷좌석에 앉은 그림자, 칸나니아가 픽 웃었다.
“이런 게이트를 만들 수 있다니, 인어라는 생물은 정말 놀랍군요.”
“게이트는 ‘범위’를 지정하는 통로다. 사정거리 안에서 가장 많은 마력을 품은 인어를 보스 인어로 자동 판정한 후, 게이트를 만들어 두기만 하면 되는 것뿐. 그것을 응용하는 건 아주 쉽지.”
그리고 칸나니아가 손을 흔들자 작은 규모의 창이 또 생겨났다. 그 안으로 이동하며 칸나니아가 손을 흔들었다.
“포세이돈(Poseidon)이라. 작명은 영 별로군.”
헌터들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대형, 중형 그리고 소형의 길드가 우후죽순 만들어지고, 아주 낮은 등급의 헌터들도 무작정 포세이돈 안으로 뛰어들었다.
헌터들 사이에서 도는 소문은 이제 이것 하나였다.
빠르게 탑을 15층까지 올라라. 15층에는 그들의 신이 있다.
인간의 안전을 위해, 무수한 재물을 위해 그리고 복수를 위해.
인어들의 돌아온 주군.
사해의 신, 태초를 죽여라.
-1부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