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5화
피투성이가 된 가윗이 급히 구급대원의 손에 눕혀져 실려 갔다. 귀를 찢는 사이렌 소리와 동생의 상태를 본 가비가 비명이 아비규환처럼 이지러졌다.
“도원 길드장은 어디 있습니까?!”
“릴림 헌터는 혹시 보셨습니까? 게이트가 잠깐 나오고 다시 사라졌는데, 아직 이 안에 계시는 겁니까!”
“샤샤 헌터 또한 같은 게이트로 넘어간 것으로 알고 있는데, 소식을 아십니까?!”
그러나 작은 타격상만을 입은 하영주는 입을 틀어막고 끅끅거리며 무너지고 말았다. 정신적인 충격이 큰 모습에 기자들조차 말을 잃고 침묵했다. 네티즌들은 추측과 억측을 반복했고, 급기야 저 둘을 제외한 모두가 사망한 게 아니냐는 소문이 유령처럼 떠돌았다.
그렇게 수일, 검은 색 옷을 입은 하영주가 기자 회견에 나섰다.
“가윗 헌터는 혼수상태에 빠져… 아직 깨어나지 못했습니다.”
출혈이 너무 심했고, 설상가상으로 머리를 강하게 부딪힌 가윗은 1인 병동에 죽은 것처럼 누워 있었다. 그의 팬과 수많은 사람들이 꽃을 보내고, 가족과 동료가 밤낮 구분 없이 간병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눈을 뜰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모두가 가장 궁금해할 샤샤 헌터의 행방.
하영주는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바르르 떨었다. 마지막 모습의 데아는, 데아는 어땠지? 어떻게든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몸을 던진 데아를, 그 인어가, 거창으로, 단번에…….
“데아는, 이데아는, 샤샤 헌터는.”
사위가 조용해졌다. 하영주는 서늘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인어들에 의해 사망했습니다.”
적막이 내려앉았다. 차마 먼저 물어보지도 못하던 공략 팀의 다른 동료들이 입을 틀어막았다.
“죽, 죽었다는 겁니까? 목격하셨습니까?!”
“샤샤 헌터가 사망했는데 왜 게이트가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겁니까!”
마지막 기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하영주의 눈이 번뜩였다. 근처에서 도를 넘은 질문이라며 누군가 야유를 했다.
“제가 목격했습니다. 더 이상, 드릴 말은 없습니다.”
기자와 여론이란 참 우습다. 당장 게이트 속으로 집어 던지라며 분위기를 조성하던 모습이 여전히 생생한데, 사람이 죽었다니까 금방 동정 여론이 튀어나왔다.
인어들이 ‘6년 전 생존자’를 찾으려 했던 이유는 물건을 훔쳐서가 아니라, 단지 놓친 목표물을 향한 집착이 아니었겠느냐, 에 대한 의견이 나오며 동정 여론은 더 거세졌다.
―이상하잖아요. 물건을 훔쳤다는데 그게 뭔지도 안 알려 주다니. 그리고 영상을 보면 샤샤 헌터가 굉장히 급하게 들어갔거든요? 사망했다면 인어들이 보복성으로 죽인 것일 텐데, 물건을 과연 받았을까요? 자신의 의지가 아닌 채로 들어간 것 같은데, 이런 상황 속에서 과연 물건을 챙길 정신이 있었을 리가…….
―또 주변인들의 증언에 의하면 샤샤 헌터, 21세의 이데아 씨는 선량한 성격으로, 오히려 절도범을 잡는 것에 도움을 주는 성품의 위인이지 결코 물건을 훔칠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아……. 그러면 애초에 인어들이 거짓말을 했다는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는 것으로…….
뚝. 한적한 병실 안, 가비는 TV를 껐다. 그리고 맞은편을 흘끔 바라보았다.
축 늘어지듯 앉은 하영주가 빈 음료수 병을 뚝뚝 꺾고 있었다.
“괜찮아요?”
“뭐가?”
무언가 이상하다.
던전 안에 다녀온 직후, 하영주는 변했다. 딱 무엇이라고 정확히 짚어 얘기할 수는 없었지만, 본질적인 무언가가 달라졌다. 텅 비었다가도, 불쑥불쑥 환멸에 차오르는 서늘한 눈이 그랬다.
“그보다 길드장님은…….”
우우웅― 우우웅― 우우웅―
그때 하영주와 가비의 휴대폰이 동시에 울렸다. 발신인은 훈련장님과 같은 공략 팀의 동료.
“여보세요?”
―지, 지금 어디야?! 여파 길드로 빨리 와!
“왜 그러는데?”
심상치 않은 목소리를 들은 하영주와 가윗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환희가 뒤섞인 누군가가 환하게 외쳤다.
“길드장님하고 릴림 공격대장님이 돌아오셨어!!”
하영주와 가비는 택시를 잡아타고 달렸다. 높다란 건물 앞에서 옷의 먼지를 툭툭 턴 권도언이 기자들 사이에서 환하게 미소하고 있었다.
“023 길드와 여례아 길드의 상황은 지금 여파 길드보다 더 심각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아무쪼록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거대 길드인 만큼 원활한 회복을 소원합니다.”
입에 참기름 하나 바르지 않고 술술 말을 뱉는 매끈한 면상은 분명 권도언이었다. 그렇다면 그 옆에는……?
“안타깝게도 전부 사실입니다. 샤샤 헌터는 사망했고, 던전 안에 들어간 저희는, 동료의 죽음을 슬퍼할 틈도 없이 인어의 공격을 피해 오로지 공략을 위해 싸웠습니다. 앞으로 3일간, 이 일로 인해 희생된 모든 이를 위한 장례식을 진행할 생각이니…….”
“공격대장님―!!”
하영주의 난입에 백리서의 입이 뚝 다물렸다. 그를 본 백리서가 환하게 웃었다.
“영영 헌터.”
무사해서 너무나 다행이라는 표정, 동시에 동료를 잃은 침통한 표정. 언제나처럼 번듯한 백리서 공격대장의 얼굴이었다.
“그래도 괜찮으신가 봐요. 다행입니다.”
옆에서 가비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나 하영주는 기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저게, 슬퍼하는 사람으로 보여?’
백리서는 우수한 연기자였다. 꿈에서야 그리던 주군을 되찾은 권속, 원하는 제국을 다시 건설한 가신의 표정을 능숙하게 숨길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백리서는 찰나의 감정을 미처 갈무리하지 못했다. 하영주가 눈을 한 번 깜빡이자 기쁨이 비쳤던 백리서의 표정은 말끔히 사라졌다. 그러나 그는 이상한 느낌을 떨쳐내지 못했다.
“착각, 인가. 그런가…….”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샤샤 헌터에게 동정 여론이 쏟아진 지 10일. 그리고 한 달, 두 달, 세 달. 샤샤 헌터가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어떤 노력을 했는지에 대한 증언이 여러 곳에서 쏟아져 나오자 동정 여론은 배가 됐다.
샤샤 헌터에 대한 동정 여론을 생성하는 것에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한 건 JJ길드의 아리아 길드장이었다.
―목숨을 걸고 약점을 밝혀 줬어요. 그 모래섬 인어의 위에서요! 그 때문에 바다에 빠졌지만, 어떻게든 살아남고 우리에게 위치 신호를 주었죠. 직접 보스 인어를 처치한 것도 그입니다. 그런 그가 사망했다니… 정말 애석해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추락하는 이위로 헌터를 감싸 안고 떨어졌어요, 하지만 알고 보니 그 위로 헌터가 인어였죠. 모든 것이 샤샤 헌터를 속이기 위한 계획임에 틀림없어요. 얼마나 배신감이 컸을까요?
모든 악명과 위명을 등에 업은 여파 길드는 그 누구보다 피해를 빠르게 수습하고 다른 길드의 구제에 앞장섰다. 게이트의 클리어를 위해 직접 몸을 던졌던 권도언, 백리서, 하영주 그리고 가윗에 대한 여론 또한 긍정적으로 흘러갔다.
여파 길드는 위기를 딛고 일어선 국내 최고의 길드가 되었고, 근방의 집값 또한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치솟았다.
―그런데 말입니다. 왜 게이트는 더 나오지 않는 걸까요? 정말 샤샤 헌터의 희생을 대가로 인어들이 다 후퇴한 걸까요? 그렇다면 샤샤, 그는 정말로 위대한 영웅입니다!
하지만 헌터들은 도리어 긴장했다.
‘던전이 없다니. 그러면 각성자의 의미가 있나?’
―각성자의 힘이 점점 약해지고 있다는 통계 결과가 나왔습니다.
답은 확실했다. 게이트가 생기지 않으면, 사람들도 각성자의 힘을 천천히 잃는다. 마력을 전달하는 통로가 사라졌으니 당연한 거였다.
그리고 어디에서나, 그 사실에 분노하는 자들도 있기 마련이었다. 인어 생체 연구소, MBL 연구 소장 정소진이 그랬다.
◈ ◈ ◈
정소진 연구 소장은 차트를 넘기며 실험실 안을 내다보았다.
“그렇게 둘 순 없지. 안 그래?”
“맞는 말입니다.”
수염을 기른 다른 연구원은 그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실험실의 문을 열었다. 하얗게 칠해진 방 안, 수술대 위에 묶인 작은 여자의 형체가 보였다.
―……!! ……!
“뭐라 하는지 들려?”
“벙어리라고 하시지 않았나요?”
“나도 그런 줄만 알았는데, 아예 성대 기관이 없더라고?”
차가운 수술대 위, 연옥의 옆에서 손녀를 연기하던 유우라가 그곳에 있었다.
강제로 납치당해 속박된 유우라가 길게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역시 나오는 소리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 맞다. 그러고 보니 손님이 오셨던데?”
“무슨 손님이요?”
“글쎄……. 아무튼 우리에게 좋은 소식을 물어다 줄 손님이라는 건 틀림없겠지.”
연구 소장은 주사기를 들어 올리며 환하게 웃었다.
“인어 아가씨, 조금만 자고 있을래?”
◈ ◈ ◈
데아는 곰곰이 생각했다.
‘조금 달라진 것 같네요?’라고 말하는 피파글랜에게 ‘머리 색이랑 눈 색이 달라졌으니 그래 보이겠지’라고 답했으나, 그 말에 대한 대답으로 피파글랜의 ‘아닌 것 같기도…….’라는 의미가 선명한 표정을 본 직후였다.
기억을 되찾았으니 기존의 태초와 일치되는 부분이 상당수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결국 타고난 인성이 어디로 가는 건 아니었다.
데아는 수많은 인어들의 ‘손 한 번만 잡아 주세요!’에 한 시간 동안 시달린 후, 결국 소리를 질렀다.
“오지 마!!”
그리고 여파 길드의 길드장실 문을 열었던 때처럼 시정잡배마냥 왕궁의 문을 발로 차 열었다. 문밖에 나서자 마침 피파글랜이 엎어진 차를 치우고 다시 차를 내오고 있었다.
“그러게 왜 다시 나가셨어요.”
“저 정도일 줄 누가 알았겠어?”
“몰라서 트리야를 풀어 주고 오셨나요?”
“아, 모른 척 좀.”
반은 수면 아래에, 반은 수면 밖에 우뚝 선 제국은 아침 해에 더 밝게 빛났다. 그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제왕의 별실은 모든 제국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명당이었다.
“트리야가 이곳은 쓰지 않은 모양이더라고요. 사용한 흔적이 없네요.”
데아는 천천히 과거의 방을 둘러보았다.
트리야가 오르골을 도륵도륵 돌렸던 곳. 항상 경배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잠에 들었던 곳. 역시나, 예상했었던 바지만 오르골은 자리에 없었다.
“여파 길드 일을 다 해결하고 왔어야 했는데.”
“인간계의 관계가 아쉽나요?”
“당연하지. 가윗이 크게 다쳤는데 걱정이 되지 안 돼? 또, 영주 언니는 아마 내가 죽은 줄 알 거란 말이야……. 아마, 길드장님도.”
“죽은 줄 안다고요?”
피파글랜의 낯이 확 굳었다.
“왜요?”